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0)
백이 넘는 마차가 일제히 같은 리조트에 모이는 것도 대단했지만, 리조트 하나가 모든 마차를 수용하고도 여유로운 건 더 대단했다. 정말 작정하고 만들었구나. 크라켄 서식지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박살 낸 것도 이해된다.
‘수학여행 장소는 무조건 보야르네.’
마르게타는 앞으로도 보야르가 될 것 같다고 말했지만, 이 정도면 ‘될 것 같다’ 수준이 아니라 그냥 확정이다. 이렇게 거하게 만들어놓고 단발성으로 끝내는 건 돈을 찍어내는 사람이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튼 화려하기는 확실히 화려하다. 정작 나는 여기 얼마나 머무를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지만.
‘선박 생활은 괜찮으려나.’
나에게는 험악한 세상을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새끼 크라켄을 애비애미 곁으로 보내줘야 하는 사명이 있다. 그 사명을 위해 해상 술래잡기는 필연적. 잡을 때까지 리조트는 커녕 육지도 언제 밟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리조트 근처 바다에 크라켄이 얼쩡거린다면 토벌하는 게 맞으니까. 괜히 방치했다가 학생들 뛰어노는 해안가에 튀어나오면 그만한 재앙도 없다.
“오라버니! 들어가요!”
“어, 갈게.”
마차 멤버끼리 나란히 리조트로 들어가던 루이제가 뒤에 빠져있던 나에게 손짓했다. 나한테 배정된 방도 있기는 하니 짐만 풀고 빨리 카지노로 가야겠다.
휴양지에 도착하자마자 가는 곳이 카지노라. 상황 설명 없이 겉모습만 보면 상당히 글러먹은 인간 같아 보인다. 마침 슬슬 황실 ATM에 돈을 넣을 때라 게임 몇 판 정도는 해야 한다.
‘진짜 글러먹었네.’
휴양지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하는 행동이 도박이라니, 가슴이 절로 옹졸해진다.
방은 학생들과 달리 1인실을 배정받았다. 어차피 언제부터 쓸 수 있을지는 모른다. 1인실이지만 꽤 넓고 화려했다. 물론 언제부터 쓸 수 있을지는 모른다.
“제 방은 멀지 않아요. 알아두세요, 칼 영식.”
“명심하겠습니다.”
그 와중에 방을 안내해준 마르게타가 본인의 방이 어딘지도 알려줬다. 대체 뭘 기대하고 알려주는지는 상상하기 조금 무섭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시간 되면 놀러 가겠다고 했으니 먼저 내 방에 오지는 않겠지.
그리고 적당히 짐을 풀고 카지노로 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경비들이 맞이했다. 늦었으면 납치했을 기세구나.
“어서 오십시오.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벌써? 내가 늦었군.”
“오늘 카지노에 용무가 있으셔서 아침부터 계셨습니다. 심려치 마십시오.”
공작 정도 되는 양반이 카지노에 무슨 일이 있나 싶지만 신경 끄기로 했다. 대충 황제한테 토목 사업 유치 받는 대가로 ATM에 입금 좀 하기로 했나 보지. 전부 입금하려면 아침부터 죽치고 앉아 있어야 하기는 했겠다.
그렇게 경비의 안내를 받으며 광기와 환호, 비명이 뒤섞인 카지노를 가로질러 VIP실로 향했다. 여기 분위기는 언제 와도 익숙해지지가 않네.
“안에 계십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그래, 수고했다.”
도착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는 모습이 철저하게 교육 받은 것 같다. 하긴 짧은 시간에도 금화 수백은 우습게 오고 가는 곳의 경비인데 교육이 허술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 똑똑
“각하, 감찰부장입니다.”
“왔나? 들어오게.”
황금공의 허락을 받고 문을 열자 자리에 앉아있는 셋과 딜러 하나가 보였다. 반백 머리에 시가를 문 황금공, 지팡이를 옆에 내려놓고 패를 만지작거리는 보야르 공작령의 마법사단장.
‘누구지?’
마지막 한 명은 처음 본다. 분위기를 보니 크라켄 토벌과 관련 있는 사람 같은데.
“어서 오게나. 일단 앉게.”
“예, 각하.”
자리에 앉자마자 내 앞으로 카드를 미는 딜러. 확인하니까 똥패도 이런 개똥패가 없다.
“얼마나 걸렸습니까?”
“대은화 하나라네.”
“알겠습니다.”
어차피 오늘 입금할 생각이었지만, 잔인하게도 은화 100개 가치의 대은화 단위로 털어가는 황금공의 심보에 치가 떨린다. 적어도 그냥 은화부터 시작하면 안될까?
참담한 심정으로 테이블 위에 대은화 50개를 내려놓고 하나를 바로 판돈으로 올렸다. 대은화 50개… 금화로는 다섯… 오늘 출혈이 조금 심하네.
“아, 그러고 보니 초면이겠군.”
테이블 위에 올려진 칩 대용의 대은화를 확인한 황금공이 가볍게 입을 열었다.
“2함대장일세. 근래 누구보다 바쁜 친구지.”
누군가 했더니 마법사단을 태우고 이리저리 크라켄을 찾아 헤매는 양반이었다. 그러면 이 자리에 있을만하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자 2함대장도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당분간 같이 지낼 사이니 안면이라도 트는 것이 좋지 않겠나? 패가 돌다 보면 서로 친해지는 법이지.”
“그렇군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각하.”
보통 도박에서는 패가 돌수록 사이가 험악해지는 법이지만, 애초에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돈을 따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다. 작전에 들어가기 전에 적당히 모여서 논의나 하자고 부른 모양.
“슬슬 녀석의 행동 반경이 넓어지고 있네.”
빠르게 게임을 진행하며 칩을 허공에 날리던 도중 황금공이 운을 띄웠다. 행동 반경이 넓어졌다라, 좋지 못한 소식이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 잡을지 장담할 수 없는 놈인데.
“게다가 수면 위로 나오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어. 바닷속에서 버티는 법을 체득한 것 같네.”
“놀랍군요. 크라켄은 인간만 보면 튀어나오지 못해 안달인 녀석인데.”
“그만큼 충격이 컸던 것이겠지. 한번에 소탕하지 못하고 놓친 게 문제였어.”
바다 생물이 바닷속에서 ‘네가 와’ 전법을 구사하는 건 당연하지만, 덩치 깡패인 크라켄은 거의 본능인가 싶을 정도로 수면 위로 튀어나와 함선과 인간들을 공격하고 유유히 사라지는 게 특징이다. 그런 크라켄이 이 악물고 바닷속에서 존버하며 행동 반경을 넓힌다?
‘똑똑한 새끼네.’
던전에서 본 곰이 정도의 지능은 되는 것 같았다. 아니, 곰이가 아니라 옹이였나? 대충 이응이 들어간 것 같긴 한데.
“크라켄에 유효 타격을 입히는 것이 난관이었는데 더욱 심해졌다네.”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령 마법사단이 크라켄 하나 잡지 못하는 화력은 아니다. 문제는 보여야 잡든지 말든지 하는데, 황금공이 계속 언급한 것처럼 바닷속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겨우겨우 찾아서 나오게 해도 금방 가라앉아서 딜을 박을 시간이 부족.
그래서 황금공이 나에게 크라켄 토벌 의뢰를 맡긴 것이다. 크라켄을 부모 곁으로 보낼 딜을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꽂을 수 있는 건 나니까. 물론 나 외에도 찾으면 더 있기는 한데, 마침 수학여행이랍시고 보야르로 온다고 하니 잘됐다 싶었겠지.
“마침 자네가 온다고 하니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영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아 다행일세.”
그러면서 껄껄 웃는 황금공은 전형적인 선량한 영주의 모습이지만, 가차 없이 레이즈 하는 손은 흉악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 할 얘기 다 했으니 빨리 돈 내뱉고 꺼지라는 건가. 개새끼.
“각하께서 영민을 위하는 마음이 이리도 크시니 보야르의 영민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 것 같습니다.”
남은 대은화를 전부 올인하며 가볍게 웃었다. 황금공이 영민을 위하는 건 맞으니까.
사소한 문제라면 사람 하나하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선량함이 아니라 영민이 죽으면 오는 손해, 노역이나 군역 중 사망하면 유족에게 줘야 할 보상금 때문에 저런다는 것.
그래도 유족에게 보상금을 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영주면 상위 1%의 영주기는 하다.
대은화 50개를 순식간에 털리고 VIP실에서 나갔다. 마지막까지 똥패만 주더라. 망할, 나도 한 번만 이기게 해줘.
‘내일 점심이라.’
그리고 크라켄 토벌은 내일부터 시작할 테니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점심에 항구로 오라고 했다. 와, 그래도 하루는 리조트에서 자겠네.
불행 중 다행 같은 기묘한 감정을 품고 카지노를 나가려는 찰나,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분명 머리로는 내가 아는 그 모습이 맞다고 하지만 가슴은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쟤가 여기 있어도 괜찮은 건가?
룰렛 앞에 모인 인파 중 유독 눈에 띄는 백발 남성을 향해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가까워질수록 내가 아는 그놈이 맞다.
“타니안.”
“아, 형제님?”
네가 왜 여기 있어.
“의외로군요. 형제님을 여기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그…”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왜 네가 하냐.
얘가 평범한 사제라면 성직자가 도박판에 있어도 되냐고 놀리기라도 할 텐데, 하필 그냥 사제도 아니고 차기 성자라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까딱 잘못하면 신성교국에 찍히고 ‘너 파문’ 당할 수도 있으니.
아니 그런데 진짜 얘가 왜 여기 있어.
“아하, 저보다는 형제님이 더 궁금하시겠군요.”
내 의문이 가득 담긴 시선을 눈치챘는지, 타니안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지금만큼은 형제님이라는 말 안 하면 안 될까. 카지노에서 들으니 조금 인지부조화 오는데.
“우리의 주께서는 그 어떤 어두운 곳이라도 외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뜻을 따르는 종으로서 편한 곳, 좋은 곳만 따져서는 안된다는 의미지요.”
그러면서 경건하게 양손을 모으는 타니안의 모습은 정말 성자와도 같았다. 뒷배경이 룰렛인 것만 빼면.
“온갖 욕망이 모이는 곳이라도 주의 가르침, 주의 자비를 받을 자격은 충분합니다. 이 세상에 자격 없는 곳은 존재하지 않지요.”
“그렇군.”
짧게 말하면 그거다. 카지노도 사람 모이는 곳이고, 사람은 에넨의 뜻을 따를 자격이 있으니 자신이 여기 있어도 문제 없다는 것.
…뭐, 본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고. 괜히 신경 썼다가 나만 피곤해질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갑작스레 룰렛 쪽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과 고함. 나와 타니안의 시선이 동시에 룰렛으로 향했다.
“이런, 이게 안되는 군요.”
“…….”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는 타니안의 모습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새끼,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돈도 걸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