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71)
로판 속 공무원 671화(672/945)
지즈를 찾으러 갔다가 지즈를 포획하는 것에 성공한 과정을 황제에게 설명하는 사이, 크로이타와 인근 지역을 관리하는 지방관에게서 보고가 올라왔다.
“베히모스가 구덩이에서 나왔다는군. 트리카를 기억하는 존재는 자신을 포함하여 셋밖에 남지 않았으니,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트리카를 기리며 살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네.”
‘오.’
지방관의 보고를 확인한 황제의 말에 속으로 감탄을 흘렸다.
지즈가 대체 무슨 말을 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구덩이에 들어가 눈물만 흘리던 베히모스가 의욕을 되찾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의욕을 되찾았다고 극적인 변화가 찾아오지는 않을 거다. 성격이 온순한 것과 별개로, 베히모스는 트리카 제국이 건재하던 시절에도 조용히 가축만 돌보던 역할을 수행했다. 외적이 등장하기에는 당시 트리카의 권위가 너무도 굳건했으니까.
그리고 현 크펠로펜 제국의 국력과 위엄은 당시의 트리카를 아득히 능가한 상황. 베히모스의 역할은 그저 가축과 하루하루 노는 것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순교자가 아닌 망국의 충신으로 남았군요.”
“살아가는 동안은 제국의 손님으로서 도리를 다하겠다고 하니 만족해야지. 드래곤이나 이종족 같은 존재가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하면 충분해.”
만족스럽다는 기색을 풍긴 황제는 이윽고 찻잔을 입에 댔다.
아쉽게도 베히모스가 완전히 크펠로펜과 리브노만의 신하가 된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트리카 재건이나 크펠로펜 타도를 외치지도 않았다. 크펠로펜의 군림을 인정하고 조용히 지내는 것. 베히모스와 제국 입장에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타협점이다.
게다가 황제의 말처럼 제국에는 이미 애매한 포지션을 가진 존재들이 많다. 동굴에서 홀로 살아가는 드래곤들과 이종족 보호 구역에서 나오지 않는 이종족들. 신민은 아닐지언정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과 공존하는 건 제국의 특기다.
“뭐, 이렇게 됐으니 접근 통제는 슬슬 해제할 생각이네. 아무나 접근하게 둘 수는 없으나, 트리카 제국의 수도 근처에 거대한 소가 나타났다면 그만한 관광거리도 없지. 소문을 퍼뜨리면 대륙 곳곳에서 돈이 굴러들어 오겠어.”
픽 웃음을 흘리는 황제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역사학적으로 중요한 도시기에 적지 않은 학자와 관광객들이 몰리는 크로이타다. 그런데 그 유적 도시 근처에 산만한 소가 어슬렁거린다? 그것도 트리카 제국 시기에 만들어진 인공 생명체가?
흥미와 스토리텔링을 동시에 부여잡은 어마어마한 관광상품이다. 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구경하지 않는 게 실례일 정도로.
“그런데 베히모스가 꺼리지 않겠습니까? 깨어나자마자 온갖 관심을 받으면 귀찮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트리카 시절에는 황궁을 지키는 수호병이지 않았나. 황가의 위엄을 과시하는 존재였으니 시선에도 익숙할 거야.”
설득력 높은 말이라 납득했다.
하긴, 그건 그렇지. 황궁 바로 옆에 산만한 소가 버티고 있으면 그 자체로도 제국의 적에게는 위협이 된다. 동시에 그런 짐승을 부리는 황가의 위엄도 올라가고. 나였어도 남들이 볼 수 있게 대놓고 공개했겠어.
…
“당당히 황궁 옆에 있던 녀석이 어쩌다 기록 말소를 당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의문에 황제도 입을 다물었다.
레비아탄은 황금공의 친우가 되어 다용도 불침항모가 되었고, 지즈는 크라시우스 가문 소속 공중 전열함이 되었으며, 베히모스는 사실상 리브노만 황가의 식객이 되었다. 잊혀진 고대 생물들이 나란히 제국의 품에 안긴 긍정적인 결과다.
허나 결과와 별개로 과정은 아직도 의문투성이다. 도대체 트리카는 어떻게 인공 생명체를 만들었는지, 왜 멸망의 순간까지 세 짐승을 깨우지 않은 건지, 저런 덩치를 자랑하는 것들이 어쩌다 기록에서 사라진 건지 등. 하나도 밝혀진 것이 없다.
“의아한 것들은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지.지금은 저들이 제국의 친구가 된 것에 기뻐하면 충분하니까.”
“실로 영민하신 판단입니다, 폐하.”
원론적인 대답이었으나 동시에 정석이나 마찬가지인 판단.
그래, 어차피 급한 것은 없다. 그 셋이 제국에 적대적이거나 타국으로 튀었다면 그보다 끔찍한 일은 없지만, 얌전히 제국의 품에 있다면 천천히 과정을 짚어나가도 충분하다.
그러니 황제의 말처럼 느긋하게 알아가자. 레비아탄과 베히모스, 지즈가 제국에게 더욱 익숙해지면 그때 자세한 정보를 듣자.
“그런데 장관.”
“예, 폐하. 말씀하소서.”
“그 지즈라는 새가 베히모스를 설득한 것은 좋지만, 베히모스가 돌보던 가축을 먹으려다 다툼이 일어났다는군. 다행히 지즈가 그냥 돌아가서 심각한 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하네.”
“…아마 의욕을 잃은 친우를 달래기 위한 장난이었을 겁니다.”
“흠, 그렇겠지?”
내 말에 황제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거짓말이다. 내가 겪은 지즈의 성격을 볼 때, 그 녀석은 정말 배가 고파서 먹으려다가 실패하고 돌아갔을 확률이 높다.
‘2천 년 만에 본 친구에게 처음 하는 짓이 약탈…’
경이롭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베히모스의 생존 본능과 노동 본능을 동시에 일깨운 신의 한 수지만, 지즈가 그걸 의도하고 약탈을 시도했을 리는 없다.
악랄한 새끼. 어떻게 삶의 의욕을 잃은 친구의 애완동물을 먹을 생각을 하지? 지즈를 만나기 전, 계속 구덩이에 박혀있던 베히모스가 그나마 몸을 뺀 것이 가축들을 돌볼 때뿐이었다는데?
‘애초에 마나만 먹어도 충분한 녀석이.’
북방으로 돌아오면 한 소리 해야겠다.
베히모스는 네 먹이를 기르는 게 아니라 반려동물을 기르는 거라고.
아니, 애초에 남의 걸 함부로 주워 먹지 말라고.
세 거대 짐승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대륙 각지로 퍼져 나갔다.
레비아탄은 제레노 상공을 유유히 떠다닌 후 보야르 앞바다에서 생활 중이고, 베히모스는 크로이타 근처에서 수백 마리의 소, 양들을 돌보는 중이다. 지즈는 그런 둘을 만나기 위해 대륙을 종단했다.
제국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정보를 통제하려고 해도 불가능할 만큼 존재를 과시한 상황. 덕분에 제국 외무성과 교육성은 난데없는 타국 사절단의 방문 요청과 대륙 학자들의 합동 연구 요청을 상대하느라 난리가 났다.
그리고 대륙 전체가 뒤집어졌다면 당연히 황궁도 난리가 났다는 뜻이고,
“때부! 치사해!”
이는 황태녀의 귀에도 빅-트리오가 들어갔다는 의미다.
“나두 고래랑 소랑 새 보고시퍼!”
바닥에 드러누운 채 버둥거리는 황태녀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안 그래도 호기심이 많은 황태녀는 동물과 접할 기회가 많은 환경에서 자랐다. 황궁에는 상황이 기르는 동물들이 있고, 우리 저택에서는 티티와 성수들이 있으니까. 그렇기에 다른 아이들에 비해 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독보적인 편이다.
그런 황태녀가 말하는 건 기본 옵션에, 덩치도 어마어마한 동물들을 놓쳤다. 단순 덩치만 보면 아텔리우스를 능가하는 녀석들을 보지 못한 것이다. 황태녀의 원통함은 하늘을 찌를 터.
“나! 고래! 본 적 업써!”
심지어 셋 중 레비아탄은 고래였다.
소는 상황이 기르고, 독수리는 우리 저택에 있어서 황태녀도 자주 봤으나, 고래만큼은 황태녀도 본 적이 없다. 바다에 가기는커녕 제도를 벗어난 적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지.
“전하. 벌써 고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일단은 서럽게 버둥거리는 황태녀를 달래기 위하여 아낌없는 칭찬에 돌입했다.
우리 마리아는 고래가 뭔지도, 바다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내륙에서만 자란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게 평균이다.
허나 황태녀는 고래가 뭔지 아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 점을 노려 황태녀를 띄워주면 황태녀의 서러움도 조금은 가실 터.
“웅! 알아! 어어어어어엄청 커다란 물고기라고 들엇써!”
실제로 내가 감탄하는 모습을 보이자 바닥에 누워있던 황태녀는 은근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랗고! 등에서 물도 뿜고! 아무튼 엄청 큰 물고기야!”
“대단하십니다. 역시 전하는 총명하시군요.”
정확히는 물고기가 아닌 포유류였지만, 내 미천한 지식과 언변으로는 어린아이에게 물고기와 포유류의 차이를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냥 오늘부터 물고기 해. 차기 황제가 물고기라고 하면 물고기인 거지.
“그래서 기대했는대! 치사하게 때부만 봣써!”
‘아.’
그 와중에 다시 황태녀의 원망이 터져 나왔다.
실수했다. 너무 칭찬에만 집중하느라 주제가 고래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전하. 그러면 말입니다.”
다시 바닥에 드러누울 준비를 하는 황태녀를 보다가, 스르륵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췄다.
주제 전환에 실패했다면 어쩔 수 없다. 거스를 수 없다면 합류하는 게 순리인 법.
“이 대부와 함께 큰 아이들을 보러 가겠습니까?”
그러자 방바닥 자유형을 준비하던 황태녀의 몸이 우뚝 멈췄다.
“진짜?”
“물론입니다. 제가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고래랑 소랑 새랑 전부 다?”
“당연하지요. 아예 새를 타고 가보시겠습니까?”
“웅!”
해맑게 고개를 끄덕이는 황태녀를 보며 마주 미소를 지었다.
아마 황제가 알면 기겁을 할 거다. 황태녀를 짐승에 태운 채 하늘을 나는 것도, 제도를 벗어나 북방과 크로이타, 보야르 공작령으로 가는 것도 황제가 절대 용납할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네가 용납 못 하면 어쩔 건데. 황태녀가 이미 거대 짐승들에게 꽂힌 상황에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황제의 위엄을 세워 막을 거야? 황태녀의 원망과 미움을 받을 각오를 하면서?
‘그럴 리가 없지.’
아이의 관심과 흥미가 무언가에 꽂힌다면 부모는 절대 막을 수 없다. 황제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황태녀와 동행하는 걸 위안으로 삼으며 기도하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황태녀와 세 거대 짐승이 안면을 트는 건 리브노만에게도 이로운 일이다. 지금의 황제는 세 거대 짐승과 이해관계를 맺은 거지만, 미래의 황제인 황태녀는 어린 시절부터 쌓은 우정으로 거대 짐승을 대할 테니까.
‘어차피 우리 애들도 데려가야 하고.’
결정적으로 페디를 비롯한 우리 애들도 거대 짐승들을 보고 싶어 한다.
어차피 애들과 함께 짐승 투어를 할 거, 황태녀도 포함해서 다 같이 가는 것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