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84)
로판 속 공무원 684화(685/945)
1황자 강림과 페렌츠 탄생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연달아 겪고 나니 어느덧 12월에 진입했다.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 새로운 해가 코앞으로 다가온 달. 하얀 눈이 그동안 고생한 인간들을 보듬듯 부드럽게 내리는 달.
“요즘 손이 떨려서 그런지 서명을 할 때마다 잉크가 번지더라.”
“저런.”
그리고 결혼이 임박한 에리히의 멘탈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달이기도 했다.
“50일은 더 남았는데 벌써 그러면 어쩌려고 그러냐.”
그런 에리히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웬일로 영지에서 보자고 하나 했더니 신세 한탄을 하려고 그런 거였네.
경사스럽게도 에리히와 제노비아의 결혼식은 1월 중순으로 예정되었다. 결혼식 장소는 호르펠트 백작인 제노비아의 처음이자 마지막 결혼식이라는 걸 고려하여 호르펠트 백작령으로 결정되었고.
덕분에 시간이 흐를수록 에리히의 눈동자는 거칠게 요동쳤다. 결혼식 시기, 장소, 규모, 하객 명단까지 전부 확정된 상태라면 막연히 ‘나 결혼한다.’ 라는 생각을 할 때와는 심정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형은 이런 걸 어떻게 여섯 번이나 버텼어?”
에리히의 말에 순간 입을 닫고 말았다.
이 새끼, 혹시 돌려 까려고 하는 말인가? 아니, 이제 와서 내 결혼식 숫자로 공격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는데? 이미 결혼식도 다 마치고 아이들도 보는 가장한테 결혼을 많이 했다는 건 극찬이잖아.
“…난 결혼식 이전부터 부부처럼 지냈잖아. 두근거리기는 했지만 긴장할 정도는 아니었지.”
그렇기에 잠시 에리히의 눈을 보다가 아무렇지 않게 답해줬다.
여전히 떨리는 동공을 보니 돌려 까려는 의도는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정신이 몰리고 몰려서 생각나는 대로 내뱉을 뿐.
“너도 결혼식만 안 올렸지 부부나 마찬가지 아니냐? 셋이 같은 저택에서 지낸다며.”
아무튼 변함없이 진동 상태인 에리히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내가 결혼식 이전부터 사실혼 관계였던 것처럼, 에리히도 약혼자들과 사실혼처럼 지내고 있다. 제도에 있는 크라시우스 가문의 저택에서 셋이 동거 중이니 그게 사실혼이 아니면 뭐가 사실혼이겠어.
“아무리 그래도 처음 하는 결혼인데 어떻게 멀쩡해? 형도 처음은 떨렸을 거 아니야.”
그 말에 잠시 기억을 되짚었다.
내 첫 결혼식. 마르와 대성당에서 진행했던 결혼식…
“그때 갑자기 축복이 내려져서 정신이 없기는 했지.”
“아.”
덤덤한 대답에 에리히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첫 결혼식의 떨림? 애석하게도 그런 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미 3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것도 있지만, 결혼식 도중에 에넨의 축복이 내려지면서 추기경 방문, 부부 시복, 사후 시성 예약까지 난리가 났었으니까. 결혼식 때 느꼈던 감정을 기억하기에는 다사다난했던 결혼식이었다.
물론 기뻤다는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으나, 에리히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겠지.
“편하게 받아들여. 혼자 긴장하면 뭐 어쩌려고. 이제 와서 연기라도 하게?”
결국 부드러운 위로가 아닌 직설적인 팩트로 두들겨 패게 되었다.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말 할 말이 없다. 사람이 떨리는 건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 내가 결혼식에 대신 나서줄 것도 아니고.
“우리 막내도 응원하잖아. 오빠가 멋진 모습을 보여야지.”
“우웅?”
물론 이렇게 대화를 끝내는 건 에리히에게 미안한 일. 내 품에 안긴 채 옷자락을 오물거리고 있던 테레사를 들어 올렸다.
“우리 테레사. 둘째 오빠한테 힘내~ 라고 해주자.”
“히내~”
내 부탁에 테레사는 양팔을 파닥이며 에리히를 응원했다.
솔직히 테레사가 정말로 응원을 하기 위해 힘내라고 한 것은 아닐 거다. 내가 말하는 대로 따라 한 것에 불과하지.
그래도 힘내라는 단어만 성공적으로 나왔으면 됐다. 귀여운 막둥이의 힘내만큼 훌륭한 단어는 없지 않겠나.
“내가 결혼식 망쳐도 테레사는 기억도 못 할 텐데.”
‘이 새끼가.’
허나 이 되먹지 못한 둘째 오빠는 동생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심드렁했다.
네가 그 모양이니 테레사가 네 목소리만 들으면 자다가도 깨지. 넌 테레사의 사춘기에 직면해도 겸허히 받아들여라.
“오-빠.”
“응?”
테레사에게 멱살이 잡혀 흔들리는 에리히를 상상하는 사이, 내 옷소매를 꾹꾹 잡아당긴 테레사는 반대쪽 손으로 에리히를 가리켰다.
“둘째 오빠한테 가겠다고?”
“우웅.”
고개를 끄덕이는 테레사를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놨다.
테레사도 이제 자기 발로 걸어 다닐 수 있지만, 몸을 움직이지 못하던 시절부터 어마어마한 활발함을 자랑했던 아이다. 성질을 주체하지 못하고 달리려다 넘어진 것도 한두 번이 아니지.
그렇다고 품에만 안고 있으면 왜 내려주지 않냐고 성을 낸다. 덕분에 테레사가 원하면 바닥에 내려주되, 혹시 넘어지지는 않나 노심초사하며 지켜봐야 한다.
“옵빠-”
내가 불안한 눈빛으로 보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바닥에 발을 디딘 테레사는 아장아장 에리히에게 다가갔다.
“바부.”
그러고는 에리히의 정강이를 찰싹 때렸다.
“크읍.”
절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황급히 억눌렀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설마 스무 살은 더 어린 동생이 에리히를 구박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게다가 바보라는 단어도 제법 또렷한 발음으로 나왔다. 마치 테레사가 평소 생각하던 진심이 드러난 것처럼.
‘이미 사춘기였나.’
언젠가 에리히가 테레사의 사춘기에 직면할 거라 생각했거늘. 테레사의 사춘기는 이미 찾아왔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오직 에리히 전용 사춘기가.
“바보…”
그리고 한참 어린 동생의 구박에 에리히의 얼굴이 멍해졌다.
강한 긴장을 더욱 강한 충격으로 덮은 것 같아 만족스럽다. 역시 가족을 위로할 수 있는 건 가족뿐이야.
***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나서야 제도로 복귀했다.
사실 테레사에게 바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혼자 방에 있고 싶었지만, 이왕 영지에 온 김에 가족끼리 식사는 해야 하니까. 이럴 때가 아니면 영지에서 지내는 부모님과는 만날 기회가 없다.
그렇게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으며 저택으로 돌아갔고,
– 오랜만입니다, 형제님.
타니안의 연락이 날아왔다.
뜬금없는 연락이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타니안은 다른 국가의 성지 순례를 위하여 제국을 벗어난 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별다른 이유 없이 연락을 걸었으니까.
아무래도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심심할 때마다 나를 찾는 것 같았다. 차기 성자니 성지 순례가 지겹지는 않겠지만, 거의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륙을 전전하고 있으면 지칠만하지.
“한 달밖에 안 지났는데 오랜만은 무슨.”
– 그 한 달 사이에 무슨 일을 겪을지 알 수 없는 게 인간이지 않습니까. 다행히 그간 잘 지내신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너는 잘 지냈냐?”
– 저야 언제나 주의 보우하심 덕에 잘 지내고 있지요.
작게 웃음을 터뜨린 타니안을 보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 대륙에서 타니안만큼 안전하고 잘 지내는 사람도 드물 거다. 에넨의 아들이라 불리는 존재이자, 대륙 곳곳에 퍼진 여명 교단의 교구에서 교황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인물이잖아. 그런 사람이 불편함을 겪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정확히는 불편해도 불편한 기색을 내보일 수 없겠지. 타니안이 헛기침만 해도 그 지역 교구는 난리가 날 테니까.
“한 달 전에는 바젠 왕국에 있었다고 했지?”
웃음을 터뜨리는 타니안을 보다가 슬쩍 입을 열었다.
타니안과 한 달 전에 연락했을 때는 바젠 왕국에 있다고 들었다. 바젠 왕국은 대륙 동부 끄트머리에 위치한 나라이자 유벤 연합왕국 북쪽에 위치한 나라.
그렇다면 지금쯤 바젠 왕국 순례를 마치고 유벤에 진입했을 확률이 높다. 유벤 연합왕국이 순례 일정의 마지막 방문 국가라고 했으니, 신성교국으로 귀국할 날도 얼마 안 남았고.
– 예. 며칠 전에 바젠 순례를 마치고 유벤 연합왕국에 입국했습니다. 오랜만에 라테르 형제님을 뵈니 반갑더군요.
내 말에 타니안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로 답해줬다.
조금은 부럽다. 대륙을 돌아다니는 덕분에 나, 아인테르, 류티스에 이어 라테르까지 보다니. 혼자 아카데미 친구들을 전부 만났어.
– 크게 달라진 게 없는 형제님이었습니다만, 체스 실력은 그 사이에 몰라볼 정도로 발전하셨습니다. 류티스 형제님에 대한 복수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것 같더군요.
“그래봤자 다시는 못 붙잖아.”
– 마음속으로는 이미 수천 번도 더 붙었을 겁니다.
안타까운 말인지라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라테르가 백 날, 천 날 수련을 해도 복수전은 영원히 하지 못하며, 설령 기회가 생긴다 해도 이길 거라는 보장이 없다. 라테르가 발전하는 동안 류티스는 가만히 있겠냐고.
– 그 대신이라고 하기는 민망하지만, 류티스 형제님에게 연락을 건 채로 제가 대신 체스를 두었습니다.
“…뭐?”
– 통신구로 제 얼굴 대신 체스판을 비추니 그럭저럭 원거리 지시가 가능하더군요. 라테르 형제님도 기뻐하셨습니다.
기뻐했다는 단어 안에 상당히 많은 일들이 담겼을 것 같아 침묵을 지켰다.
정황상 류티스의 지시대로 움직인 타니안이 이긴 것 같은데, 대면 체스도 아닌 원거리 체스에서도 패배한 라테르의 심정은 대체 어땠을까. 상상하기도 두렵다.
– 참. 그거 아십니까?
뭐를? 네가 라테르의 자존심에 확인 사살을 날렸다는 거?
라는 말이 나올 뻔했지만 겨우 참았다. 타니안은 순수한 호의로 원거리 체스를 시도한 것일 테니─
– 라테르 형제님께서도 조만간 결혼을 하신다고 합니다.
“어?”
순간 귀를 의심하고 말았다. 라테르가 뭘 해?
– 하하, 많이 놀라신 것 같군요. 저도 처음 들었을 때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내 반응에 타니안은 다시 웃음을 흘렸다.
–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친구에게서 기쁜 소식을 듣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홀로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타니안의 모습에 속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말하다가 멈추지 말고 끝까지 말하라고. 갑자기 결혼 얘기가 왜 나와.
‘대체 졸업하고 무슨 일이 있던 건데.’
류티스는 아카데미 재학 중에도 난리였던 게 귀국해서도 난리더니, 라테르는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