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96)
로판 속 공무원 696화(697/945)
신년하례식 기간에 폭설이 왔을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다.
이번 겨울은 평범한 겨울이 아니라 추위와 추위가 진하게 농축된 진짜배기 겨울이라는 것을.
‘춥다.’
아침에 눈을 뜨고 맨발로 방바닥을 디딜 때. 그 순간에 올라오는 냉기를 통해 그날 날씨를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내 육체로도 순간적인 추위를 느낄 정도라면 보통 추위가 아니다. 아마 저택 밖은 제도 경비대의 눈물 어린 제설이 이루어지고 있겠지. 아니, 눈물조차 얼어서 눈을 감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결혼식 이후에 추워져서 다행이네.’
만약 에리히의 결혼식 때도 이런 추위였으면 그만한 봉변이 없다. 상대적으로 가볍게 입어야 하는 에리히와 제노비아가 감기에 시달렸을지도 모르겠어.
– 끼이잉…
“티티. 추우면 침대로 올라와.”
– 멍!
그런 생각을 하며 커튼을 걷는 사이, 구석에서 자고 있던 티티가 낑낑거렸다.
털복숭이인 티티마저 추위에 떨 정도라니. 도대체 밖은 얼마나 춥─
“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광경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어느새 제도는 화려함의 도시가 아닌 순백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 그것도 어떠한 흔적도 찍히지 않은 깨끗한 순백의 도시가.
‘고생 좀 하겠네.’
아주 잠깐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꼈으나, 이윽고 저 하얀 쓰레기들을 치울 경비대원들이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조만간 경비대에 위문 음식이라도 보내야지. 먹는 거라도 잘 먹어야 덜 서러울 테니까.
“티티야.”
– 멍?
“오늘도 산책 갈래?”
어느새 침대 위로 올라온 티티에게 장난삼아 말하자, 티티는 아무 말 없이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덕분에 티티는 추위 내성이 높은 거지 추위를 못 느끼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행이다…’
진심으로 다행이다. 티티가 추위를 못 느끼는 경지에 이르렀다면 이 날씨에도 산책을 하러 나갔을 터.
상상만 해도 손발이 떨리는 끔찍한 참사다.
티티조차 침묵시킨 추위는 아이들에게도 직격했다.
다만 아이들은 내 걱정과 달리,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
“따뜻해!”
“땃뜻! 따뜻!”
“복실~”
예를 들면 양인 풍요의 몸에 착 달라붙어서 히히 웃고 있는 세쌍둥이처럼.
확실히 양의 털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따뜻한 편이지. 오죽하면 양의 털을 옷감으로 사용하겠어.
“우리 딸들. 잘 잤니?”
“아! 아빠!”
“웅! 잘잣서!”
“아빠두 잘 잣서?”
아빠의 인사에 반갑게 화답해 준 세쌍둥이었으나, 추위는 아빠에 대한 사랑보다 매서웠는지 풍요의 몸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금 서운했으나 이해할 수 있다. 솔직히 나였어도 양털에 푹 안길 수 있으면 떠나지 않았을 테니까.
‘잘 자네.’
그 와중에 풍요는 몸을 동그랗게 만 채로 숙면 중이었다. 잠이 많아서 저러는 건지, 아니면 애들에게 시달리느라 잠에 빠진 건지.
“아빠. 깨울까?”
내가 멀뚱히 풍요를 쳐다보자 마리아가 풍요의 코를 콕콕 찔렀다.
“괜찮아. 계속 자게 둬.”
이미 아이들의 생체 난로로 맹활약 중인 녀석이다. 굳이 깨워서 피곤하게 할 필요는 없으니 그냥 두자.
그보다 저 녀석 털, 진짜 복슬거리게 생기기는 했다. 나도 아이들이 없었으면 달라붙었을지도 몰라.
“응?”
그렇게 세쌍둥이가 잘 노는 걸 확인했으니 다른 아이들의 상태도 살피려던 찰나,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카틀레아?”
“우웅?”
“정령들은 어디 갔니?”
카틀레아 주변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정령들. 그 정령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정확히는 네 가지 속성의 정령들 중 붉은색을 띠는 불의 정령들이 사라졌다.
“엄마가 가져갓서!”
“엄마가?”
“웅!”
의외의 대답이었다. 엘프의 친우라고 할 수 있는 정령이기에 정령들도 트릭시의 통제에는 그럭저럭 따르는 편이나, 엄청난 정령 친화력을 가진 카틀레아 곁을 떠날 정도는 아닌데?
물론 강제로 정령들을 수거했다면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트릭시가 굳이 그럴 이유는 없다. 반딧불이들을 수거해 봤자 어디에 쓰겠어.
“다른 엄마들이랑! 페디 오빠랑! 동생둘한태 준다고 햇써!”
“아.”
허나 이어지는 말에 납득했다.
어쩐지 불의 정령들만 사라졌더라니. 날이 추우니까 생체 난로로 쓰기 위해서 분배 중이었구나.
‘반딧불이에 이어 생체 난로…’
어째 정령들의 입지가 나날이 좁아지는 건지, 넓어지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다용도로 쓰이고 있으니 입지가 넓어지는 것 같지만, 정령을 난로처럼 써도 되는 건가? 정령왕들이 화를 내도 할 말이 없어진다.
그래도 세계수 곁을 떠나 우리 저택으로 들어온 것은 정령들의 선택. 이 정도 협조는 이해해 줄 거라 믿는다.
“으… 무거워…”
“아.”
마지막으로 세쌍둥이를 쓰다듬어주던 중, 아이들에게 짓눌려있던 풍요가 끙끙거리며 눈을 떴다.
너도 고생이 많다. 이번 겨울 동안은 더 힘내 줘.
저택 내부는 생각보다 포근하고 따뜻했다. 카틀레아 근처를 맴돌던 수십, 수백의 불의 정령들이 저택 곳곳에 퍼져서 그런가 보다.
“우왕! 따뜻해!”
그리고 두터운 눈의 장벽을 넘어 저택에 놀러 온 황태녀는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좋아했다.
트릭시의 발 빠른 대처 덕분에 황태녀가 추운 저택에서 뛰어노는 건 막을 수 있었다. 다행인 일이지.
“때부! 때부 집은 왜이리 따뜻해? 신기해!”
“정령들이 전하가 온다고 해서 힘을 쓴 덕분입니다.”
“반짝이들이?”
“예, 전하.”
그러자 황태녀의 눈도 정령들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그럼 반짝이들! 내가 대려가면 우리집도 따뜻해져!? 까롤루쑤도 따뜻하개!”
그 말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직 어리고 어린 동생이 따뜻하게 지냈으면 싶어서 정령들을 노리다니. 이 얼마나 마음씨 좋은 누나란 말인가.
“죄송하지만 전하. 그 아이들은 저희 저택에 있어야 힘을 낼 수 있습니다.”
“히잉…”
사실 황궁에서도 난로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정령들이 황궁까지 갈 것 같지는 않기에 적당히 둘러댔다.
정령들은 카틀레아를 거점으로 삼은 존재들이다. 그런 정령들을 저택 밖까지 데려가는 건 상당한 반항에 직면할 일이고, 예전처럼 강제로 잡은 다음에 비닐에 넣어야 겨우 가능할 거다. 그런 걸 두 번이나 하기에는 정령들에게 미안해.
“전하. 황궁도 마법사들이 노력하여 금방 따뜻해질 테니 걱정 마십시오.”
“진짜?”
“물론이지요. 전하와 가족들이 사는 곳이지 않습니까. 마법사들이 저희 집 반딧불이처럼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
그제야 황태녀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황실 마법사들을 반딧불이 취급을 해서 미안하기는 했지만, 그 대가가 황태녀의 웃음이라면 마법사들도 기뻐할 거다.
“마따! 때부!”
“예, 전하. 말씀하시지요.”
“이거! 아빠가 줫써!”
그렇게 말한 황태녀는 품 속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냈다.
붉은 포장지와 검은색 리본. 그리고 우측 상단 구석에 그려진 하얀 곰.
…
?
‘뭐야 이거.’
어딘가 익숙한 색 배열에 익숙한 짐승 로고다. 빨강과 검정, 백곰이라니. 이거 그거잖아.
‘설마.’
두근거리는 마음과 별개로 머리는 아니라고 외치고 있다. 네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라고. 그렇게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못 찾지 않았냐고 소리쳤다.
탄산수는 있지만 ‘그 검은 거’는 없는 이 세계. 탄산수에 설탕을 때려 박아서 사이다는 허접하게 재현할 수 있지만 ‘그 검은 거’는 답이 없던 나날.
그래, 아닐 거다. 갑자기 그게 세상에 등장할 리가 없다.
“멀리서 온 쪼꼴릿이래!”
“그렇군요…”
하지만 이상하기도 하지. 아니란 걸 알았으면서 황태녀의 확답을 들으니 괜히 마음이 아팠다.
이 망할. 헷갈리게 포장을 이따위로 하고 말이야. 내가 색까지는 이해하겠는데 백곰은 왜 넣었냐고.
“그보다 멀리라니. 어디서 온 겁니까?”
그렇기에 황태녀가 꺼낸 상자를 더욱 유심히 바라봤다.
내가 황태녀와 아이들에게 먹이느라 제국의 유명 초콜릿 브랜드는 전부 꿰고 있다. 근래 들어서는 아르메인과 제레노처럼 인근 국가도 살피고 있었다. 그런 나조차 이런 포장 형태와 브랜드는 처음 본다.
“우우우웅…”
내 말에 황태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민하더니,
“루…샌…? 누샌? 그런 곳애서 왔대!”
생각 이상으로 먼 나라를 입에 담았다.
루센 왕국. 대륙 북동부 끄트머리에 위치한 약소국이자 혹한과 만년설의 나라.
위치도 변두리고, 영토도 좁고, 인구도 적고, 국력도 낮기에 대륙에서 그다지 존재감을 발휘하는 국가는 아니지만, 황제가 좋아하는 보드카를 너무도 잘 만들어서 제국 귀족들에게는 나름 인지도가 있는 나라.
‘…혹시 술 들어간 초콜릿은 아니겠지?’
괜히 불안해졌다. 하필 루센의 물건이고, 하필 황제가 줬다. 보드카가 들어간 초콜릿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
루센 왕국 사절단이 바치고 간 보드카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했다.
‘맛있군.’
아니, 이 생각 말고 다른 생각.
보드카를 입에 넣자마자 드는 생각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보드카가 아닌 다른 것에 집중해야 할 때다.
‘…잘 만들기는 정말 잘 만들어.’
허나 안 그래도 보드카로 유명한 루센 왕국이다. 그런 루센이 철저히 나를 위하여, 황제를 위하여 만든 보드카지 않나. 그 맛이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황태녀에게 줄 초콜릿도 가져오지 않았던가. 처음에는 알코올이 들어간 초콜릿인가 걱정했으나, 루센은 어마어마한 추위를 한정된 자원으로 버텨야 하는 국가. 놀랍게도 보드카와 더불어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초콜릿 문화도 발전한 상태였다. 나는 하도 보드카만 마셔서 몰랐지.
아무튼 루센 왕국은 새해를 기념하여 제국에 사절단을 보냈고, 자신들의 특산품을 바치며 제국을 향한 변함없는 존중과 경외를 맹세했다. 실로 흡족스러운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거기서 멈췄다면 이렇게 머리가 복잡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연합국이라.’
루센 왕국은 물론, 루센 왕국과 국경을 접한 스티니예 왕국과 노스고르 왕국. 통칭 겨울 삼국이라 불리는 세 국가의 사절단이 특이한 말을 입에 담았다.
바로 자신들이 연합의 형태를 이루고자 하니, 부디 허락해달라는 상상도 못한 말을.
‘삼국이 연합…’
아무리 제국과 거리가 먼 변방이지만, 무려 세 국가가 하나로 뭉치겠다는 골치 아픈 청원.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도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