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93)
로판 속 공무원 693화(694/945)
7년 전의 모습이지만 현실보다 7배는 더 늙어 보이는 장관.너무도 안타까운 광경이라 장관의 업무를 조금은 도와줘야 하나 갈등이 될 정도였다.
물론 갈등은 어디까지나 갈등으로 멈췄다. 감찰부장과 재무성 장관의 업무는 겹치는 것이 없으니까. 내가 도와주겠다고 까불면 장관이 처리해야 할 업무만 늘어나는 꼴이 된다.
게다가 현실의 장관은 이 고난의 시기를 무사히 이겨내고 7년 경력의 베테랑 장관이 됐잖아. 가만히 둬도 알아서 잘하겠지.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기껏 와서 한다는 소리가 늙었다느니 뭐니.”
허나 내 믿음과 달리, 장관은 미간을 찌푸리며 부하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제가 뭘 했다고 그러십니까? 감찰부는 근래 내부 정리로 바빠서 일을 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발언이기에 정당한 항의를 내보였다.
현시점의 감찰부는 내부 반대파를 정리하느라 대외적 활동을 수행하지 못했고, 장관의 멘탈을 뒤흔들만한 사고도 치지 않았다. 오히려 장관은 우리 덕에 조금이나마 편한 상태일 터.
“정리도 적당히 했어야지! 다른 부로 보내면 서류나 만지다 은퇴할 것들까지 사라져서, 그것들이 처리해야 할 업무가 전부 위로 역류하는 중이라고!”
“아.”
뒤이은 장관의 샤우팅에 납득했다.
확실히 이 당시에는 부서 전통이 박살 날 정도로 화려하게 숙청을 돌렸었다. 덕분에 감찰부를 넘어 재무성의 사무 인력이 급감할 정도였지. 현실에서도 그 문제 때문에 장관이 한동안 뒷목을 잡고 다녔었고.
“…그래도 부서 장악력은 늘어났죠?”
“그걸 말이라고─!”
다시 소리를 치려던 장관은 기운이 빠졌는지,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장관이 기운이 바닥나서 골골거리는 모습이라니. 실로 보기 드문 귀중한 광경이다.
“그래서, 왜 왔냐?”
“회의 결과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그래도 방문 이유를 설명하자 다시 고개를 들었다. 바닥난 기력이 조금이나마 회복된 것처럼.
아니, 회복 수준을 넘어서 초췌하던 안색에 강렬한 활기가 깃들 정도였다. 잔존 2황자파를 처단하는 건 장관에게도 흥미가 가는 일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잔챙이들은 뒤로 미뤄두고, 하우젠츠 후작과 사이엔 백작을 먼저 치기로 했습니다.”
“대가리부터 치겠다? 감당할 수 있겠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장관의 입꼬리는 어느새 귀에 걸린 상태였다.
저 양반도 2황자와 그 쌍두마차의 패악질에 질린 상태였겠지. 아마 장관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들, 관료들도 같은 반응을 보일 거다.
“거물이니 뭐니 해봤자 결국 잡고 있던 줄이 잘린 머저리들 아닙니까. 반항이 격하기는 하겠지만, 결국 쓰러지는 건 그놈들이죠.”
“그건 그렇지.”
“대신 행동은 1주 후부터 개시하도록 했습니다.”
“1주라. 나쁘지 않군.”
보고를 들을수록 장관의 표정은 더욱 밝아졌다.
“좋아. 하우젠츠 후작과 사이엔 백작이 무너지면 2황자도 끝이지. 황태자 전하께는 내가 말씀드릴 테니 예정대로 진행해라.”
“옙.”
장관의 말에 냅다 허리를 숙였다.
다행스럽게도 이 당시의 나는 막 황태자의 심복이 된 상황이라, 아직 황태자에게 독대 보고, 대면 보고를 할 위치에 오르지 못했다. 덕분에 꿈속에서도 황제의 얼굴을 보는 건 피했다.
“아, 혹시 예정이 바뀌면 바로 얘기해고.”
“걱정 마십쇼. 감찰부 일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닌데요.”
“막 부장된 놈이 허세는.”
픽 웃음을 흘리는 장관을 향해 마주 미소를 지었다.
막 장관이 된 누군가와 달리 난 7년 경력(신혼 휴가 3년 포함)의 베테랑 감찰관이다. 적어도 이 꿈속에서 나보다 귀족 패는 것에 진심인 사람은 없을 거다.
그렇다고 정말 패겠다는 건 아니지만. 1주고 나발이고 편하게 있다가 현실로 도망쳐야지.
근무 시간은 평온하고 조용하게 지나갔다.
거물 사냥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1주 후로 연기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 기적 같은 꿈을 선물해 준 신이 꿈속에서도 업무에 시달리는 걸 막아줘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으나─ 어느 쪽이든 간에 시간이 넘쳐난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벌써 퇴근 시간이네.’
그리고 시간이 넘친다는 건 칼퇴근을 해도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애석하게도 다른 과장들은 거물 사냥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 또한 중간 간부의 숙명 아니겠나. 꼬우면 나나 헤카테처럼 부장, 차장급 간부가 됐었어야지.
“오늘도 무사히 끝났네에~”
실제로 내 옆에서 업무를 보던 헤카테 또한 칼퇴근을 할 예정인지, 시계를 보자마자 깃펜을 내려두고 기지개를 켰다.
그러고 보니 차장은 보통 차장실이 따로 있는데, 헤카테는 왜 부장실에 있는 거지?
‘나야 좋지만.’
물론 헤카테와 같은 방에 있는 것은 싫기는커녕 기꺼운 일. 덕분에 근무 시간 내내 차장실의 ‘차’자도 꺼내지 않았고, 최대한 자연스레 헤카테와 시간을 보냈다.
괜히 ‘너 차장실에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같은 말을 꺼내면 헤카테가 서운해할 수도 있으니까. 7년 만에 만난 연인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건 잔인한 짓이니까.
“칼.”
“뭐야. 우리 사이라도 존칭은 지켜야 한다며.”
“그건 근무 시간 때만 통하는 거고. 지금은 퇴근했잖아.”
히히 웃는 헤카테의 모습에 나도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맞는 말이다. 근무 시간에는 부장님이어도 퇴근했으면 칼이지. 게다가 헤카테는 나를 깨울 때는 칼이라고 했다가, 일어나고 나니 부장님이라고 불렀잖아. 소름 돋을 정도로 명확한 공사 구분이다.
“아무튼 퇴근 시간이니 빨리 가자. 애들 기다리겠다.”
“애들?”
그 말에 순간 흠칫하고 말았다.
애들? 애들이 누구지? 설마 다른 과장 녀석들을 말하는 건가?
아냐, 그런 것치고는 목소리에 깃든 애정이 너무 짙었어. 게다가 퇴근도 못 하는 것들이 우리를 어떻게 기다려.
‘나랑 헤카테의 애인가?’
가슴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설마 꿈속의 나는 헤카테와 이미 갈 만큼 간 상황인가? 이 시기에 아이가 있을 만큼?
심지어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이다. 애가 기다린다고 한 것이 아니라 애들이 기다린다고 했다.
‘설마 쌍둥이?’
대단하구나, 꿈속의 나. 아직 전대 감찰부장인 사이엔 백작이 살아있는 걸 보면 전쟁이 끝난 지도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전쟁 시기부터 그렇고 그런…
“왜 멍하니 있어? 빨리 일어나!”
헤카테가 내 손을 낚아챘다.
안 돼,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어…!
“조, 조금만 있다가 가면 안 될까?”
“안~ 돼. 애들이 오늘만 기다린 거 알잖아. 그동안 내부 청소로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었는데, 오늘은 제시간에 퇴근해서 오랜만에 가족끼리 모이는 거라고!”
단호한 거절에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가족끼리라니. 점점 우리 아이라는 가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잖아.
“안 그래도 신분 차이가 있어서 조금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거, 칼도 알지? 이럴 때 자주 어울려야 빨리 친해지지.”
‘응?’
허나 뒤이은 말에 위화감을 느꼈다.
내가 귀족이라서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귀족이 아니라는 말처럼 들리지 않나.
‘아.’
그리고 헤카테가 말한 애들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귀족이 아니고, 헤카테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나를 어려워하되 내가 돌봐야 할 아이들. 나와 헤카테의 가족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이들.
‘고아원 애들이구나.’
우리가 지키고자 했지만 지키지 못했던 아이들. 고아인 헤카테에게 가족이 되어준 고마운 아이들.
“…알았어. 내 발로 갈 테니까 일단 놔 줘.”
두근거리던 마음을 겨우 가라앉혔다.
내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보고 싶었던 아이들. 내가 헤카테의 남편이 된다면 내 가족이나 마찬가지니, 내가 책임지고 돌봐주겠다고 했던 아이들.
공허한 허세로 끝나버린 아이들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싫은데?”
“어?”
“이왕 잡은 김에 집에 갈 때까지 잡고 있을 건데?”
혀를 빼꼼 내미는 헤카테를 보니 가라앉았던 마음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까와 다른 의미의 두근거림인 건 말할 것도 없으리라.
나와 헤카테가 머무는 집은 현실에서 사용하던 개인 저택이 아닌 크라시우스 가문의 저택이었다.
졸지에 터전을 잃은 꼴이지만 금방 납득했다. 내 개인 저택은 애실론 후작가를 박살 낸 후, 애실론 후작가가 가지고 있던 저택을 황태자에게 선물로 받은 것이었지. 아직은 내 저택이 아닌 애실론의 것이어야 맞다.
익숙한 터전을 잃어서 조금은 아쉽지만 괜찮다. 크라시우스 가문의 저택도 어디 가서 부족한 수준은 아니니까.
“얘들아! 누나 왔어!”
“누나다!”
“언니이이이~”
그리고 위풍당당히 저택에 진입한 헤카테는 아이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우리 귀염둥이들. 누나 없는 동안 별일 없었지?”
“언니! 한스가 내 간식 뺏어 먹었어!”
“줄리아가 먼저 나 오줌 쌌다고 놀렸단 말이야!”
“이런 답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난감해하면서도 활짝 웃는 헤카테를 보니 가슴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저 평온하고도 즐거운 일상을 지키지 못해서 헤카테가 떠난 거구나. 전대 감찰부장, 그 망할 새끼가 저 일상을 망친 거구나.
‘그 새끼는 담그고 돌아갈까?’
7년 만에 겪는 재회를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기껏 행복과 그리움으로 가득한 마음에 다른 불순물을 넣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저 광경을 보니 전대 감찰부장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꿈속이라는 걸 알면서도 죽이고 싶을 만큼.
‘한 대만 때려도 뒤질 놈인데.’
여차하면 그 새끼 저택에 몰래 잠입한 후, 명치에 주먹 한 방 꽂아 넣고 탈출하면 된다. 내가 그 정도 능력은 되니까.
“형부, 형부.”
“음?”
“안녕하세요오오오…”
그 와중에 바지를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숙이니, 이제 막 10살이 되었을 것 같은 여아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래, 안녕. 우리 없는 동안 잘 지냈지?”
“네, 네. 형부 덕에 잘 지내고 있어요.”
미소를 지으며 그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주자, 아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기특하다. 헤카테의 말을 들어보면, 나와 제대로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걸 보면 아직 나를 어려워하는 것 같은데, 먼저 다가와서 인사도 할 줄 알고.
“착한 아이네.”
그렇기에 퇴근길에 샀던 작은 선물을 품속에서 꺼냈다.
“자, 이건 형부의 선물. 잔뜩 사서 왔으니까 나눠 먹어.”
그러자 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내가 헤카테에게 구박 아닌 구박을 들어가며 산 선물. 애들 밥 먹어야 하는데 그런 거 주면 곤란하다고 잔소리를 들은 선물.
“대신 너무 많이 먹지는 말고. 디저트는 어디까지나 디저트니까.”
현실에 있는 황태녀와 아이들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초콜릿.
다행히 꿈속에도 있길래 대량으로 구매하고 왔다. 아이들에게 달콤한 디저트만큼 훌륭한 선물도 없으니까.
“가, 감사합니다!”
실제로 내 기습 선물에 아이의 표정이 해맑게 변했다.
처제가 좋아하니 이 형부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