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70)
로판 속 공무원 670화(671/945)
격한 환영 인사를 날린 지즈의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생각보다는 작다.’
이윽고 빠르게 지즈의 몸을 훑어보며 견적을 내기 시작했다.
섬 크기의 레비아탄, 산에 맞먹는 수준이었던 베히모스와 달리 지즈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저 정도면 대충 전열함 정도의 크기로 보이는데.
‘새가 전열함…’
사실 그조차도 엄청난 크기다. 전열함도 제국 해군부에서 막 진수에 성공한 최신예이자 결전 병기 취급을 받는 대형 함선인데,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전열함 크기인 게 말이 되냐고. 하필 앞서 본 두 마리가 상상 이상의 괴물이라 지즈가 초라해 보이는 거지.
게다가 하늘은 인간이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라는 걸 고려하면, 지즈의 크기를 레비아탄이나 베히모스처럼 키울 필요는 없다. 하늘 위에서 일방적으로 정찰을 하거나 폭격을 할 수 있으면 전열함이 아니라 나룻배 크기여도 감지덕지니까.
“네가 지즈인가?”
그래도 혹시 몰라서 본인 확인을 시도했다. 만약, 만약 저 새가 지즈 주니어 같은 거고, 진짜 지즈가 따로 있다면 곤란하다.
– 뭐? 지즈인가?
그러나 내 질문에 지즈는 눈을 찌푸리며 날개를 퍼덕였다.
– 새파랗게 어린놈이 어딜 숙녀한테 찍찍 반말을 내뱉어? 너 내가 태어나고 2천 년 후 사람인 거 모를 줄 알아? 지즈님─ 이라고 정중하게 물어도 모자랄 판국에 어딜.
전열함의 분노는 실로 매서웠다. 내 저택에 있는 어느 병아리나 독수리와 달리,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돌풍이 불어닥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돌풍을 맞은 덕분에 나도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순순히 대화에 응할 새끼는 아니다.’
말하는 걸 보니 크펠로펜 제국에 적대적이거나, 호전적이거나, 인간을 경시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저 과하게 자유롭고 과하게 건방질 뿐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대화로 시작할 수 없다면 약간의 물리적 조치를 취하는 수밖에.
– 너 트리카 제국이라고 들어봤어? 로이가스 황가는 알고? 이 누나가 그 시절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잠든 시간을 빼면 나랑 별 차이도 없을 것 같은데.”
진실을 얘기하자 열렬히 움직이던 지즈의 날개가 흠칫 떨렸다.
– …감히 하늘의 제왕에게 말대꾸를 하느냐!
그러고는 위압적인 말투로 돌변하며 허공에 떠올랐다.
가만히 있어도 전열함을 보는 것 같았던 새가 날개를 활짝 펼치며 하늘에 떠있는 모습. 솔직히 감탄이 나오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거다. 심지어 깃털도 검은색이라 더욱 압도적이고 무거운 기세를 풍겼으니, 입만 다물고 있었다면 정말 하늘의 제왕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입만 다물고 있었다면.
– 트리카는 무너졌으나 하늘은 고고히 떠있다! 로이가스는 사라졌으나 나는 영원하다!
내가 멍하니 올려다보자 지즈는 으스대는 목소리로 떠들었다. 마치 내가 자신의 위엄에 짓눌렸다 생각하는 것처럼.
그와 별개로 나는 지즈와의 거리, 지즈의 덩치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계산을 잘못하면 2천 년 만에 깨어난 독수리를 다시 재워버릴 수도 있다.
‘적당히 머리 위에 날리면 되겠다.’
그렇게 계산을 마친 후, 허리춤에 매고 있던 검을 뽑았다.
– 뭐야. 한 번 해보자는 거냐!?
검을 들어 올리자 지즈의 눈매가 더욱 매서워졌다.
– 오냐! 감히 하늘을 무서워하지 않는 인간에게! 하늘의 위엄을 보이는 것도 나의… 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지즈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러고 보니 레비아탄과 베히모스, 지즈는 자연 중의 마나나 신성력을 먹고 지낸다고 했지. 자기 주변에 급격한 마나 이동이 이루어진다면 바로 눈치챌 법도 하다.
– …인간? 지금 뭐하느은─
지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을 휘둘렀다.
■■■■■■──!!!
– 으에에에에엑!
세상이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기묘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기 머리 바로 위에서 하늘이 갈라지는 걸 직관한 지즈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아마 복잡한 심정일 거다. 하늘의 제왕이라면 하늘 전체를 자신의 집이자 영지라고 생각할 터. 그 소중한 공간이 일개 인간의 손에 박살이 났는데 어찌 평온할 수 있을까.
덕분에 갈라진 하늘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지즈는 조용히 지상에 착륙했고,
– 헤헤… 제 재롱은 마음에 좀 드셨는지…
비굴한 웃음과 함께 납작 엎드렸다.
만남부터 항복까지 5분도 걸리지 않은 광속의 서열 정리였다.
“누나가 하는 재롱을 보니 더 각별하기는 했다.”
– 어휴, 누나라뇨. 편하게 지즈야- 라고 불러주세요.
격렬하게 고개를 내젓는 지즈의 모습에 픽 웃으며 검을 집어넣었다. 예상대로 약간의 물리를 동원하니 원활한 대화의 장이 마련되었다.
처음부터 이랬으면 얼마나 좋아. 그럼 나는 쓸데없이 힘을 뺄 필요가 없었고, 지즈도 지금보다 편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했을 텐데.
“그래, 지즈. 너는 언제 깨어난 거지?”
– 한 보름 정도 전? 갑자기 눈이 떠져서 대륙 여기저기를 구경하다가 땅이 넓은 곳으로 왔어요. 다른 곳은 건물이 가득하더라고요.
생각보다 빠른 기상이다. 혹시 레비아탄, 베히모스보다 덩치가 작아서 기상도 빠른 건가?
“보름 전이면 알아야 할 건 다 알고 있겠군.”
– 네, 뭐… 트리카가 망하고 로이가스가 사라진 것 정도는 알죠. 하늘에서 보니까 로이가스의 문장 대신 처음 보는 문장이 가득하더라고요.
생각보다 심드렁한 답변에 절로 의문이 들었다.
레비아탄은 트리카가 망했다는 소식에 좌절했고, 베히모스는 죄책감을 가지며 구덩이에 들어갔다. 반면 지즈는 멀쩡하다 못해 관심도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서로 다른 생명체니 성격이 다른 건 당연하지만,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면 충성심은 비슷해야 하지 않나?
“괜찮나? 그래도 충성하던 국가와 황실이 사라진 건데.”
– 제가 깨어있을 때 망한 거면 슬프기는 했을 텐데, 자고 일어났더니 사라져서 좀… 얼떨떨하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 제가 잘못한 건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맞는 말이라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베히모스가 저 마음가짐의 10%라도 닮았으면 좋겠어.
– 그리고 나라가 망했다고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면 귀족들이랑 백성들은 매번 죽어나가게요?
이번에도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라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트리카 제국 시절에 세워진 오시덴 가문은 트리카 멸망, 아펠스 멸망을 거쳤음에도 지금까지 살아있다. 이 대륙에 살아가는 백성들은 제국이 새로 세워지든 말든 여전히 대륙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세 기둥에게만 트리카 제국과 함께 순장되기를 바라는 건 가혹한 일이다.
– 게다가 잠들기 전에는 만들어주고 먹여준 값도 제대로 했으니, 이젠 자유롭게 살아봐야죠! 이 하늘이 얼마나 넓은데!
그렇게 말한 지즈는 히히 웃음을 흘리며 날개를 파닥거렸다.
다행이다.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성격이라 다행이야. 하늘을 날아다니는 녀석이 ‘트리카 외에 다른 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진상을 부리면 그만한 참사가 없었을 거야.
“…지즈.”
– 네?
“넓은 곳을 찾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했었나?”
– 그랬죠?
그리고 지즈의 공격성과 성격을 파악했으니 본론을 꺼냈다.
“여기 내 땅이다. 여기서 지내려면 로이가스가 아니라 내 가문을 지켜야 돼.”
사실 지즈가 머무르고 있는 장소는 황실 직할령이다. 엄연히 따지면 내 땅이 아니라 황제의 땅이지.
하지만 황실 직할령이라도 북방은 북방. 내 관리해야 하는 지역이니 내 땅이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꼬우면 나 말고 다른 귀족을 북방 파벌장으로 세우든가.
– 아.
아무튼 내 말에 지즈의 눈동자가 좌우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유니 뭐니 하던 애였으니 다시 다른 가문에 묶이는 게 달갑지 않을 테고, 무시하기에는 하늘 베기가 눈앞에 아른거릴 터.
“걱정하지는 마라. 명목상 소속만 그런 거지, 너한테 뭘 시킬 생각은 없어. 네가 하늘을 날다 국경을 넘으면 타국에서 난리가 날 텐데, 소속이 명확하면 그나마 소란이 덜해진다.”
– 아, 그런 거예요? 그렇다면야 뭐.
구체적인 설명에 지즈도 흔쾌히 수락했다.
이제 나도 황금공처럼 타국을 향한 일방적인 구타가 가능해진다.제국 국적을 단 지즈가 타국으로 넘어가면 ‘영토도 영해도 아닌 하늘인데 무슨 상관?’ 이라는 말로 일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지즈가 명목상 크라시우스 가문 소속이라면 황제에게 얻을 수 있는 것과 양보 받을 수 있는 게 급격히 늘어난다.
‘좋아.’
만족스러운 결과라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앞으로 황제가 무력시위를 시키면 내가 아니라 네가 가도 되겠어.
– 맞다.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음?”
– 레비아탄이랑 베히모스는 어디 있어요?
내가 꺼내려던 말을 먼저 언급하는 모습에 더욱 흐뭇해졌다.
그래, 애가 좀 단순하고 자유분방하면 어떠냐. 그래도 애는 착한데.
***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서글픔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트리카가 멸망하다니. 로이가스가 무너지다니. 더 이상 황제를 모실 수 없다니. 이 얼마나 통탄스럽고 절망스러운 일인가.
이게 전부 나의 탓이다. 육지의 제왕이라는 놈이 정작 황궁이 무너지는 걸 막지 못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닌 사명을 이루지 못했다.
– 음머어어어-
– 그쪽으로 가면 위험하다. 반대로 돌아가거라.
– 메에에에~
– 배고픈 게냐? 조금만 기다리거라.
주변을 돌아다니는 소와 양들에게 먹이를 준 후, 다시 구덩이에 얼굴을 묻었다.
이제 와서 가축 몇 마리 돌본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장 거대한 사명을 지키지 못한 내가 무슨 자격으로 살아─
– 으, 음머어어어어!
– 메에에에!
– 무슨 일이냐!
갑자기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누가 감히 내 비호를 받는 아이들을 위협하는가! 황가를 지키지 못한 나에게서 이 작은 아이들마저 앗아갈 생각인가!
– 어, 뭐야? 생각보다 멀쩡하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자, 저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궁상떨고 있다길래 구경하러 온 건데.
검은 깃털을 자랑하며 천천히 내려오는 거대한 독수리.
– …지즈?
– 오랜만이야. 네가 가장 마지막에 깨어났다면서?
나와 같은 사명을 품었고, 같은 시대를 살아갔던 친우의 등장에 눈물이 흘렀다.
– 야, 우냐?
정작 지즈는 웃음을 터뜨리기 바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