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04)
로판 속 공무원 704화(705/945)
황실의 경사를 앞당기는 건 귀찮은 일이다.
그러나 귀찮음을 감수할 만한 이득이 생긴다면 기꺼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정치가인 법.
“장관의 말이 옳다. 바란디가 후작의 권위가 과하게 높아지는 건 지양해야 하지만, 그 권위를 황실이 품을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정치가의 정점인 황제는 내 설득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아인테르와 샤티의 결혼식 준비는 전부 끝마친 상태였다. 언제든지 결혼식을 진행할 수 있었으나, 내 6연속 결혼식 때문에 잠시 보류 중이었지. 게다가 올해 초에는 에리히와 제노비아의 결혼식도 있었고.
그렇기에 황제의 결정과 당사자들의 동의만 있다면 결혼식 날짜 정도는 얼마든지 앞당길 수 있다.
“1, 2주 정도 후면 괜찮겠어.”
“예?”
하지만 이렇게 화끈히 앞당길 줄은 몰랐다.
본래 결혼식 예정 날짜는 빨라도 여름 정도였다. 아직 수개월 정도가 남은 결혼식이 순식간에 1, 2주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괜찮겠습니까? 아무리 준비가 끝났다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것 같습니다만…”
결혼식을 앞당기자고 주장한 장본인이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한 조정이다. 아인테르와 샤티가 뒤에서 나를 욕해도 할 말이 없는 대참사다.
“괜찮네. 둘 다 결혼식을 빨리 올리고 싶어했거든. 오히려 기뻐하면 기뻐했지, 꺼리지는 않을 거야.”
그러나 황제는 태평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다행이다. 당사자들이 빠른 결혼식을 원한다면 앞당겨도 무방하지. 억지로 하는 결혼이 아닌 이상, 결혼식 날짜가 다가올수록 두근거리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둘이 사이가 좋긴 하네.’
그리고 조금은 신기했다. 분명 시작은 정략으로 이어진 관계였으나, 어느새 아인테르와 샤티는 진정한 연인의 길을 걷고 있었다.
솔직히 이렇게 사이가 좋아질 줄은 몰랐다. 서로 신분의 격차도 크고, 살아온 환경도 공통점이 없고, 민족도 다른지라 제법 충돌할 줄 알았거든. 아무리 바란디가 후작이 샤티의 결혼을 간절히 바랐어도 삐걱대는 게 정상인 정략이었다.
그 정략을 이렇게 이끌어낸 아인테르의 능력이 새삼 대단할 따름이다. 제과 동아리 때는 처참한 연애 능력을 자랑했는데, 미래의 자신을 위해서 모든 능력을 미래로 보낸 거였구나.
‘대단하네…’
역시 생존 전문가 아인테르답다. 침묵해야 할 시기에 침묵하고, 연애 능력을 각성해야 할 시기에 각성하는 능력자.
그 능력이 자식에게도 이어진다면 리브노만 직계를 지탱할 훌륭한 방계가 탄생할 것이다.
“그보다 장관.”
“예, 폐하. 말씀하소서”
“장관이 제안한 것이니 아인테르에게는 장관이 말하게. 안 그래도 며칠 후면 바란디가 후작령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좋은 소식을 듣고 가면 더 기쁘지 않겠나.”
“제가 직접… 말입니까?”
“그래. 장관과 아인테르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장관이 결혼을 당겨줬다고 하면 고마워할 거야.”
거절하기 애매한 부탁이기에 얼떨떨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닌가? 확실히 내가 뿌린 씨앗이니 내가 수확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아, 가는 길에 황태녀랑 같이 가게나. 마침 황태녀가 삼촌과 놀고 싶다고 했거든.”
“예, 알겠습니다.”
황태녀가 있는 황후궁은 아인테르의 궁으로 가는 경로에 있으니, 가다가 픽업하면 되겠다.
아인테르가 머무는 궁은 황궁 내에서도 다소 변두리에 위치한 곳이다.
어릴 적에는 황후와 애실론 후작가의 관심이 2황자에게만 향하여 아인테르는 별 대우를 받지 못하였고, 2황자 몰락 이후에는 눈이 뒤집힌 현 황제의 칼날을 피해 쥐 죽은 듯이 지냈으니까. 까딱 잘못하면 숙청 당할 수도 있는 입장이었으니 아인테르도 이 악물며 변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위치만 변두리지, 궁의 크기와 시설 자체는 황실의 직계가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저 남들 눈에 안 보이는 구석에서 조용히 살아갔을 뿐이었다.
“삼쵼! 안녕!”
“어서 오십시오, 조카님.”
그렇게 구석 중의 구석에서 살아가던 아인테르였으나, 이제는 차기 황제와 놀아줄 정도로 황실의 중심으로 다가왔다.
피와 눈물이 넘쳐흐르던 리브노만 황실이 정상화됐다는 증거기도 하니 실로 흐뭇한 광경이다. 2황자와 애실론 후작가만 아니었어도 옛날부터 이랬을 텐데.
‘하여간 흉악한 일이 있으면 죄다 그 새끼들 때문이지.’
대륙 역사에 아펠스가 있다면 제국 역사에는 2황자가 있다. 그 새끼가 황제가 되거나, 하다못해 황태자를 찍먹했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상상만 해도 손발이 부르르 떨린다.
“호오. 우리 조카님,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더 커진 것 같군요.”
“그치! 나 열심히 먹고 무럭무럭 자랏써!”
“흠. 그래서 위로 큰 게 아니라 옆으로 크신 겁니까?”
“이이이잉!”
아인테르의 장난에 황태녀는 양팔을 버둥거리며 칭얼거렸다.
“삼쵼 나빠! 엄마가 레이디의 무게로는 장난치는거 아니랫써!”
또박또박하고 명확한 불만 표출에 나도 아인테르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건 그렇지. 아무리 어린 레이디여도 레이디의 무게로 장난을 거는 건 실례인 일이지.
“때부! 삼쵼 혼내져!”
이윽고 푸들푸들 몸을 떨던 황태녀는 쪼르르 나에게 달려와 안기더니, 아인테르에게 격한 불만을 표했다.
“전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당연히 그래야지요. 어떻게 혼내드리면 되겠습니까?”
“꿀밤!”
“그건 좀…”
황태녀의 말에 무심코 내 주먹과 아인테르의 이마를 번갈아 바라봤다.
내 꿀밤이 저 이마에 꽂힌다고? 아인테르에서 인테르로 변할 것 같은데?
“하하, 죄송합니다 조카님. 이렇게 사과할 테니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인테르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처럼 움찔 몸을 떨더니, 금방 웃는 얼굴로 황태녀를 어르고 달랬다.
“몰라! 삼쵼 미워!”
“사실 이 삼촌이 조카님을 위해 사탕을 준비했는데…”
“그치만 미안하다구 하니까 바줄께!”
“역시 조카님은 마음씨가 넓으십니다. 자세히 보니 위로 크신 게 맞군요.”
그 말에 으쓱거리는 황태녀와 박수를 치는 아인테르를 보니 다시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누가 이런 광경을 상상이나 했을까. 황제의 자식과 아인테르가 서로 장난을 치며 놀다니. 아마 상황조차 예상치 못한 기적일 거다.
“헌데 대부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저야 반가운 얼굴을 봐서 기쁘지만, 휴가 중인 대부께서 저를 찾아오실 정도면 보통 일은 아닌 것 같군요.”
어느새 자기 품으로 이동한 황태녀를 토닥이던 아인테르가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내가 아인테르의 궁까지 찾아온 건 두 번째 있는 일이다. 첫 번째는 2황자 몰락 직후니 썩 좋은 이유는 아니었지.
“드릴 말씀이 있어서 말입니다.”
“음? 저에게 말입니까?”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인테르는 품에 안긴 황태녀를 바라봤다.
“전하께서 들으셔도 괜찮은 일입니다.”
“아, 그렇다면야.”
고개를 끄덕인 아인테르는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황태녀를 잠시 떨어뜨려 놓았다면 중요하고 심각한 일이라는 거지만, 꼬꼬마가 들어도 될 일이면 별일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터. 조금씩 샘솟던 긴장감이 순식간에 사라졌을 거다.
“각하와 바란디가 후작 영애의 결혼을 앞당기게 되었습니다.”
“예?”
허나 겨우 되찾았던 아인테르의 미소가 도로 깨졌다.
“그, 앞당겨야 할 일이 생겨서 말입니다. 1주에서 2주 정도로 당기게 되었습니다.”
“허어. 그렇군요.”
그래도 갑작스러운 일정 조율에 당황한 것뿐이지, 빠른 결혼 자체는 마음에 드는 듯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1, 2주를 당긴다라. 조금이나마 덜 더울 때 진행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아.’
아인테르가 작은 오해를 한 것 같아 슬쩍 눈동자를 굴렸다.
1, 2주를 당긴다는 게 아니라 1, 2주 앞으로 당긴다는 말이었는데.
“영애도 이 소식을 들으면 기뻐할 겁니다. 티는 안 내려고 노력하지만, 결혼식을 기다리는 게 눈에 뻔히 보이거든요.”
“저기, 각하?”
“예. 말씀하시지요.”
“1, 2주 후에 결혼을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예?”
아인테르의 표정이 멍하니 풀렸다.
“웅? 삼쵼 결혼해?”
품에 있던 황태녀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어린 황태녀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구나… 그 어려운 걸 황제가 해냈다.
‘하여간 제정신은 아니야.’
어떤 미친놈이 수개월 뒤였던 결혼식을 1, 2주 뒤로 앞당기냐고.
***
폭풍이 지나간 기분이다.
“각하와 바란디가 후작 영애의 결혼을 앞당기게 되었습니다.”
“그, 앞당겨야 할 일이 생겨서 말입니다. 1주에서 2주 정도로 당기게 되었습니다.”
“1, 2주 후에 결혼을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아직도 폭풍이 내 머리를 헤집고 있었다.
1, 2주 후라니. 갑자기 1, 2주 후에 결혼을 하게 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싫은 건 아닌데…’
좋으냐 싫으냐를 따지면 전자에 가깝다. 이미 나와 샤티 영애는 서로를 연인이라 인정했고, 부부에 준하는 관계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결혼식만 정식으로 올리지 않았을 뿐, 사실상 부부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공식적인 부부가 될 수 있는 결혼식이 앞당겨진다면 기뻐해야 할 일인데… 그것도 정도껏 당겨야지.
– 후작님?
“좋은 점심입니다, 샤티. 식사는 하셨습니까?”
– 아, 방금 막 하려던 참이었어요.
그렇기에 일단 샤티 영애에게 연락을 걸었다.
이 갑작스러운 일정 조율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혹시 샤티 영애가 난색을 표한다면 폐하를 설득하기 위해.
– 후작님과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따로 지내니 아쉬워요.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며칠 후면 하루 종일 함께 지낼 테니까요.”
영애의 투정에 미소를 지은 뒤,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영애.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네. 말씀하세요.
“저희 결혼식 말입니다만─”
결혼식이라는 말에 영애의 얼굴도 진지하게 변했다.
– 호, 혹시 연기된 건가요?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러자 영애의 표정이 급속도로 평온해졌다.
귀여운 모습이라 다시 웃음이 터질 뻔했다. 결혼이 연기되기는커녕 코앞으로 당겨졌다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무래도 신께서 저희가 따로 지내는 걸 안타깝게 여기신 모양입니다.”
아마 나처럼 당황하면서도 기뻐하겠지.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