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92)
로판 속 공무원 692화(693/945)
요란스럽게 등장한 꽐라 듀오를 마지막으로 모든 인원이 모였다.
그리고 녀석들이 앉은 자리를 토대로 이 녀석들의 직책을 유추할 수 있었다.
‘내가 부장.’
우선 내가 부장인 것은 현실이나 꿈이나 매한가지였다. 꿈속에서도 나와 장관이 전대 감찰부장을 담가버리고, 장관은 제국 역사에 길이 남을 2단계 승진을 한 모양이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헤카테가 차장.’
또한 누구보다 먼저 나를 맞이해 준 헤카테가 감찰부 차장이었다.
가장 합당한 인선이다. 이 여섯 중에서 나를 보필할 수 있는 인물이 있다면 오직 헤카테뿐이겠지. 다른 녀석들이 차장이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야.
‘드레이크가 1과장, 발터가 2과장.’
이건 다소 의외인 인선이다. 1과와 2과는 감찰부 내에서도 정보를 담당하는 부서인데, 드레이크와 발터는 정보와 거리가 먼 성격이다.
하지만 우리 중에서 정보와 밀접한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빈자리를 적당히 떠맡은 것일 테니, 크게 신경 쓰지는 말자.
‘올리버가 3과장.’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올리버도 원래 세계의 3과장─ 현 집행부장처럼 거구를 자랑하는 편이지. 거구라는 공통점 때문에 3과를 맡은 거라 생각하면 조금은 유쾌하다.
‘제라드가 4과장이고…’
이 인선도 헤카테가 차장인 것과 더불어 합당하다고 할 수 있는 인선이다.
제라드는 나 바로 다음가는 무력의 소유자고, 나처럼 하늘 베기를 쓸 수 있는 기인이지 않나. 그러니 감찰부 내에서 가장 강력한 부서인 4과를 이끄는 건 당연하다.
‘이드리드는 자동적으로 5과장.’
마지막으로 활을 사용하는 원거리 딜러 이드리드가 암살을 수행하는 5과장.
이 또한 납득할 수 있는 인선이다. 정보 부서를 맡을 사람이 없어 짬을 맞아버린 드레이크, 발터를 제외하면 전부 적재적소에 배치된 느낌이다.
‘괜찮네.’
아니, 괜찮은 수준을 넘어 훌륭하다.
한때 나 홀로 그렸던 이상향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어쩌면 우리가 7년 전에 이루었을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아마 이 상황이 내 꿈이기에 그런 거겠지. 내가 원하던 모습이 꿈속에서나마 이루어진 거겠지.
“대체 얼마나 퍼마시고 온 거야? 냄새만 맡아도 취하겠다.”
그 와중에 제라드와 가까이 앉아있던 이드리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확실히 제법 거리가 있는 나한테도 술 냄새가 나는데, 바로 근처에 앉아있는 이드리드는 오죽할까. 제라드를 창문 밖으로 던지고 싶은 충동과 싸우고 있지 않을까?
“얼마 안 마셨어. 둘이서 세 병이면 무난하게 마신 거 아니냐?”
“너희가 그거밖에 안 마셨다고?”
“크흐, 사실 한 시간에 세 병 마셨어.”
그 말에 이드리드는 거칠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을 자면 못 일어날 것 같아서 아침까지 마셨다고 한 놈들이다. 그렇다면 밤부터 아침까지 한 시간에 1.5병을 마셨다는 것 아닌가. 경이롭기 짝이 없는 주량이다.
“내가 이딴 꼴 보기 싫어서 이직하려고 한 건데.”
진심 가득한 한탄에 픽 웃음이 나왔다.
공감한다. 감찰부에 오래 있을수록 다른 곳으로 튀고 싶은 욕망만 무럭무럭 샘솟는 법이지.
“잡담은 그만하고 회의부터 하자. 이러다가 점심도 같이 먹겠어.”
아무튼 끊길 기미가 보이지 않는 대화 속에서 헤카테가 가볍게 책상을 두드렸다.
과장들이 난리를 치면 제어하고 조율하는 것이 차장의 역할. 그런 의미에서 헤카테도 훌륭한 차장이라고 할 수 있다.
“부장님.”
“음.”
이윽고 헤카테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다른 녀석들의 시선도 하나둘 나에게 쏠렸다.
…
“그런데 우리 왜 모인 거야?”
“푸핫!”
머쓱하게 내뱉은 한마디에 제라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지 마 이 새끼야. 나 이 꿈속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다고. 무슨 이유로 회의가 소집됐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부서 꼬락서니 잘~ 돌아간다.”
허나 제라드가 아닌 이드리드의 지적에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보다 더한 병신이 놀리는 건 무시할 수 있지만, 상대적 정상인이 지적하는 건 그냥 넘어갈 수 없었으니까.
“우리 부장님한테 왜 그래! 아직 스물도 안 된 애인데 실수 좀 할 수 있지!”
더욱 가슴 아픈 것은 헤카테가 나를 열렬하게 변호했다는 것이다.
도저히 변호인지, 돌려 까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 말로.
‘…그래서 우리 왜 모인 건데.’
일단 그것부터 좀 알려줘. 회의를 끝내야 다른 일정을 진행하든가 말든가 하지.
회의 주제는 잔존 2황자파 숙청이었다.
오랜만에 듣는 업무라 기분이 오묘했다. 확실히 내가 감찰부장이 된 직후에는 2황자파를 두들겨 패면서 시간을 보냈었지. 추억 속에나 남아있던 업무를 다시 수행하게 됐다.
“감찰부 내에 있던 2황자파, 우리가 간부가 된 것에 반발하던 반대파는 전부 처리했어. 내부가 조용해졌으니 이제 외부에 집중해야지.”
그리고 이드리드의 첨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감찰부 내부 청소 또한 2황자파 숙청과 더불어 심혈을 기울인 작업이었다. 꿈속에서는 내부 청소가 더 빨리 끝난 모양이다.
‘간부를 선별할 필요가 없어서 빨리 끝난 건가?’
현실과 달리 꿈에서는 나와 6검이 그대로 감찰부 간부가 되었다. 굳이 전대 감찰부장과 연이 없는, 내 말에 적극적으로 따를 인물들을 선별할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심지어 내 권위를 등에 업고 움직인 현실 간부들과 달리, 6검은 카간을 잡은 영웅이자 참전 용사다. 내가 힘을 실어주지 않아도 적극적인 행보가 가능했을 터. 보다 쉽고 편안한 내부 청소가 가능했을 거다.
“1황자 전하께서 황태자로 책봉되신 후로 2황자파는 사실상 무너졌어. 2황자가 차기 황제가 될 거라는 것만 믿고 그 지랄맞은 2황자를 지지한 건데, 책봉 경쟁에서 탈락한 2황자를 지지할 사람이 있겠어?”
슬쩍 자리에서 일어난 이드리드는 내 쪽으로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그런데 어딜 가나 또라이들은 있더라고. 이제 와서 2황자파를 탈출해도 괘씸죄 때문에 처분당해야 할 놈들이 많지만, 그 두 놈은 아직도 2황자를 지탱하는 미친놈들이야.”
그 말에 빠르게 서류를 훑었고,
‘과연.’
두 놈의 정체를 파악하자마자 납득했다.
애실론 가주인 갤런 애실론 오브 하우젠츠 후작, 전대 감찰부장인 하인리히 제너 오브 사이엔 백작.
2황자파의 쌍두마차이자 대표적인 거물인 놈들. 2황자가 다루는 가장 강력한 검이자 수족.
‘이것들이라면 계속 2황자를 지지할 수밖에 없지.’
다른 귀족들처럼 발을 빼기에는 너무 멀리 온 놈들이다. 차라리 2황자를 계속 지지하며, 작게나마 2황자파를 유지하는 것이 이 녀석들의 생존 확률에 도움을 줄 정도로.
물론 현실의 2황자파는 제국에서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전대 감찰부장인 사이엔 백작은 전쟁 직후에 처단했고, 애실론 가주인 하우젠츠 후작은 시간 차를 두고 제거했었지.
아무리 2황자와 함께 제국을 갉아먹은 역적이어도 제국의 후작가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면 곤란하다고 했던가? 덕분에 다른 2황자파가 펑펑 터져가는 와중에도 애실론 후작가는 1년이라는 세월 동안 후작가라는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제도 제일의 위세를 자랑하던 우리 애실론이 어쩌다 이런 꼴이 됐는가!”
허나 어디까지나 적당한 처단 시기를 조정하기 위한 유예였지, 완전한 용서는 아니었다. 2황자가 개지랄을 떨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애실론 후작가의 존재 아니던가.
그걸 술에 취해 망각한 당시 애실론 가문의 후계자는 그런 망언을 지껄였었다. 애실론 후작가가 제도 제일의 위세를 자랑했었다고. 제도 제일이던 자신들이 지방 후작령에 처박혀 숨을 죽이며 지내야 한다고.
감히 제도에 황가가 있는 걸 알면서도 일개 후작가 따위가 제도 제일을 운운한 것이다.
‘덕분에 깔끔히 날릴 수 있었지.’
지금 생각해도 그 후계자 놈에게는 고맙다. 그딴 말을 한 덕분에 반역으로 엮어서 보내버릴 수 있었으니까.
“부장님?”
“아, 보고 있어.”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이드리드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할래? 잔챙이들부터 처리할지, 아니면 거물부터 제거할지 골라야 할 것 같은데?”
이어지는 이드리드의 말에 다른 녀석들도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내가 부장이기는 하니 내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것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다. 거물부터 노리면 잔챙이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질 수 있고, 잔챙이부터 노리면 거물들이 방어할 시간을 과도하게 주게 된다. 예전에도 어떤 걸 우선시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거물부터 노리자고. 잔챙이들은 도망 쳐봤자 잔챙이니까.”
지난 경험으로 거물부터 노리는 게 효과적이라는 걸 알기에.
“대신 바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한 일주일 후부터 행동하자.”
기껏 너희와 함께하는 이 시간을─ 버러지들을 잡느라 소모하고 싶지는 않기에.
어차피 애실론 가주도 전대 감찰부장도 현실에서는 차가운 시체가 된 지 오래다. 굳이 꿈에서도 눈을 뒤집어가며 때려잡을 필요는 없다.
그냥 너희와 함께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언제 끝날지 모를 짧디짧은 기적을 누리고 싶다.
“일주일이라… 괜찮네. 어차피 준비하다 보면 그 정도는 지날 거야.”
다행히 이드리드는 내 말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회의 끝난 거지? 나 속 좀 풀고 와야겠는데.”
“아, 나도 같이 가.”
“가기는 어딜 가 미친놈들아. 지금 근무 시간이야.”
슬슬 해산 명령을 내리려던 찰나,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제라드와 드레이크 때문에 다시 소란이 생겼다.
그 광경에 올리버는 쓴웃음을 지었고, 발터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 꿈속에서는 자주 있는 일 같다.
“참, 부장님.”
“응?”
나 역시 세 얼간이의 말싸움을 보던 중, 헤카테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회의 끝나면 장관님이 보고하라던데?”
“…대면으로?”
“당연히 대면으로 해야지. 바로 근처에 계시는데.”
키득거리는 헤카테의 모습에 어색히 입꼬리를 올렸다.
내 짬에 같은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하다니. 통탄스러운 일이다.
다소 불쾌하고 언짢았던 심정은 장관을 보자마자 눈 녹듯이 사라졌다.
“뭘 그렇게 보냐?”
“아뇨, 그… 못 본 사이에 많이 늙으신 것 같아서요.”
“이 새끼가?”
분명 7년 전이다. 내 눈앞에 있는 장관은 7년 전의 장관이다.
그런데 어째서 현실의 장관보다도 늙어 보이는 걸까. 막 재무성 장관이 된 시점이라 과도한 업무로 죽어가는 중인 건가?
‘안타깝게도…’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젊음을 되찾을 테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