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
제 7화
아카데미 입성 – 2
칼이 실로 오랜만에 타는 마차와 개판인 도로 상태의 결합으로 인해 무엇을 먹었는지 강제로 확인할 위기에 처하고, 그걸 모르는 교감이 식은땀을 흘리며 칼을 안내할 무렵. 아침 해가 떠오르는 그 무렵은 아카데미에 등교하기 위한 학생들이 하나 둘 눈을 뜰 시간이었다.
밖에서는 상점을 열거나 각자의 생업을 위해 인파가 이동하며, 안에서는 학생들이 교육을 들을 준비를 한다. 거대한 아카데미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소녀의 얼굴을 간지럽힌다. 그것이 거슬리는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지만 결국 포기하고 눈을 뜬다. 이 햇빛이 소녀가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알람이나 다름 없었으니.
흰 이불에 돌돌 말려있던 소녀가 한 바퀴 구르며 이불에서 벗어났다가 갑자기 몸에 닿는 찬 공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입학식이 이루어지고 이제 열흘 정도가 지난 3월 중순, 아직 날씨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아침이었다.
“흐아아암~”
오히려 갑작스러운 한기가 소녀를 확실히 깨운 것인지 누워있던 소녀가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고 기지개를 폈다. 아직 수업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지만 너무 느긋하게 움직이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 버린다.
이 열흘 동안 그렇게 지각할 뻔한 것이 벌써 2번이니 더 조심해야지. 빠르게, 하지만 확실히 몸단장을 한 소녀는 마지막으로 화장대 거울에 비친 모습을 확인하고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화이팅!”
소녀는 남들이 감히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고, 범접하기 어려운 활발함을 지니고 있다. 꽤 많이.
“흐흐흥, 흐흥♪”
딱히 콧노래 같지는 않지만 당사자는 콧노래라고 주장할 무언가를 흥얼거리며 소녀가 가볍게 발걸음을 옮긴다. 걸음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분홍빛 장발은 마치 때 이르게 핀 벚꽃잎이 휘날리는 것만 같았다. 반짝이는 눈동자는 구름 없는 하늘을 담아 놓은 것처럼 티없이 맑은 푸른색이었다.
정체 모를 소리에 소녀를 돌아다 본 행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콧노래를 들었던 것이라고 인정하리라. 콧노래의 완성은 얼굴이니까.
“루이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분홍 머리의 소녀, 루이제를 부르는 목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고, 그녀를 부른 게 누구인지 확인하고는 활짝 웃었다.
“이리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극적으로 다시 만난 것 마냥 기뻐하며 이리나에게 달려가 팔짱을 끼는 루이제. 물론 이 둘은 오랫동안은 커녕 어제 저녁도 같이 먹었다. 어쨌든 절친한 둘이 뭉치며 이동 속도는 1/2로 감소하였고, 그 뒤로도 일행은 점점 불어났다.
누군가 지나가다 루이제를 부르면 루이제는 반갑게 인사하며 일행에 합류시켰다. 그렇게 1/3, 1/4, 1/5. 루이제의 이동 속도는 이속 감소 디버프가 깔린 장판을 다이렉트로 지나가는 것 마냥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어떠랴, 단체 이속 감소를 당한 다섯 중 누구도 그것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정을 위해서라면… 지각도 감수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러다 지각하겠다. 어제도 그러다가 위험하지 않았어?”
그래도 루이제가 지각하는 것은 막아주려는 방패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지각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아, 에리히! 좋은 아침!”
“그래. 좋은 아침.”
루이제에게 말을 건 에리히가 피식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루이제에게 다가가자 루이제와 가장 가까이 있던 이리나가 슬쩍 자리를 만들어준다. 그 배려에 머쓱하게 웃지만 그래도 사양할 생각은 없는지 슬쩍 루이제의 옆으로 자리 잡는 에리히.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직관하던 이리나와 세 명의 소녀들은 자기들끼리 수근거리며 키득거렸다. 원래 자신의 연애 사정은 치열한 전투지만, 남의 연애 사정은 강 건너 불구경 만큼이나 지켜보는 재미가 있지 않던가. 안타깝게도 아직은 연애가 아닌 일방적 관심이지만, 가끔은 그래서 더 볼 만하기도 하다.
일방적 관심을 쌍방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에리히가 꽤 노력해야겠지만, 그건 보는 사람들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절실한 사람이 스스로 하겠지.
결국 여섯으로 늘어난 일행. 하지만 에리히가 이속 증가 버프를 가지고 있는지 이전보다는 빨라진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와중에 대화 빈도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지.
“에리히 새치 났다.”
“그게 벌써 나면 안되는데.”
“거짓말이야. 사실 그냥 실.”
에리히의 검은 머리에서 유독 티가 나는 하얀 실 한 가닥을 떼어낸 루이제가 히히 웃으며 떼어낸 실을 바람에 날렸다. 얼굴이 서서히 붉어지는 에리히의 얼마 남지 않은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 시선을 돌린 이리나는 실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방향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 사람 누구지?”
그 말에 이리나에게 시선이 몰렸다가 이리나가 누군가를 쳐다보는 것을 알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학생도 아니고, 교직원도 아닌데?”
“이상하네. 외부인인가?”
“이 시간에 외부인이 들어올 수 있어?”
교복이 아니니 학생도 아니고, 푸른 망토가 없으니 교직원도 아니다. 의문이 퍼지는 순간 붉어지던 얼굴을 겨우 진정시킨 에리히도 이리나가 보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얼굴이 겨우 보일 정도의 거리기에 눈을 찌푸렸던 에리히는 정체모를 외부인의 정체를 확인하고 당혹감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를 흘렸다. 상대도 에리히의 얼굴을 봤는지 성큼성큼 에리히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에리히. 아는 사람이야?”
서로 얼굴을 알아본 것 같기에 루이제가 에리히에게 물었다. 에리히가 저 사람을 아는 것 같은 반응을 보였고, 저 사람도 에리히를 보자 바로 다가오고 있으니까.
루이제가 물어봄에도 에리히는 대답할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이 아는 그 사람인데, 여기에 있을 리가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집에 갈 시간도 부족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이 먼 아카데미에 있을 리가 없는데? 있으면 안될 사람이 있으면 안될 곳에 있는 것을 본 자의 충격은 쉽게 수습할 수 없었다.
그 사이에 정체 모를 사람은 코앞까지 다가와 멈췄고, 에리히를 보며 말했다.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냐?”
나는 절정을 넘어 결말이 강제 공개되기 전에 겨우 화장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차라리 한바탕 쏟아내니 속도 많이 진정됐네. 진짜 어디서 허약하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는데 왜 이러지.
근래 장시간 집무실에만 처박혀 있었고, 덕분에 햇빛을 못 쬔지도 오래 지났고, 마차도 오랜만에 탔고, 그런데 하필 길이 개판이었던데다 속도를 내느라 덜컹거림이 극심했다. 그 상태에서 식사는 해야 하니 속이 이상해도 억지로 먹었고.
음, 이럴 이유로는 충분하구나.
자아성찰을 끝내고 본관 밖으로 나가며 아카데미 내부를 둘러보았다. 좋으나 싫으나… 아니, 존나 싫지만 이제 몇 개월은 이 아카데미에 머물러야 한다. 아카데미가 보통 넓은 것이 아니니 구조를 파악해둬야지.
급한 일이 생겨서 어딘가로 가야할 때 길을 잃는다면 얼마나 꼴불견인가. 아마 어떻게든 그 소식이 장관 귀에도 들어가 조리돌림을 당할 것이다. 길도 못 찾는 감찰부장이라고. 상상만 했는데도 진짜 들은 것처럼 화나네.
머리를 쓸어 올린 뒤 본관에서 가장 가까워 보이는 건물로 움직였다. 상상으로도 이런데 실제로 들으면 더 꼴받겠지. 그런 미래는 감당할 수 없으니 최대한 빨리 구조를 파악하고자 했다. 한창 돌아다닐 때 학생들의 등교 시간이 겹치지 않았다면 완벽했을텐데.
‘어쩌지.’
학생들이 지나가면서 수근거리는 게 들린다. 하기야, 갑자기 외부인이 보이면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결국 등교 시간 동안은 학생들이 없는 본관에 박혀있기 위해 다시 본관으로 발을 돌렸고, 그때 인상 깊은 광경을 보게 됐다.
“뭐야 저 덩어리는.”
남들은 많아야 두셋이 뭉쳐 다닐 때 혼자 여섯이 뭉친 덩어리. 심지어 성비는 파멸적으로 무너졌다. 1:5 라니, 남자가 누군진 몰라도 대단하네…
‘그런데 그게 내 동생이네.’
개같은 놈. 형은 고생하고 있는데 동생이란 것이 형의 일생일대의 소원을 아무렇지 않게 누리고 연애도 하고 다닌다. 2과장보다 괘씸하다. 마침 에리히도 이쪽을 알아봤는지 표정이 굳었다. 좋아, 털러 가자.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에리히를 향해 걸어갔다. 어째 가까워질수록 동공이 떨리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예전부터 내 앞에서는 주눅이 들어있다. 딱히 괴롭히거나 한 것도 없는데.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냐?”
“어, 어. 형은?”
“평소하고 같았지.”
늘 안 괜찮았어,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치솟았지만 근처에 눈과 귀가 많으니 마음 속에 담아두기로 했다. 처음 보는 학생들 앞에서 공무원 생활 한탄하기는 민망하잖아.
옹기종기 모여있는 다섯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어색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방금 대화로 친구의 형이라는 것을 알았을테니. 그런데 유독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한 명이 튀어나왔다.
“안녕하세요! 에리히 형이세요?”
예의상 인사하는 거라고 생각하기에는 텐션이 상당한 친구가 튀어나왔다. 이게 만화였다면 눈 옆에 반짝- 이라는 효과음이 적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푸른 눈에 분홍 머리, 하이텐션. 어딜 가도 주목 받을 스타일이다.
…
…?
그런데 왜 처음 보는데 묘하게 익숙하지?
미묘한 기시감에 앞으로 치고 나온 분홍 머리를 바라봤다. 핑크… 블루… 뭔가 연상되는 게 있는데 가물가물하다. 혹시 업무 중에 본 명단에 사진이 끼어 있었나?
“그래. 칼 크라시우스라고 한다. 넌 에리히 친구니?”
상대가 먼저 이름을 밝혔다면 본인도 밝히는 것이 보편적 예법.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이름을 들으면 그만이다. 적어도 가문명을 들으면 어디서 봤는지 짐작이 갈테니.
“네, 에리히 친구 루이제라고 해요. 루이제 나이어드!”
“그렇구나.”
‘시발’
몸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지만 머리는 비상 사태에 돌입했다.
이름을 들으니 생각났다. 나이어드 남작가의 루이제. 분홍 머리에 푸른 눈. 피리 부는 사나이 마냥 사람들을 끌고 다니는 인간 카피바라. 아니, 인간 캣닢인가? 아무튼 외모와 성격으로 사람들의 애정을 받는다─ 는 설정의 여자.
‘주인공이네.’
옆에 있는 에리히를 슬쩍 흝어봤다. 긴장에 몸이 굳어 있으면서도 시선은 계속 루이제를 향해있다. 그리고 묘하게 상기된 볼. 개같은 거.
“넷이 아니라 다섯이었나…”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속으로 말한다는 게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아니, 그럴만한 일이기는 한데.
미묘한 슬픔을 담은 내 눈빛이 다시 에리히를 향했다. 정면으로 응시 당한 에리히가 움찔했지만, 나는 차마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불쌍한 놈. 네가 최약체구나.’
황자 하나, 왕자 둘, 유력 성자 후보 하나. 신분 차이가 존재하지만 아카데미에서 서로 대등하게 경쟁은 할 수 있는 차이다. 그런데 저 라인업에 제국 백작의 차남? 아, 그건 좀.
나는 애정을 담아 에리히의 어깨를 두드렸다. 스타트 라인에 서기도 전에 패할 것이 뻔히 보이는 동생을 위로하기 위해.
아카데미 파견 첫날, 원작 주인공을 만났다. 그것도 내 동생의 친구로.
심지어 ‘우린 좋은 친구 사이로 남고 싶어.’ 엔딩이 유력해 보이는 친구 사이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문득 아카데미에 입성했으니 태그에 슬슬 아카데미를 넣는 것이 맞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카데미라면 보편적으로 학생인 주인공이 스쿨 라이프를 즐기는 작품. 칼은 비(非)학생의 별을 타고난 영웅이기에 보편적 아카데미물과는 거리가 먼 놈입니다…
그래도 아카데미에서 오래 머물 것 같은데, 아카데미가 맞긴 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대충 타협했습니다. 아무튼 아카데미는 맞으니까요.
이번 화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