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77)
로판 속 공무원 677화(678/945)
나, 황제, 황후, 상황. 성인 넷이 머리를 맞대도 해결하지 못한 고민은 저택에서도 나를 괴롭혔다.
황태녀의 계승 구도가 굳건함을 과시하면서도, 황제 즉위 이후 처음 태어난 황족의 격에 걸맞은 탄생 연회. 과연 어느 정도의 규모여야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사실 최선의 상황은 둘째도 딸로 태어나는 거다. 첫째인 황태녀, 둘째인 2황녀가 태어난 다음에 셋째인 1황자가 태어난다? 아무리 그래도 셋째가 두 누나를 제치고 황태자가 될 거라 생각할 사람은 없겠지. 그런 사람이 있다면 황태녀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사람일 거다.
‘운에 모든 걸 맡길 수는 없는데.’
허나 둘째가 아들일지 딸일지는 반반의 확률이며, 오직 에넨만이 아는 문제다. 황실의 후계 구도와 제국의 평화를 운에 맡기는 건 너무 무책임한 일이다.
그러니 일단 아들이 태어난다는 것을 전제로 두며 고민해야 한다. 황태녀와 3살 차이 나는 황자가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 우리의 미래다.
‘그게 언제지?’
그리고 더욱 미치겠는 것은 1황자의 탄생 시점을 모른다는 점이다.
인간의 몸은 기계가 아니다. 임신 날짜를 입력하면 정확히 10개월 후에 아이가 태어나는 구조가 아니다. 예상보다 아이가 일찍 태어날 수도, 혹은 늦게 태어날 수도 있다.
즉 우리는 시간제한이 있지만, 그 제한이 언제일지 모를 미친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끔찍하네.’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 시한폭탄이 과연 언제 터질까. 뇌관을 제거하기 전에 폭탄이 먼저 터지면 한동안 귀찮아질 텐데, 그전에 처리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무엇도 장담할 수 없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둘째가 2황녀이기를 내가 아는 모든 신들에게 기도하는 것뿐이다.
“장관님?”
“응?”
그렇게 창문 밖에 있는 정원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에리의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배가 크게 부풀어 오른 에리, 제법 임산부의 티가 나는 피네가 나란히 복도를 걷는 걸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서서히 날이 추워지다 보니 정원 대신 복도 산책을 즐기는 모양이다.
“가만히 누워있지 왜 돌아다녀? 하양이 피곤하겠다.”
“누워만 있으면 더 피곤해요. 하양이가 얼마나 활발한데요.”
그 말에 에리의 배를 바라봤다.
확실히 나와 에리의 피를 이은 아이면 내성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멀 터. 엄마가 침대에만 있으면 성질을 낼 가능성이 높다.
“혼자 돌아다니기 심심하다고 피네까지 끌고 다니는 건 아니지?”
하지만 하양이를 달래겠다고 피네까지 제물로 바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아니, 애초에 에리 혼자 돌아다니는 중이었다면 하양이를 위한 여정이라 생각했겠지만, 옆에 피네까지 있으면 그냥 에리가 심심해서 데리고 다니는 거잖아. 하양이가 활발하다는 말조차 핑계일 수도 있다.
“절 뭘로 보고! 임신한 친구를 괴롭힐 정도로 막 나가지는 않거든요!?”
임신 상태만 아니었으면 괴롭혔을 거라는 말로 들렸다.
“게다가 제가 부탁하기 전에 피네가 먼저 같이 다니자고 했어요!”
임산부였어도 본인이 심심하면 데리고 다녔을 거라는 말로 들렸다.
그래도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합리적 의심을 애써 외면했다. 피네가 먼저 자청한 거기도 하고, 에리의 입술을 잡아당기면 하양이의 태교에 안 좋을 것 같으니까.
“그럼 괜찮지만, 피네도 너무 움직이기보다는 최대한 누워있어. 북쪽이는 발길질도 적게 하니까 가만히 있는 걸 더 좋아할 거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내 말에 피네는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배를 매만졌다.
북쪽이. 나와 피네 사이에서 생긴 아이의 태명. 나와 피네가 처음 만난 곳이 제국 북쪽이기에 그걸 기념하기 위하여 붙인 태명.
애 태명이 북쪽이인 건 너무하지 않나 싶지만, 이미 자연과 색깔로 아이들의 태명을 채우지 않았나. 거기에 방위 하나가 추가돼도 이상할 건 없을 거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장관님. 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었어요? 정원에 뭐 있어요?”
그렇게 말한 에리는 뒤뚱뒤뚱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창문 쪽으로 쑥 얼굴을 내밀었다.
“별거 없는뎅?”
“그냥 생각 좀 정리하느라.”
에리의 머리를 토닥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내가 업무 문제로 머리를 싸매는 걸 자주 본 에리랑 피네한테 들켜서 망정이지, 혼자 멍하니 정원을 바라보다가 사용인들이나 다른 부인들에게 들켰으면 걱정을 살 뻔했다. 나 홀로 할 고민을 주변에 전파시킬 뻔했어.
“둘째 때문에 그래요?”
에리의 말에 머리를 토닥이던 손이 우뚝 멈췄다.
“…어떻게 알았어?”
“선배가 말해주던데요? 곧 둘째가 태어날 텐데, 어른들 사정으로 순수하게 축하해 주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다고요.”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황후의 말처럼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임에도, 더러운 어른들의 사정과 정치 때문에 그 탄생을 순수하게 기뻐하지 못하고 있다.
자괴감이 드는 일이다. 황후의 품에 있는 둘째가 세상으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건 무엇일까. 기쁨에 가득 찬 부모의 얼굴일까? 아니면 성별을 확인하고 안도하거나 탄식하는 모습일까?
당연히 전자여야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후자로 흘러갈지도 모른다. 어떤 인간도 태어났을 때의 기억은 없지만, 아이에게 보여줄 첫 광경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황후 폐하도 많이 힘드시겠어.”
“임신 중만 아니었으면 술에 술을 섞어서 마셨을 거예요.”
망설임 없는 첨언에 다시 정원을 바라봤다.
기묘한 일이다. 무엇보다 씁쓸한 말이었으나, 도리어 복잡했던 마음을 맑게 만들었다.
“에리야.”
“넹.”
“2황녀든 1황자든, 하양이랑 몇 주 차이도 나지 않는 친구겠지?”
“그럴걸요? 저랑 선배랑 비슷한 시기에 임신했으니까요.”
그리고 곧 태어날 하양이, 반 년 정도 후에 태어날 북쪽이를 생각하니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정확히는 외면하고 있던 답을 비로소 바라보았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
달이 떠오르고 얼마 후, 장관이 찾아왔다.
예상치 못한 방문이다. 장관이 하루에 두 번이나 찾아오는 것은 드문 일이고, 어두울 때 찾아오는 것은 더더욱 드문 일이다. 그 두 사례가 동시에 터진 것은 최초라고 봐도 무방하다.
“곧 태어나실 분의 탄생 기념 연회. 최대한 성대하게 진행합시다.”
그러나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 장관은 진지한 얼굴과 단호한 말로 내 머리를 헤집었다.
“폐하의 즉위 이후 처음으로 태어난 황족이시고, 그분께도 일생의 한 번뿐인 기념 연회지 않습니까. 그러니 최선을 다해 축하하는 것이 저희의 의무겠지요.”
“…괜찮겠나? 딸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아들이라면 괜한 얘기가 나올 수 있네.”
장관의 말에 한참이나 닫혀있던 입을 겨우 열었다.
기쁜 말이다. 내 자식의 탄생을 만인이 축하해 주는 것은, 성대하게 기념하는 것은 아비로서 무엇보다 기쁜 일이다.
그러나 황제로서는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다. 또한 남매, 혹은 자매가 서로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며 대립할 수도 있기에 아비로서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다.
“소신이 책임지겠습니다.”
그 걱정을 장관은 한마디로 일축했다.
“소신은 황태녀 전하의 대부입니다. 감찰성의 장관이고, 명예로운 귀족원의 의원이며, 무수히 많은 영지들의 주인입니다. 북방 유목민들의 충성을 받고 있는 사령관입니다.”
자신이 가진 검을 과시하며 나를 다독였다.
“소신의 모든 것을 걸고 황태녀 전하를 보필하겠습니다. 소신의 가문, 소신과 엮인 가문들이 힘을 동원하여 전하의 치세를 보필하겠습니다.”
“장관.”
“그러니 폐하께서는 심려치 마소서. 감히 황태녀 전하의 권위와 위엄에 의문을 표하려는 자가 있다면, 소신을 먼저 넘어서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내가 간절히 바랐을, 내가 듣고 싶었을 말을 해줬다.
모든 것이 괜찮을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정치 문제 때문에 곧 태어날 아이에게 못난 짓을 할 필요는 없다고.
“장관, 그거 아나?”
어느새 올라간 입꼬리를 더욱 올리며 장관의 어깨를 토닥였다.
“장관을 황태녀의 대부로 삼은 건 리브노만의 홍복이야.”
“황송한 말씀입니다.”
고개를 숙인 장관의 뒷머리를 내려다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른들의 사정 때문에 아이가 상처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난관을 어른이 직접 나서서 해결했다.자신의 모든 걸 걸겠다는 다짐을 하면서까지.
‘아비로서는 장관이 나보다 위로군.’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생각이 입안을 맴돌았다.역시 여섯 아이의 아비는 뭐가 달라도 다른 것인가.
아니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까지 합하면 여덟 아이의 아비지.
‘첫 결혼식이 고작 2년 전의 일인데.’
2년. 길게 쳐줘도 3년 정도의시간 동안 자식만 여섯을 봤다라. 몇 번을 생각해도 경이로운 일이다.
장관과의 대화를 마치자 시간은 어느덧 황태녀가 잠에 들기 직전까지 흘러있었다.
아슬아슬한 시간이다. 이러다 황태녀에게 잘 자라는 뽀뽀를 하지 못한 채 곤히 잠든 황태녀를 볼 수도 있다.
허나 초조하지는 않았다. 방금 전에 무엇보다도 든든한 말을 들어서 그런지, 놀라울 정도로 마음이 평온했다.
“압빠!”
그리고 황후궁에 도착하자 푸른색 잠옷을 입은 황태녀가 반겨주었다.
황태녀가 동생 달력이라고 부르는 꼬깃꼬깃한 종이를 든 채로.
“우리 황태녀. 이 아빠를 기다린 모양이구나.”
그런 황태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자 황태녀도 양팔을 벌렸다.
기특한 아이다. 이 아빠를 안아주기 위해 자세부터 잡다니.
“웅! 나! 아빠한테 물어볼꺼 있써!”
“물어볼 거?”
“웅!”
연신 고개를 끄덕인 황태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팔을 파닥이기 시작했다.
“내 동-생! 이름은 모야!?”
곧 태어날 자신의 동생을 떠올리면서.
“이름이라.”
그 순수한 모습에 기쁨과 자괴감을 동시에 느꼈다.
“몇 개 생각해둔 것이 있는데, 같이 고르겠느냐?”
“와! 조아!”
아마 장관이 오지 않았다면 자괴감만 느꼈을지도 모른다.
“엄마도 같이!”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어쩌면 황후도 슬픔 속에서 둘째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장관 덕에 황실은 위엄과 행복을 전부 지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