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83)
로판 속 공무원 683화(684/945)
황궁에서 황자의 곁을 지키고 있는 황태녀.
지금까지 겪은 황태녀의 활발함을 고려할 때, 동생을 향한 놀라운 애정이 없었다면 진작 황궁이 뒤엎어졌을 거다. 황태녀는 배고픈 건 참아도 심심한 것은 절대 못 참는 성격이니까.
물론 황태녀 또래의 아이들은 밥보다 노는 걸 더 좋아하지만, 황태녀는 유독 심했다. 아무래도 뉘렌 공작가에 흐르는 무인의 피를 짙게 물려받은 모양이지. 정작 전승공도, 에발트 공자도, 황후도 진중한 편인데 말이야.
“때부! 뻬디!”
그렇기에 황자 곁에 붙어있던 황태녀는 우리가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친히 문을 열어줬다. 황자의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놀 수 있는 방법이 생겼는데 얼마나 기쁘겠나.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안타까웠다. 혼자서 얼마나 심심했다면 이리 격렬하게 반겨줄까. 그것도 시녀장이 있음에도 직접 문을 열 만큼.
“아! 띠띠도 왓써!”
– 멍!
아무튼 빠르게 문을 연 황태녀는 페디를 태우고 있던 티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성수들은 아이들과 놀아줘야 하니 무리지만, 티티 하나 정도는 충분히 빼올 수 있었다. 게다가 티티는 우리 아이들 사이에서도 ‘페디 전용 탈것’ 취급을 받고 있으니까.
“누-나! 오랜만!”
그리고 황태녀의 진심 쓰다듬기가 티티를 덮치는 사이, 티티의 등 위에서 폴짝 내려온 페디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웅! 뻬디도 오랜만!”
활기찬 남매 상봉에 픽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다면 페디만큼은 진작에 데려올 걸 그랬다.
페디와 티티가 투입되기는 했지만 황태녀의 행동반경은 방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혼자 방 안에 있는 것과 놀이 상대와 함께 있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 둘이서 방을 오도도 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지, 황태녀의 얼굴은 해맑기 그지없었다.
– 끼이잉…
다만 기껏 황궁까지 온 티티는 두 아이의 놀이에 끼지 못하고 문가에 처량히 엎드려있었다.
애석하게도 티티가 격렬하게 뛰어놀면 필연적으로 털이 날리게 된다. 막 태어난 황자에게 개털은 위험할 수도 있잖아. 황태녀를 위해 데려오기는 했지만, 황자의 건강을 생각하면 조심해야지.
“돌아가면 같이 산책이라도 하자.”
– 왈!
내 위로에 축 늘어져 있던 티티의 꼬리가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이해해 줘서 다행이다. 리트리버가 아이들이 노는 공간에서 혼자 엎드려 있는 것도 힘들 텐데, 자기 욕구보다 주인의 명을 우선시해서 고마울 따름이지.
“대부님.”
“아, 시녀장.”
기특한 충견의 머리를 토닥이고 있자 침묵을 지키고 있던 시녀장이 다가왔다.
“오신 김에 황자 전하를 보시지 않겠습니까? 아직 주무시고 계시지만, 대부님께서 곁에 있으면 전하께서도 마음 편히 잘 수 있을 겁니다.”
“그거 영광인 일이군요. 마땅히 그래야지요.”
시녀장의 제안에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침대로 다가갔다.
말로는 마음 편한 숙면 같은 미묘한 명분을 들었지만, 실제로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침대에 충돌하지 않게 지켜달라는 의미. 그런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
게다가 아이들이 일으키는 소란 때문에 황자가 깨기라도 하면 바로 달래야 한다. 다행히 일곱 아이의 아빠라는 타이틀은 폼이 아닌지라,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하나 정도는 금방 달랠 수 있어.
‘잘 자네.’
그렇게 침대 옆으로 이동하자 눈을 꼭 감은 채 자고 있는 황자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황자의 탄생 기념 연회 이후로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다. 그사이에 머리카락이 솜털처럼 난 것 같기도 하고.
‘얘는 금발이구나.’
아주 미약하게 금색을 띠는 솜털. 황후를 닮아 은발인 황태녀와 달리 황제를 닮은 모양이다.
부디 닮은 건 머리카락뿐이기를. 성격은 제발 닮지 말아 줘.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
황위를 계승하지 못하는 황족은 굳이 용맹하거나 현명할 필요가 없다. 선량한 성품을 지닌 채 황제와 우애롭게 지내고, 건강한 체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가문을 번성시키는 것이 제일이다.
살아서는 황제의 친밀한 동생이며, 죽어서는 방계의 시조. 이 얼마나 바람직한 황족인가. 리브노만 황가의 구성원이 극히 적다는 걸 생각하면 반드시 필요한 자세다.
“때부!”
“예, 전하.”
“까롤루쑤 귀엽찌!?”
그 와중에 페디와 함께 방바닥을 뒹굴거리던 황태녀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기습적으로 동생 자랑을 했다.
덕분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쩐지 놀면서도 슬쩍슬쩍 나를 쳐다보더라. 언제 동생에게 다가가나 기다리고 있던 거구나.
“물론입니다. 역시 전하의 동생답게 귀엽고 멋진 분이군요.”
“그치!?”
황태녀가 원하는 답을 돌려주자 황태녀의 미소가 더욱 밝아졌다.
동생을 향한 저 애정이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으면 좋겠다. 황제에게 믿을만한 황제(皇弟)가 있는 건 축복이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물론 황자도 누나인 황태녀를 믿고 따라야 성립되는 일이지만, 황후의 교육을 받고 자라면 정상적인 아이로 자랄 거라 믿는다. 지금 황후는 전대 황후와 비교하는 것이 실례인 인물이니.
“압빠. 나두 까롤루쑤 볼래.”
“웅! 뻬디도 봐! 엄청 귀여어!”
황태녀의 동생 자랑에 페디의 관심도 황자에게 향했다.
그래, 페디도 황자와 친하게 지내면 나쁠 건 없지. 애초에 제국백 가문의 차기 가주와 황족의 사이가 안 좋으면 그건 그거대로 이상한 일이지만.
“자고 있으니까 만지면 안 된다?”
“웅!”
페디를 조심스레 들어 올리며 침대에 누워있는 황자를 보여주자, 페디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황자를 바라봤다.
눈이 반짝이는 걸 보니 페디의 몸속에 흐르는 장남의 피가 울부짖는 모양. 이미 페디의 머리에는 황자조차 자신의 동생으로 각인된 것 같다.
‘동생이 둘이나 생겼네.’
황궁에 있는 황자와 저택에 있는 페렌츠.
졸지에 페디는 한 달 사이에 두 명의 동생을 얻고 말았다.
황태녀와 놀아준 다음날. 통신구가 찬란한 빛을 내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재무성 장관을 시작으로 장관 비서를 거쳐 집행부장과 집행차장까지. 감찰부 시절부터 에리를 알고 지내던 공무원들은 전부 연락을 보냈다.
– 1과장이 엄마가 됐다면서요?
“그렇게 됐다.”
그리고 릴레이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에리를 1과장 자리에서 몰아낸 1등 공신인 정보차장.
자기가 몰아내놓고 여전히 1과장이라 부르는 것도 우습지만, 그만큼 제정신이 아니라 생각하면 될 듯하다.
– 1과장이 엄마라니… 이런 날이 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실제로 정보차장은 실성한 사람처럼 헛웃음만 흘려댔으니까.
–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성서를 읽고 있습니다. 혹시 세계 멸망에 관한 문구가 있나 싶어서요.
“이 새끼가.”
뒤이은 말에 본능적으로 울컥하고 말았다.
남의 부인이 아이를 낳은 걸 왜 세계 멸망의 징조라고 생각하는 건데. 너 이거 에리 혐오야.
– 아니, 솔직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비슷한 생각이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격렬하게 요동치는 감정과 달리 이성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분하게도 맞는 말이기는 하다. 나도 에리가 제도 길바닥에서 펑펑 울기 전까지는 이런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어.
– 그래도 뭐, 축하드립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큰 계기를 겪어서 변하는 경우도 있죠. 1과장에게는 그 계기가 결혼이었던 거고요.
숨 막히는 딜을 날리던 정보차장은 뒤늦게 훈훈한 척 덕담을 건넸다.
조금 열받았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과정이 이상했어도 결과는 덕담이니까 화를 내기도 민망하지.
게다가 정보차장은 감찰부 시절부터 에리와 업무적으로 연관이 깊었다. 1과와 2과는 정보를 맡은 부서였으니, 내가 모르는 에리의 기행을 가까이서 봤을 가능성이 높다.
– 그런데 인사는 언제 하러 가는 게 좋습니까? 나름 직장 동료의 출산인데 얼굴은 보고 축하해야죠.
“넉넉하게 보름 정도 후에 와. 너도 당장 시간 내기는 어렵잖아.”
– 그건 그렇죠.
내 제안에 차장도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부서의 차장이 바로바로 시간을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어차피 늦게 올 거라면 넉넉하게 오라고 하는 것이 서로에게 편할 터.
“올 거면 따로따로 오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오고. 저녁이라도 같이 먹게.”
– 상사랑 겸상하는 건 좀 그런데요.
“그럼 에리랑 일대일로 겸상하든가.”
– 보름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연락이 일방적으로 끊겼다.
건방진 놈. 감히 차장 나부랭이가 장관보다 먼저 끊어버리네.
‘넌 장관 맞은편이다.’
장관도 에리의 상관이자 페디의 대부로서 저택에 올 예정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차장이 오는 시간에 맞춰서 와달라고 한 다음에, 서로 마주 본 자리에 앉혀야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거야.
‘좋네.’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이제 차장은 재무성이 아닌 감찰성 소속이기는 하지만, 장관은 차장의 부인을 딸처럼 여기는 이모부지 않나. 오히려 상사일 때보다 더 무서운 입지다.
***
페렌츠를 품에 안은 채 계속 웃음을 흘렸다.
따뜻하다. 마치 한 여름의 햇빛을 받는 것처럼 포근한 기분이다. 그리고 이 아이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 몸 안에 있었다는 게, 몸 밖으로 나온 아이가 이렇게 크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아니, 굳이 이런 비유를 할 필요도 없이 마냥 기쁘기만 하다.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나오고, 안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아.
– 좋냐?
“엄청!”
아리아 선배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좋아. 장관님이랑 결혼했을 때랑 1, 2위를 다툴 수 있는 행복이야.
– 열심히 길러. 우리 카롤루스의 친구가 될 아이니까. 나이도 같으니 아카데미에 입학하면 동급생으로 지내겠네.
작게 코웃음을 친 선배는 내 품에 안긴 페렌츠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너무하다. 이 후배한테도 그 부드러움의 반 정도만 할애해 주지.
“나보다 선배가 더 잘 길러야지! 아카데미에서는 나보다 선배가─”
– 뭐?
“…선배가 더 성적이 좋았으니~ 카롤루스도 선배를 닮아야지~”
따가운 눈초리에 굴복하고 말았다.
억울하다. 나도 아카데미 재학 시절을 평범하게 보낸 건 아니지만, 솔직히 나보다 선배가 더 엄청났다고. 그 진실을 권력에 굴복해서 말하지 못하다니. 너무 억울해.
‘우리 페렌츠는 권력에 굴복하면 안 돼.’
그렇기에 속으로 다짐했다. 내 아들만큼은 이 엄마의 뒤를 잇게 할 수 없다고.
누군가에게 굴복하는 삶이 아닌 주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두고 봐.’
우리 페렌츠, 엄청 멋지게 키워서 선배랑 카롤루스를 놀라게 만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