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09)
로판 속 공무원 709화(710/945)
신년 맞이 에리히의 결혼. 겨울 삼국이 망국 직전에 선보인 라스트 댄스. 최초의 정주민 제사장이 등장할 뻔한 게르하르트 사태. 황족과 후작 영애의 결혼. 영원한 푸른 하늘의 신물 하사 등.
새해가 되자마자 여러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지만, 정신없이 흘러갔던 나날도 진정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조용하네.’
점점 해가 길어지고, 자고 일어나면 눈보다 비가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
이제 제도는 겨울을 넘어 서서히 봄에 접어들고 있었다. 체감상 몇 개월 정도 정신없이 달린 것 같은데, 이제야 2월이 끝나가고 있다는 게 경이로울 정도다.
그래도 좋게 생각하면 상반기에 터질 일들이 1, 2월에 몰려서 터진 거겠지. 양심상 올해가 평온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상반기만큼은 고요할 거라 믿는다. 에넨에게 양심이 있다면 반드시 그래야 돼.
– 멍!
그렇게 멍하니 침대에 누워 창문 밖을 바라보는 사이, 티티가 침대에 앞발을 올리며 짖었다.
“산책 갈까?”
같이 놀러 가자는 신호 같아서 슬쩍 몸을 일으켰다.
솔직히 집 밖으로 나가는 건 귀찮은 일이나, 티티의 산책은 미룰 수 없다. 우리 티티가 바깥바람을 쐬고 싶다면 기꺼이 나가야지.
– 멍멍!
내가 몸을 일으키자 티티는 방구석으로 쪼르르 달려가더니, 목줄을 물고 복귀했다.
우리 티티 장하다. 이제는 알아서 산책에 필요한 물건을 챙겨서 오는구나. 이러다 산책 중에 먹을 간식이나 장난감 같은 것도 가져올 것 같아.
‘…요즘 왜 이리 자주 나가지?’
티티의 목에 목줄을 걸던 중,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티티가 원래부터 활동적인 편이기는 했다. 새끼 때는 뽈뽈뽈 저택을 돌아다녔고, 덩치가 커진 후에는 저택의 정원과 후원을 누비고 있으니까. 거기다 가끔 부인들과 사용인들이 외출할 일이 생기면 같이 제도 산책을 할 정도다. 그만큼 활동적인 아이가 티티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티티는 정원과 후원에서 노는 걸로 만족하지 못했다. 매일 아침이 되면 내 방으로 달려왔고, 산책을 가자며 졸랐다.
‘이제 저택은 재미가 없나?’
해맑게 헥헥거리는 티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긴. 아무리 저택이 넓어도 결국 건물에 불과하지. 몇 년이나 저택을 누비고 다녔으니 이제 지루할 만도 하지 않겠나. 티티가 산책을 갈망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동물은 덩치가 클수록 활동량이 늘어나는 법. 성견의 덩치를 자랑하는 티티가 그동안 정원으로 만족한 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인 일이다. 오히려 주인인 나를 배려해서 참았다고 보는 게 옳다.
“이제 가자.”
– 왈!
풍차처럼 꼬리를 흔드는 티티의 모습에 픽 웃음이 나왔다.
상황에게 티티를 강제 분양받았을 때는 얼떨떨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상황이 나에게 하사한 최고의 보물이었다. 티티가 없었으면 저택이 지금보다 심심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힘들었을 테니.
우리 티티. 부디 우리랑 같이 오래오래 살자.
하도 티티와 함께 제도를 돌아다녀서 그런가, 산책하다가 마주치는 제도 경비대 병사들도 티티를 보면 반갑게 인사해 주는 경지에 이르렀다.
“각하를 뵙습니다.”
“아침부터 노고가 많군.”
“제도를 지키는 것이 저희의 사명이니 새벽이어도 노력해야지요. 아,티티도 좋은 아침이다.”
– 멍!
나에게 예를 갖추고 티티에게 손을 흔드는 경비조장.
다행히 티티도 한 번 본 사람의 냄새는 잘 기억하는 편인지라, 경비조장의 인사에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했다.
“전에 볼 때보다 털이 풍성해진 것 같습니다.”
“살이 찐 건지, 털이 찐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 말에 경비조장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티티의 존재는 나를 차갑고 냉혹한 감찰성 장관이 아닌, 조용하고 온순한 애견인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일개 경비대 병사와 소소한 농담이 가능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고.
어차피 내가 주로 상대해야 하는 상대는 일선 경비대가 아닌 귀족들이나 고위 관료들이니까. 경비대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구축해도 딱히 손해는 없다.
“각하. 최근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과일이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각하께 선물로 드려도 되겠습니까?”
“보내준다면 고맙게 먹도록 하지.”
친숙한 이미지 덕에 이렇게 선물까지 받을 수 있으니 소소한 이득만 가득하다.
시골에서 농부가 직접 기르고 수확한 농산물. 솔직히 품질만 따지면 대형 상단에서 철저히 고르고 골라 유통하는 과일이 더 뛰어나겠지만, 시골에서 직통된 물건은 그것만의 맛이 존재하더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차이가 있어.
“티티가 먹어도 문제없을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런. 티티가 전부 훔쳐 먹겠군.”
– 끼이잉…?
졸지에 도둑견이 되어버려 낑낑거리는 티티. 그 모습에 경비조장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그 뒤로도 세 명의 경비대원과 추가로 조우했다. 만나는 경비대원들마다 선물을 제공하는 것이니,조만간 경비대에 기부금 좀 넉넉히 보내야겠다.
– 멍!
“이제 돌아가자고?”
– 멍멍!
그렇게 2시간 정도 제도를 어슬렁거린 후. 티티의 보챔에 저택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래, 아침부터 2시간이나 돌아다녔으니 티티도 만족했겠지. 돌아가면 간단히 씻은 다음에 이른 점심 좀 먹고, 가볍게 낮잠이나 자볼─
“칼?”
“어머니?”
저택으로 가던 중에 어머니와 마주쳤다.정확히는 테레사를 품에 안은 채, 유모와 함께 걷고 있던 어머니와.
“이런 곳에서 다 만나는구나. 산책 중이었니?”
“아, 예. 티티가 심심해하는 것 같아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어머니가 온 방향을 보고 납득했다.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는 방향에서 오신 걸 보니, 마침 마법진에서 저택으로 가던 중이셨나 보다. 타이밍 좋게 잘 만났네.
“마법사랑 오시지, 아직 날도 추운데 왜 걸어오셨습니까?”
“테레사가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하더구나. 제도에 자주 오는 것도 아니니 이럴 때 구경시켜줘야지.”
“웅! 이게 죠아!”
당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테레사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건 그렇지. 우리 테레사는 재미없이 저택에 뿅 떨어지는 것보다, 이렇게 걸어 다니며 제도 구경하는 걸 더 좋아할 성격이지.
“그런데 우리 테레사. 구경하는 게 좋으면 직접 걸어야 하지 않겠니?”
“으에?”
내 말에 테레사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어머니의 품에 더욱 깊숙이 안겼다.
“추운건 시른대…”
바닥에 내려와 걸으면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무리 활발한 테레사라도 그건 싫은 모양.
조금 곤란한 일이다. 아직 테레사가 어리긴 하지만 계속 안고 다니면 어머니가 힘들어하실 수도 있다. 장남으로서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지.
“그럼 티티 등에 탈래?”
“띠띠?”
그러자 테레사의 눈이 반짝였다.
노랗고 크고 푹신푹신하게 생긴 개. 테레사 입장에서는 그 어떠한 명마보다도 탐나지 않을까? 이미 페디를 비롯한 우리 집 아이들이 증명한 진리니 틀림없다.
“탈래! 탈래!”
“좋아. 대신 티티 등에 타면 가만히 있어야 한다?”
아무리 작은 애라도 이리저리 움직이면 티티가 다칠 수도 있어.
“아랏써! 가만히 잇쓸깨!”
다행히 테레사는 이미 티티의 등에 홀렸는지, 내 작은 제한 사항에 아무런 유감도 표하지 않았다.
역시 아이들의 아이돌인 티티야. 효과 확실하지.
***
아이를 태우는 게 익숙한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 다니는 티티. 그런 티티 위에 올라타 즐거워하는 테레사. 혹시 테레사가 떨어지지는 않을까 등을 받치고 있는 칼.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광경이다. 훨씬 연장자인 오빠가 어린 여동생을 극진히 보살피고, 애완동물이 어린아이를 태워준다니. 마치 따스한 동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다.
그런 동화 같은 일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일상이다. 어미로서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나도 개 한 마리 정도는 기를까?”
게다가 동물에 큰 관심이 없던 라우라마저 티티를 보고 애완동물에 대한 욕구를 키웠다.
사실 나도 티티를 볼 때마다 그런 욕구가 샘솟는 중이다. 칼과 며느리들을, 손주들을 보러 갈 때마다 티티는 언제나 대문까지 나와 나를 반겨주었다. 심지어 손주들과도 열심히 놀아줬지. 그런 티티를 수 년이나 지켜봤는데, 애완동물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애완동물과 함께 자라면 아이의 정서에 좋다고 하더군. 교육성에 있는 지인의 말이니 틀린 말은 아닐 거요.”
빌리도 티티가 마음에 들었는지, 얼마 전부터 은근히 그런 말을 꺼냈었다.
그렇기에 우리도 대형견을 하나 키울까 싶다가도─ 티티의 혈통을 생각하면 조금 망설여졌다.
‘상황 폐하께서 기르던 아이.’
티티는 상황 폐하께서 현 황제 폐하께 양위하신 이후, 새끼 때부터 친히 기르던 아이였다.
그런 티티를 상황 폐하께서 칼에게 하사하셨고, 티티는 상황 폐하께서 기르던 아이답게 똑똑하고 착한 아이로 자라났다.
그러니 티티를 평균으로 생각하는 건 심각한 오류다. 티티는 개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상위권인 아이. 모든 개가 티티 같을 거라 생각하고 기르면 이래저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티티의 새끼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원본인 티티보다는 못하겠지만, 티티의 피를 이은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친다면 훌륭한 개로 자랄 터.
마침 티티는 수컷이니… 티티가 열심히 일하면 새끼들도 금방금방 생겨날 거다.
‘…몇 년만 더 기다리자.’
때가 되면 티티도 짝을 찾고 아이도 낳겠지. 티티도 생명인데 평생 혼자 살지는 않을 거잖아.
그때까지만 참고 기다리자. 어차피 우리와 10년을 넘게 살아갈 아이라면, 우리와 정을 주고받을 아이라면 티티의 새끼인 것이 낫다.
저택에 도착했음에도 테레사는 티티의 등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나! 더 탈래!”
– 왈!
“띠띠도 내가 조태!”
티티의 목을 껴안으며 버티는 테레사. 테레사의 돌발행동에도 마냥 밝은 표정을 짓는 티티.
산책에 이어 아이까지 태우고 있으면 힘들 것이 분명한데, 아무런 티도 내지 않는 티티를 보니 미안하기까지 했다.
‘역시 티티의 새끼여야 돼.’
동시에 몇 년만 버티자는 다짐이 더욱 굳건해졌다.
이미 티티에게 익숙해진 테레사다. 반드시 티티의 핏줄을 이은 아이를 길러야 테레사도 만족할 거다.
– 멍?
내가 빤히 바라보자 티티는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치도 빠르다니. 정말 완벽하기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