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1)
*****************************************************
[ [ [****************************************************
룰렛왕 타니안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멈추지 않는다는 건 만족하고 자리를 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뜻. 내가 본 것만 4번 정도 굴린 것 같은데 대체 얼마나 꼬라박는 건지.
슬슬 걱정되는 마음까지 든다. 내가 본 게 4번이니 실제로는 더 했을 거 아냐. 그 와중에 타니안이 잃은 돈이 방금 내가 황실에 상납하고 온 돈의 10%도 되지 않는 게 슬픈 일이다.
“적당히 해라. 성직자가 그러고 있으면 보기 안 좋다.”
“괜찮습니다. 가볍게 즐기는 정도니까요.”
가볍게? 내가 그동안 가볍게라는 단어의 뜻을 이상하게 알고 있었나?
“형제님. 도박은 장담할 수 없는 확률에 모든 것을 바치기에 멸시 받습니다.”
“그걸 알면 그만두지 그러냐.”
아는 새끼가 그런다니 더 나쁘다.
하지만 그런 내 반응에도 타니안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확률에 거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단번에 거금을 얻을 수 있다는 잠깐의 희망, 게임을 진행할 때의 두근거림을 즐기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뿐이지요.”
“뭔.”
개소리야.
차마 말을 완성하지 못한 것은 파문을 피하기 위한 마지막 이성이었다.
“연극을 보거나 카페에 갈 때도 돈은 쓰지 않습니까? 저는 잠시 즐거움을 위한 게임에 돈을 썼을 뿐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친 발언을 마치고 어깨를 으쓱인 타니안을 멍하니 쳐다봤다. 만약 이 새끼가 신성교국에서 온 성자 후보라는 걸 몰랐다면 신흥 사이비라고 생각했을 거다. 이게, 차기 성자?
아니, 그냥 즐기는 자 모드에 돌입한 미치광이인가? 그런데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한데.
무언가에 홀린 듯 룰렛에 다가간 나는 대은화 5개를 추가로 날리고 타니안과 리조트로 복귀할 수 있었다. 50개만 쓰면 되는 걸 부가세도 지불해버렸네. 돈을 따는 걸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못 딸 줄은 몰랐다.
“형제님도 운이 좋은 편은 아니시군요.”
“그러게나 말이다.”
애초에 운이 좋았다면 너희하고 아카데미에 있지도 않았겠지.
리조트로 들어가자 학생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꽤 큰 리조트니 내부 구경이라도 하려는 모양. 로비조차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나 카페가 있으니 작정하고 꾸민 곳은 어느 정도 수준일지.
“오, 의외의 조합이군요.”
옆에 있던 타니안의 목소리에 타니안이 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루이제와 마르게타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진짜 의외의 조합이기는 하네.
마주 앉은 둘의 표정은 밝은 편이었다. 마르게타에게 탈탈 털려 훌쩍이던 루이제를 생각하면 극적인 관계 회복이 아닐 수 없다. 애초에 마르게타가 루이제에게 적의를 가진 것도 아니고, 루이제도 마르게타에게 위압된 거지 싫어한 건 아니었지만.
“아, 오라버니! 타니안!”
그리고 루이제가 이쪽을 발견하자 마르게타도 살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가시겠습니까?”
“그러지.”
타니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급하게 할 일도 없으니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다. 혹시 모르는 마음에 근처를 살피니 이리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이 있어도 상관없겠네.
가까이 다가가자 루이제와 마르게타가 옆으로 앉아 자리를 만들어줬다. 내가 눈치껏 마르게타 옆에 앉으니 타니안도 만족스레 루이제 옆에 앉았고, 마르게타도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인가 하는 그건가.
그리고 나와 타니안을 번갈아보던 루이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둘이 같이 다니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요.”
내가 루이제와 마르게타라는 조합에 신기함을 느낀 것처럼 루이제도 나와 타니안의 조합이 신기한 모양이다. 타니안뿐만 아니라 부원들하고 단 둘이 다닌 적 자체가 그리 많진 않다만.
“밖에서 우연히 만나서. 같이 나간 건 아니야.”
“그래요? 타니안이 바로 갈 정도면 재밌는 곳이겠다!”
‘아.’
아
해맑음과 기대를 담은 루이제의 목소리에 순간 과거의 대화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대륙 제일의 카지노?”
“그런 거 말고 즐길 곳은 많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신경 쓰게 생겼다. 그때는 내가 수학여행 시작부터 카지노에 갈 줄은 몰랐지.
무심코 맞은편의 타니안을 바라보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도 루이제에게 카지노에 간 기괴한 성직자라는 이미지를 심고 싶지는 않겠지. 알아서 잘 둘러댈 거라고 믿는다.
“카지노에 있었습니다. 형제님도 거기서 만났고요.”
아니 시발, 대신 말해달라고 쳐다본 게 아닌데.
흠칫 몸을 떤 루이제가 어색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봤고, 옆에서 마르게타의 시선이 느껴졌다. 조금 따가웠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 다녀왔어. 거기가 어지간한 곳보다 안전하기는 하거든.”
카지노가 흡수하는 자금 보호와 고객이 게임 패배라는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난동을 피우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경비병이 넘치는 곳이다. 오히려 안전이나 보안은 상당하지. 괜히 황금공이 VIP실에서 만나자고 한 게 아니다.
그러니 난 불러서 간 죄밖에 없다. 결백함을 담은 눈빛을 보내니 루이제도 납득한 것 같다.
“타니안도 약속 때문에 간 거야?”
“아, 저는 유명하다길래 간 겁니다.”
숨김없이 당당한 발언에 오히려 루이제가 말린 것 같다. 상대가 너무 당당하면 머리가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나도 그랬거든.
“주의 뜻을 따르는 종이 어찌 갈 곳을 가리겠습니까? 그곳도 주의 자식들이 모이는 곳이거늘.”
나에게 했던 것처럼 입을 털기 시작하니 루이제의 표정이 멍해지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핑계 같은데 하필 말하는 게 차기 성자라 묘한 설득력이 있다.
“재밌기도 했습니다. 너무 많이 해서 제법 잃고 왔거든요.”
굳이 사족을 달아서 스스로 설득력을 날려먹는 것이 문제지만. 자연스러운 도박 선언에 루이제도 마르게타도 어색하게 웃거나 헛기침을 했다.
“그, 그래? 힘들었겠다.”
루이제가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다가 애매한 대답을 했다. 저런 말에는 어떻게 대답할지도 고민이겠지.
다음에는 좋은 결과가 나올 거야? 또 카지노로 가라는 말이다. 그럴 수도 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 성직자가 도박을 즐긴 건 그럴 수 있지 않다. 극강의 가불기에 걸린 루이제가 불쌍할 따름이다.
“사실 형제님도 마음이 좋지 않을 겁니다. 저만큼 잃으셨거든요.”
“어?”
“네?”
‘야 이 새끼.’
타니안의 걱정이 담긴 악의 없는 빅엿이 나에게 향했고, 두 명의 시선도 나에게 꽂혔다. 분명 약속 때문에 간 거라고 하지 않았냐는 의문과 배신감 섞인 눈빛.
“후배님. 혹시 칼 영식이 얼마나 썼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마 대은화 5개였습니다.”
부가세처럼 날려버린 액수를 들은 마르게타가 잠시 말이 없더니 아예 몸을 내 쪽으로 돌려 앉았다.
“칼 영식. 잠깐 얘기 좀 해요.”
“아, 예.”
마르게타의 눈빛이 많이 따가워졌다.
***
큰일이다. 이건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다.
‘결혼하면 돈은 칼한테 맡기려고 했는데.’
당연하게 생각한 미래가 조금 삐걱이려고 한다. 재무성, 심지어 감찰부에서 관직 생활을 한 칼이다. 당연히 나보다 자금 관리에 철저할 것일 거라 믿었는데.
‘어떡해…!’
완전무결한 사람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지금까지 내가 발견하지 못한 칼의 단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어떤 단점이든 웃으며 안아줄 거라 다짐했다. 그런데 하필 도박이라니. 너무해, 딱 하나인 단점이 너무 크잖아.
물론 칼이 그동안 모은 재산도 적지는 않다 들었고, 칼이 잇게 될 크라시우스 백작가는 영지가 수도권에 위치한 명문 무가다. 바렌티 공작가는 말할 것도 없고. 그까짓 도박, 바렌티 공작가의 저력이면 아예 카지노를 몇 개 사서 칼에게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아빠인 칼이 도박 중독이면 아이들이 잘못될 수도 있잖아. 어쩌면 아이들이 아빠를 한심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건 안돼. 절대로 안돼.
“칼 영식.”
“예, 마르.”
살짝 시선을 내리며 대답하는 칼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지만, 이건 양보해서는 안된다. 나와 칼의 행복한 미래,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런 문제는 단호하게 잡아야 한다. 지금이야 칼이 대은화 몇 개, 금화 몇 개를 날려도 아무 지장 없지만, 훗날은 모르니까.
“후배님의 말이 사실인가요?”
“예에…”
부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여기서 아니라고 했다면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사실이었다. 그래도 거짓말 하지 않고 솔직한 칼도 좋─
아니, 이게 아닌데.
“칼 영식. 귀족은 언제나 품위를 지켜야 해요. 어렵더라도 올바른 길을 걷고, 요행을 바라봐서는 안돼요.”
카지노의 광기는 잘 안다. 어떤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모이는지도 안다. 귀족스럽지 못한 추악한 장소. 어째서 황금공께서 거하는 도시에 거대한 카지노가 당당히 있는지 의아할 정도. 그분은 정말 귀족다운 분인데.
하지만 황금공께서 의아한 행동을 하셨다고 그것이 칼도 어긋나도 되는 이유는 아니다. 주변이 어떻든 우직하고 고고하게 나아가는 것. 만인의 모범이 되는 자. 그것이 귀족이다.
“저는 칼 영식이 훌륭한 귀족이라고 생각해요.”
“감사한 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조심스럽게 새끼손가락을 칼에게 내밀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으니까.
“제가 그 생각을 바꿀 일은 없지만, 칼 영식도 하나만 약속해 줄 수 있을까요?”
앞으로는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
긴장한 듯 입을 꾹 닫고 새끼손가락을 내민 마르게타의 모습에 당혹감이 몰려 들었다. 난 도박 취미 같은 거 없다. 아까는 아가리 파이터에 홀려서 내가 미쳐가지고.
하지만 그런 사정과 별개로 오늘 룰렛 좀 돌리고 온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오늘만 그랬어요, 같은 발언은 내가 생각해도 중독자의 치졸한 변명에 불과하다.
‘안 갈 수가 없는데.’
마르게타에게는 미안하지만 카지노는 갈 수밖에 없다. 크라켄 토벌에 성공하면 받을 보수도 카지노에서 받고, 그 후에도 종종 들려서 입금하거나 출금할 일이 있다.
그런 사정을 마르게타에게 설명하면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보야르 공작령의 카지노가 황실 ATM인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아니라 철저히 숨겨야 할 기밀에 속한다.
대륙 각국의 관광객도 와서 돈을 쓰는 카지노인데 ‘여러분이 여기서 쓰는 돈으로 제국 군사력이 강화됩니다’ 같은 소문이 퍼진다? 바로 카지노는 떡락하고 황제는 함부로 입을 놀린 새끼를 찾아서 죽이려 들 것이다.
“칼 영식…?”
잠시 머뭇거리고 있자 마르게타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가는 촉촉한 것이 연인이 중증 도박 중독자라는 소식을 들은 가련한 여인 같은 모습이었다.
‘돌겠네.’
어쩔 수 없다. 안 들키게 조심하자.
결국 조용히 새끼손가락을 걸자 그제서야 마르게타는 활짝 웃을 수 있었다. 맞은편의 루이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타니안은 잘됐다는 듯 작게 박수를 쳤다.
여명 교단 성직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미덕이었나. 저 개새끼. 진짜 악의적으로 엿 먹인 거면 바다에 담그기라도 할 텐데, 악의도 없이 저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