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73)
로판 속 공무원 673화(674/945)
지즈를 타고 베히모스가 있는 크로이타로 가던 중,오랜만에 존재감을 드러낸 영원한 푸른 하늘은 괴기하기 짝이 없는 말을 꺼냈다.
– 내 동생인데…
무려 지즈가 자신의 동생이라는 말.하늘의 신인 영원한 푸른 하늘과 자칭 하늘의 제왕인 지즈가 자매였다는 말.평범한 인간의 가치관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보라 정신이 아찔해졌다.
물론 영원한 푸른 하늘에게서 레비아탄, 베히모스, 지즈에 대해 물은 건 나다. 내가 먼저 묻지 않았다면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였다.
허나 물어버렸다. 먼저 물어버렸고, 몰라도 되었을 진실을 알게 되었다.
‘…동생이라고요?’
트릭시와 황실 기사, 황실 마법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본 뒤, 머릿속으로 영원한 푸른 하늘과 대화를 이어갔다.
다행히 지즈 위에는 나 외에도 아이들을 돌볼 사람들이 많다. 잠시 정신을 팔고 있어도 괜찮을 터.
– 아, 응.
그리고 내 물음에 영원한 푸른 하늘은 긍정을 표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사실 농담이었다고 말하면 부장님의 개그를 들은 대리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웃어줄 생각이었는데.
– 그으, 나처럼 하늘의 신이었던 동생이야.
‘예?’
이어지는 말에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지즈가 동생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신이었다고? 그것도 영원한 푸른 하늘과 분야가 겹치는 하늘의 신?
‘그게 가능한 겁니까? 하늘의 신은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까.’
– 신은 결국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존재야. 하늘을 다른 방식으로 숭상하면 나와 다른 하늘의 신이 나오는 거지. 그게 지즈였어.
복잡한 말이었지만 애써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지금 중요한 건 하늘의 신이 여럿이라는 것보다 지즈의 정체이지 않나.
게다가 빙의 전 세상에도 그리스 하늘의 신과 북유럽 하늘의 신이 따로따로 존재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다.
– 분야가 겹치면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경우도 있지만, 나랑 지즈는 제법 친했어. 지즈가 워낙 순하고 해맑은 아이라서 나를 경쟁 상대가 아니라 가족으로 여겼거든.
그 말에 무심코 지즈의 머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이 해맑음은 신이었던 시절부터 타고난 천성이었나.
– 뭐어. 가족처럼 지내면서 이런저런 일이 많기는 했는데…
그렇게 말한 영원한 푸른 하늘은 갑자기 침묵을 지켰다.
이 침묵이 신이었던 동생과의 추억을 회상하느라 그런 건지, 아니면 나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느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 얘기하면 너무 길어지니까네가 궁금할 것만 얘기할게.
그저 침묵을 깬 영원한 푸른 하늘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다소 가라앉았으니, 어련히 전자라고 생각해야겠지.
– 내가 신은 물리적으로 토벌할 수 없다고 했었지? 신앙을 잃고 신격을 상실한 뒤에야 없앨 수 있다고.
‘예. 그랬습니다.’
기억난다. 과거 성수들이 막 봉인지에서 뛰쳐나왔을 당시, 영원한 푸른 하늘이 그렇게 말한 덕분에 성수들의 처우를 두고 고민했었다.
처리하기에는 신이기에 답이 없고, 다시 봉인하기에는 수지 타산이 안 맞아서.
‘주워와서 다행이지.’
지금 생각하면 성수들을 주워온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얘네 없었으면 육아 난이도가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싫어.
– 신이 신격을 잃으면 더 이상 신으로 군림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소멸하는 건 아니야. 한때 신이었던 무언가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거지.
아무튼 저택에서 뒹굴거리고 있을 성수들을 떠올리는 사이, 영원한 푸른 하늘의 말에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사실 여기까지 들었으면 모를 수가 없다. 신격 상실, 신이었던 존재, 신이었던 무언가.
‘지즈가 신격을 상실한 무언가군요.’
– 맞아. 여러 사건이 겹치며 지즈를 숭배하던 신앙은 몰락했고, 하늘의 신 지즈는 그냥 지즈로 전락했어.
씁쓸함이 가득한 목소리라 조금 미안해졌다. 내가 괜한 걸 묻지 않았다면 동생의 몰락을 자기 입으로 내뱉을 필요는 없었을 테니.
– 그래도 워낙 밝은 아이라 그런지 풀이 죽지는 않더라. 신으로 지내는 것도 귀찮았는데, 이참에 세상 구경 좀 마음껏 하겠다나? 차마 말릴 수 없어서 그냥 보내줬지.
이윽고 작은 한숨 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 그게 마지막 대화일 줄 알았다면 끝까지 막았을 텐데.
‘마지막이요?’
– 응. 남쪽으로 떠났다가 인간들한테 토벌됐거든. 지금 있는 지즈는 내가 아는 지즈가 아니야. 지즈의 파편으로 만든 또 다른 무언가에 가까워.
훅 치고 들어온 비극에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신이었던 동생이 신격을 잃은 것도 모자라, 인간들의 손에 죽고 개조까지 당했다. 뭐 이런 끔찍한 이야기가 다 있을까.
‘어쩐지.’
동시에 트리카가 인공 생명체들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완전히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게 아니었다. 영원한 푸른 하늘이 지즈의 파편이라고 하는 것을 볼 때, ‘신이었던 무언가’를 잡으면 일반적으로 얻을 수 없는 전리품이 나오는 듯하다.
정황상 그 전리품을 토대로 인공 생명체를 만든 거겠지. 트리카의 기술력으로 육체를 만들고, 전리품을 영혼처럼 그 육체에 담는 방식으로.
– 우리는 자연의 마나, 혹은 신성력을 먹고 산다. 평범한 음식도 먹지만 그건 효율이 좋지 않지.
그리고 레비아탄이 했던 말이 그 가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래, 마나는 그렇다 쳐도 신성력도 먹이라는 게 이상하기는 했다. 전직 신이라고 생각하니 이제야 의문이 풀리네.
‘저기, 그러면 레비아탄과 베히모스도…’
– 내 기억으로는 각각 바다의 신, 목축의 신이었나? 아마 그랬을 거야.
목축이라는 구체적인 단어를 들으니 더욱 설득력이 높아졌다.베히모스가 가축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돌보는 걸 보면 목축의 신이 확실하다.
‘미친.’
덕분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신이었던 무언가를 죽여야 만들 수 있는 인공 생명체라니. 종교들이 미친 듯이 날뛰던 시기에나 가능한 방법이잖아.
크로이타에 무사히 착륙한 아이들은 베히모스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도대체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온몸이 털이 아니라 풀과 나무, 꽃으로 뒤덮인 베히모스는 아이들이 보기에 움직이는 산─ 그 자체였으니까. 솔직히 내가 봐도 신기한데 아이들은 오죽하겠나.
“소랑 양도 잔뜩 잇써!”
심지어 베히모스의 몸에는 적지 않은 숫자의 소와 양들이 올라가 있었다. 이 정도면 산이 아니라 목장이 아닌가 싶다.
– 작은 손님들이 왔군. 만나서 반갑구나.
그리고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불구하고 베히모스는 온화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반겨주었다.
온순하고 조용한 성격을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나, 베히모스가 신이었던 존재라는 걸 알게 되니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저렇게 온화하고 상냥한 신이 결국 신앙을 잃어 필멸자로 전락하였고, 한때 자비로 보듬었을 인간들에게 토벌되어 인공 생명체로 다시 태어난 상황.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다.
‘기억은 없는 건가?’
그런 베히모스, 바닥에 엎드려 쉬고 있는 지즈를 보며 머리를 굴렸다.
일단 이 녀석들에게 신이었던 시절의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있었다면 자신들을 토벌하고 부활시킨 트리카를 충심으로 따를 리가 없고, 짐승 취급받는 것을 받아들일 리도 없다.
그렇기에 다행이면서도 안타깝다. 신이었던 시절의 기억이 없어 조용히 지내는 것은 다행인 일이고,
– 지즈랑 다시 대화를 하고 싶기는 한데, 걔는 내가 아는 지즈가 아니잖아. 우리가 같이 지내던 시절의 기억이 없는 지즈라면 나 혼자 아는 척하는 거니까… 그냥 마음속에 묻어두려고.
영원한 푸른 하늘이 영원히 동생을 잃었다는 걸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진짜 기억이 없나?’
하지만 의문이기는 하다. 생전의 이름과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은 거대 짐승들이다. 기억도 겸사겸사 같이 계승되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트리카가 저 녀석들을 만들면서 의도적으로 기억을 누락했을 수도 있으나─
‘그건 아니겠지.’
그리 설득력 있는 가설은 아니다.사람의 기억을 건드는 것은 마법과 기술력이 극도로 발전한 지금도 미지의 영역. 대륙 제일의 대마법사인 트릭시조차 기억을 건드리는 건 감히 해서는 안 될 일이라며 꺼리는 분야다.
그런 고도의 기술을 2천 년 전의 기술로 해냈다? 트리카가 자신들의 기술력만으로 인공 생명체를 만들었다면 그럴 수도 있으나, 신과 엮인 결과라는 걸 안 이상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아니면 봉인인가?’
이 또한 기억을 건드리는 방안이기에 쉽지 않은 방법이지만, 기억 삭제가 아닌 봉인이라면 어떻게든 가능할 수도 있다. 망각은 어떤 생명체든 간에 당연히 겪는 일이니까.
게다가 특정 기억만 봉인하는 게 아니라 죽기 전 기억을 통째로 막는 것이라면 더욱 편할 테고.
‘어렵네.’
그렇게 여러 가설을 떠올리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 혼자 고민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진실은 오직 저 녀석들을 만든 트리카 제국만이 알 터이니.
***
명예 제사장과 대화를 나눈 후,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다.
오랫동안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애써 떠올리지 않았던 동생을 다시 언급하게 됐다. 2천 년 전에 내 곁을 떠난 소중한 동생이 다시 내 머리를 헤집었다.
‘나는 걸 엄청 좋아했었는데.’
하늘의 신 아니랄까 봐 하늘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지즈. 툭하면 하늘을 날며 세상을 굽어살피던 지즈.
‘보고 싶다…’
그립다. 내가 동생처럼 돌보던 신들은 많았지만, 그 녀석은 나와 같은 하늘의 신이라 그런지 유독 정이 갔다. 그 녀석도 나를 언니라 부르며 졸졸 따라다녔다.
그랬던 동생이 신앙을 잃고 몰락했으며, 졸지에 인간들의 손에 죽었다.
‘왜 네가.’
씁쓸한 일이었다. 신격을 잃은 존재가 토벌당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나, 그렇다고 흔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참사를 하필 내 동생이, 지즈가 겪었다.
왜, 왜 하필 너였을까. 네가 남쪽으로 떠났을 때 막지 않은 내 잘못이었을까? 네가 신의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네 자존심을 생각해서 신수로 삼지 않은 내 잘못이었을까?
모르겠다. 이미 2천 년이 넘게 지난 일이니까.
– 왜 그러고 있죠? 기운이 없어 보이네요.
– 아.
그렇게 멍하니 하늘을 보는 사이, 콘스탄티나가 돌아왔다.
– 그냥, 뭐, 옛날 일이 생각나서.
– 당신에게도 옛날이면 까마득한 고대겠군요.
– 그렇게 오래는 아니야. 지즈랑 있을 때거든.
– 아.
내 말에 콘스탄티나는 납득한 듯 넘어갔다. 내가 지즈를 각별히 여겼다는 건 콘스탄티나도 아니─
– 그러고 보니 지즈와 베히모스, 레비아탄이 다시 깨어났더군요. 오랜만에 다시 대화를 나눠서 즐거웠습니다.
?
– 대화…?
– 네. 저랑 베히모스는 영역이 조금 겹쳤으니까요. 며칠 전에도 베히모스에게 인사하고 왔습니다.
– …너를 기억해?
– 당연하지요? 죽었다 살아나기는 했지만 베히모스는 베히모스이니까요.
그 말에 머리가 새하얗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