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68)
로판 속 공무원 668화(669/945)
아텔리우스에게 문의한 결과, 레비아탄은 모르지만 베히모스는 본 적이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가장 이상적인 답변이었다. 어차피 레비아탄은 이미 발견한 것도 모자라 황금공의 친우로서 제국 남쪽 바다로 터전을 옮겼으니까. 확보한 생명체보다는 이름조차 모르던 생명체에 대한 정보가 더욱 귀한 법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어지간한 건물보다 거대한 소였다. 아니, 건물이 아니라 동산 수준의 크기였나?”
“신기한 짐승이로군요.”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덩치가 아닌 발이었다. 마치 구름처럼 희미해서 네 발로 걸어 다녔음에도 진동 하나 느껴지지 않았지. 걷는다기보다는 부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군.”
그 말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레비아탄은 사람이 드문 바다를 골라 헤엄치거나, 여차하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덕에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 만약 격렬하게 몸을 뒤흔들면 해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레비아탄이 작정하고 진상을 부려야 가능한 일이다.
반면 베히모스는 육지를 돌아다니는 존재. 그 거대한 덩치가 단순히 발을 내딛기만 해도 땅이 울리며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질 것이다. 걸어 다니는 지진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그런데 육지에 발을 디디며 걷는 게 아니라 구름처럼 부유하며 다닌다? 주변인들이 베히모스의 크기에 압도당할지언정 피해는 생기지 않는다.
‘대단하네.’
경이롭다. 섬만한 고래, 산만한 소를 만든 것도 놀라운 일인데 부유하는 소도 만들어? 얘기를 들어보니 황태녀처럼 몇 cm 정도 떠다니는 수준 같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야.
“혹시 그 베히모스라는 소, 성격은 어땠는지 기억하십니까?”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은 없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굉장히 온순한 녀석으로 보였다. 목초지에서 소나 양을 돌보는 것 외에는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그 목초지도 트리카 제국의 황실 직할령이었지.”
연이은 희소식에 고개를 끄덕였다.
레비아탄과 달리 난폭하고 깽판을 치고 다니는 녀석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조용히 목초지나 지키고 있던 녀석이면 걱정할 것이 없다.
‘역시 소가 순해.’
일반적인 소들도 덩치에 비해 순하고 겁이 많은 동물이지. 아무리 만들어진 생명체여도 소의 본질은 유지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하늘에서도 보이던 녀석이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추었군. 네가 묻지 않았다면 영원히 잊었을 거다.”
그렇게 말한 아텔리우스는 다시 지면을 손톱으로 두드리더니,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베히모스를 본 장소는 제도 인근이었다.”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베히모스의 흔적을 찾으려면 거기부터 뒤져보라는 말. 친절하기 짝이 없는 배려였기에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제도라.’
당연히 지금의 제도를 말하는 건 아닐 거다. 제도 아우스엔과 그 인근은 제국 건국 이래로 수백 년 동안 철저히 개발된 지역. 베히모스 같은 게 잠들어 있었다면 진작 발견되었을 거다.
그렇다면 트리카 제국의 제도를 말하는 것일 텐데, 당시 제도가…
‘크로이타였지.’
크로이타. 제국 남서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과거에는 트리카 제국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렸지만, 아펠스 건국 이후로는 권력에서 멀어져 그저 그런 도시로 전락한 비운의 지역.
그러나 한때 천년 제국의 중심지였고, 아펠스 건국 이후로도 도시의 기능을 한지라 역사적 가치는 상당한 도시인 걸로 기억한다. 관광 사업만으로도 제법 괜찮은 수익을 낸다고 할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거기에 잠들어있으면 어쩌지?’
덕분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크로이타는 사실상 도시 전체가 유적지이고, 땅을 한 번 팔 때마다 역사 논문을 새로 써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곳이다.
그런데 그 지역에 베히모스가 산으로 둔갑해서 잠들어 있었고, 내가 산을 깨워 움직이게 된다면? 산 위에 세워진 건물들도 우르르 움직이게 된다면?
‘그냥 무시할까?’
순간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베히모스는 그대로 자게 두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
물론 어디까지나 생각으로 그쳤다. 우리가 레비아탄 등 위에서 난리를 피우고 피부도 살짝 벗기기는 했지만, 레비아탄의 덩치를 생각하면 고작 그 정도 충격으로 깨어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마침 깨어날 시기였는데 우리가 자극했다고 보는 게 옳다.
그렇다면 베히모스도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눈을 뜰 터. 난데없이 산이 움직이는 걸 직관하는 것보다는 제국이 베히모스를 먼저 깨우는 것이 낫다.
“찾게 되면 다시 인사드리러 오겠습니다.”
“그 녀석과 같이 오지만 마라. 워낙 큰 녀석이니 근처에 오면 저 아이들이 놀랄 거다.”
그 말에 아텔리우스 근처에서 잠자고 있던 토끼들을 바라봤다.
확실히 산만한 소가 다가오면 이 동굴 토끼들은 겁에 질리겠지. 애초에 데려올 생각은 없었지만 더 조심하도록 하자.
도시 인근에서 대규모 수색 작업을 벌이는 건 독단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 영지라면 상관없는데, 영지 바깥이면 내 관할이 아니잖아.
심지어 크로이타는 황실 직할령에 속한 도시. 그런 도시를 무단으로 헤집다가 베히모스가 깨어나 난동이 벌어지면 나도 곤란하고 황제도 곤란해진다. 높은 확률로 사법성 장관, 형무성 장관과 강제 미팅을 하게 될 터.
“…뭘 찾는다고?”
“베히모스라고, 이번에 발견된 레비아탄처럼 트리카 제국이 만든 생명체입니다.”
그래서 황제에게 찾아가 직접 보고를 올렸다.
크로이타 근처에 거대한 소가 잠들어 있을 것 같은데, 얘가 스스로 눈을 뜨기 전에 제국이 먼저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고.
“장관. 짐이 궁금해서 묻는 것이네만.”
내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한 황제는 미간을 짚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휴가라는 단어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진지하게 의문이라는 목소리라 잠시 울컥했다.
모를 리가 있나. 나는 누구보다 휴가에 예민한 사람이다. 스스로 일을 찾아 돌아다니는 내 꼬락서니에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방치하면 나만 피곤해진다.’
그래도 어쩌겠나. 레비아탄에게 세 기둥이라는 정보를 들은 건 나와 현명공, 황금공뿐이다. 그중 영지를 운영하느라 바쁜 두 공작을 제외하면 나만 남는 상황이니, 필연적으로 내가 나서서 나머지 기둥들을 찾아야 한다.
괜히 느긋하게 움직이다가 베히모스가 깨어나거나, 아직 이름도 모르는 새가 깨어나 소동이 벌어지면 내가 먼저 황제에게 불려갈 테니까. ‘너 때문에 저것들이 깨어났잖아!’ 같은 추궁은 아닐지라도 ‘너 저거 뭔지 아냐?’ 같은 상황 설명은 요구받을 테니까.
‘어차피 불려갈 거면 먼저 처리하는 게 편하지.’
간단한 계산이다. ‘일이 터지고 불려가서 상황 설명하기 vs 황실의 지원을 받아 손가락으로 인력 부리기’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당연히 후자다.
최선은 이딴 선택지를 요구받지 않는 것이지만, 그건 내가 완전히 퇴직해야 가능하겠지.
“…휴가 중이어도 제국의 안전과 신민들의 평온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헌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렇기에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자, 황제는 퍽이나 그렇겠다는 것처럼 턱을 매만졌다.
망할 놈이.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 것이지 어디서 평가질이야. 베히모스 발견하면 아우스엔으로 돌격시켜 버릴─
“뭐, 알겠네. 장관의 말처럼 산인 줄 알았던 것이 움직이면 골치 아프겠지. 황실 기사단 1개 분대와 마법사단 일부를 지원할 터이니 잘 찾아보게. 예산은 재무성에 신청하고.”
“예, 폐하.”
생각보다 빵빵한 지원이라 아우스엔 진격은 포기했다.
***
나는 베히모스.하늘을 누비는 지즈, 바다를 지배하는 레비아탄과 더불어 육지를 수호하는 기둥. 트리카 제국의 기술력이 종합된 걸작이자, 로이가스 황가를 섬기는 방패.
물론 내가 태어났을 당시의 트리카 제국은 그 어떠한 국가보다 강력했으며, 로이가스의 선정은 대륙 전체를 뒤엎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덕에 감히 로이가스의 위엄에 도전하는 자가 없었으니─ 내가 나서서 육지를 수호할 필요성도 적었다.
그렇기에 나는 조용히 황실 직할령에 머무르며 자리를 지켰다. 황실의 재산인 가축들을 돌보고, 힘이 필요한 공사가 있으면 손을 보태기도 했다.
화려한 삶은 아니었다. 지즈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하늘을 독차지했고, 레비아탄은 드넓고도 깊은 바다를 앞마당처럼 다루었다. 반면 나는 수없이 많은 인간과 동물들이 살아가는 육지에서 조용히 지내야 했다.
– 너는 심심해서 어떻게 사냐. 나였으면 몸이 쑤셔서 못 버텼을 텐데.
– 베히모스여. 그대도 바다로 와보는 건 어떻겠나. 나처럼 깊은 곳까지 오는 건 무리지만, 적어도 육지에 있는 것보다는 자유로울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만나는 지즈와 레비아탄은 내 걱정을 하기 바빴다.
하지만 나는 괜찮았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건 귀찮기도 하고, 나를 따르는 가축들을 돌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황궁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네가 먼저 보인다. 너를 볼 때마다 이보다 든든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나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황제가 내가 육지에 있는 것을 원했다.황궁과 가까운 곳에, 제도와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원했다.
그거면 충분하다. 나의 주인이 원한다면 기꺼이 따를 뿐. 그것이 나의 즐거움이자 보람이었다.
“아무래도 너희를 잠시 재워야 할 것 같다.”
애석하게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한 즐거움이었지만.
우리가 예상보다 너무 커져서 문제라고 했던가. 이대로 두면 제국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자라게 되어 잠시 잠에 들어야 한다고 했다.
싫었다. 잠에 들기 싫었다. 잠에 든다면 포근한 바람도, 향기로운 꽃도, 부드러운 잔디도, 나를 따르는 가축들도, 나에게 인사를 건네주는 인간들도 보지 못하게 된다. 내 주인인 황제와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제국에 피해를 주게 되는 건 더욱 싫었다. 제국과 황가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우리가 도리어 제국을 위협할 수는 없으니.
“때가 되면 너희는 다시금 눈을 뜰 것이다. 언젠가 다시, 이 하늘과 대륙, 바다를 누빌 것이다.”
때문에 그 말을 믿고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뜰 날을 기다리며, 다시 지즈와 레비아탄을 볼 날을 기다리며.
– …때가 된 건가?
그리고 오늘. 자연스레 눈이 떠지게 되었다.
솔직히 얼마나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내 입장에서는 눈을 감자마자 뜬 것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
‘일단 일어나자.’
그렇기에 내 몸을 짓누르는 무게를 이겨내며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면 내가 얼마나 잠들었는지 알 수 있을 테니.
***
굉음과 함께 갈라지는 대지. 갈라진 대지 속에서 꿈지럭꿈지럭 몸을 일으키는 거대한 소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과연. 저 녀석 저기 있었구나. 어쩐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더라니.
‘지면에 있는 게 아니라 구덩이에 묻혀 있었네.’
당연히 산처럼 지면 위에 있을 줄 알았는데, 땅 아래에 묻혀서 자고 있었다.
망할. 이러니까 못 찾았지. 설마 지하에 거대 소가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가, 각하! 저건 대체…!”
“저게 베히모스다. 근처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지.”
지하에서 튀어나오는 거대 소를 보며 경악하는 황실 기사. 그 기사의 어깨를 토닥이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가자. 지성이 있는 놈이니 대화가 가능하다.”
그 말에 기사가 움찔 떠는 것이 느껴졌지만 굳이 구박하지는 않았다.
나도 레비아탄이 처음 움직일 때는 놀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