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69)
로판 속 공무원 669화(670/945)
베히모스가 굉장히 온순한 녀석으로 보인다던 아텔리우스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실제로 지면을 부수며 몸을 일으킨 베히모스는 무장 상태인 기사와 마법사들이 접근했음에도 눈만 끔뻑이며 우리를 내려다볼 뿐이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티끌처럼 작은 인간들이 뭉쳐봤자 자신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긍정적인 상황이다. 대화를 하려고 접근했더니 베히모스가 날뛰면 그대로 보스 레이드에 돌입했을 터. 무의미한 충돌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진짜 소처럼 생겼네.’
그 와중에 베히모스의 외견은 생각 이상으로 수수했다.
나름 로이가스 황가의 기둥이자 트리카 제국 기술력의 결정체인 만큼 조금은 특이하게 생길 줄 알았는데, 하필 몸에 흙도 묻어있어서 그런지 축사에서 한 바퀴 구른 소를 보는 기분이다. 동네 소를 끌고 와서 수백, 수천 배 크기로 키우면 딱 베히모스겠어.
물론 레비아탄도 거대하다는 걸 빼면 일반 고래와 다르지 않았으나, 레비아탄 등에는 건물까지 세워지지 않았던가. 베히모스의 등에도 나무 같은 게 자라고 있지는 않을까 살짝 기대했었다.
– 너희는 누구지?
그렇게 홀로 기대하다가 홀로 실망하는 사이, 베히모스는 거대한 머리를 우리 쪽으로 내리며 입을 열었다.
– 이곳은 로이가스 황가의 직할령이요, 내가 잠에 든 장소다. 나와 관련이 없는 자가 함부로 접근하면 폐하께 꾸지람을 들을 터이니 잘못 들어온 것이라면 돌아가라.
그러고는 우리에게 정중한 축객령을 내렸다. 처음 보는 외부인을 향해 경계심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황제의 처벌을 받기 전에 조용히 물러가라는 배려를 보였다.
짧은 대사였지만 베히모스의 성격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했다. 확실히 자부심으로 가득했던 레비아탄과 달리 베히모스는 순하고 조용한 타입이야.
“레비아탄에게서 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왔다.”
– 으음?
그렇기에 직설적으로 입을 열자 베히모스의 눈이 더욱 커졌다.
– 레비아탄은 벌써 일어난 건가?
“그래. 지금은 남쪽 바다로 터전을 옮겼지.”
– …그렇군. 너는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내가 잠든 사이에 담당자들이 변했을 수도 있겠어.
이윽고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베히모스의 모습에 숙연함을 느꼈다. 담당자가 변한 수준이 아니라 제국이 변했는데.
그래도 꼬리를 살랑거리기 시작한 소에게 ‘너네 주인 미국 갔어.’ 라는 말은 차마 꺼낼 수 없었다. 지금은 잔혹한 진실을 알려주기보다 막 깨어난 베히모스의 멘탈을 다독이는 게 우선일 테니.
– 그렇다면 지즈는? 지즈도 보았나?
베히모스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정황상 새의 이름이 지즈일 터.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 지즈는 자유분방한 성격이다. 어쩌면 우리보다 먼저 깨어나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을 수도 있으니, 넓은 평야에 로이가스 황가의 문장을 그리고 기다려라. 그게 지즈를 부르는 신호니까.
등골이 서늘해지는 가능성과 유용한 조언을 동시에 받고 말았다.
어디까지나 레비아탄을 먼저 발견하여 레비아탄이 첫 번째로 깨어난 것이라 추측하는 거지, 어쩌면 처음 눈을 뜬 것은 지즈일 수도 있다. 이미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눈을 뜬 뒤 비행을 즐기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도 베히모스의 말처럼 불러들이는 신호가 있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트리카 제국이 멸망한 것을 모른다면 순순히 신호를 보고 찾아올 것이고, 설령 멸망한 것을 알았더라도 트리카 시절의 신호를 사용한 사람들이 궁금하여 찾아올 테니까.
– 헌데 이상하군.
거대한 새가 착륙할 만한 평야를 떠올리려던 찰나, 베히모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나는 분명 제도 근처에서 잠이 들었거늘. 어찌하여 이리 황량한 것이지?
어떤 변명으로도 수습할 수 없는 의문과 함께.
뒤에 있던 황실 기사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평범한 대화를 통해 베히모스의 기분을 다독인 후, 조심스레 진실을 꺼내려고 했다. 아무리 온순한 짐승이어도 주인 잃은 짐승이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니.
헌데 베히모스가 모든 대화를 생략하고 제도에 대해 물었다. 이러면 자동으로 트리카 제국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다.
– 혹시 천도라도 한 것인가? 아니, 크로이타만큼 제국을 다스리기 원활한 도시는 없는데?
“그것이…”
– 어서 말해다오. 나는 황제께 인사를 드리러 가야 한다. 황실의 재산인 가축들을 돌보고, 황궁이 눈에 들어오는 곳에서 제국을 지켜야 한다.
그런 베히모스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네 제국 아펠스가 불태웠어, 같은 말을 하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베히모스는 자신이 나왔던 구멍으로 다시 들어갔다.
자신이 잠든 동안 트리카 제국이 멸망했다는 사실에. 트리카 제국을 멸망시킨 국가조차 사라질 정도로 긴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 나는… 육지의 제왕… 제국과 황가를 외적에게서 지키는 가장 두터운 방패… 그런 내가 제국이 멸망하는 동안 자고 있었던 말인가…
그리고 구멍에서 이따금씩 들려오는 목소리는 듣는 사람을 안타깝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천년도 전에 멸망한 국가를 부활시킬 수도 없잖아. 그저 트리카를 멸망시킨 원수를 지금의 제국이 멸망시켰다는 말로 다독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 나를 다시 묻어다오…
“아니, 기껏 깨어났는데 그게 무슨.”
–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 죽어서 황제께 사죄를 드리러 가리라…
정확히는 눈을 뜨자마자 도로 눈을 감으려는 베히모스를 달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심지어 얘한테는 오시덴 가문을 언급해도 통하지 않더라. 그저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며 황제를 애타게 찾을 뿐이었다. 충우가 따로 없어.
“그래서 일단 베히모스의 몸에 흙을 덮은 후, 지방관과 협조하여 접근을 통제 중입니다. 다행히 크로이타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크로이타의 관광 산업에 타격이 가지는 않을 듯합니다.”
“그런가.”
내 보고를 들은 황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충성스러운 짐승이로군. 제국의 의지로 잠든 것이니 그 짐승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터인데.”
황제의 말이 맞다. 만약 베히모스가 이상한 곳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제국이 망한 것이라면 죽어도 할 말이 없겠으나, 베히모스를 재운 건 제국이었다. 게다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깨우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는 베히모스의 죄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트리카 제국의 자업자득이지.
“아무튼 레비아탄처럼 포섭하는 건 불가능했다고?”
“예. 오시덴 가문을 언급해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레비아탄과 달리, 베히모스 제작에는 연관이 없었던 게 아닐는지…”
“그럴 수도 있네. 베히모스는 제도와 황가를 지키는 수호병이었다고 하지 않나. 그런 짐승에게 다른 귀족 가문이 간섭할 수 있다면 골치 아프지.”
자신이었어도 철저히 황가의 재산으로 만들었을 거라는 첨언에 납득하고 말았다.
그건 그렇다. 동네 전체를 자기 집처럼 돌아다니는 누렁이는 마을 사람 전체의 손길을 타도 되지만, 내 집을 지키는 백구도 다른 사람의 손을 타면 곤란한 법이다. 다른 사람이 백구의 환영을 받으며 우리 집 문을 딸 수도 있잖아.
“일단 가만히 두게.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는 법.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은 주는 것이 옳아.”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소나 양도 풀어두고. 가축을 돌보는 역할이었다고 하니, 근처에 할 일이 생기면 우울함을 빨리 회복할 수도 있네.”
“아, 예.”
생각도 못 한 방식이라 머릿속에 저장해두었다.
비록 로이가스 황가의 재산은 아니지만 가축은 가축. 자그마한 가축들이 자기 주변을 어슬렁거리면 의욕을 되찾을 수도 있다.
“…다행히 둘은 트리카의 멸망을 받아들였지만, 다른 하나는 어떨지 모르겠군.”
뒤이은 황제의 중얼거림에 침묵으로 동의를 표했다.
바다의 레비아탄과 육지의 베히모스는 적어도 인간이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있었고, 성격도 진중하거나 온순한 편이었다.
반면 지즈는 하늘이다. 아직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공간을 누비며, 베히모스 공인 ‘자유분방한 성격’이다. 앞선 둘과 달리 까다로운 대화 상대가 될 확률이 높다. 최악의 경우는 트리카 외에 다른 제국은 인정할 수 없다며 크펠로펜에게 싸움을 걸 수도 있다.
“장관.”
“예, 폐하.”
“지즈라는 새도 산 정도의 크기라고 가정하면, 아무래도 북방 외에는 착륙할 곳이 없겠지?”
“그렇습니다. 기존 트리카 제국의 강역은 대다수 개발이 이루어진 상태라 도저히 공간이 나오지 않습니다.”
내 확답에 황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륙 장소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 제국 영토에 거대한 새를 들여야 한다는 짜증이 뒤섞인 한숨이었다.
북방은 넘치는 게 땅이다. 특히 북방 중에서도 북쪽에 위치한 황실 직할령은 사실상 빈땅이나 다름없었으니, 그곳에 적당히 로이가스의 문장을 그리고 대기하면 된다.
물론 트리카 제국 시기에 만들어진 녀석이 트리카 제국 강역 밖에서도 활동할지는 알 수 없다. 애초에 지즈가 깨어났는지 잠자고 있는지도 알 수 없고.
그래도 고작 빈땅에 가서 문장을 그리는 것이지 않나. 실패해도 본전이라는 생각을 가지며 이동하였고─
– 커어어어억…
‘뭐야.’
거대한 독수리가 초원에 대자로 누워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 크어어어어억…
그것도 코까지 골면서 요란하게.
뭐지 저 새끼. 아직 자고 있는 건가? 아니, 자고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 공개적인 장소에서 자고 있는데? 저런 게 2천 년 동안 잠들어 있었다면 유목민들이 모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최근에 깨어나고, 하늘을 누비다가 이곳에 상륙하여 낮잠을 즐기고 있다는 말인데…
‘2천 년이나 잤으면서 잠이 오나?’
경이롭다. 다른 둘이 일어나자마자 황가를 찾았던 걸 생각하면 더욱 돋보이는 행동이다.
– 크걱, 커억… 크흐으으읍…
덕분에 멍하니 지즈를 바라보는 사이, 우렁차게 코를 골던 지즈는 갑작스레 날개를 허우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좌를 한 번, 우를 한 번 둘러보다가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 뭘 그렇게 봐. 새 처음 봐?
쉽지 않은 새끼가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