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80)
로판 속 공무원 680화(681/945)
카롤루스 리브노만. 현 황제가 즉위한 이후로 처음 태어난 황족이자 황제의 첫 아들.
에이만카 17세의 치세 때에는 황실의 1황자라 불릴 것이며, 에이만카 18세가 즉위하면 아인테르처럼 후작위를 받아 새로운 방계의 시조가 될 인물.
심지어 황실의 피뿐만 아니라 제국 다섯 공작가 중 하나인 뉘렌 공작가의 피가 흐르는 고귀한 인물이 태어났으니, 그 탄생 기념 연회는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막 태어난 아이를 위한 연회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게.
‘미리 보는 신년하례식인가.’
연회에 참석한 손님들을 훑어보다가 픽 웃음을 흘렸다.
다섯 공작 전원은 물론, 열셋이나 되는 후작들도 전부 참석했다. 거기다 황궁 변두리에서 은거 중인 상황, 제도보다는 바란디가 후작령에서 더 오래 지내는 아인테르까지 참석했으니, 사실상 제국의 고위직은 전부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솔직히 고위직이 아닌 중견급, 말단급으로 가도 전원 참석에 가까운 출석률을 자랑하겠지만.
“까롤루쑤 보려고 사람들이 잔뜩 왓써!”
아무튼 내 품에 안겨 함께 연회장을 둘러보던 황태녀는 뿌듯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귀여운 모습이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황태녀의 말처럼 황자를 위해 모인 것인데, 정작 황태녀가 대신 우쭐해하고 있다. 만약 황태녀가 지금보다 10살 정도가 더 많았다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동생을 질투하고 견제했을까?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몇 번을 생각해도 황태녀가 동생을 질투하는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황태녀는 온순하고 선량한 성품이니까.
“때부!”
“예, 전하.”
“쩌어-기로 가져! 까롤루쑤 보러 와서 고맙다구 인사할래!”
그 말에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황태녀와 황자의 나이 차이는 고작 3살이다. 황태녀도 아직 꼬꼬마라는 말이 어울리는 나이면서 동생을 위해 감사 인사라니. 이 정도면 기특한 수준을 넘어 신기하고 경이로운 수준이다.
“안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되지요.”
“와아!”
내 웃음소리에 시무룩해졌던 황태녀는 다시 빵끗 미소를 지었다.
일단 공작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자. 마침 3대가 덕을 쌓아야 제도에서 볼 수 있다는 에발트 공자도 저 자리에 있으니, 한 번에 인사시키면 될 것 같다.
다섯 공작 앞에 강림한 황태녀는 내 품에서 내려오더니, 위풍당당한 자세로 공작들을 올려다봤다.
“어서와! 다들 와져서 고마워!”
활기찬 인사에 전승공도 마주 미소를 지으며 살며시 무릎을 꿇었다. 전승공이 쪼그만 황태녀와 눈높이를 맞추려면 허리 조금 숙이는 걸로는 부족하니까.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전하. 이리 반겨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냐! 외할부지도 까롤루쑤 보러 온거잔아! 내가 더 고마워!”
“하하, 그렇습니까? 영광입니다.”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황태녀를 보던 전승공이 일어나자, 이번에는 전승공의 뒤에 있던 은발 남성이 황태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자다가 끌려온 건지 퀭한 눈빛에 다소 갈라진 목소리. 그러나 황태녀는 그런 반-좀비마저 반가운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웅! 외삼촌도 잘 지냇써?”
그 좀비가 자신의 가족이었으니 황태녀 입장에서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
“전하께서 염려해 주신 덕에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외삼촌─ 에발트 공자는 빠르게 주변을 살피더니, 품속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냈다.
익숙한 상자인지라 빠르게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저 크기, 저 포장 방식, 저 브랜드. 내가 황태녀에게 몰래 사다 주던 초콜릿 상자와 흡사하다.
“이 외삼촌의 작은 선물입니다. 황후께는 비밀로 하시고 몰래 드십시오.”
“와! 외삼촌 채고! 잘 먹을깨!”
상자를 품에 안고 히히 웃음을 흘리는 황태녀를 향해 에발트 공자도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분명 외삼촌과 조카 사이의 훈훈한 광경이지만, 어째 다 죽어가는 시체가 억지로 웃는 척을 하는 것 같아 애잔하다. 도대체 하블렘 공작령에서 무슨 일을 겪고 있는 걸까.
“이거! 까롤루쑤랑 같이 먹을께!”
“전하. 아직 카롤루스 전하께서는 초콜릿을 먹지 못합니다. 그리고 방금 소신이 황후께는 비밀로 하자고…”
“아! 엄마!”
“전하…?”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황태녀는 마침 공작들에게 다가오던 황후를 발견하고 달려갔다.
에발트 공자가 그 뒷모습을 처량하게 바라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조카를 위한 선물이라고 하면 황후 폐하께서도 너그러이 넘어가실 겁니다.”
“그러기를 바라야겠군.”
그 안타까운 모습에 슬쩍 위로를 건네자, 에발트 공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장관. 이왕 제도로 오는 김에 장관을 위한 선물도 하나 준비했다네.”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추가로 품 속을 뒤적거린 에발트 공자는 푸른색 만년필을 하나 꺼냈다.
조금 감동했다.빈손으로 와도 충분한 좀비가 선물까지 가져오다니.
“장관 덕에 전하와 아버지, 황후 폐하께서 평온히 지내시는 것 같더군.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하기에는 미미하나, 내 마음이니 받아주게.”
“제가 은퇴하는 날까지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그 정도로 튼튼한 물건은 아닌데.”
마음 아픈 농담을 건넨 에발트 공자는 내 어깨를 토닥이더니, 점점 가까워지는 황후의 시선을 피해 전승공의 뒤로 숨었다.
나를 아들처럼 생각하는 전승공, 가족처럼 여기는 황후처럼 에발트 공자도 나를 동생 비스름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 정작 서로 바빠서 보기는커녕 연락도 자주 하지 못하지만, 아주 간혹 볼 때마다 이렇게 챙겨주니 고마울 수밖에.
“황후 폐하. 이리도 기쁜 날에 폐하를 뵙게 되니, 실로 어둠 속에서 달빛을 찾은 것 같이 감격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렇기에 에발트 공자에게 향하던 황후의 어그로를 내가 대신 끌었다.
좋은 선물을 받았으니 그만한 성의는 돌려줘야지. 게다가 하블렘 공작령에서 제도까지 온 사람에게 여동생의 갈굼을 선물로 주는 건 가혹한 일이잖아.
“후후, 부끄러운 말이군요. 부인이 있는 곳에서 그런 말을 해도 괜찮은 겁니까?”
“황후 폐하께서는 모든 신민의 어머니. 자식이 어머니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트릭시가 보는 앞에서 달빛 같은 말을 해도 괜찮냐는 말에 국모 드립을 날리자 황후의 미소가 짙어졌다.
다행히 어그로는 성공적으로 끈 것 같다.
“그런데 장관. 그 만년필은…”
“에발트 공자께서 우정의 증표로 준 선물입니다. 공자께서는 자신의 심미안이 황후 폐하보다 못하여 부족한 선물이라 하셨으나, 우정을 담은 선물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자 뒤통수에 오묘한 시선이 꽂혔다. 아마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에발트 공자의 항의 시선이겠지.
하지만 참아라. 이게 다 황후의 구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니까.
“오라버니는 예전부터 물건을 고르는 능력이 다소 떨어졌지요. 허나 장관의 말처럼 마음만큼은 언제나 따뜻했습니다.”
실제로 은근히 에발트 공자를 흘겨보던 황후는 아까보다 따스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에발트 공자와 황태녀의 초콜릿 밀거래는 ‘선의로 한 행동’이 되었다.
***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진 연회장을 보며 홀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게 옳은 선택이었다. 이것이 올바른 길이었다. 내 아이를 위해, 카롤루스를 위해 이처럼 성대한 연회를 준비하는 것이 옳았다.
생각해 보면 황태녀의 권위는, 황실의 굳건한 후계 구도는 고작 연회 한 번에 좌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와 상황 폐하께서 정통성에 너무도 예민했기에 과도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소신의 모든 것을 걸고 황태녀 전하를 보필하겠습니다. 소신의 가문, 소신과 엮인 가문들이 힘을 동원하여 전하의 치세를 보필하겠습니다.”
만약 그때, 장관이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평생의 한이 되었을 결정을 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장관에게는 큰 은혜를 입었다. 마음 같아서는 영지를 몇 개 더 안겨주고 싶을 정도로.
“아빠!”
“황태녀?”
허나 이미 레온 왕국에서 대량의 영지를 확보한 장관에게 새로운 영지를 주는 것은 인재 부족 현상만 야기하는 꼴. 영지보다 더 괜찮은 선물이 없나 고민하는 사이, 황태녀가 쪼르르 다가왔다.
“나! 나 이제 까롤루쑤 들래!”
그 말에 황태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막 태어난 황자를 작디작은 황태녀에게 맡기는 건 불안하고 위험한 일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연회는 황자의 탄생을 축하함과 동시에, 황태녀가 황자를 각별히 여기는 것을 보여주는 자리기도 하다. 아직 어린 황태녀가 자신보다 어린 황자를 품에 안고 아장아장 걷는 것만큼 효과적인 퍼포먼스는 없다.
그리고 아비로서 누나가 동생의 탄생을 격렬히 축하해 주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다.
“그래. 이제 준비해야지.”
그 말과 동시에 내 뒤에 있던 황실 마법사들이 달려와 황태녀에게 온갖 마법을 걸어주었다.
일시적으로 근력과 체력을 강화시키는 마법. 순발력과 균형 감각을 높여주는 마법. 설령 넘어지더라도 황태녀와 황자가 지면에 닿지 않게 방어막을 두르는 마법 등.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전부 취하였다. 황태녀가 황자를 들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자, 가서 카롤루스를 손님들에게 보여주자꾸나.”
“응! 죠아!”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황태녀는 황자를 안고 있던 시녀장에게 다가가 팔을 뻗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
사람들이 많든 말든 곤히 자고 있는 황자. 그런 황자를 본인 기준으로 최대한 높이 들어 올리며 과시하는 황태녀.그리고 새롭게 탄생한 리브노만의 적통을 향해 일제히 고개를 숙이는 귀족들.
실로 장관이다. 황제와 황후가 보는 앞에서, 상황과 황제(皇弟)가 함께하는 자리에서, 무려 차기 황제인 황태녀가 들어 올리는 황자. 이 얼마나 관심을 받기 좋은 상황인가.
‘너도 착하게만 자라줘.’
저 아이에게 많은 걸 바라지는 않는다. 부디 모두의 축복 속에서 태어난 황자가 리브노만의 복덩이가 되기를. 현명함과 용맹함보다는 선량함을 가진 채 자라기를.
도르고스 같은 재앙은 한 번으로 족하니까.
“리브노만 만세! 크펠로펜 만세!”
“황제 폐하 만세! 황태녀 전하 만세! 카롤루스 황자 전하 만세!”
이윽고 귀족들의 만세 소리가 연회장을 뒤흔들었다.
다행히 미리 마법적 조치를 취한 덕분에, 황자가 잠에서 깨어나 우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