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76)
로판 속 공무원 676화(677/945)
지즈의 터전에 영원한 푸른 하늘의 신전을 짓는 작업은 무난하게 진행됐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라 자재나 인력을 옮기는 것이 조금 어려웠으나, 여차하면 텔레포트로 조금씩 옮기면 되니까. 그조차도 어려우면 지즈 등에 태워서 옮기는 방법도 있다. 자기 언니가 살 집인데 그 정도는 협조하겠지.
그렇게 영원한 푸른 하늘의 신전 건설을 시작하고, 그 인근 지역의 개발 금지령을 황제에게 받아내고, 다시 거대 짐승들을 보고 싶다며 졸라대는 아이들을 달래던 중─
– 장관. 황태녀의 아비와 대부로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잠시 황궁에 와줄 수 있겠나?
황제의 호출이 날아왔다.
평소라면 속으로 온갖 쌍욕을 박았을 호출이나, 황제와 장관이 아닌 황태녀의 아비와 대부의 관계로서 만나자는 호출이다. 그런 거라면 당연히 응해야겠지.
“혹시 전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동시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황태녀의 상황을 확인했다.
어제도 저택에서 신나게 놀고 간 황태녀지만 어린아이들의 몸은 연약하기 짝이 없다. 고작 1시간 사이에도 크게 다치거나 병에 걸릴 수 있으니, 황태녀의 몸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그건 아닐세.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 따지면 오히려 좋은 일에 가깝지.
“실로 다행인 일입니다.”
황제의 확답을 듣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일에 가깝다는 말은 황제의 주관적 의견이니 썩 믿음이 가지 않지만, 저놈이 자기 딸의 건강도 주관적으로 말할 놈은 아니다. 황태녀가 무사하다는 것은 사실일 터.
‘무슨 일이지?’
그리고 안도감에 이어 의아함이 몰려왔다. 황태녀가 건강하면 딱히 황제가 나를 찾을 일은 없는데?
– 아무튼 점심까지는 와주게. 황후도 같이 있을 테니 알아두고.
“예, 알겠습니다.”
심지어 황후도 한자리에 있을 거라는 말에 의아함은 더욱 커졌다.
황태녀의 친부, 친모, 대부가 모이는 자리라. 도대체 무슨 용건을 꺼내려는 건지 두려울 정도다.
황제에게 사기를 당했다.
“크라시우스 가문의 가주, 감찰성 장관 칼 크라시우스 오브 타일글레헨이 상황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 이 새끼야. 상황도 있을 거라는 말은 안 했잖아.
물론 없을 거라는 말도 안 했지만, 황후가 있을 거라 말해놓고 다른 사람 얘기는 없다면 당연히 황후만 오는 걸로 생각하지.
“일어나도록. 장관은 신하로서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라, 황태녀의 대부로서 온 것이다.”
“예, 폐하.”
속으로 황제를 원망하는 사이, 상황의 말에 납작 엎드렸던 몸을 조심스레 일으켰다.
이걸로 황태녀의 친부, 친모, 대부에 이어 조부까지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절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라인업이다.
“미안하네, 장관. 상황 폐하께옵서 행차하신 것은 장관에게 연락한 직후라, 미처 전달하지 못했다네.”
그 와중에 황제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유감을 표명했다.
다시금 쌍욕이 목 끝까지 치솟았지만 참았다. 이 제국에서 황제조차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 상황이니까. 상황이 오고 싶어서 왔다면 황제여도 막을 수 없다.
그런데 연락한 직후였다면 문자 정도는 날려주지 그랬냐. 평소에는 잘도 날리는 놈이.
“아닙니다, 폐하. 상황 폐하께옵서 무탈히 지내시는 걸 직접 볼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니 부디 말씀을 거두어주소서.”
그래도 상황과 황후의 앞에서 황제를 돌려 깔 수는 없는 노릇. 최대한 온화하고 멀끔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역시 황실을 향한 장관의 충심은 언제나 아름답군. 짐을 성심껏 보필하고 황태녀를 사랑으로 보살피는 것도 모자라 상황 폐하의 안위도 걱정하니 말이야. 장관은 실로 제국의 홍복일세.”
“과찬… 이십니다.”
이상하다. 분명 칭찬임에도 속이 타오른다.
“폐하. 장관도 우리의 부탁으로 급히 달려온 것인데, 서둘러 일을 마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지. 내 장관의 충심에 감동하여 잠시 잊고 말았소.”
다행히 황후의 적절한 개입에 타오르던 속을 다스릴 수 있었다.
역시 황후는 황실의 양심이다. 황후가 없었으면 리브노만 황가는 얼마나 난장판이었을까.
“장관. 지금부터 할 말은 황태녀의 대부이자 여섯 아이의 아비인 장관이기에 말하는 것일세.”
그리고 황후의 만류에 고개를 끄덕인 황제는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조만간 황실에 큰 경사가 생길 걸세.”
“경사, 말입니까?”
황제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황후에게 시선이 향했다.
그러고 보니 황후의 배는 어느덧 만삭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커졌다. 실제로 내가 에리와 결혼하기 전에 임신했으니, 언제 출산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기도 하고.
“경하드립니다, 폐하. 리브노만의 적통이 다시금 세상에 임할지니, 이 얼마나 복되고도 기쁜 일입니까. 제국의 모든 귀족들과 신민들 중 소신이 가장 먼저 축하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영광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렇기에 황제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축하를 건넸다.
사적으로는 한 가정의 구성원이 늘어나는 것이고, 공적으로는 황실이 더욱 번영하는 것이다. 축하하면 축하했지 꺼릴 일은 아니다.
“그래, 장관의 말처럼 경사스러운 일이지. 하지만 작은 고민이 하나 있어 장관을 부른 것이기도 하네.”
곧장 본론으로 진입하는 말이기에 무심코 침을 삼켰다.
무려 새로운 황족의 탄생과 연관된 고민이다. 결코 작은 문제는 아닐 것이고, 이미 황실의 인원들이 머리를 맞대며 고민했을 문제다.
그럼에도 결론이 나오지 않아 나까지 불렀다. 황제의 입에서 나올 고민이 무엇일지, 걱정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
“만약 둘째가 아들이라면… 탄생 축하 연회는 어느 정도 규모로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나?”
…
‘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황제의 말을 들은 순간부터 두통과 한숨이 몰려왔다. 황제가 쓸데없는 고민을 해서, 어이가 없는 말을 해서 몰려오는 고통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심각하고도 중요한 문제라, 왜 그 문제를 지금까지 고민하지 않았을까 의아할 정도의 사안이다.
‘첫째인 딸과 둘째인 아들이라.’
아직 둘째가 아들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태어난 뒤에 고민하면 늦는다. 조금이나마 여유가 있는 지금 미리 결론을 내려야 한다.
“조만간 태어나실 테니 황태녀 전하와 3살 차이로군요.”
“그렇지. 연이어 태어난 수준은 아니나, 그렇다고 큰 격차도 아니야.”
내 말에 황제는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3살. 애매한 차이다. 동갑으로 지내기에는 크지만, 깍듯한 위계질서를 성립하기에는 애매한 수치다.
그렇기에 골치가 아프다. 만약 둘째가 남자로 태어난다면? 서자가 아닌 적자 황자의 나이가 황태녀와 고작 3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괜히 주목만 받을 텐데.’
귀족들의 시선이 황자에게 향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황태녀의 즉위 과정에 적신호가 켜지는 건 아니다. 이미 제국 역사에는 세 명이나 되는 여제가 즉위한 전례가 있으며, 귀족으로 범위로 넓히면 그 숫자는 더욱 많아진다. 당장 다섯 공작 중 두 명도 여자이니 여자의 즉위에 이의를 제기할 멍청한 귀족은 없다.
다만 첫째인 여성이 전대의 유산을 승계한 전례가 있듯, 첫째가 여성이라 둘째인 남동생이 승계한 전례도 존재한다. 귀족들이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더라도 ‘혹시 계승 구도가 바뀌지 않을까?’ 라는 의문 정도는 가질 수 있다.
‘절대 바뀔 일은 없지만.’
황제와 황후는 황태녀가 여자라고 계승 구도에서 배제할 성격이 아니다. 차라리 황태녀가 뒤틀린 심성의 소유자로 자라거나, 어마어마한 능력적 결함을 보여야 겨우 폐태녀가 될 것이다.
게다가 황태녀는 태어나자마자 황태손이 되지 않았던가. 그것도 북방을 정복한 직후, 황제의 권위가 극에 이른 시점에서 말이다. 그렇게 굳건히 만든 후계 구도가 흔들리는 건 황실이 바랄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둘째 탄생 기념 연회는 황태녀가 태어났을 때보다 검소하게 진행하면 되지 않나 싶지만─
“폐하께서 즉위하시고 처음 태어나는 황족이라, 가벼이 넘어갈 수도 없습니다.”
“그게 문제일세.”
복잡하게도 곧 태어날 둘째는 황제 즉위 이후 처음으로 태어나는 황족이다. 어떻게 보면 황제의 즉위와 번영을 상징하는 아이기도 하다.
그런 아이의 탄생을 소홀하게 해? 그건 그거대로 뒷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화려하게 하면 귀족들이 무의미한 의문만 가진다.
또 그렇다고 약소하게 하면 미래의 황자가 서운해할 수도…
“…어렵군요.”
“어렵지.”
예송논쟁을 펼치던 관료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난데없이 빙의 전, 조상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
색연필로 숫자 하나를 지엇따.
이제 얼마 안남앗써! 쪼금만 더 지우면 끝이야!
“전하.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웅! 이제 쫌 잇으면 동생 태어나!”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군요.”
시녀장도 나처럼 좋은지 웃었다.
당연히 시녀장도 좋을거야! 나도 어어어엄청 좋은걸!
“히히…”
그래서 숫자가 얼마 안남은 동생 달력을 손에 쥐엇다.
때부랑 같이 만든 동생 달력! 이 숫자가 다 지어지면 태어나는 동생!
“동생! 빨리 보고 시퍼!”
“전하께서 이렇게 간절히 기다리시니, 건강하고 멋진 동생이 태어날 겁니다.”
“그치!?”
시녀장의 말에 더 기뻣따.
물론 페디랑 마리아랑 쎄실리아랑 카뜰레아랑 쁘-디랑 알리나도 내 동생이지마안… 나랑 같이 집애서 지내는 동생은 아니잖아! 이제 그런 동생이 생기는거야!
나랑 매일 같이 노는 동생! 나랑 같이 자는 동생! 같이 아빠랑 엄마 품에 안기는 동생!
“헤헤…”
빨리 보고시퍼, 내 동생!
태어나면 내가 어어어엄청 잘 해줄꺼야! 때부한테 데려가구, 동생들이랑 놀게해주구… 전부!
아, 멍멍이들이랑 동물들도 동생을 좋아하겟지? 좋아할거야! 분명 그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