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75)
로판 속 공무원 675화(676/945)
다용도 공중 기동 고래인 레비아탄이었지만, 아이들 앞에서 비행을 하지는 않았다.
– 사람도 자주 수영을 하면 피곤한 법. 그건 이 몸 또한 마찬가지다. 이 육체를 이끌고 비행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지.
설득력이 넘치는 비행 불가 사유기에 납득했다. 확실히 제레노 왕국에서 화려한 무력시위를 한 게 최근의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아이들은 거대한 고래에 관심이 있는 거지, 날아다니는 고래를 보려고 온 것이 아니다.
‘처음 본 고래가 플라잉 고래면 이상한 인식이 생기겠지.’
그리고 아이들은 고래에 대해 이름 정도밖에 알지 못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 봤자 바다에서 사는 거대한 물고기라는 것 정도인데, 갑자기 거대한 몸체를 이끌고 하늘을 난다? 올바른 지식을 쌓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기묘한 지식을 선물하는 꼴이다.
그렇게 날지도 못하고, 아이들과 놀아줘야 하니 잠수도 못하는 레비아탄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때부! 저것빠! 비 내려!”
“아빠! 비! 비이!”
현명공을 호위하는 정예 마법사들조차 박살 내 버린 혼신의 분수 쇼를 보여줄 수 있었다.
이게 레비아탄 위에서 당하는 게 아니라 멀찍이서 구경하니 장관이기는 했다. 섬 크기인 고래가 거대한 물기둥을 쏘아 올리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 물기둥은 비처럼 흩날리며 바다와 대지로 쏟아졌다. 과장 좀 보태면 거꾸로 흐르는 폭포를 보는 기분이었다.
“칼.”
그렇게 레비아탄의 분수 쇼에 영혼을 사로잡힌 아이들을 보던 중, 통신구를 매만지고 있던 트릭시가 슬쩍 다가왔다.
“지즈가 도착했다고 하는구나.”
“혼자 날아가니까 빠르네. 아까는 우리를 태우느라 조절한 모양이야.”
예상보다 빠른 도착 소식에 감탄했다. 하늘의 제왕이라고 자칭하더니, 하늘을 누비는 속도가 거의 음속 수준이었다.
“놀란 사람은 없었고?”
“미리 언질을 받은 덕에 소란은 없다고 하셨단다.”
“다행이네.”
전열함 크기의 새가 세계수 위를 배회하는 다이나믹한 상황. 과거 아펠스라는 희대의 개새끼들 덕에 세계수가 불탄 적이 있는 엘프 입장에서는 PTSD가 도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미리 외조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곧 거대한 새가 하나 갈 텐데, 덩치만 크지 순한 녀석이니까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다만 세계수에 너무 과도한 관심을 보여서, 조금 불안하다고…”
“괜찮아. 세계수 안에 지즈의 가족이 있으니, 엘프들처럼 세계수를 애지중지할걸?”
“외할머니께 세계수를 가져가도 되겠냐고 물었다는구나.”
그 말에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미친 새가. 데려갈 거면 세계수 안에 있는 네 언니를 데려가야지, 남의 집을 통째로 뽑아가려고 하면 어떡해. 그거 엄연히 콘스탄티나의 재산이라고.
“와아! 다시 나온다!”
“비! 비!”
“시원해애~”
그 와중에 아이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아무리 고래여도 저렇게 자주 물을 뿜어도 되는 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저 정도 되는 양을 뿜으려면 그만큼 비축하고 있어야 한다는 건데, 비축할 시간도 뿜어내고 있잖아.
“일단 애들부터 말릴까?”
“그러자꾸나.”
트릭시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분수 쇼 관람 대신 레비아탄 관광을 시작하는 게 좋겠다.
이변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 나 신전 하나만 세워줘.
‘예?’
그것도 상당히 기괴하고도 당당한 이변이.
너무 당당해서 빠르게 기억을 되짚었다. 분명 영원한 푸른 하늘의 신전은 북방 곳곳에서 세워지는 중인 걸로 아는데,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지금까지 북방에 신전 하나 없어서 세계수에 있던 거였나?
허나 빠르게 기억을 되짚은 만큼 답도 금방 나왔다. 전혀 그렇지 않다.
‘이미 대영지마다 신전 하나는 있지 않습니까.’
그래, 이미 북방 대영주들이 관리하는 영지에는 최소 하나의 신전이 존재한다. 심지어 북방의 중심이나 마찬가지인 바란디가 후작령에는 무엇보다도 거대한 신전과 석상이 있다 들었다. 굳이 나한테 신전 건설을 부탁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 그렇기는 한데, 지즈랑 같이 지내려면 사람이 없는 곳이 좋거든.
‘아.’
민망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납득했다.
영원한 푸른 하늘 혼자서 지낼 거라면 기존에 있는 신전으로도 충분하다. 어쩌면 본인의 신앙과 거리가 먼 세계수보다, 철저히 영원한 푸른 하늘을 위해 만든 신전이 더 편할 수 있다.
허나 영원한 푸른 하늘의 신전은 위엄을 과시하기 위하여 각 대영지의 중심지에 있다. 상대적으로 개발이 더딘 북방이어도 지즈가 착륙하면 참사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지역에 신전이 있다.
– 지즈가 지내기 좋은 평야를 찾았다고 하더라고. 나도 지즈랑 거기서 지내고 싶은데, 안 될까…?
‘허허벌판이라 썩 좋은 신전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괜찮다면 빠르게 짓겠습니다.’
조심스러운 질문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유도 아니고 죽은 줄 알았던 동생과 함께 지내기 위한 보금자리 마련이다. 내가 지즈를 찾아서 둘을 만나게 해줬으니, 이 정도 애프터서비스는 해야 좋은 결말이겠지.
‘어차피 북방 내에서도 북쪽에 속한 지역이라 유목민이 접근하는 일도 드물 겁니다. 지즈의 둥지라고 생각하면서 편히 지내십시오.’
– 고마워! 지즈도 고맙다고 전해달래!
해맑은 목소리에 픽 웃음을 흘렸다.신전이 세워질 곳은 황무지 중에서도 황무지기에 당장이야 영원한 푸른 하늘과 지즈 둘이서 오붓하게 지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거대한 독수리가 지키는 하늘의 신전. 영원한 푸른 하늘의 신앙이 건재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신전이다. 아마 어지간한 성지 뺨치는 곳으로 변하지 않을까?
‘신전 인근에 개발 금지령이라도 내려야지.’
신전까지 가는 길이나 역참 정도는 만들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지즈의 덩치 때문에 곤란하다.
그러니 신전 인근 일정 거리는 철저히 개발을 금지하자. 그렇게 하면 시간이 지나도 둘의 보금자리는 영원할 터.
‘이제야 원래 위치로 돌아가네.’
조금 복잡한 기분이다. 하늘의 신이자 유목민들의 신이면서 초목의 신이 만든 유산, 정주민들의 영역에 머물고 있었다. 그랬던 신이 동생을 보자 망설임 없이 이사를 간다라.
자매끼리의 우애가 확실히 끈끈하기는 한 모양이다. 둘 중 하나가 완전히 죽었다면 씁쓸했을 정도로.
***
세계수의 꼭대기에 앉은 지즈는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 북쪽 전체를 뒤져도 언니가 보이지 않더라! 분명 언니를 섬기는 것 같은 신전은 보였는데, 정작 신은 없어서 빈 껍데기 신전인 줄 알았어!
– 빈 껍데기치고는 좀 크지 않았어?
– 크면 뭐해! 신앙 잃는 건 순식간인데!
정말 신앙을 잃어본 신이 말하니 설득력이 넘쳤다.
– 그보다 언니가 없으면 나 혼자 살아야 하나 걱정했는데~ 설마 거기서 만난 인간이 언니 제사장일 줄 누가 알았겠어!
히히 웃음을 흘리는 지즈의 모습에 나도 미소를 지었다.
정확히는 명예 제사장이지만 굳이 정정하지는 말자. 어차피 저 아이 성격상 말해줘도 금방 잊을 테니까.
– 그런데 지즈.
– 응? 왜?
– 너 내 신수로 지내지 않을래?
그렇게 한참을 떠드는 지즈를 보다가 아까부터 꺼내고 싶었던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지즈가 기억이 있다는 걸 알기 전, 지즈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지즈를 내 신수로 삼지 않은 걸 후회했었다. 지즈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거절할지라도 한 번은 물어볼걸─ 그렇게 후회했었다.
하지만 다시금 기회가 왔다. 지즈는 살아있고, 나에 대한 기억이 온전하다. 과거의 후회를 수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 신수?
내 제안에 지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를 언니처럼 여기는 아이라지만 썩 달갑지 않은 제안일 거다. 아무리 신앙을 잃고 몰락했어도 신이었던 존재. 그런 존재가 다른 신의 아래로 들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래도 설득해야 한다. 이번에는 운이 좋게 넘어갔지만, 또다시 지즈가 엄한 곳을 돌아다니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럴 바에는 내 신수가 되어 지금보다 강하고 튼튼해지는 것이─
– 좋아!
– 응?
– 나 신수해볼래! 신은 해봤으니까 신수 경험도 해봐야지!
– 어…
내 동생은 내 생각 이상으로 해맑은 아이였다.2천 년 만에 봐서 그런지 더 순수해진 것 같아.
– 그래, 잘 생각했어. 신수로 지내면 인간들에게 당할 일도 없을 거야.
일단 복잡한 심정을 뒤로하며 지즈의 결정을 반겼다.
2천 년 전에는 지즈가 인간들의 손에 봉변을 당했지만, 내 신성력이 깃든 신수가 된다면 내 신앙이 건재하는 한 지즈도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 물리적인 피해를 입고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진작 이랬어야 했지만 지금이라도 안전장치를 건 게 어디야.
– 잉? 인간?
– 응. 2천 년 전처럼 인간들한테 당하면 곤란하잖아.
– 나 당한 적 없는데?
?
– 지금도 인간들은 하늘에 닿기 힘든데, 2천 년 전에는 더 심했지. 내가 작정하고 피해 다니면 누가 건드릴 수 있겠어.
???
– 그, 럼… 트리카한테 몸이 개조된 건…?
– 아, 그거? 내가 해달라고 했지! 레비아탄이랑 베히모스가 웬 사교도한테 죽은 걸 로이가스가 수거해서 부활시키더라! 얘기 들어보니까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도 꼈어!
우리 언니랑 오래오래 같이 살려고!
라고 해맑게 덧붙인 지즈였지만, 그 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인간에게 토벌된 건 레비아탄이랑 베히모스뿐이었구나. 그랬구나.
이 화상은 죽은 게 아니라 스스로 몸을 뜯어고친 거였구나. 그랬구나…
***
날개를 축 늘어뜨린 채 보야르로 복귀한 지즈는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 언니가 꼴도 보기 싫다면서 나가래요…
“그게 뭔.”
도대체 그 짧은 시간 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동생이랑 같이 지낼 거라느니 뭐니 얘기했었는데.
물론 영원한 푸른 하늘이나 지즈에게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지만,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금방 풀리겠지.’
자매가 싸우는 건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