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07)
로판 속 공무원 707화(708/945)
열 개의 꼬마 반지가 있었다.
그중 하나부터 여섯은 내가 쪼개서 가졌고, 일곱과 여덟은 에리히가 가지고 있고, 아홉은 정보차장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꼬마 반지는 아인테르와 샤티의 손에 들어갔다. 참 아름다운 결말이지.
‘원래 이런 유행은 한탕이지 않나?’
가로로 갈라진 반/지를 나눠 끼는 아인테르와 샤티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내가 백 번 양보해서 반/지가 유행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둘이서 하나가 되는 반지’라는 스토리텔링은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있으니까. 우울한 마르를 달래기 위해 얼마 안 되는 지성을 쥐어짠 아이디어였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걸 넷째 장인어른인 플란벨 백작과 황금공이 낚아챈 것? 그것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한철 유행이라도 제국 사교계를 뒤흔들 수만 있다면 투자하기 적법한 사업이다.
그런데 그 유행이 대체 몇 년이나 지속되는 거냐. 원래 의복이나 주얼리 관련 유행은 1년만 이어져도 긴 편이잖아.
‘내가 제국에 독을 뿌렸다…’
한탄스럽다.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변명이, 무심코 뿌린 작은 씨앗이 제국을 뒤덮은 거목으로 자라버렸다. 이 기세라면 향후 수십 년은─ 어쩌면 제국이 망할 때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크펠로펜 제국의 고유문화가 반으로 갈라진 반/지. 뭔가 후대에게 죄를 지은 기분이야.
“감사합니다. 역시 대부께서 직접 갈라주시니 더 깔끔하고 아름답군요.”
“정말 감사드려요, 백작 각하. 평생 간직할게요.”
그래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신혼부부를 보니, 차마 ‘이건 미친 유행이야! 당장 집어치워!’ 같은 진상을 부릴 수는 없었다. 이미 이 유행은 내 손을 떠난 지 오래니까.
“마음에 드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 반지처럼 두 분께서도 영원히 하나가 되어 살아가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신혼부부의 앞날을 축복했다.
리브노만 황실의 번영을 위해. 구르트 후작가의 굳건함을 위해. 제국의 안정을 위해.
이 결혼의 주인공인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결혼을 마친 아인테르와 샤티는 하객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덕담과 감사 인사를 주고받았다. 귀족들의 진정한 사교는 사실상 지금부터 시작인 것과 다름없다.
“여기서 시간을 보내다가 나가면 되겠어.”
“예. 여기까지 올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귀족들이 신혼부부에게 몰리는 사이, 나와 황제는 슬쩍 몸을 빼내어 신전 구석 예배실로 이동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황제가 아닌 아인테르다. 황제는 결혼식 내내 하객석에 앉으며 존재감을 과시했으니, 괜히 형제 사이의 불화설이 떠돌지는 않을 터. 이 이상 어슬렁거리는 건 오히려 귀족들의 관심을 빼앗는 꼴이다.
“…이제야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군.”
아무튼 예배실에 들어온 황제는 작게 한숨을 내신 뒤,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조금 곤란하다. 사람의 눈을 피하기에는 이만한 장소가 없지만, 하필 예배실이라 전부 가로로 길쭉한 의자밖에 없다. 그냥 뒤에 있는 의자에 앉아야 하나?
“장관. 그냥 옆에 앉게. 둘밖에 없는데 뭘 굳이 따로 앉나.”
“어찌 불경스럽게도 폐하와 나란히 앉을 수 있겠습니까.”
“됐으니 앉게. 고작 자리 따위로 챙길 수 있는 권위라면 이미 무너진 것과 마찬가지니까.”
잠깐 망설이다가 슬며시 옆자리에 앉았다. 저런 말까지 듣고 버틴다면 도리어 황제의 권위를 모욕하는 것이다.
“장관.”
“예, 폐하.”
“짐은 아인테르에게 지은 죄가 많다네.”
“우연이로군요. 마침 소신도 그렇습니다.”
황제의 푸념에 덤덤히 답하자 황제는 픽 웃음을 흘렸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농담이 아니다. 황제는 황태자가 된 직후, 2황자의 동복동생이자 애실론 후작가의 핏줄을 이은 아인테르를 극도로 경계했다. 그렇기에 당시 2황자파를 숙청하던 나를 아인테르에게 보냈고, 나는 15살에 불과한 아인테르에게 노골적인 경고를 했었지.
부끄러운 일이다. 당시 칼바람이 불던 정계와 사교계를 고려하면 피치 못할 경고였으나, 나도 황제도 과하게 경계한 감이 없잖아 있었어. 아인테르는 2황자가 패악질을 부리던 시기에도 침묵을 지켰고, 애실론 후작가의 관심도 받지 못한 중립 세력이었으니.
나이도 어리고, 세력도 없고, 문제를 저지른 적도 없는 미성년에게 죽음을 담보로 경고를 했다. 그 경고를 들은 아인테르는 더더욱 몸을 숙였고, 황궁 내에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유령 황족이 되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 짐도 장관도 그러면 안 됐네. 아인테르가 새로운 구심점이 되는 건 막아야 했지만, 더 온화한 방법을 찾아야 했어.”
씁쓸히 중얼거린 황제는 예배실 벽면에 그려진 영원한 푸른 하늘의 벽화를 바라봤다.
“사실 짐이 영원한 푸른 하늘의 신전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한 건 북방에 대한 영향력 문제도 있지만, 에넨 앞에서 올리기는 부끄럽기 때문이었지.”
“부끄럽다니요. 폐하께서 신 앞에 부끄러울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에넨께서는 리브노만의 추악한 다툼을 지켜보셨을 테고, 동생을 죽이려 한 형의 심성을 알고 계시지 않나. 그래서 영원한 푸른 하늘 앞에 앉아야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건 오직 황제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황제의 입장에 처하지 못했다면, 황제와 같은 인생을 살지 않았다면 감히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조금은 편하셨습니까?”
“다행히 조금은.”
그 말과 함께 황제는 픽 웃음을 흘렸다.
말로는 조금이라고 했지만 아마 모든 시름을 벗어던진 기분일 거다. 방금 전만 해도 황제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것 같다고 하지 않았나.
이름뿐인 황족인 아인테르를 명실상부한 황족으로 대우하고, 이드라펜 후작위와 함께 황실이 가지고 있던 재산 일부를 건네주며, 차기 황제가 될 황태녀와도 잦은 접촉을 허락했다. 조금씩 조금씩 자신만의 방법으로 죄책감을 덜어내던 황제는─ 이번 결혼을 계기로 마지막 짐마저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제 아인테르에게는 구르트 후작가라는 뒷배가 있으니까. 아인테르를 지지해 줄 가족이 생겼으니까. 북방이라는 새로운 터전이 생겼으니까.
“처음부터 좋은 형이었다면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
“신이 폐하께 허락한 환경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폐하의 잘못이 아니니 심려치 마소서.”
황비의 아들인 황제와 황후의 아들인 아인테르. 애석하게도 둘이 사이 좋은 형제로 지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둘의 모친이 반대였다면 모르겠으나, 황제의 모친이 황후였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겠지.
‘애실론의 마수가 깃든 적장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적장자라서 태자 책봉을 반대할 명분도 없잖아.
“장관.”
“예, 말씀하십시오.”
“이제 리브노만은… 찬란하게 빛날 수 있겠지?”
이상한 말이다. 제국의 정점이자 대륙 유일무이한 황실이 리브노만이다. 리브노만은 300년 전부터 빛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예, 물론입니다.”
허나 그 의문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황제가 말하는 빛남은 단순히 권력과 명예를 말하는 게 아닐 테니.
“어느 가문보다도 찬란하고 따뜻한 가문이 될 것입니다.”
“듣기만 해도 기쁜 말이로군.”
그러자 황제는 미소를 지었다.
하늘의 신을 바라보며 더없이 밝은 미소를 지었다.
“말하지 않아도 어련히 잘 하겠지만, 대부도 리브노만을 위해 더 노력해 주게. 우리 딸이 대부를 아주 좋아하니까.”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황제.
순간 어딜 만지냐며 소리칠 뻔했지만 참았다. 방금 한 말은 제국의 황제가 아닌, 한 가문의 가주로서 한 말이니까.
“제 생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노력하겠습니다.”
대신 나도 황제의 몸에 팔을 올리며 어깨동무를 했다.
뭐 시발. 네가 먼저 황제가 아니라 가주로서 말했잖아. 대부가 대녀의 친부한테 어깨동무도 못해?
“크흐. 기대하도록 하지.”
황제도 자신이 먼저 명분을 제공했다는 걸 아는지, 웃음만 흘리며 넘어갔다.
이제 와서 신체 접촉 정도로 무례니, 불충이니 따지기에는 우리가 걸어온 길이 너무 길었다.
***
황궁으로 복귀한 아인테르와 바란디가 후작 영애는 상황 폐하께 인사드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모든 일정을 끝냈다.
“부부는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어야 부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의 짐을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말고, 상대의 고난을 외면하지 말아라.”
“예, 상황 폐하.”
“명심하겠습니다.”
상황 폐하의 조언에 아인테르와 영애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상황 폐하의 말씀이라 그런지 더욱 복잡하게 느껴진다. 평생 홀로 짐을 짊어지셨던 분이 저런 말씀을 하시다니. 당신의 한을 자식마저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지 않나.
‘상대의 고난을 외면하지 말라…’
그리고 황후와 애실론 가문에게 시달리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을 때, 마지막 순간까지도 변변찮은 반응을 보이지 못했던 과거를 후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씁쓸했다. 저분에게도 후회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어머니가 상황 폐하의 유일하다시피 한 한이라는 것이.
“폐하.”
오랜만에 어머니의 묘비에 다녀올까 생각하던 찰나, 상황께서 나를 바라보셨다.
“폐하께서 자리를 비우신 사이, 궁내성에 작은 소란이 있었습니다.”
“궁내성에서요?”
의외인 말인지라 절로 반문이 나왔다.
황족의 결혼이라는 경사 덕분에 이미 궁내성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거늘, 거기서 소란이 추가될 일이 있나?
“이 늙은이가 전해 듣기로는 아르메인에서 선물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아.’
바로 납득했다. 아인테르의 친우인 류티스 왕자가 보낸 선물이로군.
생각 이상으로 빠른 선물이라 조금은 놀랐다. 본래 예정보다 앞당긴 결혼식이고, 류티스 왕자는 국경 너머에 머무르고 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결혼식 당일에 선물을 보낼 줄이야.
‘좋은 친구를 두었구나.’
가족 운은 없었지만 친구 운은 가득했어.
“선물은 바란디가 후작령으로 보내주마.”
“예, 폐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아인테르를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아르메인에서 선물이 왔다면 조만간 유벤과 신성교국에서도 오겠지. 따로따로 보낼 바에는 전부 모였을 때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