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7)
황금공과의 대화는 걱정한 것에 비하면 몹시 만족스러운 결과로 끝났다.
우선 경애하는 황금공 각하의 요청에 따라 새끼 크라켄 하나를 처리하게 되었다. 다행히 삼국 전력도 전부 끌고 갈 수 있으니 호위는 잠시 맡기고 뱃놀이나 해야지. 공작이 30%나 더 얹어주는 보상? 이걸 어떻게 참아. 참을 수 있는 놈이 있다면 사상이 이상한 놈일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의 생태계 파괴에 휘말려 터전을 잃은 피해자를 처리하는 것 같은 기분이지만 중요한 건 아니다. 나에게 중요한 건 ‘크라켄의 눈물 3부작’이 아니라 ‘금빛으로 반짝이는 성의’ 30% 상승 이벤트니까.
사실 새끼 크라켄도 고통뿐인 이 세상에서 살기보다 부모 곁으로 가는 걸 원치 않을까? 난 그 결과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뿐이다. 나 같이 배려 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 우선 카지노로 찾아오게. 거기서 자세히 얘기하도록 하지.
그리고 보야르에 도착하면 바로 달려가야 할 곳도 생겼다. 공작성이 아닌 카지노에서 보자는 것은 조금 의외지만,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카지노 VIP실에서 만남을 가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니.
어쨌든 내일 빌라르에게 좋은 소식을 전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삼국 전력 전부 보야르로 이동이 가능하다고 하면 기뻐할 거다.
‘그때 자리를 비우는 것도 말하면 되겠네.’
애초에 내가 나설 일이 적게 하겠다고 말한 빌라르다. 그런 상황에서 희소식을 알려주는데 내가 자리를 비우는 것에 태클을 걸 일은 없지. 오히려 푹 쉬고 오라고 튜브라도 쥐어주지 않을까.
아, 그러고보니 빌라르한테 대접할 쿠키도 필요한데. 오늘은 평소와 달리 잘 먹어서 양이 부족하다. 루이제에게 더 부탁해야겠네.
***
오라버니는 오늘도 쿠키를 부탁하셨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공녀님이 드신다고 생각해도 너무 많은 양이다. 남으면 눅눅해져서 식감도 별로일 텐데, 괜찮을까?
“빌라르 경이 오기로 했거든. 어제는 양이 조금 부족한 것 같더라.”
“아, 그래요?”
“미안해. 너무 잘 먹어서 좀 챙겨주고 싶더라고.”
“헤헤, 괜찮아요.”
미안하다는 오라버니에게 살짝 웃으며 오븐을 열었다.
빌라르 경. 류티스와 같은 아르메인 출신인 기사님. 오라버니와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박람회 때도 크게 신세를 져서 얼굴은 충분히 알고 있다. 기사님이니까 확실히 잘 드시겠지. 그렇다면 많이 만들어도 괜찮겠다.
‘다들 잘 드시네.’
최근 만드는 쿠키는 평소 오라버니에게 드리는 것과 달리 평범하게 만든 것들이다. 오라버니가 손님에게 대접하는 쿠키의 맛이 형편없다면 오라버니의 체면이 깎이는 일이니까.
그래도 조금은 아쉬운 일이다. 늘 피곤해 보이는 오라버니를 위해 쿠키에 이것저것 몸에 좋다는 것들을 넣고 있었지만, 요즘은 아무것도 그러지를 못하니 챙겨드릴 시간이 없다. 그나마 몸에 좋다는 찻잎이라도 드리고 있지만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겠고.
살짝 오라버니의 안색을 살피자 평소처럼 희미한 다크써클이 돋보였다. 딱히 효과는 없는 건가? 그래도 많이 힘들어 보이시지는 않은데.
‘계속 평소처럼 드렸어야 했는데.’
박람회 때 오라버니의 미각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알게 되고, 그 후로는 맛이 아닌 효능에 치중한 재료를 들이부었다. 안타깝지만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오라버니였기에 가능한 일.
만일 그 재료들로 오라버니의 몸이 좋아져서 미각도 회복되면 내 쿠키가 이상하다는 것도 아실 테고, 그때는 잘못 만들었다며 사과하면 된다. 오라버니라면 픽 웃고 넘어가실 테니까.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여겼다.
하지만 오라버니를 위한 건강 쿠키가 다른 분들 입에 들어가면 큰일이라 요즘은 영 드리지를 못하고 있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면 뭐해. 정작 하지를 못하면 의미가 없잖아.
‘다른 걸 만들어야 하나?’
내가 만들 수 있는 디저트를 떠올리며 머리를 굴렸다. 쿠키처럼 간단하게 선물로 줄 수 없는 것. 오라버니가 받는다면 성의 때문에라도 혼자서만 드시게 될 것.
뭐가 있을까… 아, 케이크? 케이크라도 크게 만들어볼까?
***
수학여행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회장의 안색은 초췌해졌고, 마르게타의 미소도 조금씩 희미해졌다. 한참 자랄 나이의 아이들인데 안타까운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는지라 마르게타의 말상대가 되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마르게타는 그거라도 좋은지,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속앓이를 푸는 것 같았다.
문제가 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마르게타의 목소리에 미세한 울먹거림이 끼기 시작했다는 것. 아주 미세한 수준이라 신경을 기울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수준이지만.
“수백 명이 탈 마차도 확보해야 하고, 그 마차들이 지나갈 경로도 확인해야 돼요. 중간에 휴식을 취할 도시도 있어야 하고, 품위에 맞는 숙소도 찾아야 하고…”
“정말 고생이 많습니다.”
들을수록 역겨운 느낌이 치솟는다. 말만 들으면 거의 군대 행군 루트를 짜는 수준. 이럴 것 같아서 학생회에서는 가까운 영지로 가려고 했겠지.
“마르, 요즘 제대로 자고는 있습니까?”
“여유 있을 때마다 자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배시시 웃는 모습에 측은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잠은 여유 있을 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여유가 없어도 챙겨야 하는 필수적 행위인데, 미리 맛보는 공무원 생활을 즐기는 이 공녀는 이미 사고방식이 꼬이고 말았다.
얼마 전에는 부회장실에 들어가니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더라. 소파에 눕히기에는 건드리면 깰 것 같아서 외투라도 덮어주고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아서 깼고. 조금이라도 잤으면 하는 심정과 잘수록 업무가 밀리는 상황을 이해하기에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이 덜 깬 듯 몽롱한 눈으로 나를 보던 마르게타가 화들짝 놀라는 건 못 본 척 해줬다. 그 와중에 바닥에 떨어뜨려 빨아서 돌려주겠다던 외투가 아예 새 외투로 돌아온 것도 모른 척 해줬다.
“그래도 칼 영식 덕분에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몰라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미소를 짓는 마르게타의 모습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슬쩍 루이제의 쿠키를 마르게타 쪽으로 밀어줬다. 그러자 바로 하나 집어서 먹는 것이 너무 낯익은 모습이다.
‘차장이 딱 저랬지.’
맛을 위해 먹기보다는 영양 공급을 위해 뭐라도 쑤셔 넣던 그 모습. 그런데 그 모습을 왜 마르게타가 보여주는 건지 의문이다. 이게, 공녀? 내가 아는 공녀는 이렇게 짠하지 않은데.
“내년에는 가까운 곳이면 좋겠군요.”
내년에는 편했으면 좋겠다는 위로의 의미로 한 말이었지만, 마르게타는 그 말에 아차 싶었는지 오물거리던 입이 멈췄다. 그러고는 말없이 마저 씹어 삼키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수학여행 장소는 보야르가 될 것 같아요.”
“아.”
황금공은 이번 수학여행 특수를 단발성으로 끝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제 보야르는 이 세계의 경주나 제주도 같은 곳이구나.
조금 더 우울한 기색으로 쿠키에 손을 뻗는 마르게타를 보니 학생회를 탈주하는 붉은 머리 여인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불쌍하게도.’
나는 조용히 마르게타의 찻잔에 차를 따라줬다. 부디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잘 이겨냈으면.
제국 남쪽 끝에서는 누군가의 웃음, 아카데미에서는 누군가의 탄식으로 이루어진 수학여행의 날이 밝았다.
‘용케 다 구했네.’
백이 훌쩍 넘는 마차가 쭉 깔려있는 모습에 가슴이 절로 웅장해졌다. 1, 2, 3학년 전부에 교직원들도 이동해야 하니 이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상하네. 무슨 수학여행을 전 학년이 같이 가지? 물론 학생회 입장에서는 수학여행 일정 3번 짤 바에 전부 몰아서 가는 게 편하긴 하겠다만.
“칼 영식. 생각이 바뀐다면 언제든 얘기하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위풍당당한 마차들을 구경하던 내 뒤로 마르게타가 다가왔다. 마지막까지 이러는 것을 보니 아쉬운 모양이지만, 그래도 내 사정이 있으니 이해해줬으면 한다.
4인 마차 하나에 사람 넷, 혹은 셋까지 배정받은 상황. 마르게타의 마차는 셋이 배정받아서 나도 같이 타자는 권유를 어제부터 받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탈 마차는 따로 있는지라.
‘루이제 옆에 있어야 편하지.’
다행스럽게도 루이제의 마차도 배정 인원이 셋이라 그 마차에 끼어 들 수 있었다. 수학여행 자체도 이벤트지만, 가는 길에도 사건이 터질 수 있으니까. 그걸 생각하면 차라리 옆에 붙어있는 게 마음 편하다.
단지 루이제와 같이 타는 멤버 중 하나가 많이 마음에 걸리는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기는 한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건 공적인 일이니까.
“뭐야, 형도 이 마차야?”
“그렇게 됐다.”
마르게타와 헤어지고 루이제의 마차로 향하니 에리히가 맞이해줬다. 미안하다, 내가 없었다면 이 마차에서 유일한 남성 멤버였을 텐데. 가는 길에 루이제하고 진도 좀 나갈…
‘아니다.’
진도는 무슨. 순간 이 녀석을 너무 과대평가했네.
어림도 없는 생각을 털고 마차에 오르니 에리히 말고 아무도 없었다. 뭐야, 왜 얘밖에 없어.
“두 명 더 있지 않아?”
“곧 올 거야. 다른 애들하고 얘기 좀 하다 온다던데.”
“그래?”
역시 사람의 중심에 서는 핑크 카피바라. 이 찰나의 시간에도 친구와의 우애를 자연스레 다지고 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 밖에서 소란스러운 기색이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분홍 머리가 불쑥 들어오는 것이 급하게 달려온 모양.
“미안해! 너무 늦었─ 어? 오라버니?”
“나도 같이 가게 됐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는 루이제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자 멍한 얼굴에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반겨주니 고맙네.
‘같이 왔구나.’
활짝 웃는 루이제의 뒤로 시선을 돌리니 이리저리 흔들리는 금색 머리가 보였다. 몸은 루이제 뒤에 숨겨 머리카락만 튀어나온 모습이 마치 내 시야에서 숨으려는 것 같은데, 당연히 효과는 없다.
“안녕. 오랜만이네.”
“아, 네, 네, 안녕하세요.”
그래도 같은 마차를 타게 된 입장이니 인사를 건네자 바르르 떨며 대답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따름.
“이리나?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루이제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어색하게 웃으며 답하는 이리나. 미안하다, 나도 어지간하면 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리나의 푸른 눈동자에 미약한 공포가 서리는 것을 보자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