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79)
로판 속 공무원 679화(680/945)
황태녀가 반딧불이 정령들을 엄마한테 보여주겠다며 황궁으로 갔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여과 없이 느낄 수 있었다. 황제가 아비의 마음으로 한 부탁을 지키지 못한 거니까.
하지만 콘스탄티나의 가호가 있었는지, 황태녀가 황궁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후의 출산이 끝났다. 정말 신의 가호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
“경하 드립니다, 폐하! 황실이 날이 갈수록 번영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렇기에 황제의 둘째─ 첫 번째 아들이 태어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황태녀는 황궁의 무거운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고, 출산도 아무 탈 없이 끝났다. 여기서 누구보다 먼저 축하를 건네면 황제의 언짢음과 당혹감도 급속도로 가라앉을 터.
“고맙네, 장관.”
실제로 황태녀의 등장에 급격히 동공이 흔들리던 황제는 누구보다 밝은 표정으로 내 어깨를 토닥였다.
“장관 덕에 황태녀도 동생이 태어나는 자리에 함께 있을 수 있었어.”
물론 결과만 좋았지 과정이 아찔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황제가 의례적인 유감을 표하기는 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출산이 무사히 끝난 기쁜 자리이고, 황태녀에게 기분 좋은 추억을 만들어줬다. 그러니 이걸로 넘어가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실로 다행인 일이다.
“내 동생! 태어난거야!?”
그리고 나와 황제가 암묵적 거래를 마친 사이, 황태녀는 손에 들고 있던 비닐을 붕붕 흔들며 기쁨을 표했다.
비닐 안에서 처절히 흔들리는 정령들을 보니 안타까웠다. 바람의 정령왕의 축복을 받은 황태녀다. 덕분에 저 정령들은 왕의 축복을 받은 황태녀에게 관심을 보였었는데… 그 관심이 저런 참사로 이어질지 알았을까…
“그래. 우리 황태녀의 동생이 생겼단다.”
“와아!”
그 말이 끝나자마자 황태녀는 오도도도 방 안으로 달려가려 했고,
“황태녀. 지금은 황후도 동생도 피곤할 거다. 조금만 쉬게 한 뒤 들어가거라.”
“으에엥?”
상황의 제지에 실패하고 말았다.
생각보다 빠른 제지에 조금 놀라고 말았다. 작정하고 뛰는 황태녀는 건장한 사용인들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상황은 전력으로 뛰어가려던 황태녀를 자연스레 들어 올렸다.
나이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순발력과 근력이다. 은퇴 후에 농부처럼 지내더니 신체 능력도 농부 수준으로 올라간 건가? 말년에 건강하게 지내는 모양이네.
“지금 들어가면 안대?”
“어허.”
“히잉…”
단호한 상황의 모습에 황태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지언정 떼를 쓰지는 않았다. 아빠 앞에서 난동을 부리는 황태녀도 할아버지 앞에서는 자제하는 것처럼.
특이하기는 하다. 황태녀가 상황을 무서워하는 건 아닌 듯한데, 정작 떼를 쓰지는 않다니. 혹시 떼를 써도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파악한 건가?
‘동물적인 감각이네.’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확실히 상황은 아무리 손녀여도 순순히 받아줄 사람이 아니─
“진짜 안대?”
“으흐음…”
상황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아무래도 받아줄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쩌다 보니 신하 중 최초로 1황자를 보는 영광을 누렸다.
외조부인 전승공보다 먼저 보는 건 실례가 아닐까 싶지만, 황궁까지 와놓고 그냥 돌아가는 건 더 큰 실례지 않나. 결국 황태녀를 품에 안은 채 황후와 1황자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나 왓써!”
그리고 내 품에 안긴 황태녀는 침대에 누워있는 황후를 보자마자 격렬히 손을 흔들었다.
애석하게도 비닐 안에 있던 정령들은 이미 기절했는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 샤를로테. 동생이 보고 싶어서 왔니?”
“동생도 보고! 엄마도 보러 왓써!”
“후후, 그렇구나.”
엄마를 잊지 않는 딸의 마음이 흐뭇한지, 누워있던 황후는 시녀들의 부축을 받아 조심스레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산파에게 팔을 뻗었다. 이제 황자를 자신의 품에 달라는 듯이.
“아주 멋진 황자 전하십니다, 황후 폐하.”
“으에에엥…”
그 손길에 산파는 방긋 웃으며 품에 있던 아기를 황후에게 건넸다.
막 태어났음에도 세상이 떠나가라 울기보다는 조용하게 울음소리를 내는 황자. 혹시 몸이 안 좋은 건가 걱정이 들었지만, 의료진이나 마법사, 사제들이 잠잠한 걸 보면 이상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래, 아이들마다 성격도 다른 법이지. 누군가가 우렁차게 울면 누군가는 조용해야 균형이 맞는 법이다.
“보렴. 이 아이가 우리 샤를로테의 동생이란다.”
“우와아아…!”
아무튼 황후의 품에 안긴 황자를 보자 황태녀는 몸을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때부! 내려줘! 나 동생 만질래!”
그 말에 슬쩍 황후를 쳐다봤다. 과연 흥분 상태인 황태녀를 막 출산이 끝난 황후와 황자에게 풀어줘도 되는 걸까?
“괜찮습니다, 장관. 내려주세요.”
“예, 폐하.”
괜찮다고 하니 침대 위로 조심스레 내려두었다.
그러자 빠른 속도로 황자의 곁으로 기어가는 황태녀. 기껏 가져왔던 반딧불이 비닐은 내팽개친 지 오래였다.
‘가엽게도.’
기껏 해방됐지만 움직이지 않는 정령들에게 소소한 유감을 표했다. 저택에 돌아가면 푹 쉬렴.
“까롤루쑤! 내 동생!”
‘카롤루스?’
그 와중에 황태녀의 입에서는 낯선 이름이 튀어나왔다. 자기 동생이라고 하는 걸 보면 이미 황자의 이름을 정해둔 건가?
“이 아이의 이름입니다. 남자아이로 태어나면 카롤루스로 짓기로 했죠.”
내가 멍하니 황자를 바라보자 황후는 내 생각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둘째가 황자일지 황녀일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던가. 아이의 성별을 두고 고민한 주제에 정작 이름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카롤루스 전하라. 용맹하고 강인하게 자랄 것 같은 이름이군요.”
“그렇지요? 황태녀가 직접 정한 이름이기도 합니다.”
“전하가요?”
“웅! 내가 골랏써!”
카롤루스의 손가락을 콕콕 건드리던 황태녀는 내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만 황태녀 혼자 지은 이름은 아닐 거다. 아마 황제나 황후가 여러 후보를 제시하고, 그중 하나를 황태녀가 고른 정도겠지.
허나 객관식이어도 정한 건 정한 거다. 동생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황태녀가 자기 동생 이름을 직접 정한 것이다. 그 일은 평생 잊지 못할 좋은 추억으로 남겠지.
‘괜찮네.’
이미 태어난 남매가 새로 태어나는 동생의 이름을 정하는 것. 확실히 아이들에게 좋은 이벤트가 될 것 같다.
좋아. 하양이랑 북쪽이까지 태어나면 그 후로는 아이들에게 이름을 맡기자. 괜찮은 후보를 몇 개 고르고, 가장 많은 선택을 받는 이름을 붙이는 거야.
그러면 남매들 사이의 정도 더 끈끈해질 거라 믿는다.
1황자 카롤루스 리브노만의 탄생 소식은 순식간에 제국 각지로 퍼졌다.
[ 에넨의 가호와 대제의 보우하심에 고귀하신 황자께서 태어나셨나니, 리브노만을 섬기는 뭇 신료들은 마땅히 리브노만의 적통이 이 세상에 임하셨음에 기뻐하라. ]궁내성에서 미친 듯이 단체 문자를 돌렸으니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지만.
“건강하게 태어나서 다행이지. 머리로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스스로를 다독여도, 마음이 이성과 함께 하지를 못하더군.”
“이해합니다. 그게 아비의 마음이지요.”
그렇게 통신구로 날아온 궁내성의 단체 문자를 보던 중, 전승공의 말에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동의를 표했다.
비록 내가 전승공처럼 자식의 출산을 겪은 건 아니지만, 자식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건 모든 아비의 공통적 본능이다. 게다가 자식의 출산은 아니지만 부인의 출산은 여러 번 겪었으니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다행히 참모들도 칼 군처럼 이해해 주더군. 밤이 되도록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가, 황자 전하께서 태어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 덕분에 참모들도 뒤늦게 퇴근했지.”
“오히려 참모들도 영광으로 생각할 겁니다. 누구보다 먼저 황자 전하의 탄생을 듣지 않았습니까?”
“그렇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어.”
작게 웃음을 터뜨린 전승공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누구보다 먼저 접한 건 칼 군이지만 말일세.”
“하하, 죄송합니다. 황태녀 전하께서 같이 황궁으로 가자고 부탁하셔서 그만…”
“그래서 더 아쉽다네. 내가 황태녀 전하를 모시고 있었다면 칼 군이 아닌 내가 황자 전하를 먼저 뵈었을 텐데.”
약간의 진심이 섞인 농담에 그저 웃음만 흘렸다.
가족인 전승공보다 먼저 황자를 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먼저 본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남을 수밖에 없다. 나였어도 내 손주의 탄생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다면 눈물이 절로 나올 테니까.
“뭐, 그래도 칼 군은 황태녀 전하의 대부니 가족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가족에게 순서를 양보하는 건 이해할 수 있네.”
“그리 말씀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께서도 같은 생각이시니 의례적인 말이라 생각하지는 말게.”
잘 알고 있기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황제와 황후는 내가 황태녀의 대부가 된 날부터 가족에 준하는 대우를 해줬다. 그런 상황에서 둘째의 탄생 기념 연회를 화려하게 하자는 주장을 했으니, 마음속 친밀감이 급격히 상승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유감스럽게도 가족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거지, 신하라는 족쇄가 사라진 건 아니기에 부려먹을 일이 생기면 망설임 없이 부려 먹겠지만.
“아, 그러고 보니 이번 연회 때는 아들 녀석도 올 것 같더군.”
“공자께서 말입니까?”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한 전승공의 말에 절로 반문이 나왔다.전승공의 아들이라면 하블렘 공작령을 관리하는 에발트 공자밖에 없다.
그리고 에발트 공자는 차기 하블렘 공작이자, 황후의 오라비이며, 황태녀의 외삼촌인 어마어마한 인물. 동시에 부친인 전승공을 대신하여 공작령과 북부 귀족 파벌을 관리하느라 제도에서는 얼굴조차 보기 힘든 환상 속 존재.
그런 에발트 공자가 제도에 방문한다고 한다. 아무리 바쁜 공자여도 조카의 탄생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모양이다.
“이럴 때가 아니면 가족들이 모이겠나.”
얼굴에 흡족함이 가득한 전승공을 보니 전승공도 아들의 상경이 반가운 것 같았다.
하긴. 전승공도 공자도 자리를 비우기 힘든 입장이기는 하지. 정말 이럴 때가 아니면 볼 일도 없겠어.
‘태어나자마자 효도했네.’
출생과 동시에 외가를 화목하게 만든 황자라니.실로 효자가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