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72)
로판 속 공무원 672화(673/945)
황태녀의 지즈 탑승 및 레비아탄, 베히모스 방문 계획은 황태녀와 함께 온 시녀장을 통하여 황궁으로 전달됐다.
황태녀를 제도 바깥으로 꺼내는 것도 모자라 수백, 어쩌면 수천 미터 상공에 띄우겠다는 경이로운 계획. 이 소식을 들은 황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통신구가 불타오를 정도로 연락을 걸었다.
– …꼭 가야겠나?
“가지 않으면 전하께옵서 폐하를 원망할 것입니다.”
허나 뜨거운 연락과 달리 황제의 의지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황제도 아는 것이다. 황태녀의 호기심은 자신의 역량으로 막을 수 없다는 걸. 억지로 황태녀의 여정을 막아봤자 돌아오는 것은 ‘아빠 미워!’ 라거나, ‘아빠하고 말 안 해!’ 같은 흉흉한 대사라는 걸.
그래서일까. 황제는 초췌한 안색과 별개로 눈망울만큼은 묘하게 촉촉했다.
“폐하, 심려치 마소서. 비록 소신이 전하와 피로 이어진 혈육은 아니나, 마음으로 품은 자식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어찌 아비가 자식의 안전에 소홀하겠습니까.”
그 모습에 작은 동정심이 생겨 위로를 건넸다.
나였어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페디가 수백 미터 상공으로 떠오른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할 거다. 아무리 미움을 받더라도 말리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할 거다.
“전하뿐만이 아닌 소신의 아이들도 함께할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하여 마종공도 탑승할 예정이니, 부디 걱정을 거두소서.”
그렇기에 황제의 우려를 최대한 달래주었다.
내가 황태녀를 남의 자식이라고 막대하지는 않을 거다. 내 아이들도 함께 태울 정도로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 정 불안하다면 대륙 제일 검과 더불어 대륙 제일의 마법사도 태우겠다 등.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카드는 전부 꺼냈다.
– 장관을 불신하는 것은 아니다. 짐이 장관을 믿지 못한다면 누구를 믿을 수 있겠나.
“황송하옵나이다.”
연이은 설득과 위로에 황제의 안색이 조금은 밝아졌다.
– 허나 짐이 알기로 지즈의 등은 매우 넓고, 아이들의 활발함은 아무리 강력한 무인이라도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황실 기사단 1개 분대와 마법사단을 지원할 터이니 그들과 함께 하라.
“예, 폐하.”
아이들의 돌발 행동을 막을 수 있도록 인력을 지원해 주겠다는 말이기에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이 많으면 나야 좋지. 솔직히 아이 일곱을 어른 둘이 커버하는 건 고문이나 마찬가지야.
처음 지즈를 만났던 곳으로 이동하자 바닥에 드러누워 배를 긁적이는 지즈를 볼 수 있었다.
백수도 이런 백수가 따로 없다. 내가 아는 어떤 하늘의 신도 딱 이런 느낌이었는데, 그 신이 육체를 가지고 현신하면 이런 모습일까.
“우와! 우와아아아!”
“엄청 커!”
– 으잉?
그리고 배를 긁적이던 지즈는 난데없이 들리는 환호성에 스르륵 고개를 돌렸다.
– 어, 뭐야. 언제 오셨어요?
“방금 왔다.”
내 모습을 확인한 지즈는 트릭시를 한 번, 아이들을 한 번, 내 뒤에 있던 기사와 마법사들을 한 번 쳐다보더니 떨떠름히 말을 이었다.
– …혹시 이제 와서 토벌하려고 온 건 아니죠?
너무 과한 걱정이라 픽 웃음을 흘렸다.
토벌은 무슨. 말 잘 듣고 유지비도 없다시피한 거대 비공정을 자기 손으로 부수는 머저리가 어디 있겠어.
“그럴 생각이었다면 네가 눈치채기 전에 기습했겠지.”
– 그건 그렇네요.
하늘 베기를 떠올린 건지, 잠시 몸을 부르르 떤 지즈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빨라서 좋다. 얘가 단순할지언정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야.
– 그런데 토벌이 아니라면 무슨 일─
“나! 빨리 탈래! 등에 탈래!”
– 아하.
황태녀의 외침에 지즈의 목소리에 짙은 자부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 역시 저를 타기 위해 온 거군요! 로이가스의 보랏빛 제관을 타고난 핏줄들도 저를 타고 하늘을 누비기를 원했죠! 그마저도 황제나 그 직계가 아닌 이상 불가능했지만!
전통 있는 탈것이었다는 말에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아무리 신세를 지고 있어도 꼬꼬마들을 태우는 건 자존심 상한다고 거절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2차 하늘 베기를 할 필요는 사라졌다.
– 비록 이 아이들은 보랏빛 제관의 아이들이 아니겠지만! 신세를 지는 몸으로서 특별히! 이 등에 태우─
“보라색 눈을 가진 분이 황태녀 전하시다.”
–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빠르게 바닥에 엎드린 지즈는 날개를 이리저리 조정하더니, 사람들이 오르기 편하게 계단처럼 만들었다.
훌륭한 판단력이다. 볼수록 만족스러워.
“유쾌한 아이구나. 2천 년이라는 세월도 저 아이의 순수함은 더럽히지 못한 것 같아.”
그 와중에 ‘저거 철 덜든 애 같은데.’ 라는 말을 곱게 포장하는 트릭시의 배려에 미소를 지었다. 심지어 지즈가 들으면 상처받을까 봐 작게 속삭이지 않았나. 실로 가슴 따뜻해지는 마음씨다.
“태어난 시기만 보면 까마득한 조상 수준이기는 한데, 오래 잠들어서 그런지 좀 해맑기는 해.”
그 배려를 헛되게 만들 수 없어서 나 역시 작게 대답했다.
단순히 태어난 시기만 보면 2천 년 묵은 괴물이지만, 그중 대다수의 시간을 잠들어 있었다. 200년은커녕 20년은 깨어있었을지 의문이야.
“그래도 해맑은 편이라 다행인 것 같아. 엄격하고 진지한 애보다는 저런 애가 아이들을 상대하기 좋지.”
“후후, 그것도 그렇구나.”
쿡쿡 웃음을 흘린 트릭시는 흐뭇한 눈빛으로 지즈와 아이들을 바라봤다.
기사들의 품에 안긴 채 지즈의 등에 오르는 아이들. 아이들이 놀랄까 봐 미동조차 하지 않는 지즈. 지즈를 보며 학술적 호기심을 논의 중인 마법사들까지.날아다니는 생체 전열함을 코앞에 둔 것치고는 매우 평화로운 광경이다.
‘어지간한 영지는 순식간에 불태울 전력인데.’
치트키 수준인 지즈는 제외한다 치더라도, 황실 기사단 1개 분대와 황실 마법사단 일부가 뭉치면 영지 하나둘 정도는 가뿐히 박살 낼 수 있다. 그런 전력이 단순히 황태녀와 아이들의 여행을 위해 모이고, 아이들을 품에 안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을 따름이다.
물론 나랑 트릭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우리도 올라가자. 애들 기다리겠다.”
“그래, 그러자꾸나.”
아이들이 전부 올라간 것을 확인한 뒤, 우리도 지즈의 날개를 타고 등에 올랐다.
전열함, 전열함 거리기는 했지만 등에 올라가니 진짜 배에 탄 기분이었다.
***
세계수를 터전 삼아 하루하루 평온한 나날을 보내는 것. 이보다 행복하고 보람찬 일은 없다.
너무 좋다. 콘스탄티나가 슬슬 북방으로 가라며 잔소리를 할 때도 있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포기하고 돌아간다.
물론 언젠가는 북방으로 가기는 갈 거다. 그곳이 나의 터전이고, 나의 신앙이 잠시 기울었다가 다시 부흥한 곳이니까. 하늘의 신이 마땅히 거해야 할 곳이니까.
‘지금은 아니야.’
하지만 그 시기가 지금은 아니다. 내가 세계수 부활에 기여한 지분을 생각하면 잠깐 정도는 여기 머물러도 되잖아. 북방으로 가는 것도 귀찮다고.
게다가 콘스탄티나 부활 전에는 요정들에게 시달리는 것이 피곤했지만, 얘들이 엄마를 찾아서 그런지 이모를 덜 귀찮게 한다. 덕분에 요정들을 적당히 돌보는 것도 재밌어. 정령왕들이랑 대화하는 것도 괜찮고.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북방에는 대화 상대가 없어서 가기 싫다. 아무리 혼자 노는 게 익숙하더라도 자발적 외톨이와 타의적 외톨이는 다른 법이니까. 내가 혼자 있고 싶어서 혼자 지내는 것,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혼자 지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최대한 버텨야지.’
그렇기에 오늘도 다짐했다. 최대한 오랫동안 세계수에 빌붙어 살아가는 신생을 보낼 수 있기를.
가끔씩 요정들과 놀아주고, 정령왕들과 옛날 얘기를 나누며 지낼 수 있기… 를…?
‘으응?’
갑자기 북동쪽 방향에서부터 위화감이 느껴졌다.
제법 먼 거리다. 하지만 먼 거리임에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위화감이다.
동시에 어디서 느낀 것 같으면서도 낯선, 그렇다고 처음 봤다고 하기에는 익숙한 미묘함. 실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기운이었다.
‘처음 느끼는 감각은 아닌데?’
복잡하다. 어디서 이런 기운이 튀어나온 건지, 그 기운이 왜 내 기억을 휘젓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혹시 내가 옛날에 잃어버린 성물 같은 거라도 있었나?
하지만 그런 게 있다면 진작에 알았을 거다. 내가 파악하지 못한 성물 같은 건 없어.
‘…명예 제사장?’
이윽고 북동쪽에서 느껴진 위화감이 조금씩 가까워지자, 그 위화감 속에서 명예 제사장의 기운도 느낄 수 있었다.
뭐야. 네가 왜 거기 있어. 나 몰래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잠깐 신경 좀 못 썼더니!’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분함이 치솟았다. 아무리 내 신앙이 부활 중이라지만, 그래도 명예 제사장은 명예 제사장이다. 내 성흔을 가지고, 신물도 보유하던 명예 제사장이야!
그런 사람이 에넨도 콘스탄티나도 아닌 제3의 기운과 함께 있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이건 하늘의 명예를 걸고 막아야 돼!
– 명예 제사장.
물론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면 명예 제사장이 서운해할 수 있는 법. 최대한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절대 명예 제사장한테 에넨과 콘스탄티나의 흔적이 묻어서 조심하는 게 아니다. 나는 원래 배려심 넘치는 신이야.
–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실제로 내 배려에 명예 제사장도 덤덤히 대답해 줬다.
역시 대화는 배려와 존중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법. 상대의 동의 없이 복자니 은인이니 하는 녀석들보다 내가 더 명예 제사장에게 어울리는 신이야. 확신할 수 있어.
– 나야 뭐, 잘 지내고 있지. 너는?
– 저도 평소와 다를 바 없습니다.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바쁘다는 걸 빼면요.
경계심 없는 목소리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에게 무언가 비밀로 하는 목소리는 아니다. 명예 제사장이 저 기묘한 기운과 함께하는 건 단순히 우연이거나, 딱히 나를 외면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 아, 특이한 일이 있기는 했는데.
내가 묻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여는 걸 보면 확실하다.
– 혹시 트리카 제국 시기에도 계셨습니까?
– 당연하지. 나 뮤노 제국 건국 시기 때도 있었어.
– 그럼 레비아탄과 베히모스, 지즈라는 이름은 들어보셨습니까?
그 말에 눈이 크게 떠지고 말았다.
– 트리카 제국 시절에 만들어진 생명체들인데, 최근에 깨어나서 말입니다. 그중 지즈라는 새의 등에 타고 있습니다.
– 어어…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명예 제사장이 말한 세 존재를 몰라서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잘 알고 있다. 그중 지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혼란스럽다.
– 지즈라고?
– 예. 알고 계십니까?
– 내 동생인데…
– …예?
지즈는 한때 신이었던 존재.
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따르던 동생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