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08)
로판 속 공무원 708화(709/945)
결혼식 덕분에 황제의 시름이 사라지고 리브노만 황실은 더욱 굳건해졌다. 결혼식 최대 수혜자를 말해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리브노만을 꼽을 수 있겠지.
그리고 그 뒤를 잇는 결혼식 수혜자는 당연히 바란디가 후작을 위시한 구르트 후작가였다. 이미 북방 유일 후작이자 영원한 푸른 하늘 신앙 유일 제사장인 바란디가 후작이었으나, 이제는 황실과 인척 관계까지 되었으니까.
특히 결혼식 며칠 전부터 북방과 제국 전체에 퍼진 언론 플레이는 바란디가 후작의 권위를 더욱 드높였다.
“구르트 씨족의 시조는 영원한 푸른 하늘의 신앙을 이끈 최초의 사제들 중 하나이며, 기본적인 교리를 정립한 인물입니다. 그 핏줄을 이은 바란디가 후작의 혈통이 대대로 제사장직을 맡은 건 당연한 일이지요.”
귀족들이 결혼 축하 선물을 점검하는 동안 처절히 북방을 구른 게르하르트.
보는 사람의 마음이 절로 뭉클해질 정도로 노력하던 게르하르트는 바란디가 후작의 까마득한 조상을 ‘신앙의 거물’로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빙의 전 세상으로 비유하면 사도 베드로나 사도 요한의 후손이라는 건데, 누가 그 어마어마한 권위를 무시할 수 있겠나.
그렇게 바란디가 후작은 요 며칠 사이 ‘상황의 사돈이자 신앙의 수호자’가 되었고,
– 태양의 총애를 받는 혈족과 하늘을 섬기는 혈족이 하나가 되었으니, 온 대륙이 기뻐하고 축복할지어다.
결혼식 다음날, 결혼 감사 예배를 진행 중이던 바란디가 후작에게 영원한 푸른 하늘의 음성이 닿았다.
사실 예정과는 조금 다른 과시였다. 원래는 결혼식 전에 바란디가 후작을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면 결혼식으로 향할 관심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바란디가 후작의 권위가 결혼식 직전에 급증하면 신랑, 신부의 존재감이 옅어질 테니.
그래서 결혼식 직후로 시기를 조정했다. 결혼식은 결혼식대로 화려하게 진행되고, 신혼부부도 온갖 관심을 받으며, 제사장인 바란디가 후작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때를 노렸다.
“역시 하늘을 섬기는 제사장은 바란디가 후작뿐이다! 역천자의 몰락 이후로 무너진 신앙이 바란디가 후작 대에 다시 부흥했고, 이교라 멸시받던 신앙이 공인받지 않았던가!”
“대제사장을 자처한 역천자는 오히려 신앙을 몰락시켰다! 바란디가 후작이야말로, 그 피를 이을 구르트 후작가야말로 진정한 신앙의 수호자다!”
그 결과가 이거다. 북방 유목민들은 제사장을 축복한 영원한 푸른 하늘에 열광하고, 신의 음성을 들은 후작에게도 열광했다. 결혼식의 열기가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불꽃이 타오른 것이다.
‘효과 확실하군요.’
– 그치? 나도 나름 신이니까. 신이 제사장에게 슬쩍 말을 걸면 다들 좋아한다고.
목소리만 들어도 으스거리는 게 느껴졌으나, 이번에는 영원한 푸른 하늘의 활약이 컸기에 넘어가기로 했다.
아무리 바란디가 후작의 핏줄을 포장해도, 바란디가 후작이 황실과 접점이 생겨도 시간이 지나면 그 위엄이 옅어지는 법이다. 허나 현직 제사장이 실시간으로 신과 소통할 수 있다? 이건 바란디가 후작이 죽는 그 순간까지 옅어질 수 없는 충격이다.
– 아, 게르하르트가 받던 관심도 바란디가한테 쏠리고 있어. 학자로서의 존중은 여전하지만, 예언자처럼 여기는 사람은 이제 없으니 안심해!
‘다행인 일입니다.’
정말 다행이다. 토종 100% 정주민이 유목민 신앙에 관심을 보이는 건 그럴 수 있지만, 유목민 신앙의 성자나 예언자 취급을 받는 건 많이 곤란해진다.
까딱 잘못하면 ‘정주민이 무슨 예언자냐!’ 라며 반발하는 세력이 나올 수도 있잖아. 그러면 겨우 고개를 든 영원한 푸른 하늘 신앙이 반으로 갈라져 죽을 수도 있다. 반으로 갈라져 탈주한 반발 세력이 새로운 제사장을 내세울 수 있다.
‘그건 안 되지.’
그래, 그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정주민 제사장을 용납할 수 없어서 갈라진 세력이라면 보수 중에서도 보수인 세력일 테고, 필연적으로 유목민의 전통과 정체성을 강조할 터. 그렇게 되면 북방에 대한 제국의 영향력이 감소할 수 있다.
만약 영원한 푸른 하늘 신앙이 제국에 적대적이라면 그런 갈라치기를 해서라도 물갈이를 했을 테지만, 역사 깊은 제사장인 바란디가 후작이 내 파벌원이잖아. 뭐 하러 그딴 짓을 해.
‘앞으로도 종종 말 좀 걸어주십쇼. 너무 자주 하면 위엄이 사라지니… 1년에 한두 번 정도?’
– 걱정 마! 내가 신으로 군림한 세월이 얼만데 그 정도는 조절하지!
자신감 넘치는 말인지라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내 인생의 수백, 수천 배 정도 기간을 살아온 신이니 알아서 잘 하겠지.
‘흐으으음…’
– 응? 왜 그래?
‘이럴 때 신물이라도 줄 수 있으면 완벽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카간이 쓰던 것만 아니면 정말 좋았을 텐데요.’
하필 신물이랍시고 있는 물건이 제국군을 썰어버린 물건이라니. 이보다 아쉬운 일이 어디 있을─
– 그럼 새로 만들까?
‘예?’
영원한 푸른 하늘의 말에 반사적으로 반문이 나왔다.
지금… 뭐라고? 뭘 만든다고?
– 어차피 신물이라는 건 신성력이 깃든 물건이고, 신과 연관된 물건이기만 하면 되잖아. 내가 적당히 만들어서 주면 그게 신물이지 뭐.
반박하고 싶었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평범한 밥그릇도 수백 년의 세월을 거치면 유물이 되고, 초대 가주가 애용하던 물품은 후대 가주가 애지중지해야 할 가보가 된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별거 아닌 물건이라도 보는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면 보물이 되는 법이다.
‘…만들 수 있는 겁니까?’
– 물론! 신앙이 회복됐으니 신물 하나쯤이야!
너무도 자신감 넘치는 확답이라 그러려니 싶었다.
***
결혼식 이후로 닷새 정도가 흘렀다.
그리고 그 닷새 동안 여러 사건들이 북방을 뒤흔들었다.
‘장인어른도 정신이 없으시겠어.’
픽 웃음을 흘리며 마유주를 한 모금 마셨다.
결혼식이 끝난 후, 영원한 푸른 하늘의 음성을 들으며 북방 유목민들의 추앙과 관심을 받기 시작한 장인어른이다. 그런 장인어른이 음성을 듣는 것을 넘어 신이 내린 신물까지 받게 되었다. 이 얼마나 경사스럽고도 놀라운 일인가.
물론 유목민 신앙의 신물이 양팔 저울인 것은 조금 의외였으나,
– 신앙의 수호자로서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공정한 길을 걷기를.
상당히 그럴듯한 이유였기에 모두가 새로운 신물을 반겼다.
제사장의 공정하고도 정의로운 행보를 바라며 신이 하사한 저울. 정주민인 내가 봐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이니 유목민들은 오죽할까. 졸지에 신물의 관리자가 되어버린 장인어른도 은근히 기뻐하실 정도였지.
“아인테르. 공작가가 보낸 선물은 전부 정리했어요.”
“고생 많았습니다, 샤티.”
연신 웃음을 흘리던 장인어른의 얼굴을 떠올리던 중, 샤티의 말에 마유주를 책상에 내려두었다.
마음 같아서는 둘이 오붓하게 선물을 정리하고 싶었으나, 샤티가 이런 일은 안주인이 하는 거라며 극구 사양했다. 창고까지 따라가려던 나를 억지로 자리에 앉힐 만큼.
조금 아쉽지만 어쩌겠나. 안주인 겸 차기 후작이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내세운다면 순순히 따르는 수밖에.
“자, 여기요.”
샤티가 건네주는 명단을 빠르게 읽어 내렸다.
결혼식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준 다섯 공작가의 선물. 그 선물이 하나하나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다들 엄청난 것들만 보냈군.’
명단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철혈공은 바렌티 공작가의 전설적인 대장장이인 장인공이 만든 무구를 선물로 보냈다. 전승공은 하블렘 공작가의 은발을 닮은 백금 공예품들을, 마종공은 전대 세르베트 공작인 탐명공이 만든 마도구들을, 황금공은 대체 어떻게 구한 건지 의문인 제레노 왕국의 국보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현명공은…
‘술.’
술을 보냈다. 그것도 대륙 곳곳에서 생산된 다양한 술들을 잔뜩. 제법 오래전에 생산되어 희귀한 술들을 잔뜩.
다른 공작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선물이나, 실로 현명공스러운 선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현명공이 술을 보낼 정도면 대체 얼마나 큰 결심을 하고 보낸 것일까. 근래 들어 이보다 감동스러운 일은 없었다.
“당분간 술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내 농담에 샤티도 쿡쿡 웃음을 흘렸다.
아니, 농담이 아니라 살짝 진심이었다. 나나 샤티나 술을 그렇게 즐겨마시는 편은 아니니까. 어쩌다 한두 잔씩 마시면 수십 년은 마실 수 있는 양이다.
“참. 삼국에서 온 선물도 같이 정리했는데, 보시겠어요?”
“아.”
그 말에 무심코 탄식을 내뱉었다.
샤티가 말하는 삼국은 아르메인과 유벤, 신성교국이다. 아카데미를 졸업하여 더 이상 얼굴을 보기는 힘들지만, 여전히 내 친우인 자들이 머무는 장소. 국경 너머에 있는 친우의 결혼식을 잊지 않고 선물을 보내준 친우들의 고국.
정말 고마운 일이다. 졸업 이후 몇 년이나 지났음에도, 결혼식이 갑작스레 당겨졌음에도 이리도 빨리 선물을 보내주다니. 감사함을 느끼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이다.
그래, 정말 고맙다. 고맙기는 한데…
“관리하기 힘든 선물이었을 텐데.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니에요. 다 저희를 위한 정성인데 노력해야죠.”
차마 고생 많았다는 말은 부정하지 않는 샤티. 그런 샤티의 모습에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만큼 세 친우들이 보낸 선물은 화려하고도 엄청났다. 내가 살면서 이런 선물을 다시 받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셋이 짠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런 것들만.’
슬며시 뒷목을 어루만지며 친우들이 보낸 선물과 손편지를 회상했다.
[ 결혼이라는 경사를 평범하게 축하할 수는 없지! 돈은 많을 테니,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걸 보냈다! ]류티스가 보낸 ‘헤스테인의 창’은 아르메인이 막 건국했던 시절, 수도 인근 산맥을 지배하던 대괴수를 처단한 위대한 기사─ 헤스테인이 사용한 창이었다. 헤스테인이 아르메인에서 건국 영웅 수준의 대우를 받는 걸 생각하면 정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물건이다.
[ 북방만큼 짐승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지역도 없겠지. 이 선물이 북방의 번영과 다양성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라테르가 보낸 짐승들은 코가 길거나 목이 긴 신기한 짐승들이었다. 우연히 그 짐승들을 본 황태녀가 자기한테 주면 안 되냐고 졸랐을 정도로.
아마 이 짐승들의 번식에 성공하면 라테르의 말처럼 북방의 특산품이 더욱 다양해질 터. 조금 당혹스럽지만 고맙기는 하다.
[ 하늘의 축복 아래 결혼을 진행했다고 들었으니, 저는 태양의 은혜를 건네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타니안은… 이교도의 손에 순교한 초대 교황의 피가 묻은 나뭇 조각을 보냈다.
다행히 이 성유물 수준의 물건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초대 교황의 피는 이 나뭇 조각 외에도 여러 물건에 묻었으니까.
그래도, 그래도 설마 차기 성자가 냅다 성유물을 보낼 줄 누가 알았을까.
‘에리히가 가장 정상이라니.’
무려 후작령의 이권이 가장 무난하고 정상적인 선물인 상황.
제과 동아리는 실로 기인들만 모인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