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97)
로판 속 공무원 697화(698/945)
겨울 삼국.루센 왕국, 스티니예 왕국, 노스고르 왕국을 아우르는 단어.
겨울이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 영토 상당수와 1년의 대부분을 겨울 속에서 지내는 순백과 혹한의 왕국들.
분명 겨울 삼국 서쪽에는 대륙 2위에 빛나는 아르메인 왕국이 존재하지만, 아르메인에게 국력을 쪽쪽 빨리기라도 했는지 셋 다 사이좋게 국력이 바닥을 기는 처량한 약소국들.
그것이 겨울 삼국이다. 변두리라서 존재감이 부족하고, 국력이 낮아서 대외적 활동이 드물며, 영토도 똥땅이기에 외세의 침략도 받지 않는 국가들이다.
“연합,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헌데 그 겨울 삼국이 연합을 이루겠다고 한다.
예상치도 못한 말이라 잠시 머리가 굳었다. 날씨가 날씨인지라 황태녀가 황궁까지 잘 돌아갈까 걱정돼서 데려다준 거였는데, 황궁에 발을 들이자마자 이런 말을 들을 줄 알았으면 그냥 저택에서 하룻밤 재웠을 거다.
그만큼 연합이라는 체제는 쉽게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단순히 ‘우리 사이좋게 지내요.’ 같은 우호 관계 체결도 아닌, 그보다 더 나아간 동맹도 아닌 연합이라고?
‘연합은 유벤만 채택한 체제인데.’
대륙 3위의 국가이자 마도강국인 유벤 연합왕국. 그런 국가가 사용 중이라면 연합이 선진적인 체제가 아닐까 싶지만, 남들이 쓰지 않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연합 체제는 장점보다 단점이 많고, 장점을 살리기 전에 단점에 매몰되어 망하기 딱 좋은 체제니까. 솔직히 유벤도 연합 체제가 아니라 단일 왕국 체제를 쓸 수 있었으면 진즉에 썼을 거야. 연합 말고는 답이 없어서 억지로 버티는 중이지.
그마저도 유벤 연합왕국은 확고한 중심이 되는 1등 국가가 버티고 있어서 여차저차 연합이 유지되는 건데, 겨울 삼국은…
“겨울 삼국은 2약 1최약 아닙니까?”
연합의 중심으로 굳건히 버틸만한 국가가 없다. 오히려 확고한 구멍이 있는 편이지.
“1최약이라니. 듣는 루센 왕국이 서운할 수 있으니 어디 가서 그런 말은 하지 말게.”
“소신은 루센이라고 말한 적이 없─”
“허나 장관의 말처럼 겨울 삼국에는 연합을 묶을만한 국가가 없다네. 스티니예와 노스고르의 국력은 비슷하고, 루센은 말할 것도 없지 않나.”
잠깐 입을 달싹이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나와 황제의 뜻이 일치한다는 건 확인했으니까.
“그래서 머리가 복잡하기 짝이 없어. 독자 행보를 걷던 국가들이 연합을 한다는 것도 의아한 일인데, 자신들의 국력을 가장 잘 알고 있을 당사자들이 연합을 부르짖는다? 대체 무슨 이득이 있길래 그러는 건지 원.”
“그나마 제국의 허락을 먼저 구해서 다행이지 않습니까? 연합부터 이루고 사절단을 보냈다면 더 골치 아팠을 겁니다.”
“글쎄. 짐의 눈에는 반드시 허락받겠다는 의지가 보이네만.”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왕국이 공식 외교 루트를 통하여 제국의 허락을 구한다면, 이미 그 안건이 국책 사업이라는 의미다. 제국이 반대한다고 포기할 정도의 마음가짐이면 애초에 말도 꺼내지 않았을 터.
“혹 어떤 형태의 연합을 이루겠다거나, 그런 말도 있었습니까?”
“유벤보다 느슨한 형태를 계획 중이더군. 대외적으로 한 명의 국왕을 내세우는 유벤과 달리, 겨울 삼국 연합은 세 국왕이 동시에 나선다고 하네.”
더욱 혼란스러운 말이다. 기껏 연합을 이루는데 대가리도 세 개라고? 그러면 굳이 연합을 이룰 필요가 있나?
“복잡하군요.”
“복잡하지.”
그렇게 말한 황제는 탁자에 내려두었던 보드카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뭐, 일단은 외무성이 보다 자세한 정보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보류할 생각이네. 카드가 부족한 상황에서 판을 꾸려봤자 일이 꼬이기만 하겠지.”
“실로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황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할 안건도 아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외교는 본래 상당한 협의와 양보가 필요한 일이니까. 아마 당사자인 겨울 삼국도 제국과 오랜 기간 실랑이를 벌일 각오가 되어있겠지.
“헌데 폐하.”
“말하게.”
“만일 겨울 삼국이 하나의 연합을 이룬다면… 아르메인의 시선을 끄는 친우로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혀.”
일말의 고심도 없는 단호한 대답이라 조금 놀라고 말았다.
“겨울 삼국이 제국의 충실한 친우가 될 수는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르메인의 관심을 끌 여력은 없다네.”
물론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렇게 말한 황제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남은 보드카를 단숨에 털어마셨다.
‘상상 이상으로 똥땅인가 보네.’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황제가 확언을 할 정도라니. 도대체 겨울 삼국의 국력은 얼마나 처참한 것일까.
괜히 내 마음이 아플 지경이다.
외무성은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정보를 확보했다. 설마 저택으로 돌아가기 전에 보고를 올릴 줄 누가 알았겠나.
“거 참, 빠르기도 하군.”
황제에게도 예상외의 속도였는지, 헛웃음을 흘리며 시종들이 가져온 서류 더미를 확인했다.
조금 슬프다. 이제 돌아가려던 찰나에 서류가 도착하다니. 이러면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라며 도망치기도 애매하잖아.
“…아, 과연.”
심지어 황제의 반응을 보니 개인적인 호기심까지 생겼다.
처음부터 겨울 삼국이 연합한다는 걸 몰랐다면 모르는 대로 지냈겠지만, 애석하게도 이미 들어버린 상태다. 이 상태로 집에 돌아가면 자다가도 ‘그래서 그 새끼들 왜 연합하려는 거지?’ 라며 벌떡 일어날 미래가 뻔하다.
끔찍한 일이다. 역시 인간의 가장 큰 적은 호기심이야.
“장관.”
“예, 폐하.”
“장관도 읽어보게나. 생각보다 안타까운 이유였어.”
더욱 호기심이 증폭됐다.
***
빠르게 서류를 확인하는 장관을 보다가 새 보드카 병을 개봉했다.
어쩐지 외무성이 기이할 정도로 빠르게 보고를 올린다 싶었는데, 외무성이 정보를 확보한 게 아니라 겨울 삼국에서 자신들의 사정을 제국에 보고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겨울 삼국이 외무성을 통하여 올린 보고서─ 아니, 청원서는 보는 사람의 가슴이 절절해질 정도로 안타까웠다.
‘따로 살면 죽을 게 뻔하니 뭉쳐서 버티겠다라.’
척박한 영토. 한정된 자원. 더 이상 외부 확장이 불가능할 정도로 고착화된 국경. 바다가 자주 얼기에 원활하지 못한 대외 무역.
이 모든 것이 결합된 겨울 삼국은 국체 보존 자체가 한계에 이르렀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텼지만, 앞으로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상황이 쭉 이어지면 무조건 망국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겨울 삼국은 연합을 택했다. 딱히 자신들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 혹은 힘을 합해 따뜻한 곳으로 남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적어도 자신들은 국경이고 관세고 나발이고 전부 벗어던진 채 뭉쳐야 살아남을 길이 보이니까. 혹한에서 혼자 얼어 죽을 바에는 뭉치기라도 하는 게 이로우니까.
‘아무리 혹독해도 사람 사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만년설의 땅이니 뭐니 해도 나라가 존재해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생각했거늘. 혹한 속에 적응한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이었다.
괜히 겨울 삼국에게 미안해졌다. 특히 겨울 삼국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루센에게는 고마움마저 느꼈다. 그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이런 보드카를 만들어줬으니.
“심각한 상황이군요.”
마침 서류를 읽은 장관은 다소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연합한다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겁니까?”
그리고 내가 애써 외면했던 진실을 언급했다.
비렁뱅이는 셋이 뭉쳐봤자 비렁뱅이일 뿐이라는걸. 빚이 뭉쳐봤자 빚이 3배가 되는 것뿐이라는걸.그 잔인한 진실을 장관이 입에 담고 말았다.
“그렇다고 거절하기는 곤란하지 않나. 말 그대로 국운을 건 결정인데, 제국이 난색을 보이면 그 원망은 제국을 향하겠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허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마지막 발버둥은 치고 죽는 것이 겨울 삼국에게도 좋지 않겠나.
그러니 제국은 수락할 수밖에 없다. 무언가 좋지 않은 꿍꿍이가 있는 연합이라면 거절하거나 무언가 대가를 받고 수락했겠지만, 철저한 생존을 위한 연합이라면 당장 하라고 윽박을 질러야 할 수준이다.
‘정말 겨울 삼국이 무너지면 그건 그거대로 곤란하니까.’
사실 대륙 북동부 지역은 예로부터 혼란스러운 지역이었다. 척박한 영토와 혹독한 기후, 한정된 자원과 흉포한 야만족들의 조합. 덕분에 대륙 북동부와 접한 국가들은 야만족들의 침공과 약탈에 시달려야 했다.
그 난동이 잠잠해진 것은 겨울 삼국이라는 이성적이고 문명적인 외교 주체가 생긴 덕분이다. 헌데 겨울 삼국이 무너지면 대륙 북동부와 그 인근 지역은 다시 야만의 시대로 복귀할 터. 그로 인한 대륙적 혼란은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다.
‘…이걸 어떻게 살려야 하지?’
하지만 필요한 것과 가능한 것은 별개의 문제다. 겨울 삼국의 존재는 대륙의 평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나, 겨울 삼국의 태생적 한계는 그 필요성마저 웃돌고 있다.
차라리 겨울 삼국이 이웃 국가라면 대규모 교역으로 숨이라도 불어넣어 줄 텐데. 먹고 살 물자가 유입된다면 국가 보존 자체는 가능하니까.
“안타깝군. 교역이라도 편하면 존속은 가능할 텐데.”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
“아.”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한 장관의 탄성에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뭐지? 아무리 봐도 답이 없는 상황인데, 내가 모르는 방법이라도 떠오른 건가?
***
교역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생각난 생물이 있었다.
‘지즈.’
빠른 속도와 전열함 수준의 크기, 그에 비례하는 어마어마한 힘을 자랑하는 비행 생물.
북방 중에서도 북부 지역에 자리 잡은 것에서 알 수 있듯, 추위에 대한 내성이 그럭저럭 괜찮은 독수리.
‘얘를 겨울 삼국으로 보내면 되지 않나?’
겨울 삼국이 절실하게 원할 물자를 등에 태우거나, 혹은 상자에 가득 실어서 그 상자를 지즈가 발로 잡게 하면 된다. 그러면 지즈가 한 번 왕복할 때마다 전열함 여러 척 분량의 물자가 유입될 수 있다.
물론 평범하게 해상 무역을 하는 것보다는 부족한 물량이겠지. 그래도 죽어가는 나라에 생명수를 공급하는 수준은 된다.
‘대가는 고객부터 살린 다음에 받아야지.’
망국 직전에 제국이 내려주는 자비. 지즈의 긴급 구호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겨울 삼국은 제국의 영원한 충신이 될 거다.
아무리 국제 관계에 영원한 동맹과 적은 없다지만, 나라를 살려줬는데 배신을 하는 건 신의를 넘어선 문제지 않나. 최소한의 도리조차 지키지 않는 국가와 어떻게 외교를 하겠어. 돈을 좋아하는 상인도 사람과 거래를 하지, 짐승에게 장사를 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기에 지즈 활용법을 슬쩍 황제에게 말했고,
“호오.”
제법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그렇군. 지즈를 합법적으로 겨울 삼국에 보낼 수 있다면, 제국의 활동 범위는 아르메인 후방과 유벤 북부에도 닿겠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한 걸 얹은 반응이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