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699)
로판 속 공무원 699화(700/945)
혹한이 몰아치는 만년설의 땅에 거대한 독수리가 강림했나니. 그 독수리가 짊어진 은총은 굶주리고도 허약해진 신민들에게 한 줄기 광명과 희망이 되었으리라.
─라는 성경 구절이 생길 것만 같은 지즈의 여행은 삼국의 열렬한 환호와 감사 인사를 받으며 마무리되었다.
– 엄청 환영받고 왔어요! 선물도 잔뜩 주던데요!?
그리고 삼국의 감사는 진심이었는지, 안 그래도 열악한 삼국은 구세조 지즈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루센 왕국의 특산품인 보드카와 초콜릿은 물론, 노스고르 앞바다에서 주로 생산된다는 흑진주, 스티니예에서만 서식하는 백담비의 가죽까지. 삼국이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가 지즈의 등에 가득가득 실려있었다.
“이것도 가죽으로 보내지, 왜 살아있는 걸로 보냈대?”
– 삐에에엥…
– 삐이잉…
그 와중에 백담비 두 마리는 가죽이 아니라 살아있는 채로 실려왔다.
조금은 혼란스럽다. 전부 살아있는 상태로 보냈다면 제국에서 키워보라고 보낸 건가 싶겠으나, 다른 백담비들은 가죽으로 변한 상황에서 딱 두 마리만 보냈다.
대체 뭐지? 혹시 이 가죽 중에 이 녀석들의 가족이라도 있는 건가? 그래서 더러운 인간들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지즈의 등에 무단으로 올라탄 거고?
– 아, 걔네는 특별한 백담비래요.
“특별?”
– 뭐라더라? 성스러운 날에 성스러운 장소에서 태어났다고 하던가? 쟤네가 태어난 곳이 원래는 1년 내내 눈이 내리는 곳이었는데, 딱 쟤네가 태어난 날에는 날이 맑아서 희망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했어요.
그럭저럭 괜찮은 스토리라 납득했다.
확실히 스티니예도 루센 수준은 아니지만 더럽게 춥고 눈이 많은 나라지 않나. 그런 나라에서 맑은 날에 태어난 백담비 한 쌍? 영물 취급을 받으며 온갖 예쁨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그런 영물을 왜 제국에 보낸 건지 모르겠다. 얘네 입장에서는 잘 먹고 지내다가 봉변을 당한 기분일 텐데.
“네가 기를래?”
– 엥? 쟤네 저 무서워하는데요?
“그래 보이기는 하네.”
지즈가 땅에 착지하자마자 허겁지겁 내 몸 뒤로 숨은 두 백담비. 이 두 녀석을 지즈의 손에 맡긴다면 스트레스로 돌연사하거나, 눈물을 머금고 필사의 대탈출을 시도할 터.
‘어차피 황궁으로 보내야 하지만.’
오들오들 떨고 있는 백담비 두 마리를 품에 안았다.
이 백담비들은 스티니예 왕국에서 제국에게 보낸 공물 같은 거다. 그렇다면 지즈의 손도, 내 손도 아닌 황제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 맞다.
마침 황궁 구석에는 상황이 운영하는 동물원도 있잖아. 추운 곳에서 지내던 녀석들이 따뜻한 제도에서 지낼 수 있을까 걱정이지만, 그 정도 문제는 마법사들이 해결하겠지.
‘황태녀가 좋아하겠어.’
새로운 동물 친구에 기뻐할 황태녀를 떠올리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 녀석들도 추운 나라의 영물보다는 제국 차기 황제의 애완동물로 살아가는 걸 좋아할 거다.
겨울 삼국의 보답품을 받은 황제는 슬픔과 측은함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스티니예의 가죽과 노스고르의 흑진주는 상당한 품질을 자랑하는 물건이지. 능히 일국의 주력 상품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어.”
“그만큼 폐하에 대한 공경과 감사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이겠지요.”
“다르게 말하자면 저런 물건을 가지고도 교역이 어려워 굶어가고 있었다는 걸세.”
절로 숙연해지는 발언이라 무심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맞는 말이다. 가죽이나 진주는 보통 사치품으로 분류되고, 반드시 큰 손들의 수요가 나오는 물건이다. 그런 물건 중에서도 상등품을 대량으로 팔 수 있다면 국고는 빵빵해질 수밖에 없다.
허나 스트니예와 노스고르는 가난하고도 가난했다. 바다가 자주 얼기에 해로로 교역을 하기도, 눈이 많이 내리기에 육로로 교역을 하기도 어려웠으니까.
‘심지어 국경을 접한 국가도 썩 많지 않았지.’
악으로 깡으로 육로를 사용하여 타국에 도달해도 문제다. 타국 입장에서는 자신들 외에 판매처가 없다는 걸 알잖아.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가격을 후려쳐서 구입해도 무방하다.
‘끔찍하네.’
제대로 팔 수만 있으면 배부르게 살 수 있는 물건이 있는데 제대로 팔지 못하다니. 그 정도 악조건은 달고 있어야 나라가 망국 직전까지 가는구나.
아니, 어쩌면 진작 망했어야 할 나라였는데 가죽과 흑진주로 버틴 걸 수도 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루센은 더 심각하네. 우리처럼 따뜻한 곳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 보드카와 초콜릿은 기호품에 불과하지만, 루센처럼 혹한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생존 물품이야.”
“루센에 보내는 물자를 늘려야겠습니다.”
“그래야겠지. 이제 제국은 루센의 유일한 희망이니.”
유일한 희망이라는 말에 황제의 발치에서 어슬렁거리는 백담비 한 쌍을 바라봤다.
스티니예는 저 두 마리를 희망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한다. 허나 제국에게 희망의 상징을 바쳤다는 건, 이제 일개 짐승이 아닌 제국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숭배하겠다는 뜻이겠지.
애잔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모든 희망을 걸어야 하는 절박함과 처절함.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 감정이야.
“아, 닷새 후에 겨울 삼국의 외부대신들이 제국에 방문할 예정일세. 그때 제국과 겨울 삼국 사이의 시장 개방과 관세 철폐 조약을 맺을 테니, 지즈는 1주 후에 다시 보내도록 하지.”
“예, 폐하. 지즈에게 전달해두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뒤통수에 황제의 시선이 느껴졌다.
“…폐하?”
“장관. 짐이 궁금한 것이 하나 있네만.”
“말씀하소서.”
잠시 턱을 매만진 황제는 이윽고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레비아탄도 보내는 건… 무리겠지?”
“속도도 속도지만 여러 의미로 난리가 날 겁니다.”
“아쉽군. 운송량은 레비아탄이 압도적일 텐데.”
작게 혀를 차는 황제의 모습에 레비아탄의 덩치를 떠올렸다.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레비아탄은 지즈처럼 광속으로 날아다닐 수 없으니 장시간 이동해야 한다는 건 둘째 치고, 섬과 맞먹는 덩치라면 바다로 이동하든 하늘로 이동하든 문제다. 이동 경로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환장하며 제국의 외무성을 찾을 거다.
물론 레비아탄이 소란을 일으켜도 나와는 큰 상관이 없지만, 괜히 대륙에 소란이 생기면 그 소란이 구르고 굴러 어떤 사건으로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소란은 처음부터 없는 게 제일이야.
“뭐, 물자가 너무 과하게 공급되면 고마운 마음이 줄어들겠지. 오히려 지즈를 활용하는 게 유용하겠어.”
황제도 진심으로 레비아탄을 투입할 생각은 아니었는지, 금방 미련을 털어버렸다.
***
왕궁 정원에 쌓인 물자를 보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흘렸을지도 모른다. 차가운 눈을 녹이며 흘러내렸을지도 모른다.
“신이시여.”
가득 쌓인 물자 앞에 무릎을 꿇으며 신께 감사를 드렸다.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인도하신 우리의 주 에넨을 향해.
– 난 영원한 푸른 하늘을 따르는 신수! 하늘의 제왕 지즈! 앞으로 자주 올 테니 잘 부탁해!
그리고 우리에게 기적과 은총을 선사한 신수와 그 주인인 하늘을 향해.
영원한 푸른 하늘이라고 했던가. 여명 교단이 공식으로 그 존재를 인정한 두 신 중 하나였지. 우리 루센 왕국과는 큰 연관이 없는 일이라 정보가 부족하지만, 북방 유목민들이 주로 믿던 신이라고 기억한다.
헌데 그 하늘 덕분에 우리의 숨이 이어지게 되었다. 제국의 자비가 하늘의 신수 덕분에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늘을 공경하고 경외해야 한다. 에넨에게 감사하는 만큼, 제국에게 감사하는 만큼─ 하늘 또한 우리의 은인으로 여겨야 한다.
‘여명 교단도 인정했으니 우리가 섬겨도 문제 될 것은 없다.’
영원한 푸른 하늘이라는 신이 과거 황혼 교단처럼 여명 교단의 혐오를 받는 이교도였다면 절대 숭배할 수 없다. 안 그래도 살아가기 어려운 우리가 교단의 미움까지 받으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꼴이기에.
하지만 영원한 푸른 하늘은 황혼 교단이 아니다. 엘프들의 신인 콘스탄티나처럼 다른 종교이되, 여명 교단의 존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을 바쳐도 문제가 없다.
‘…신전을 만드는 건 무리겠지만.’
애석하게도 현 루센 왕국의 재정으로는 새로운 신전을 만들 수 없다.
작고 아담하게 만든다면 가능은 하겠으나,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준 신의 첫 신전이다. 작고 보잘것없게 만들 바에는 만들지 않는 것이 낫다. 언젠가 재정에 여유가 생기면… 그때 제대로 만드는 것이 옳다.
‘우선 석상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그래도 신앙의 증거가 아무것도 없다면 그건 그거대로 실례인 법.
다음에도 검은 신수가 찾아온다면 신에 대해 물어보자. 영원한 푸른 하늘은 어떤 신인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석상 하나는 멋들어지게 만들 수 있다.
“외부대신.”
“예, 전하. 하명하시옵소서.”
내 뒤에 있던 외부대신을 부르자, 외부대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하였다.
이해한다. 나도 조금만 마음이 풀어지면 펑펑 눈물이 나올 것 같으니.
“황제가 보드카를 좋아한다는 게 오늘처럼 기쁠 수가 없소.”
이건 진심이다. 스티니예의 백담비 가죽, 노스고르의 흑진주와 달리 우리 루센의 보드카와 초콜릿은 평범한 기호품에 불과하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이고, 사치재로 쓰기에는 딱히 고급스럽지 못한 물건이다.
허나 그러한 물건이 황제의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의 영혼이 담긴 보드카로도 충분히 황제를 흡족하게 만들 수 있다. 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마음 같아서는 국보라도 선물로 주고 싶지만…”
“그런 귀한 건 루센에 존재하지 않지요.”
“애석한 일이지.”
정확히는 타국에게 선물로 줄만한 국보가 없다.
왕실의 역사가 깃든 양도 불가능한 보물, 루센의 처절한 눈물이 깃든 상징적 유물. 이런 걸 제국에게 감사의 선물로 주기는 애매한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더욱 철저하고 확실한 충성을 보여야 한다. 제국의 철저한 신하가 되어야 한다.
“외부대신.”
“예, 전하.”
“훗날 내 아이들이 장성하면… 한 명 정도는 제국 아카데미로 보내야겠소.”
그 말에 외부대신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딱히 대답을 원하고 한 말은 아니니 상관없다.
외부대신이 제국에 방문하여 조약을 체결하고 며칠 후.
– 안녕! 나 다시 왔어!
“어서 오시오, 지즈. 다시 보니 반갑소.”
영원한 푸른 하늘의 신수가 다시 방문했다.
“지즈. 궁금한 것이 하나 있소만.”
– 응? 뭔데?
“그대가 섬기는 신에 대해 알고 싶소. 우리는 유목민의 신앙에 무지해서─”
– 영원한 푸른 하늘에 대해 궁금하다고!?
지즈의 눈이 반짝였다.
– 그렇게 궁금하다면 어쩔 수 없네! 일단 영원한 푸른 하늘에 대해 알려면 하늘이 처음 눈을 뜬 태초 시대부터 설명해야 하는데─!
부리도 사정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활발한 성격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말이 많을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