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03)
로판 속 공무원 703화(704/945)
게르하르트와 지즈의 대모험은 북방을 뒤흔들었다.
– 저도 모르던 저희 부족의 역사를 가지고 오는데, 그때마다 얼마나 놀랍던지. 전 제 7대조께서 데릴 사위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7대조에 대한 정보를 용케 알아냈군요.”
– 그분께서 우데스르 씨족 출신이어서 말입니다. 역천자의 가계도를 확인하던 도중에 알게 됐다고 합니다.
“오…”
바란디가 후작의 말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렇구나. 카간과 바란디가 후작은 같은 씨족에서 갈라져 나온 먼 친척이었구나. 그건 진짜 처음 알았네…
‘먼 친척이라 다행이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수백, 수천 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카간과 바란디가 후작의 공통된 조상이 나올 수도 있지만, 바란디가 후작은 자기 조상을 토종 바란디가 부족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 정도면 사실상 남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니. 막말로 데릴 사위라는 7대조가 바란디가 후작의 조상과 카간의 조상을 낳았다고 쳐도, 7대나 시간이 흘렀다면 남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 그 학자 덕분에 가계도를 새롭게 작성한 부족이 제법 많습니다. 지금까지 몰랐던 혈연관계도 파악된지라, 서먹서먹했던 부족이 그걸 계기로 화해하는 일도 생겼지요.
“실로 기쁜 일이로군요. 같은 제국의 신민끼리 웃을 수 있다면 그보다 경사스러운 일은 없을 겁니다.”
– 하하, 그래서인지 근래 북방의 분위기가 좋아졌습니다. 영원한 푸른 하늘의 신수를 타고 다니며 북방에 평화를 가져다주다니. 그 학자가 유목민이라면 성자라고 불렀겠군요!
웃음을 터뜨리는 바란디가 후작을 보며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게르하르트가 영원한 푸른 하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나만 아는 사실이다. 이미 게르하르트가 영원한 푸른 하늘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건 유목민들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나와 게르하르트는 영원히 그 사실을 함구할 생각이다. 지금도 유목민들의 호의와 관심을 듬뿍 받고 있는데, 신과 소통한다는 것이 알려진다? 게르하르트가 명예 유목민, 명예 제사장으로 추대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
…
‘잠깐만.’
뭔가 이상하다. 유목민들은 게르하르트가 영원한 푸른 하늘과 소통한다는 걸 모르는 상태다. 그런데도 게르하르트가 가져온 역사를 수긍하고 받아들인다고? 아무 의심이나 반발도 없이?
‘그게 가능하나?’
혼란스럽다. 완벽한 증거가 있어도 논란의 여지가 생기는 것이 역사다. 헌데 게르하르트는 논란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며 북방을 뒤흔들고 있었다. 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오직 자신의 실력만으로 말이다.
물론 당사자들도 잊은 역사를 발굴한 것은 영원한 푸른 하늘의 도움 덕분이겠지만, 그걸 뒷받침할 근거와 증거를 확보한 것은 게르하르트의 능력이지 않나. 어쩌면 부족한 증거를 언변으로 보충했을 수도 있고.
‘신이 내린 학자다…’
이제 그 신이 태양신인지 하늘신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아무튼 신이 내린 능력임은 확실하다.
아무래도 내가 아카데미에서 찾은 최고의 보물은 게르하르트인 것 같다.
게르하르트의 입지는 날이 갈수록 굳건해졌다.
안 그래도 아카데미 졸업 이후로 내 편의를 받으며 북방을 돌아다니던 게르하르트다. 무려 북방 파벌장의 비호를 받았기에 북방의 귀족들도 게르하르트를 존중하며 대우를 해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게르하르트가 눈에 보이는 성과도 쑥쑥 내뱉고 있으니 북방의 여론은 어떻겠나. 몇몇 귀족들은 게르하르트를 게르하르트 선생이라 부르며 깍듯하게 대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자기도 모르던 조상을 알려준 은인이면 나였어도 그럴 것 같긴 해. 유목민들이 혈통을 오죽 귀하게 여겨야 말이지.
‘유목민들이 잊을 정도면 재앙이 겹쳐서 사라진 기억이었겠지.’
비록 유목민들은 기록을 많이 남기는 편이 아니지만 자신들의 조상이나 가계도, 혈연으로 얽힌 부족은 꼬박꼬박 기록하는 편이다.
그런 유목민들 기억 속에서 사라진 조상이라면 전쟁으로 기록이 불타거나, 기록을 담당하던 인물이 죽었거나, 그 조상을 섬기던 직계가 전멸했거나─ 대충 그런 이유였을 터. 하나하나가 끔찍하기 그지없는 사유다.
그렇게 북방 제일의 아이돌이 되어가던 게르하르트였으나,
– 저기이…
‘예. 왜 그러십니까?’
– 좋은 소식이랑 나쁜 소식이 하나씩 있는데, 뭐부터 들을래?
‘…….’
갑작스러운 영원한 푸른 하늘의 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일단 좋은 것부터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좋은 소식부터 요구했다.
원래 이런 건 매부터 맞는 것이 좋으나, 매부터 맞으면 그대로 졸도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좋은 소식을 먼저 접해서 조금이나마 멘탈을 회복해야 할 것 같았다.
– 게르하르트의 인기가 더 좋아졌어! 대영주들은 게르하르트한테 작위도 주겠다더라!
‘나쁜 건요?’
– …그게, 정말… 이게 고의로 생긴 일이 아니라 진짜, 지이이인짜 실수거든?
‘나쁜 거는요.’
– 나랑 대화할 수 있는 걸 들켰어…
그 말에 질끈 눈을 감고 말았다.
영원히 함구해야 할 진실이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세상에 밝혀지고 말았다. 10년도 아니고, 1년도 아니고 고작 한 달 만에.
– 정말로 실수야! 철저하게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나랑 게르하르트가 예상도 못 한 방법으로 들켰어!
내가 말이 없자 영원한 푸른 하늘은 변명하듯─ 아니, 정말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래, 어디 들어는 보자. 그렇게 철저히 비밀로 하려 했으면서 왜 들켰는지.
– 지즈가 게르하르트를 내려주고 혼자 쉬고 있었는데, 심심했는지 근처에 있던 유목민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거든? 그때 나랑 게르하르트가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말해버려서…
이어지는 말에 다시 한번 눈을 감고 말았다.
기어코 새대가리가 사고를 쳤다.
***
북방 내에서도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지역.
영원한 푸른 하늘의 신전이 건설 중이고, 지즈가 둥지로 삼고 있는 곳.
– 으엑! 그에에에엑! 흐에에에에!
분명 지즈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장소임에도 지즈는 처절한 비명 소리를 내며 날개를 허우적거렸다.
“그걸. 왜. 아무한테나. 말해가지고.”
– 모, 몰랐어요! 비밀로 하는 줄 몰랐다고요! 알면 안 그랬죠!
각하께서 검을 휘두를 때마다 비명을 내지르며 움츠러드는 지즈.
기이한 광경이다. 전력으로 휘두르는 것도 아니고, 지즈의 몸을 향해 휘두르는 것도 아니다. 그저 벌레를 쫓듯 허공을 가볍게 휘젓는 중인데도 지즈는 기겁을 하며 온몸을 떨었다.
대체 뭐지. 혹시 검이라는 물건에 트라우마라도 있나? 아니, 그런 것치고는 유목민들이 가지고 있던 검에 아무 반응도 없었는데?
“후우…”
아무튼 검을 휘적휘적 흔들던 각하께서는 마른 세수를 하시더니, 나에게 시선을 돌리셨다.
“미안합니다, 게르하르트 씨. 영원히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벌써 들킬 줄은 몰랐습니다.”
“아, 아닙니다. 각하께서 실수하신 것도 아니고, 지즈도 고의로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제가 지즈와 긴 시간을 함께한 건 아니지만… 일부러 그럴 성격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 게르하르트…!
내 말에 각하는 한숨을 내쉬었고, 지즈는 울먹이며 내 등 뒤로 숨었다.
물론 지즈의 덩치가 내 수백 배 이상이라는 건 굳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신과 소통하는 게 알려진 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즈가 실언을 했다고 수습하기에는 신수가 신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은 꼴이고, 그동안 게르하르트 씨가 보인 성과도 있으니 아무도 믿지 않겠지요.”
“그건, 그렇겠군요…”
– 히잉…
차마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모를까, 하필 신수의 발언이라 설득력이 하늘에 닿을 정도로 올라간 상황이다. 도저히 농담이라고 둘러댈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사태를 가볍게 넘어가기도 애매하다. 내가 영원한 푸른 하늘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유목민은 나를 예언자나 성자를 대하는 것처럼 정중한 모습을 보였으니까. 다른 유목민들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면 나는 더 이상 학자가 아닌 숭배의 대상으로 북방을 돌아다니게 된다.
그건 곤란한 일이다. 가장 앞장서서, 가장 험지에서 진실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 학자의 본분이다. 가장 안전한 곳에서 숭배를 받는 것은 학자가 아니다.
“일단 정주민이 북방의 역사와 문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그걸 기특하게 여긴 신이 은총을 내린 거라 둘러대면 당위성은 있지만…”
심각한 얼굴로 턱을 매만진 각하는 작게 중얼거리시더니,
“…게르하르트 씨.”
“예, 각하. 말씀하시지요.”
“바란디가 후작의 가계도 말입니다. 잠깐 손 좀 봅시다.”
“예?”
“마침 올해, 바란디가 후작 영애와 이드라펜 후작 각하의 결혼식이 열릴 예정입니다. 바란디가 부족의 핏줄에 최대한 권위를 실어주고, 북방 제일 명가와 황가가 결합하는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합시다.”
그 정도는 해야 이 충격이 조금이나마 희미해집니다.
그렇게 말한 각하의 눈빛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가계도 조작…’
무심코 침을 삼키고 말았다. 가계도를 조작하는 건 그 가문의 피를 모욕하는 것이고, 역사를 숨기는 일이다. 학자로서 차마 흔쾌히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없던 사람을 만들자는 건 아닙니다.”
내 우려를 눈치챘는지, 각하는 이전보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으셨다.
“조상의 업적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우연히 벌어진 일을 철저한 계산의 결과라고 치장합시다. 특정 사건을 두고 해석을 다르게 하는 건 역사의 필연 아닙니까?”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맞는 말이다. 없던 인물을 만드는 것은 조작이지만, 특정 인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건 역사적 논의다. 결코 역사에 대한 모욕이 아니다.
“…마침 괜찮은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렇기에 진지한 마음으로 각하의 요청에 응했다.
마침 바란디가 후작의 조상 중에는 영원한 푸른 하늘 신앙의 초기 멤버이자, 고대 북방의 거물이었던 사람이 있으니까. 조금만 해석을 긍정적으로 하면 북방의 영웅으로 만드는 건 쉬운 일이다.
***
정주민이 유목민 신앙의 성자가 되기 일보 직전인 상황.
종교적인 사건이 벌어진다면 세속적인 사건으로 덮는 것이 정치가의 기본 소양. 그렇기에 게르하르트에게는 바란디가 후작의 가계도 수정을 요구했고, 나는 즉각 황제에게 아인테르의 결혼을 앞당길 걸 요청했다.
“갑자기?”
그리고 황제는 다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해한다. 아무리 모든 준비가 끝났다지만 황실의 경사를 앞당기는 건 귀찮은 일이다. 황제로서는 굳이 귀찮음을 감수하며 결혼식 날짜를 조정할 필요가 없다.
“지금 영원한 푸른 하늘의 목소리를 듣는 학자가 나타나 북방이 술렁거리고 있습니다.”
허나 귀찮음을 감수할 만한 이유가 생긴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건 짐도 방금 전에 들었다네.”
“그 충격이 가시기 전에 영원한 푸른 하늘이 바란디가 후작과 그 영애에게 목소리를 들려주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시큰둥한 황제의 표정에 조금씩 생기가 깃들었다.
“지금 북방 제일의 학자가 바란디가 후작의 가계도를 훑어보고 있습니다. 핏줄에 권위를 실어주고, 후작 부녀에게는 위엄을 얹어주는 것이지요.”
“그 권위와 위엄이 절정에 이르고 모든 북방의 시선이 바란디가에게 향할 때, 바란디가를 황실이 안아라?”
“그렇습니다.”
어차피 할 결혼이라면 상대가 가장 비쌀 때 숟가락을 얹으라는 말.
황제도 혹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