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98)
로판 속 공무원 698화(699/945)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 내가 사랑하는 순백의 나라. 조상 대대로 지키고자 했던 평화로운 터전.
그것이 나, 유리 7세가 다스리는 루센 왕국이다. 비록 대륙 사람들에게는 가혹하고 차가운 혹한의 나라라고 불리지만, 아무리 혹한의 환경이라도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곳이다. 우리의 육체와 영혼이 살아가는 지역이다.
그렇기에 다소 가난하더라도, 다소 춥더라도, 다소 힘들더라도 이 왕국을 사랑했다. 이 루센의 만년설처럼 나의 나라, 나의 신민들을 변함없이 사랑했다. 그것이 왕으로 태어난 나의 사명이기에.
그리고 혹한 속에서도 이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준 조상들을 향한 예의이기에.
“전하.”
“대신? 한창 바쁠 터인데 무슨 일로 왔소?”
나 또한 이 아름다운 나라를 무사히 후손들에게 물려주리라 다짐하던 중, 외부대신이 접견을 청하였다.
근래 루센 왕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내가 아닌 외부대신이다. 연합 창설을 위해 스티니예 왕국, 노스고르 왕국 외교부와 바삐 대화를 나누는 중이며, 제국에게도 연합 창설을 간청하는 중이지 않던가. 왕이 무능하여 신하에게 과도한 짐을 주는 것 같아 늘 미안할 뿐이다.
“오늘도 오트밀로 끼니를 때우시는 겁니까?”
허나 저 충직한 신하는 이 무능한 국왕을 원망하기는커녕 도리어 건강을 걱정해 주고 있다.
하여간 미련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차라리 욕심이 넘치는 사람이라면 경계라도 했을 텐데.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 과인이 무슨 염치로 풍족한 식사를 하겠소. 오히려 이 오트밀조차 과인에게는 과분한 만찬이지.”
“그런 말씀은 마시옵소서. 전하께옵서는 이 루센의 모든 것이오며, 기둥이신 분입니다. 전하께서 강건하셔야 루센이 굳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허허, 기둥은 과인이 아닌 외부대신 같소만.”
“전하.”
다시 잔소리를 쏟아내려는 외부대신에게 손을 내저었다. 이런 대화는 결국 끝나지 않는 왕의 겸양과 신하의 충언으로 이어지는 법이니.
“대신의 말처럼 강건하기 위해서는 마음 편히 식사를 해야 하오. 그러니 복잡한 이야기는 버려두고, 용무부터 처리하는 게 어떻소?”
“…예, 전하.”
내 말에 외부대신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제국 외무성에서 아국의 청원을 황제에게 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보고를 입에 담았다.
“생각보다 빠르구려. 몇 주는 지나야 황제에게 닿을 것이라 생각했거늘.”
“마침 황제도 연합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외무성에게 사소한 정보라도 전부 올리라고 했다더군요.”
“다행이로군.”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가 삼국 연합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관심을 보인다면 협상을 이어나가기 용이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대화 상대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이 아닌, 해당 안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이건 소신과 작은 친분이 있는 관료의 말입니다만.”
이어지는 말에 상체를 외부대신 쪽으로 기울였다.
아무리 루센이 대륙 내에서 약소국 중의 약소국으로 평가받지만, 하나의 독립국이기에 외부’대신’의 권위는 존중받는 편이다. 그런 대신과 친분이 있는 관료라면 제국 외무성에서도 부장급은 될 터.
부장급 관료가 비공식적으로 전해준 정보라면 이번 연합 결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외무성 내의 반응이라거나, 제국 내 다른 부서의 움직임이라거나, 황제의 호응도 같은─
“황제와 감찰성 장관이 연합 문제로 회동을 가졌다고 합니다.”
“…황제와 감찰성 장관이?”
“예, 전하. 허언을 할 자는 아니니 확실합니다.”
외부대신의 확언에 무심코 침을 삼켰다.
제국의 지도자와 실세의 회동이라니. 황제가 이번 일을 무엇보다도 진지하게 여긴다는 뜻 아닌가.
‘역시 연합으로 나아가는 게 정답이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실세와 논의할 정도로 황제가 이번 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거절로 끝낼 것이라면 이만큼 행동을 취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황제도 루센을 비롯한 삼국의 고통과 열악함을 충분히 공감하게 될 거다. 제국에 충성을 보이는 왕국들이, 혼란스러운 대륙 북동부를 지키고 있는 파수꾼들이 망국의 위기라는 걸 인지하게 될 거다.
일이 그렇게 흘러가면 황제에게 긍정적인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가 무너지면 대륙이 귀찮아진다는 걸 황제도 알 터이니.
‘신께서 루센을 보우하심이다.’
나도 모르게 신께 감사드렸다. 우리가 연합이라는 새로운 길을 떠올릴 수 있었던 건 신 덕분이었으니까.
얼마 전, 신성교국의 차기 성자가 대륙의 성지들을 둘러보겠다며 성지 순례를 시작했다. 그 순례의 첫 번째 여정지는 루센 왕국이었고, 그 후로는 다른 겨울 삼국을 방문했다가 곧장 제국으로 향했다.
여명 교단조차 우리 겨울 삼국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본다는 걸 입증한 상황. 그 일을 계기로 우리 겨울 삼국의 동질감은 급속도로 상승하였고, 서로의 상태가 만만치 않게 열악하다는 것도 덩달아 깨달았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사이좋게 망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연합이라는 길을 택했다. 어차피 여명 교단조차 우리를 하나로 본다면 정말로 하나가 되리라. 어차피 따로 살아서 망할 거라면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리라. 왕으로서 신민들을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리라.
‘실로 보우하심이야…’
솔직히 다소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택한 길이기도 하다. 마지막 발악이라는 말처럼 방법이 없기에, 길이 안 보이기에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던진 카드기도 했다.
헌데 그 카드가 판을 휘젓고 있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 Kieeeeeeeeeeeeeee──!!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저, 전하!”
이윽고 밖에 있던 왕실 근위대장이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새가, 거대한 새가 왕궁 위로 나타났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함께.
***
지즈를 활용하여 겨울 삼국에 대규모 물자를 공급하고, 겨울 삼국을 제국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충성스러운 국가로 만들자.겸사겸사 겨울 삼국을 지즈 주둔지로 삼아 제국의 활동 범위를 아르메인 후방과 유벤 북부까지 넓히자.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이보다 좋은 시나리오는 없다. 지즈 하나만 고생하면 모두가 행복한 완벽한 결말이 만들어진다.
문제는 지즈가 대륙 단위 택배원 역할을 맡을까, 그것이 관건이었다.
‘겨울 삼국이 어디 옆 동네도 아니고.’
제국과 겨울 삼국의 거리는 말 그대로 대륙의 끝과 끝이다. 심지어 사람 살기 괜찮은 유벤과 달리 혹독하기 짝이 없는 만년설의 땅이다.
그런 곳으로 한 번도 아닌 잦은 원정을 떠나라는 건 지즈에게 너무 가혹한 부탁이지 않나. 가다가 추워서 회항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다.
– 겨울 삼국이요?
그렇기에 지즈에게 통보가 아닌 진심 어린 설득과 부탁을 시도하였고,
– 거기가 어디예요?
“여기.”
– 오? 그럼 저 거기까지 놀러 가도 되는 거예요?
“어… 그렇지?”
– 할래요! 나 할래!
지도를 보자마자 격한 반응이 돌아왔다.
“괜찮겠냐? 한 번만 가는 게 아니라 주기적으로 가야 하고, 맨몸으로 가는 것도 아니야.”
너무 순순하게 수락한지라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얘가 겨울 삼국까지 가는 걸 어쩌다 한 번 가는 해외여행 정도로 생각하는 건가? 해외여행이 아니라 해외 노동 파견 수준인데?
– 괜찮아요! 뭐 그거 얼마나 무겁다고!
“자주 가는 건…”
– 자주 가면 오히려 좋죠! 합법적으로 멀리 놀러 갈 수 있는 건데!
히히 웃는 지즈를 보니 아까까지 고민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나는 것밖에 모르는 바보…’
지즈가 신이었던 시절에 영원한 푸른 하늘이 했다는 말.
역시 언니라서 그런지 동생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것밖에 모르는 바보처럼 지즈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어.
– 그치? 새 아니랄까 봐 나는 걸 너무 좋아해.
‘…듣고 계셨습니까?’
– 방금 전까지 지즈랑 대화 중이었거든. 안 그래도 제국은 전부 둘러봐서 심심하다고 징징거리던 참이었어.
영원한 푸른 하늘의 말에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기분이 좀 묘하다. 단순히 세상 구경을 하고 싶어서 북극까지 배달을 가는 배달원이라니.
– 좋- 아! 이참에 하늘의 위엄을 대륙 반대편에도 알려야지!
아니, 어쩌면 단순 여행 목적이 아니라 나름 신앙적 이유인가?
물론 신앙적 이유가 포함되어도 지즈의 기행이 정상적이라는 건 아니다.
– 하늘의 신 영원한 푸른 하늘과! 그 신수! 지즈의 위엄을!
– 오히려 망신만 시키고 올 것 같은데…
날개를 퍼덕이며 기뻐하는 지즈와 홀로 중얼거리는 영원한 푸른 하늘.
자매의 온도 차이가 너무 극심하여 웃음이 터질 뻔했다.
당사자의 수락을 받고 나니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겨울 삼국에 맛보기 용으로 전달하는 물자다. 그 종류와 양이 많을 필요는 없으니, 적당히 제도 인근 물량으로도 충분히 맛보기 분량이 편성되었다.
그렇게 지즈는 빠른 속도로 대륙 북쪽 바다를 거쳐 루센 왕국으로 향했고,
“루센 왕국의 국왕이 직접 외무성에 연락을 걸었네. 제국의 관용과 자비에 루센의 신민들을 대신하여 감사하다더군.”
“빠르기도 하군요.”
그래, 빠르기 짝이 없다. 지즈의 배달 속도도, 택배를 받은 루센 국왕의 감사 표현도 상상 이상의 속도다.
“헌데 폐하. 삼국 중 루센에 먼저 물자를 보내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내 말에 황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택배가 루센에 먼저 가든, 스티니예에 먼저 가든, 노스고르에 먼저 가든 큰 상관은 없다. 그냥 지즈에게 가고 싶은 곳부터 가라고 해도 무방했다.
허나 황제는 굳이 루센을 지목했다. 혹시 그동안 받은 보드카에 대한 보답인가?
“루센이 가장 먼저 망할 것 같았네.”
“아.”
짧고 강렬한 대답이라 절로 숙연해졌다.
“뭐, 이제 망할 일은 사라졌으니 다행이지. 곧 스티니예와 노스고르에도 물자가 도착할 테니, 삼국에게 연합이 아닌 국경 개방과 관세 철폐 정도로 끝내라 말할 생각이야.”
“확실히 그 정도로도 충분할 겁니다. 삼국에 유입된 물자가 삼국 내부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걸로도 생존은 가능─”
“물론 제국도 그 조약에 포함될 예정이고.”
“…실로 현명하신 결정입니다.”
순간 움찔했지만 최대한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를 살려줬는데 제국에게 국경과 관세를 열어 보이는 성의는 보여야지. 아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