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78)
로판 속 공무원 678화(679/945)
둘째의 성별이 어떻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니 어른으로서 정성을 다해 축하해 주자. 이 당연하고 훈훈한 결론 덕분에 나도 황제도 평온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는 일이다.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그렇게나 고민하다니.
‘귀족들이 동요하면 뭐 어때.’
그 동요를 짓누를 수 있을 만큼 굳건하게 황태녀를 지지하면 되는데.
그래, 이게 정답이다. 막 태어난 황태녀를 냅다 황태손으로 책봉한 것도, 어린아이에게 차기 황제라는 무게를 얹은 것도 어른들의 짓이다. 그렇다면 황태녀가 무사히 황위에 오르는 것도 어른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그동안 귀찮은 일을 전력으로 회피하며 다닌 경험 때문인지, 어른이자 대부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마저 회피하려고 했다. 솔직히 여섯 아이의 아빠로서도 부끄러운 일이야.
‘아이들한테 당당한 아빠가 돼야지.’
티티와 성수들과 노는 아이들, 정령들을 몸에 잔뜩 붙인 채 잠에 든 아이들, 복도를 아장아장 걸어 다니다가 털썩 주저앉은 아이들.제각각의 모습으로 노는 아이들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대녀의 안위를 외면한 대부는 친자식들의 행복도 외면할 수 있다. 하지만 대녀조차 최선을 다해 지키는 대부는 친자식도 목숨을 걸며 지킬 수 있다.
나는 이제 후자인 아비가 되었다. 대녀에게도, 친자식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휴가 끝나면 좀 피곤해지겠네.’
물론 그 명예와 자부심은 공짜로 얻은 게 아니다. 지금은 휴가 중이니 여유가 넘치지만, 휴가가 끝나고 업무로 복귀하면 내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감찰성의 장관으로서, 제국백이자 귀족원의 의원으로서, 여러 영지의 주인이자 북방 파벌의 수장으로서 철저히 황제를 지지하고 황태녀를 보필해야 한다. 감히 귀족들이 황태녀의 계승 구도를 의심하지 못하게. 귀족들이 사이좋게 자라야 할 황족들을 자신들의 도구로 삼지 못하게.
그리고 불과 몇 년 전, 이 제국에서 벌어졌던 계승 분쟁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황태녀가 있으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사실 당시에는 서자 1황자와 적자 2황자가 공존하고 있어서 그런 참사가 터진 거였다. 적장녀인 황태녀가 버티는 이상 다시 계승 분쟁이 생길 일은 없지.
황태녀가 빨리 태어나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때부!”
그런 생각을 하던 중, 허공을 붕붕 떠다니는 황태녀가 복도 너머에서부터 날아왔다.
“나! 평소보다 더 높아졋써!”
“축하드립니다, 전하.”
자세히 보니 저번보다 높게 날고 있기는 하다.
그래봤자 5cm 정도지만.
황태녀가 황궁으로 돌아가기 직전, 황제에게서 연락이 왔다.
– 장관. 미안하지만 황태녀를 더 맡아줄 수 있겠나? 어쩌면 오늘 하루는 장관의 저택에서 자야 할 수도 있네.
그것도 다급한 표정과 목소리를 한 채로.
난데없는 요청이었으나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딸 바보가 딸의 외박을 부탁할 정도면, 이리 다급하게 말할 사안이면 딱 하나밖에 없다.
“전하께는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황후 폐하와 곧 태어나실 전하의 건강과 안녕을 기도하겠습니다.”
황후의 출산이 시작됐다.
– 고맙네, 장관.
내 말에 황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감사를 표했다.
황후의 두 번째 출산. 비록 첫 출산보다는 양호하겠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분위기가 황궁을 휘감을 것이다. 아직 어리고 어린 황태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분위기겠지.
그러니 출산이 끝나기 전까지 황태녀는 우리 저택에 있어야 한다.황태녀가 황궁으로 가봤자 누구도 황태녀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할 테니까.
– 출산이 무사히 끝나면 바로 알려주겠네. 그때까지만 부탁하네.
“예, 폐하. 두 번째 전하를 뵈는 순간을 고대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황제의 얼굴이 사라졌다.
일이 잘못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황후는 무가로 이름 높은 뉘렌 공작가의 핏줄이며, 지금까지 잔병 하나 걸리지 않은 튼튼한 사람이다. 이미 아무 탈 없이 황태녀를 낳은 경험이 있으니 이번에도 무사히 끝날 거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긍정적인 결과를 기원하는 것밖에 없으니.
‘…밤까지 뭘 해야 되지?’
이윽고 황태녀의 관심을 황궁이 아닌 저택에 묶어둘 방법을 모색했다.
막 진통이 시작됐다면 못해도 2, 3시간 정도는 황궁이 뒤집어질 거다. 그렇다면 저녁을 넘어 밤까지 황태녀를 붙잡아야 한다는 건데, 무슨 수단을 동원해야 황태녀를…
‘아.’
하나 있다.오히려 밤이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었어.
‘정령 드론 쇼.’
낮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정령들. 반딧불이처럼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정령들.
카틀레아를 정원으로 데리고 나가면 정령들도 같이 나올 테고, 그러면 밤하늘이 반짝이는 정령들로 뒤덮일 거다.
물론 카틀레아를 따라다니는 정령들은 오직 카틀레아의 말만 따른다. 그렇기에 효과적인 드론 쇼를 진행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 시간을 버는 건 가능하지 않겠나.
‘집에 처박아두면 언젠가는 도움이 되는구나.’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시도 때도 없이 출현하는 정령들 덕에 사용인들이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활약을 하게 되었다.
고맙다, 반딧불이들아. 앞으로는 화장실에서 마주쳐도 속으로만 욕할게.
***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며 복도를 어슬렁거렸다.
역시 한 번 겪은 일임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장관은 이런 경험을 어떻게 네 번이나 버틴 것인지 모르겠다.
‘분명 무사할 거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의자에 앉으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로는 황후와 아이가 무사할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세쌍둥이를 출산한 마종공도 건강한데, 한 명만 낳는 우리 황후가 잘못될 확률은 극히 낮다. 제국의 의료 능력과 마법, 신성력의 힘은 결코 미약하지 않다.
그러니 참고 기다리면 원하는 결과가 나올 거다. 우렁차게 우는 아이와 빙긋 웃는 황후가 반겨줄 거다.
분명,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마음이 따라오지를 않는군.’
허나 당연한 일이다. 애석하게도 신께서는 인간을 만들 때 이성과 감정을 같이 만드셨다. 이성만으로 돌아가는 자가 있다면 사람이 아니리라.
“폐하.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상황 폐하?”
그렇게 초조한 심정으로 다리까지 떨기 시작하니, 옆에 계시던 상황께서 나지막이 입을 여셨다.
“대제께서 보우하시고 에넨의 가호를 받는 폐하십니다. 또한 충심으로 가득한 마법사와 사제들, 의사들이 황후 폐하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 염려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상황 폐하의 위로에 겨우 입꼬리를 올렸다.
뻔한 위로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의례적인 위로다. 그러나 그 말을 한 것이 상황 폐하라면 남들이 하는 말과는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 상황 폐하께서 나를 위로하기 위해 뻔한 말을 하는 것. 양위 이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지 않나.
“그리고 안타까운 사고로 단절된 직계와 달리, 우리 혈통은 어떠한 불안과 위협 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도 그렇군요.”
뒤이은 말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리브노만 직계는 여러 요인이 겹치며 난리가 났지만, 그전에 방계로 갈라진 우리 조상들은 꿋꿋하게 이어져 왔다. 자식을 적게 낳을지언정 임신한 산모와 아이가 잘못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점을 떠올리니 용기가 났다. 대제와 에넨의 보살핌을 받은 듯한 핏줄이 나를 통하여 우리 둘째에게도 흐르고 있으니까.
“상황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번에도 우리의 핏줄은 무사히─”
“아빠! 할아부지!”
?
순간 머리가 굳었다. 지금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가 내 귀에 박혔다.
“…황태녀?”
애석하게도 나 홀로 잘못 들은 건 아니었는지, 상황 폐하께서도 미세한 당혹감이 담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셨다.
“나 왓써!”
상황 폐하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마자 탄식이 나올 뻔했다.해맑은 얼굴로 달려오는 황태녀. 한 손에는 투명한 비닐을 든 채 달려오는 황태녀.
누가 봐도 황태녀다. 한쪽 눈을 감고 봐도, 아예 두 눈을 감고 봐도 우리 황태녀가 맞다.
그리고 황태녀의 뒤에는 장관이 죄인과 같은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건가, 장관.’
‘그렇게 됐습니다…’
빠르게 눈빛과 입모양으로 추궁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처참했다.
아무래도 황태녀의 고집은 장관조차 막지 못한 모양이다.
“이거! 이거! 엄마 보여주려구 가져왓서!”
그 와중에 나와 상황 폐하 앞까지 달려온 황태녀는 손에 들고 있던 비닐을 들어 올렸다.
“음?”
그제야 비닐 안에 기묘한 생물이 들어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마치 반딧불이처럼 반찍이는 생물이 네 마리 들어있었으나, 서로 다른 색을 뿜어내는 반딧불이였다. 실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정령인가?’
이윽고 반딧불이의 정체를 떠올랐다. 이게 장관의 삼녀를 따른다는 그 정령들인가?
“얘네! 밤되니까 더 반짝여! 나만 보기 시러서 가져왓써!”
히히 웃음을 흘리는 황태녀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대충 상황을 알 것 같았다. 황태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정령을 동원한 장관이었으나, 밤중에 정령을 본 황태녀는 ‘좋은 거니까 같이 봐야지.’ 라는 결론에 이르고 말았다. 덕분에 장관의 만류를 뒤로하고 황궁까지 달려온 거겠지.
정령을 비닐 안에 담아서 오는 건 너무한 처사 같지만, 그만큼 황태녀가 진심이었다고 생각하자.
“예쁜 아이들이구나. 엄마도 좋아할 거란다.”
“그치? 엄마가 조아하면 동생도 조아해!”
황태녀의 말에 당혹감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엄마와 동생을 생각하여 어두운 시간임에도 달려온 아이다. 이미 온 아이를 돌려보낼 수는 없으니 반갑게 맞이해주는 것이 옳다.
“폐하!”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황자 전하십니다! 황자 전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마치 황태녀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둘째가 태어났다.
나의 둘째, 우리의 1황자. 황태녀와 함께 카롤루스라고 이름 붙인 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