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8)
입학식을 위해 미리 아카데미에 머물던 때였다. 매일매일 통신구를 통해 안부 인사를 하던 아버지가 이상하게 연락을 받지 않으셨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짧은 문자를 남기셨다.
의아하긴 했지만 그래도 바쁜 일이 생기셨구나, 정도의 마음으로 넘어갔다. 아버지는 백작가의 주인이시고, 여러 상행을 책임지는 분이시니까. 딸이 아카데미에 입학하면 당분간 보지 못한다고 매일 연락을 받아주셨지만 갑자기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으니까.
아버지는 내가 생각한 것처럼 바쁘신 것은 맞았다. 문제는 그 방향이 매우 잘못된 방향의 바쁨이었다.
– 이리나. 아무 걱정하지 마. 잠시 착오가 있는 거니까.
“오, 오빠. 괜찮은 거 맞지? 아버지, 아버지는?
– 괜찮으실 거야.
아버지가 문자조차 남기지 않기 시작하던 때, 창백하고 초췌한 안색의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때 오빠에게서 들었던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우리 가문이 감찰부의 타깃이 되었다.
감찰부.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불충한 귀족들을 벌하고, 혹은 독자적인 판단으로 선조치 후보고를 해도 무방한 권한을 가진 사냥개. 그리고 감찰부에게 물린 가문의 최후는 백에 아흔아홉은 멸문이었다.
말도 안 돼. 우리가 왜? 아버지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직하신 분이다. 언제나 상냥하시고 평민들에게도 따뜻한 분이신데. 돈을 많이 좋아하시기는 하지만, 그게 감찰부가 나설 죄는 아니잖아.
– 분명, 분명 착오가 있는 걸 거야. 그러니 동요하지 말고 잘 지내야 한다. 알겠지?
“오빠…”
– 입학식 때는 꼭 가려고 했는데 힘들겠다. 미안해.
씁쓸히 웃은 오빠는 그 말을 끝으로 연락을 끊었다. 멍하니 서있던 나는 통신구를 끌어안고 한참이나 울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재앙,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 가족들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공포. 입학의 두근거림으로 지내던 나는 순식간에 지옥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들리는 소식은 최악이었다. 어머니는 결국 혼절하시고 침대에 누워 계신다고 들었다. 아직 어린 동생들은 끌려간 아버지와 쓰러진 어머니를 찾으며 매일 같이 운다고 했다. 차라리 나도 저택에 있었다면, 가족들하고 같이 있었다면.
그리고 기적이 찾아왔다.
– 이리나, 괜찮니?
“아, 아버지?”
죽은 듯이 지내던 도중 아버지의 연락이 왔다. 그 사이에 10년은 더 늙으신 것 같은 모습에 눈물이 터져 나왔지만, 그래도 마음 속에서는 기쁨도 차올랐다. 아버지가 무사하시다, 가문이 무사하다.
– 잘 끝났단다. 걱정하지 말고 학업에 열중하렴.”
“흐윽… 네, 네.. 그, 그럴게요.”
몇 번이나 히끅거리며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
뒤이어 아버지가 말씀해주신 전말을 들으니, 이번 감찰은 감찰부의 실수로 일어난 일이었다. 현장을 지휘한 감찰부의 과장이 직접 저택을 방문하여 사과와 배상을 했고, 이례적으로 감찰부장이 감찰부의 실수를 인정하는 사과 서신을 보내며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감찰부의 실수로 재앙이 터졌지만, 억울하더라도 원망할 수는 없었다. 자연재해는 그저 납작 엎드려 아무 일 없이 끝나기만을 기도해야 하니까. 제국에서 감찰부는 그런 존재였다. 감찰부의 감찰에 가문의 누구도 죽지 않고, 오히려 배상도 받았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입학 초기, 가문의 일로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좋은 친구를 만나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안녕! 이리나 요룬, 맞지?”
처음에는 마냥 해맑은 그 아이가 괜히 미웠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쟤는 뭐가 그리 좋다고 웃는 건지 화가 날 정도로.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점심 같이 먹지 않을래?”
“됐어.”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밝은 분홍빛의 아이. 처음에는 차갑게 밀어냈지만 이상하게 그 아이와 있다 보면 마음이 편해졌다.
“이리나, 이거 어때? 예쁘지? 네 머리색하고 닮아서 가져왔어!”
“응, 예쁘네. 고마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그 아이와 가장 친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아마 그때쯤에 가문의 결백이 증명되어 마음이 놓인 것도 영향이 있었겠지.
그렇게 분홍빛 아이, 루이제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덕분에 혼자라면 사귀지 못했을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감찰부장의 동생도 알게 되었지만, 동생인 에리히는 죄가 없으니까. 에리히도 묘하게 자기 형에 대한 얘기는 꺼려하는 것 같아 애써 넘어갔다.
갑자기 감찰부장이 아카데미에 파견을 온 끔찍한 상황과 마주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만날 일이 없어 안심하고 지낼 수 있었다. 그렇게 예전의 재앙은 잊고 즐겁게 지내다 보니 수학여행 날짜가 다가왔다.
“시간 빨리 가는 것 같아.”
“맞아. 박람회가 엊그제 같은데.”
작년까지만 해도 아카데미에 수학여행이라는 일정은 없었다. 그렇기에 방학을 제외하면 아카데미에서만 지낼 각오를 하며 입학했고, 딱히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어지간한 시설은 아카데미 내부에 존재하니까. 오히려 외부로 나가는 게 번거로울 정도? 그래서 입학한 해부터 수학여행을 가게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귀찮은 일정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이리나도 바다는 처음이지?”
“응, 나도 가본 적 없어.”
하지만 수학여행 장소가 보야르 공작령이라고 한다. 제국을 넘어 대륙 대표적인 휴양지로 언급되는 곳이지만 정작 갈 기회는 없었다. 거리도 상당히 멀고, 그렇다고 텔레포트 마법사를 가문의 업무가 아닌 여행을 위해 고용할 수도 없으니까.
그런데 아카데미에서 보내준다고? 나는 짐만 챙기면 되고? 귀찮은 마음은 사라지고 두근거림이 가득했다. 주말 동안 루이제와 상점을 돌아다니며 수영복을 고르는 것도 얼마나 즐겁던지.
하루하루 수학여행 날이 되는 걸 기다렸다. 농담으로 학생회인 친구에게 내일이라도 당장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자 울 것 같은 눈으로 쳐다봤다. 미안해, 그래도 기대되는 건 사실인 걸.
“이리나! 에리히도 같은 마차야!”
심지어 마차 배정을 위한 무작위 인원 선정도 좋은 결과가 나왔다. 무작위라고 해도 같은 반 내에서 이루어졌지만 아무튼 친한 사람끼리 뭉쳤으니까. 좋은 여행 친구, 좋은 장소. 이번 여행은 정말 즐거울 것 같다.
“어? 오라버니?”
그 즐거운 여행은 수학여행 당일, 마차에 올라간 루이제의 말을 기점으로 급변했지만.
‘오라버니?’
식은땀이 흘렀다. 아마 거울을 보면 눈동자도 요동치고 있을 것 같다. 아카데미에서 루이제가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사람은 하나,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딱 하나다.
‘왜, 왜…?’
에리히의 형인 것은 안다. 루이제와 친한 편인 것도 안다. 그래도 학생이 아니라 다른 마차에 탈 줄 알았는데, 왜 하필? 처음 만난 이후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내가 피해 다니면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황급히 루이제의 등 뒤로 숨어 몸을 웅크렸다. 의미 없는 행동임은 알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리의 힘이 풀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비웃는 것처럼 최대한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오랜만이네.”
‘봤다.’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터져 나오기 직전, 직접 지목하여 인사했으니 이 이상 피하는 건 무례에 속한다. 새어 나올 것 같은 울음을 꾹 참으며 입을 열었지만 몸이 떨리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옆에서는 루이제가 의문과 걱정을 담아 나를 쳐다봤다. 루이제에게는 감찰부장과 엮인 사건을 말하지 않았으니까. 루이제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았고, 혹여나 루이제와 친한 감찰부장이 괜히 내 고자질에 자극 받을 것 같았다.
조심스레 고개를 올리니 에리히의 맞은편에 앉은 흑발의 청년, 감찰부장이 보였다. 팔짱을 끼고 등을 기댄 것이 편하게 놀러온 모습 같지만 칠흑 같은 눈이 나를 내려다보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서있지 말고 들어와. 다리 아프겠다.”
“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서둘러 루이제를 따라 마차에 올라서자 새로운 난관과 마주했다. 에리히와 감찰부장은 마주 보며 앉은 상황. 빈 자리는 에리히의 옆이나 감찰부장의 옆이다.
‘어디에… 앉지?’
루이제, 나 어떡해? 내가 에리히 옆에 앉기에는 에리히한테 미안하단 말이야. 그렇다고 반대쪽에 앉기에는 너무 무서워.
그렇게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에 우물쭈물하고 있자 감찰부장이 나에게 손짓했다.
“어서 앉아.”
“네…”
어머니, 아버지… 너무 보고 싶어요… 저, 방학 때 두 분을 뵐 수 있는 거 맞겠죠?
***
에리히와 루이제를 붙인다는 걸 전제로 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배치가 최선이었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만 최선이지 이리나 입장에서는 최악일 터. 지금도 옆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름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결정한 배치다.
‘돌아버리겠네.’
너무 미안하지만 에리히 저놈은 이럴 때라도 루이제하고 좀 붙여야 하는데, 루이제하고 마주 보게 하면 이리나는 나하고 마주 보지 않냐. 차라리 얼굴이 보이지 않는 옆자리가 낫지, 얼굴을 보면서 장시간 이동을 하라고? 이리나가 도중에 기절해도 할 말이 없다.
사실 저번 사건 자체는 원만하게 해결했다. 피해도 확실하게 메꿔줬고, ‘반역에 준하는 수준만 아니면 크게 해먹어도 한 번은 눈 감아주겠다.’는 사과 서신도 보냈다. 하지만 그런 귀족적인 기브앤테이크와 꽃다운 나이인 영애의 놀란 가슴은 별개다.
“이리나, 정말 괜찮은 거 맞지?”
에리히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루이제가 슬쩍 이리나를 보더니 걱정스레 물었다. 루이제가 걱정하는 문제는 없을 거다. 지금 이리나는 육체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피폐한 거라.
“으응, 괜찮다니까. 나 튼튼한 거 루이제도 알잖아?”
애써 밝게 웃는 17세 아가씨의 모습이 어찌나 짠한지. 대체 어느 사악한 녀석이 저 가련한 아가씨를 이리 겁먹게 했는지 통탄스러울 정도다. 시발, 3과장 개새끼야. 머리 벗겨지면서 양심이나 염치도 벗겨졌냐고.
착잡한 심정에 이리나를 바라보자 이리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더니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모습. 하필 에리히나 루이제처럼 푸른 눈으로 저러니 더 죄책감이 솟구친다.
“난 잠깐 눈 좀 붙일게. 도시 들르면 깨우고.”
“알았어 형.”
결국 수면으로 긴급 탈출했다. 적어도 옆자리의 괴물이 깨어있는 것보다는 잠들어 있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테니.
그렇게 마차는 여행에 들뜬 영애 하나, 짝사랑 상대의 옆자리라 마냥 좋은 머저리 하나, 각각 숨 막히는 어색함과 공포에 휩싸인 둘을 태우고 보야르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