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91)
로판 속 공무원 691화(692/945)
멍하니 거울을 바라봤다.
헤카테와 접촉했을 때의 감촉도,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을 때의 감촉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혹시 현실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어리네.”
하지만 거울을 보자마자 부질없이 꿈틀거리던 망상은 순식간에 진압되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다소 앳된 모습이었다. 26살이라는 명실상부한 20대 중반인 나와 달리, 몇 년은 더 젊어 보이는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
마치 내가 막 감찰부장이 된 시기처럼.
“잘 잤어요, 우리 부장님? 피곤한 건 이해하겠는데에~ 부인이 직장에서까지 깨워주는 건 너무 과한 서비스 아냐?”
“누나가 직접 깨워줬으니 세수라도 하고 와. 이제 다른 애들도 오겠다.”
이윽고 헤카테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이 꿈은 내가 꿈꾸던 또 하나의 미래 같다. 헤카테와 그 녀석들이 죽지 않고 이어진 세계.나와 그 녀석들이 나란히 감찰부의 간부가 되어 살아가는 미래.
정말 꿈에서나 그리던 미래였기에 픽 웃음이 나왔다. 나 홀로 살아간 지 7년이나 지났는데, 공식적으로 유부남이 된 지 3년이나 지났는데, 왜 이제야 이런 꿈을 꾸게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동생을 챙겨서 복받은 건가?’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가능성이기에 실소를 흘렸다.
에리히의 결혼식에 지즈까지 출격시키며 성대하게 마무리해 줬기에, 형이 좋은 마음으로 동생을 챙겨줬기에 에넨이 내린 축복. 이건 누가 들어도 개소리라고 치부할 망상이고 헛소리다. 고작 그런 걸로 축복을 내릴 거였다면 진즉 내렸겠지.
“…조금만, 조금만 있다가 갈게.”
이윽고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누구에게 말하는 말인지는 나도 알 수 없다. 현실에서 자고 있는 나에게 하는 말인지, 나를 기다리고 있을 현실의 가족들에게 하는 말인지, 나에게 육체를 뺏긴 꿈속의 나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헤카테와 녀석들에게 하는 말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아니,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다. 괜히 복잡하게 생각하면 이 꿈과 같은 꿈에서 쫓겨날 것 같았으니까.
“아주… 조금만 있을 테니까.”
7년 만에 그 녀석들의 목소리를 듣고, 7년 만에 인사를 나누면 알아서 돌아갈 테니까.
부디 그때까지만 이 변덕스러운 축복이 나를 받아주기를.
이제는 볼 수 없는 부장실의 문을 열자, 책상에 찻잔을 내려놓던 헤카테가 반겨주었다.
“왔어? 커피하고 홍차 중에 뭐로 고를래?”
그러고는 빙긋 웃으며 찻주전자를 들어 올렸다.
눈물이 나올 뻔했다.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대화였지만 이 평범함을 얼마나 그리워했었나. 이 평범함을 잃고 얼마나 방황을 했던가.
허나 울 수는 없다. 이 축복 속에서 눈물을 보이면 꿈속의 헤카테가 슬퍼할 테니.
“커피로.”
“땡, 정답은 홍차였습니다~”
그 말에 그렁그렁 맺히려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둘 중에 뭘 마실 거냐고 물어본 게 아니라 정체를 물어보는 퀴즈였냐고.
“온통 시커멓게 입고 다니면 마실 거라도 산뜻한 붉은색으로 해. 아직 어린애가 왜 이리 미적 감각이 부족한지.”
“감찰부니까 당연히 까맣게 입고 다니지.”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젓는 헤카테를 향해 작은 항의를 했다.
감찰부는 제복부터가 까만색이라 퇴직하거나 이직하지 않는 이상 이 흑색 천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 내 흑발과 흑안은 아버지께 물려받은 유전자이지 않나. 이걸 내 미적 감각 문제로 치기에는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러니까 선택할 수 있는 색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말한 헤카테는 찻주전자를 책상에 내려놓은 후, 가슴을 펴며 으스댔다.
“이 누나를 봐. 검은색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붉은색 덕분에 더 눈에 띄잖아.”
“눈은 태어났을 때부터 빨간색이었으면서 무슨 심혈을…”
“이번에도 땡.”
검지를 좌우로 까딱거린 헤카테가 자신의 입술을 톡톡 건드리더니, 이내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우리 동생이 어엄~청 좋아하는 입술이 붉은색이지.”
“그게 뭔─”
예상치 못한 공격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입술이라니. 그렇게 말하니까 희대의 변태가 된 기분이잖아.
“안 웃어?”
그러나 은근한 압박에 본능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저는 변태가 맞습니다. 빙의 전에도 변태였습니다.
“저기.”
7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본능에 스스로도 놀라는 사이, 창문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 너무 빨리 왔나? 이따가 다시 와?”
연보랏빛 머리카락을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기르고, 어딘가 멍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청년.
멀쩡한 문을 놔두고 벽을 타고 올라와서 창문을 여는 기인.
‘발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넌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이상한 놈이구나.
“발터! 부장실에 올 때는 문으로 오라고 했잖아! 부장하고 차장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으면 어쩌려고!”
“중요한 얘기보다는 행동을 더 자주 할 것 같은데… 어쨌든 알았어.”
헤카테의 말에 발터는 다시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어차피 창문까지 올라왔으면 그냥 들어오지. 말을 잘 듣는 건지 아닌 건지 헷갈리는 녀석이다.
“어휴…”
그 광경을 보던 헤카테는 이마를 짚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보다 격한 반응이라 조금 놀랐다. 발터가 기행을 저지른 적이 한두 번도 아닌데, 저렇게 한숨까지 쉴 필요가 있나? 헤카테도 북방에서 지낸 2년 동안 익숙해졌을 텐데?
“쟤는 언제 철이 들려고 저러나 몰라.”
“저러는 게 발터의 매력이지. 특이하게 놀기는 하지만 다친 적은 없잖아.”
“조만간 다칠 것 같아서 그래.”
살포시 미간을 찌푸린 헤카테는 발터가 열었던 창문을 도로 닫더니,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쟤 요즘은 하늘을 걷겠다며 난리 쳤잖아.”
“어?”
“왜 모르는 척해? 옆에서 물 위를 걷는 것보다 허공을 걷는 게 낫다고 부추긴 건 칼이었으면서?”
그 말에 기억을 빠르게 되짚었다.
‘…진짜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 한구석에 보관 중이던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헤카테의 말이 맞다. 발터가 북방에서 물 위를 걷는 연습을 할 때, 그럴 바에는 허공을 걷는 게 낫다고 놀린 적이 있었지. 그걸 저놈은 진심으로 받아들인 게 문제였지만.
물론 내가 아는 발터는 결국 허공을 걷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기는 했지만─
“차라리 성과가 없으면 포기했을 텐데, 하필 두 걸음 정도는 뜰 수 있어서…”
‘와.’
꿈속의 발터는 기어코 라이트 형제의 길을 걷고 있었다.
대단하다 발터. 마법사도 아닌 검사의 몸으로 하늘에 도전한 제국인은 네가 처음일 거다.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도로 올라온 발터를 시작으로, 익숙한 얼굴들이 차례차례 부장실로 모였다.
“아직 셋밖에 안 모였어? 하여간 전쟁이 끝나니 다들 게을러져가지고.”
대충 기르고 대충 자른 갈색 머리가 인상적인 이드리드.
우리 중에서도 둘밖에 없는 원거리 딜러이자, 전쟁이 끝나면 감찰부에서 탈출하겠다고 이를 갈던 선지자.
‘이루지 못할 꿈이었다는 게 안타깝지만.’
정작 이드리드 본인은 물론, 그 뜻을 계승한 나조차 여전히 감찰부에 있다는 게 우스운 일이다.
“정해진 시간에 오기만 하면 되는 거지. 지각한 것도 아니니 너무 신경 쓰지 말아라.”
그리고 이드리드의 뒤를 따라 들어온 회색 머리 거구의 사내인 올리버.
분명 사제지만 주먹으로 상대를 팬 경험이 더 많은 뒤틀린 사제. 아군에게 힐을 쓰기 전에 상대의 무력을 거세하는 기적의 사제.
덧붙여 우리 중 최연장자기도 하기에 맏형으로서 동생들을 자애로 보듬는 성격이나,
“안 온 놈들이 제라드랑 드레이크잖아. 걔들은 무조건 늦겠지.”
“으으음…”
그런 올리버조차 아직 오지 않은 개노답 듀오에게는 무조건적인 자애를 보일 수 없는 모양이다.
‘제라드와 드레이크.’
무심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대주가인 제라드와 술을 좋아하는 드레이크는 북방에서도 자주 붙어 다닌 듀오였다. 특히 제라드는 소독용 알코올도 알코올이라며 희석해서 먹으려 했고, 그 대가로 잠시나마 눈이 멀었을 정도였지. 미친놈도 그렇게 미친놈이 없었다.
그렇다고 드레이크가 정상이라는 건 아니다. 술을 좋아하는 주제에 주량이 약해서 사고를 친 빈도가 적은 거지, 기행을 일삼은 건 그 녀석도 마찬가지니까.
뭐라고 했더라. 검을 양손에 한 자루씩 들면 적을 두 배로 벨 수 있을 테니 이득이라고 했던가? 정신 나간 발상이었지만 실제로 쌍검술의 고수가 되었다는 것이 더 놀라울 따름이다.
“봐. 부장도 정신이 나가서 웃잖아.”
“나 아직 멀쩡해.”
이드리드의 말에 황급히 표정을 가다듬었다.
정신이 나가다니. 누굴 순식간에 환자로 만들려고.
“부장이 아니라 부장님이라고 해야지. 아무리 우리 사이여도 존칭은 지켜야 돼.”
그 와중에 헤카테는 단호한 얼굴로 이드리드를 지적했다.
“부장님도 정신 나가서 웃고 있잖아.”
“좋아.”
그리고 이어지는 이드리드의 정정에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냥 부장에다가 님 한 글자만 붙인 거잖아. 이게 어딜 봐서 존칭이야.
“그보다 그 녀석들 어차피 취해서 올 텐데, 그냥 우리끼리 회의 진행할까?”
“우리끼리 하면… 무슨 얘기 중이었냐고 귀찮게 굴 텐데?”
아무튼 두 듀오의 지각을 확실시 한 이드리드의 말에 발터가 고개를 기울이며 반론했다.
“그건 부장님이 걔네한테 설명해야지.”
“이 새끼가?”
너무 노골적일 정도로 ‘부장한테 짬 때리자.’ 라는 말인지라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이런 놈이 우리 중에서는 가장 정상인의 범위에 속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다수가 편하자고 소수의 희생을 거리낌 없이 하는 폭군 같은 놈.
“원래 부장님의 역할은 아래 간부들을 보듬─”
“우리 왔다! 아직 안 늦었지!?”
“마시다가 자면 못 일어날 것 같아서, 그냥 아침까지 마셨어!”
이드리드의 말이 끝나기 전, 부장실 문이 요란하게 열리더니 적발 미친놈과 흑발 미친놈이 들어왔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술 냄새와 붉은 얼굴, 한 손으로는 술병을 들며 다른 한 손으로는 상대와 어깨동무를 한 진상의 포즈까지.
완벽하다. 실로 그림에 그린 듯한 꽐라의 모습이다.
“하하.”
그 모습에 다시 웃음이 나왔다.
그냥, 그냥 자동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친놈들.”
살아서도 죽어서도 변함없는 것들.
내가 어떻게 이런 놈들하고 북방에서 굴렀는지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