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01)
로판 속 공무원 701화(702/945)
가아르 우데스르 바타르.
북방 대초원을 최초로 통일한 영웅이며, 유목민 역사상 유일무이한 카간.
솔직히 제국 입장에서는 적으로 만나서 그레이트 씹새끼인 거지, 객관적인 시야로 보면 영웅도 그런 영웅이 없었다. 개인의 무력으로 제국을 이길 뻔한 미친놈이지 않던가. 심지어 수천 년 동안 흩어져 살던 유목민들을 처음으로 통합하기도 했고.
그렇기에 제국은 바타르를 유목민의 황제인 카간이 아닌, 역적이라는 의미의 역천자라고 불렀다. 이는 바타르의 위엄과 권위를 깎아내리기 위한 조치였으나, 동시에 바타르의 무력을 ‘하늘도 뒤엎을만한 무력’이라고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죽인 건지 모르겠어.’
진심이다. 현재의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카간을 죽일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다.아마 회귀하는 족족 내가 죽지 않을까?
그만큼 카간을 죽인 건 기적과 기적과 기적이 겹친 결과물이었다. 그 녀석들이 죽은 건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그것이 세상에 둘도 없는 최상의 결과였다.
헌데 신기하기도 하지. 내 친우들을 죽인 원수이자 제국을 위협한 역적인데, 정작 그 괴물의 최후를 지켜보고 기억하는 건 나밖에 없다. 이 대륙에서 카간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나다.
“이게 역천자가 쓰던 무기입니다.”
게다가 카간의 유품도 우리 집 창고에 잠들어 있었다.
누가 보면 내가 카간의 후계자인 줄 알겠어. 마침 북방 파벌의 파벌장이기도 해서 기분이 묘하네.
“아, 아니… 이게 왜 각하의 저택에…”
상상도 못한 물건이 상상도 못한 장소에서 튀어나온 기괴한 상황. 덕분에 내 눈치를 보던 게르하르트도 입을 떡 벌리며 카간의 유품을 살폈다.
묵직하고 거대한 대검과 대낫. 카간이 대검을 휘두르면 아무리 강력한 기사라도 분쇄되었으며, 대낫을 휘두르면 병사들이 수확철 이삭처럼 우수수 쓰러졌다. 오죽하면 역천자라는 호칭이 붙기 전에는 카간의 코드네임이 ‘추수꾼’이었을까.
“상황 폐하께서 대토벌 전쟁 중에 생긴 전리품을 전부 전승공 각하께 하사하셨고, 각하께서는 역천자와 싸워서 살아남은 저에게 놈의 무기를 하사하셨습니다.”
“그, 그렇군요.”
아무튼 혼란에 빠진 게르하르트에게 습득 루트를 말해주자, 게르하르트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이건 게르하르트 씨께 대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허나 덤덤히 덧붙인 말에 격렬히 고개를 내젓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각하! 저에게는 너무 과분한 물건입니다!”
“학자에게 과분한 물건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도 아닌 연구를 위한 대여인데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그 말과 함께 대검과 대낫을 들어 올렸다.
이 묵직한 감각. 딱히 그립지는 않았다.
“역천자는 유목민들의 수장이자 대초원 제일의 무인이었습니다. 무인의 생애를 알기 위해서라면 그 무인의 무구도 알아야 하는 법이지요.”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러니 받아주십시오. 게르하르트 씨가 역천자에 대해 연구할수록, 그 역천자와 맞서 싸운 제국의 영웅들도 모두의 기억 속에 남을 겁니다.”
그러자 게르하르트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방금 내가 한 말은 내 전우들을 위해서라도 받아달라는 부탁이었으니까. 역천자의 강력함과 위엄이 밝혀질수록, 그 괴물을 쓰러트린 자들의 명성도 올라가는 것이니까.
“각하의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게르하르트 씨의 능력은 잘 알고 있지요. 기대하겠습니다.”
미소와 함께 카간의 무구를 게르하르트에게 건네─
“그에엑!”
“아.”
애석하게도 카간의 무구는 일개 학자가 감당할 무게가 아니었다.
게르하르트의 양어깨가 탈골되었다.
사유는 별거 없다. 갑자기 양손에 무거운 물건이 떨어졌으니 나약한 학자의 몸이 버틸 수 있겠는가.
난데없는 참사였지만 다행히 우리 집에는 대륙 제일의 대마법사인 트릭시가 있다. 어깨 탈골 정도야 금방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이지…
“죄송합니다, 게르하르트 씨. 제 생각이 짧아서 실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어깨가 치료된 게르하르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내가 멍청했다. 무구를 들자마자 묵직한 감각이니 뭐니 생각한 주제에, 그걸 별생각 없이 민간인한테 건넸잖아. 나한테도 묵직하게 느껴질 정도면 민간인에게는 어떻겠어.
“괜찮습니다, 각하. 오히려 역천자의 무력을 조금이나마 체감한 것 같아 기쁠 따름입니다!”
고맙게도 이 진짜배기 학자는 억울하게 봉변을 당했음에도 웃음을 터뜨렸다.
남들이 웃었다면 억지웃음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게르하르트가 저러니 진심 같기도 하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는 민망합니다만.”
그런 게르하르트를 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직 어깨가 놀란 상태일 테니, 오늘은 저택에서 자고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동안 역천자에 대해 얘기도 좀 나누고요.”
“저야 영광인 일입니다만…”
내 제안에 게르하르트의 눈동자가 바삐 움직였다.
연구 대상의 유품 대여는 물론, 연구 대상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과 일대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다. 게르하르트가 나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지금은 연구에 대한 의욕과 사명감으로 불타오르고 있지 않나. 거절하기에는 매력적인 제안일 터.
하지만 내가 아직 신혼 휴가 겸 육아 휴가 중이라는 걸 알기에 흔쾌히 수락하기도 애매할 거다. 가족의 보금자리에 외부인이 난입하는 것이니까.
“좋은 생각이구나. 탈골은 쉽게 고칠 수 있는 부상이지만, 재발하기도 쉬운 부상이란다. 혹시 모르니 하루 정도는 지켜보는 게 좋아.”
이성과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던 게르하르트에게 트릭시가 슬쩍 등을 밀어줬다.
“그렇다면 결례를 무릅쓰고 하루만 신세 지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제가 먼저 제안한 건데 결례라고 할 게 있겠습니까? 오랜만에 아카데미 때처럼 이런저런 얘기나 나눠봅시다.”
“영광입니다, 각하.”
본능적으로 게르하르트의 어깨를 토닥일 뻔했지만 참았다.
두 번이나 지인의 어깨를 박살 낼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카간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가아르 부족은 부족의 주도권을 두고 씨족 사이의 투쟁이 심했던 부족입니다. 그런 가아르 부족을 순식간에 휘어잡은 것이 역천자였고, 가아르 부족을 북방 제일의 부족으로 끌어올렸지요.”
“의외로군요. 북방을 통합할 정도의 부족이었으니, 옛날부터 강력한 부족일 줄 알았습니다.”
“차라리 그랬다면 좋았을 겁니다. 역대 소르덴 변경백들은 북방에 유력한 부족이 생기면 조기에 소탕하거나 회유했으니까요. 가아르 부족이 이전부터 두각을 드러냈다면 역천자의 등장도 방지할 수 있었겠지요.”
“과연. 너무 빠른 성장이라 제국이 나설 시기를 놓쳤다라.”
정확히는 ‘태초에 카간이 있었다…’ 수준의 TMI 방출이었으나, 게르하르트는 오히려 좋다는 표정으로 경청 중이었다.
듣는 사람 리액션이 훌륭하니 말하는 사람도 즐겁다. 지금의 기세라면 대토벌 전쟁 동안 있었던 사건들을 일 단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
“참. 팔준마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역천자를 이해하려면 팔준마에 대한 지식도 있는 것이 좋습니다.”
“부끄럽게도 아직 이름과 소속 부족 정도밖에 알지 못합니다. 각하의 배려로 북방을 답사할 수 있었으나, 역천자와 팔준마에 대한 기록은 이상할 정도로 보이지 않더군요.”
물론 북방은 기록 자체가 드물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머쓱히 웃는 게르하르트의 모습에슬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사실 카간과 팔준마들에 대한 정보를 검열한 장본인이 나다. 그때는 유목민들이 카간과 팔준마를 우상화해서 다시 집결하는 걸 막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썼거든. 영원한 푸른 하늘의 신전도 그 시기에 캠프파이어 당했고.
생각해 보면 그런 와중에도 아리두 케자와 우데스르 자이루그에 대한 논문을 작성한 크리스티나도 정상은 아니다.
‘둘이 같은 인물이었지만.’
미안하다. 내가 정보를 덜 태웠다면 둘을 다른 인물로 착각하지는 않았을 텐데.
***
각하의 설명은 간단했지만 하나하나가 알찼다.
“차우지드 솔르고 우레는 역천자 진영의 부사령관이자 백전노장이었습니다. 역천자 입장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전투에는 그놈이 군세를 이끌고 나타났지요. 몇몇 군단장들이 놈을 상대하다가 전사했을 정도입니다.”
단순히 명궁이라는 것만 알고 있던 차우지드 솔르고 우레의 입지에 대한 정보.
“잘라이르 모그 카리알과 모그 티무엔은 남매였습니다. 누나인 카리알은 북방 내에서도 손꼽히는 주술사였고, 동생인 티무엔은 전사였지요.”
“남매가 나란히 팔준마라. 부모가 궁금해질 정도로군요.”
“사실 처음에는 자매인 줄 알았습니다.”
“예?”
모그 티무엔의 외모가 곱상했다는 딱히 궁금하지 않았던 정보.
“오르도 쿠만 일라이는 북방 제일의 대주술사이자 무희고,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림자와 악몽을 다루는 능력을 가져서 토벌하기 까다로웠습니다.”
“그림자… 라면?”
“발밑의 그림자에서 칼날이 솟아오르거나, 그림자를 묶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뭐 그런 거였지요.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습니다.”
북방의 주술은 대륙의 마법보다 더 다양하고 특이하다는 정보까지.
하나하나가 흥미로웠다. 어느 순간부터 역천자보다는 팔준마에 대해서만 듣고 있지만, 각하의 말씀대로 수장인 역천자에 대해 알려면 그 수족인 팔준마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
– 정주민이 북방에 이렇게 관심이 많은 건 처음 보네. 오래 사니 별 광경을 다 본다.
?
순간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뭐지?’
혼란스럽다. 이 접견실에는 나와 각하밖에 없는데? 어디서 들리는 목소리인 거지?
– 어? 너 내 목소리 들려?
낯선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내 귓가가 아닌 머리에서 들리는 느낌이었다.
“게르하르트 씨?”
“아, 그, 예?”
“왜 그러십니까?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습니다.”
각하의 질문에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어깨가 탈골된 것에 이어 머릿속에 이상한 목소리까지 울린다고 하면 얼마나 걱정을 받을까.
허나 내가 망설이는 사이, 각하의 얼굴도 딱딱히 굳기 시작했다.
“…게르하르트 씨. 혹시 머릿속에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립니까?”
“예, 예… 그렇습니다.”
그 말에 각하는 잠시 미간을 짚더니, 내 옆에 있던 역천자의 무구를 바라보았다.
“저거 때문인가?”
그러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중얼거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