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67)
로판 속 공무원 667화(668/945)
레비아탄이 섬고래가 아닌 비행 고래였다는 충격적인 진실. 덕분에 평소처럼 평온한 하루를 보내던 체네스 공작령은 발칵 뒤집어졌다.
그야 바다 쪽에서 거대한 고래가 날아서 다가오는데, 태평한 반응을 보인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아마 운석이 떨어지는 걸 직관하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몹시 다행히도 레비아탄 위에는 현명공이 있었고, 레비아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생명체’가 아니라 ‘영주님이 어디선가 주워온 괴생명체’가 되었다. 적어도 자신들에게 해를 끼칠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이지.
“육지와 가까이 있으니 크기가 더 돋보이는군. 등 위에 도시 하나를 세워도 되겠어.”
그렇게 유유히 날아왔다가 항구 앞바다에 정박한 레비아탄을 보며 황금공은 흡족한 기색을 보였다.
황금공의 말처럼 망망대해에 있을 때는 막연히 크다고만 생각했는데, 실제 육지와 비교하니 그 덩치를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움직이는 도시 국가야.
“그보다 이런 어마어마한 선물의 보답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혹시 원하는 거라도 있나?”
이윽고 나와 현명공에게 시선을 돌린 황금공은 난감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해한다. 주고받는 것에 예민한 황금공이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거대 비행 고래를 얻었다. 비록 레비아탄이 황금공의 친우가 된 건 오시덴 가문의 안배지만, 황금공과 레비아탄이 만난 건 나와 현명공 덕분이지 않나. 보답을 무엇으로 줘야 할지 머리가 복잡할 터.
“댓써~ 우리싸이에 보다븐무슌! 그냥 펴난대로만 저!”
“이거 참. 가장 어려운 말을 너무 편하게 하는데.”
현명공의 말에 황금공은 작게 웃음을 흘리더니,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황금공의 인장이 찍힌 백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친구의 가치는 측정할 수 없네. 내가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줄 터이니,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편한 대로 적어서 주게나.”
“우왕! 진쨔 아무거나 젹어두대!?”
“공작령을 달라는 것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이건 내 아들 녀석한테도 말해둘 테니, 혹시 내가 죽어도 걱정하지 말고.”
“야호!”
무려 오시덴 가문이 대대로 보증하겠다는 백지 수표. 사실상 황금공이 보일 수 있는 최대의 성의인지라 현명공은 망설임 없이 백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물론 현명공의 옆에 있던 나도 덩달아 백지 수표를 받았으며,
“저기, 각하?”
“왜 그러나 장관?”
“너무 많이 주신 것 같습니다만.”
수표가 한 장이 아닌 꾸러미라는 사실에 손이 떨렸다.
아니, 황금공에게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는 만능 소원권인데, 이걸 한 장이 아니라 다발로 준다고? 너무 과한 거 아닌가?
“방금 말하지 않았나. 저 친구의 가치는 측정할 수 없다고. 그런 거래를 한 번으로 끝내는 건 강도나 다름없지.”
그러나 황금공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하오나─”
“염려 말게, 장관. 저 친구만 있으면 장관의 생각보다 더욱 거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 본작을 민망하게 하지 말고 편히 받게나.”
더 이상 거절은 사양한다는 단호한 선언인지라 얼떨떨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도한 사양은 상대를 언쩒게 만들 수 있는 법이니.
“그럼 난 저 친구와 함께 돌아가 보도록 하지. 오늘 받은 선물은 평생 잊지 않겠소, 현명공.”
“웅! 쟐가! 나도 와인 잘마시께!”
그 와중에 백지 수표가 아닌 보야르 와인에 감사를 표하는 현명공의 모습에 황금공도 픽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며칠 뒤, 황금공과 함께 보야르 공작령으로 이동한 레비아탄이 제레노 왕국의 영해에 진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확히는 영해 위의 하늘을 떠다닌 것이지만.
‘이거였구나.’
아무튼 그 소식을 듣자마자 황금공이 말한 거대한 이득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살아있는 불침항모. 영토나 영해가 아닌 하늘을 떠다니는 전략 병기. 제레노가 항의를 해도 ‘하늘이 너네 거야?’ 라는 말로 반박이 가능한 존재.황금공은 하나의 국가를 일방적으로 팰 수 있는 수단을 손에 넣은 거였다.
게다가 레비아탄을 제레노 왕국의 영해에서 살짝 벗어난 공해에 정박시킨다? 레비아탄의 몸을 중계항처럼 꾸미면 굳이 제레노를 거치지 않아도 해상 무역이 가능하다.
‘엄청나네.’
어쩐지 백지 수표 꾸러미를 가차 없이 뿌리더라. 해양 패권을 장악하게 됐으니 뭘 줘도 아깝지 않겠지.
“우리가 쉬고 있던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이 다이나믹한 정보를 들은 트릭시는 자기 머리카락을 물고 빠는 세쌍둥이를 쓰다듬으면서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와 현명공이 레비아탄을 만나는 동안, 황금공이 레비아탄과 함께 보야르로 돌아가는 동안─ 가족들은 체네스 공작성에서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트릭시에게 인사를 하고 가겠다던 황금공조차 레비아탄에 정신이 팔렸으니, 그야말로 누구도 건드리지 않은 휴가였다.
덕분에 체네스 공작령이 뒤집어졌음에도 트릭시는 뒤늦게 이 소식을 알게 되었다.
“나한테도 알려주지 그랬니. 마나를 먹으며 자라는 아이라면 내가 연구해 볼 수 있었는데.”
그렇기에 트릭시의 말처럼 다소 아쉬웠다. 바로 근처에 대륙 제일의 대마법사가 있다는 걸 잊고 말았으니까.
“이게 날아다니는 고래를 눈으로 보니까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더라…”
그저 내가 생각해도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으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런데 솔직히 플라잉 대형 고래를 보는데 누가 제정신을 유지하겠어. 황금공과 같이 보야르 공작령으로 가지 않은 것만 해도 난 충분히 이성을 지킨 것이라 자부한다.
“좋은 걸 혼자서만 보다니. 참 치사한 아빠구나. 안 그렇니?”
“웅! 아빠! 치사해!”
“치사해! 치사해!”
“치사~”
“미안해…”
물론 이렇게 변명해 봤자 ‘고래에 정신이 팔려 가족을 잊은 미친 가장’에 불과했다.
내가 죄인이지. 내가 죄인이야.
“근데 고래가 모야?”
허나 이어지는 마리아의 질문에 나도 트릭시도 살포시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렇네. 내륙에 사는 마리아니까 고래가 뭔지 모르겠구나.
“엄청 커다란 동물이란다. 바다에만 사는 아이지.”
“바다는 모야?”
아, 거기부터 설명해야 하는구나.
***
이제는 무슨 보고가 올라와도 놀라지 않는 정신력을 가지게 되었다.
하늘이 갈라지고, 신의 축복이 내려지고, 공의회가 열리고, 세계수가 부활하고, 악신의 봉인이 풀리는 등. 백 년은커녕 천 년에 한 번 터질까 말까 하는 일들을 연이어 겪었다.
‘고래가 날았다라.’
그래서인지 트리카 제국이 만든 인공적으로 만든 고래가 발견되었다는 것. 그 고래가 오시덴 공작가와 연이 있어 황금공의 친우가 되었다는 것. 섬에 육박하는 크기로 하늘을 날았다는 것을 들었음에도 별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살다 보면 고래가 날 수도 있는 거지. 하늘이나 바다나 푸른 색인 건 매한가지지 않나. 황제라는 자가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제국 전체가 굳게 된다.
‘수 시간 동안 제레노 왕국 상공을 비행.’
그리고 그 고래가 제레노 왕국의 영해에 진입─ 아니, 영해 위의 하늘을 날아다닌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보야르와 제레노의 사이가 흉악한 건 대륙에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보야르 공작령과 제레노 왕국의 경쟁은 역사가 깊다. 비록 제레노 왕국 자체는 약 30년 전에 맺은 조약 이후로 제국에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나, 해양 왕국이라는 태생 때문인지 같은 해양 영지인 보야르 공작령과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
그렇다고 제국이 개입하기에는 제레노 왕국의 행동은 철저히 조약 내에서 이루어졌다. 거슬리기는 하지만 조약을 어긴 건 아니고, 경고하기에는 제국의 충성스러운 친우로서 행동하고 있다. 그저 보야르 공작령만 제레노에게 시달리는 중이었다.
‘이걸 이렇게 해결하는군.’
덕분에 제레노 문제는 황금공에게 맡기고 있었는데, 설마 비행 고래라는 희대의 존재를 끌고 와서 제레노 왕국을 제압할 줄은 몰랐다. 당장 몇 시간 전만 해도 외무성을 통해 제레노 왕국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으니까.
조약을 제국 측에서 일방적으로 수정해도 수용할 테니, 제발 중계항의 입지만 살려달라던가. 가슴 절절해지는 절박한 애원이라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황금공에게 제레노 왕국의 항복 소식을 전달했고, 조만간 외무성으로 출석하여 조약 수정에 손을 보태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실로 아름다운 결말이다.
그래, 아름답다. 다 아름다운데.
“도대체 안 끼는 곳이 없어.”
이 과정에 또 감찰성 장관이 끼어있었다.
분명 휴가를 저택에서 조용히 휴가나 즐겨야 할 놈이. 내 눈에 띄지 않고 숨만 쉬고 있어야 할 놈이 온갖 보고서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물론 비행 고래, 레비아탄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현명공이라 친척인 장관이 개입한 건 이상하지 않다. 심지어 레비아탄을 영지로 끌고 간 사람은 장관이 아니라 황금공이다. 적어도 이번 일에 대해서는 장관은 개입보다 관망한 것에 가깝다.
‘그래도 괘씸해.’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 기이한 원망감이 솟아올랐다.가는 곳마다 사건사고를 몰고 다닐 바에는 저택에만 머무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나? 왜 밖을 돌아다니지 못해서 안달이지?
머리로는 장관이 무고하다 외치지만, 그동안 여러 피해를 본 마음은 장관을 쉴 새 없이 욕하고 있다. 실로 기이한 일이다.
‘진정하자.’
타오르는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책상 서랍에 몰래 숨겨두었던 보드카를 꺼냈다. 적당한 음주는 업무에 도움을 주는 법.
‘…물이군.’
그리고 조심스레 한 모금을 마시자 강렬한 보드카의 맛이 아닌 맹물의 맛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황후가 물로 바꿔버린 것 같다.
“망할.”
이게 다 장관 때문이다.
***
레비아탄이 말한 세 기둥의 정체를 알기 위해 아텔리우스를 찾아갔다.
아텔리우스는 악신들과 드잡이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긴 세월을 살아온 존재. 레비아탄을 비롯한 세 기둥에 대해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레비아탄?”
“예. 트리카 제국이 인공적으로 만든 고래입니다.”
“흐으음, 트리카와 레비아탄이라…”
내 질문에 아텔리우스는 손톱으로 지면을 톡톡 치며 생각에 잠겼다.
“잘 모르겠군. 바다 쪽으로는 별로 가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그리고 다소 아쉬운 대답이 돌아왔다.
하긴. 아무리 트리카 시절에 살아있었더라도 정보 자체를 듣지 못했다면 의미가 없─
“대신 베히모스라는 소는 본 적이 있지만, 비슷한 녀석인가?”
‘오.’
순식간에 세 기둥 중 하나를 알게 되었다.
역시 과거에 대해 알고 싶으면 어르신의 도움을 받는 게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