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10)
로판 속 공무원 710화(711/945)
테레사는 티티의 등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제 ‘티티의 등에 탄 테레사’가 아니라 ‘티티와 테레사’라는 단일 개체로 보는 게 옳지 않을까.
그래도 등 위에서 활발히 움직이면 안 된다는 말을 기억하는지, 테레사는 고개만 이리저리 돌릴 뿐 격렬한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등에 탄 기수가 조용하니 티티도 발걸음도 가볍더라. 실로 다행인 일이다.
“오빠! 옵빠!”
“응?”
“나! 더 빨리!”
반짝이는 눈동자로 올려다보는 테레사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테레사는 기어다니지 못하던 시절에도 빠른 속도를 좋아했지. 덕분에 나를 비롯해서 아버지와 가문의 기사들은 성 복도를 등으로 돌아다녔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제국 제일의 취침 포복 전문가들이 되었다. 돌과 구덩이가 널린 험지에서도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티티. 조금만 달릴까?”
– 왈!
그렇기에 테레사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속도를 즐기는 테레사에게 ‘그냥 이걸로 만족해.’ 라고 하면 떼를 쓸 게 뻔하니까.
티티가 달리면 테레사가 균형을 잃고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걸 대비하기 위해 내가 옆에 있지 않나. 게다가 바닥에 매트리스도 깔아두었으니 테레사가 낙견해도 꺄르르 웃고 넘어갈 거다.
“빨라! 빨라!”
티티의 질주에 테레사는 해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동생을 보니 흐뭇하기 그지없다. 에리히 따위에게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아오르고 있어.
‘역시 여동생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남자만 둘인 형제는 칙칙하고 재미가 없다. 귀여운 여동생까지 삼남매는 되어야 진정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법.
테레사는 우리 크라시우스 가문의 홍복이다.
“으에?”
그렇게 신나게 복도를 달리던 중, 테레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띠띠! 띠이-띠! 멈쳐져!”
– 멍?
그러고는 티티의 목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정지를 요청했다.
“오빠! 저기! 이상해!”
“이상하다고?”
테레사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벽 쪽에 붙어있던 매트리스가 삐죽 올라와 있었다.
마치 저 매트리스 아래에 무언가 있는 것처럼.
‘아.’
상당히 익숙한 광경이라 슬쩍 벽 쪽으로 다가갔다.
이 위치, 이 높이, 이 패턴.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밖에 없다.
“너 여기서 뭐 하냐?”
“자유를 찾고 있었다…”
삐죽 솟아오른 매트리스를 걷어내자 보이는 장생이.
축 늘어져 있던 장생이가 씁쓸한 목소리로 나를 반겨주었다.
‘얘 또 숨었네.’
우리 집 아이들은 물론, 황태녀도 자주 찾는 존재가 장생이다. 하필 아이들이 환장할 수밖에 없는 작고 귀여운 외견 때문에 하루 중 16시간은 시달린다고 봐도 무방하다. 만약 아이들이 밤새 깨어있을 수 있다면 24시간 시달렸을 터.
그래서인지 촉촉한 장생이의 눈망울을 보자마자 동정심이 들었다. 이대로 조용히 매트리스를 덮─
“우와! 쟝생이!”
“아.”
“망할.”
유감스럽게도 장생이가 다시 어둠 속에 잠기기 직전, 티티와 테레사가 장생이를 발견하고 말았다.
“장생이도 나랑 가치 놀아!”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쳐다보는 테레사.
“주인. 내가 요즘은 주인도 주인이라 꼬박꼬박 부르고, 말도 잘 듣고, 아이들하고도 잘 놀아주지 않나. 아주 잠깐 쉬는 것뿐이다. 조금만 더 쉬면 세쌍둥이한테 갈 생각이었어.”
동시에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하는 장생이.
안다. 잘 알고 있다. 우리 집에서 티티 다음으로 아이들과 놀아주는 존재를 꼽자면, 아마 장생이가 압도적인 2위에 오를 것이다. 그만큼 장생이의 헌신과 희생은 가볍지 않다.
“장생아.”
그런 장생이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매트리스를 서서히 덮었다.
그러자 장생이의 눈에 점점 희망이 깃들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뭣?”
허나 매트리스가 완전히 덮어지기 전, 장생이를 쓱 꺼냈다.
미안해. 너 숨기려고 덮은 게 아니라 너 빼내고 덮으려는 거였어.
“조심히 만져야 한다?”
“웅!”
몸을 파들파들 떨며 나를 노려보던 장생이는 힘없이 테레사의 품에 안겼다.
미안하다. 그래도 기껏 오빠 집으로 놀러 온 동생이 너랑 놀고 싶다는데, 그 간절한 부탁을 어떻게 외면하겠어.
어차피 너 애들이랑 놀아주는 거 익숙하잖아. 그러니 조금만 더 노력해 줘. 테레사가 돌아가면 쉬게 해줄 테니까.
‘아마도.’
우리 집 아이들만 일곱이다 보니 확신은 못하겠다.
테레사가 티티, 장생이와 함께 우당탕탕 저택 여행기를 찍는 사이, 어머니는 부인들과 함께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엄마!”
“테레사 왔니?”
그리고 평화로웠던 고부간의 티타임은 테레사의 난입으로 소란스러워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동생이지만, 테레사의 변덕은 오빠인 내가 봐도 화려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저택을 질주하는 걸 좋아했는데… 갑자기 엄마를 보고 싶다며 티티의 발걸음을 돌릴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테레사의 변덕은 철저히 실현 가능한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편이다. 지금도 어머니가 저택에 계셔서 보고 싶다고 한 거지, 다른 곳에 계셨다면 조르지 않았을 테니까.
…않았겠지? 이 오빠는 우리 테레사 믿어.
“테레사 안녕? 잘 놀다 왔어?”
“웅! 옵빠랑 띠띠랑 쟝생이랑! 잔뜩 노랏써!”
아무튼 티티의 등 위에서 폴짝 뛰어내린 테레사는 리제를 향해 양팔을 파닥였다.
마치 자기가 얼마나 흥미진진한 대모험을 펼쳤는지 자랑하려는 것 같은 모습. 그 모습에 먼저 인사를 건넨 리제뿐만 아니라 다른 부인들도 미소를 지었다.
“재밌었겠네. 그래도 잔뜩 놀았으면 배고플 텐데, 쿠키라도 먹을래?”
“머글래!”
그리고 흐뭇한 표정으로 테레사의 재롱을 지켜보던 리제는 테이블 위에 있던 쿠키를 테레사에게 건넸다.
“자, 아~”
“아~”
아니, 건네주는 수준을 넘어 직접 먹여주기까지 했다.
훈훈한 수준을 넘어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광경이다. 부인들 입장에서는 한참이나 어린 아가씨가 불편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자기 딸이나 조카처럼 대해주고 있으니까.
“테레사. 언니한테 고맙다고 해야지.”
“고마어!”
어머니도 며느리와 딸의 우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테레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새삼스럽지만 내 가족운은 대륙 누구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구나 싶다. 이렇게 화목한 가족이 처음부터 곁에 있고,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상사운과 부하운이 궤멸적이라 문제지.
“그런데 장생이도 여기 있었구나?”
“그렇게 됐다.”
리제의 말에 여전히 테레사의 품에 있던 장생이는 퉁명스레 중얼거렸다.
평소였다면 살짝 꾸짖은 다음 세쌍둥이에게 보낼만한 행동이었으나, 조금만 쉬자고 애원하던 장생이를 테레사에게 팔아버린 상황이다. 이 정도 투정은 이해해야지.
“마침 애들이 너 찾던─”
“그아아아앗!”
리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생이는 처절하게 발버둥 쳤다.
“쟝생이! 가만잇써!”
“제발! 제발 날 혼자 있게 둬라!”
허나 아무리 처절하게 발버둥 쳐도 테레사의 품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괜히 장생이가 무리해서 힘을 쓰다가 테레사가 다친다? 그러면 장생이의 앞날은 나조차 장담할 수 없다. 장생이도 그걸 아니 전력으로 버둥거리지는 못하고 있는 거고.
“나도 피로를 느끼는 생명이다! 생명!”
한때 죽음이라 불리던 존재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며느리들과의 티파티는 그대로 이어졌다.
테레사가 내 품에 안기고, 칼도 티파티에 합류했다는 변동 사항이 있었으나─ 사교가 아닌 가족의 대화를 위한 티파티였으니 오히려 기꺼운 일이다.
“참. 칼?”
“예, 어머니.”
“성에 있는 탄생수 말인데. 슬슬 이 저택으로 옮겨 심는 건 어떻겠니?”
“탄생수요?”
내 말에 칼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가 뒤늦게 탄성을 흘렸다.
“그렇군요. 옮긴다는 걸 계속 잊고 있었네.”
칼의 탄생수. 칼이 태어났을 때 빌리가 직접 심은 나무로, 칼이 결혼을 하고 독립을 하게 된다면 그 기념으로 옮겨 심자고 맹세한 나무.
물론 칼은 타일글레헨 백작위를 이어야 할 장남으로 태어났으니 영원히 타일글레헨 백작령에서 살아갈 수 있었으나, 세상 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지 않나. 지금처럼 백작인 칼이 제도에서 지내는 것처럼.
“사실 신부의 집으로 보낼 생각도 했지만… 멀쩡한 나무를 6등분 할 수도 없잖니.”
‘신부의 집’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트릭시의 귀가 파닥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며느리들 중에서 칼의 탄생수에 대해 가장 먼저 들은 건 트릭시였지. 그날 이후로 탄생수를 볼 때마다 정말 아름다운 나무라며 극찬했었고.
아마 트릭시는 칼의 탄생수를 세르베트 공작령으로 옮기기를 원했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트릭시가 소중한 며느리인 만큼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니.
“그럼 에리히의 탄생수는 어쩌시겠습니까? 그 녀석 것도 제도로 옮기시겠습니까?”
“에리히는 세라와 결혼을 마치면 옮기도록 하자꾸나. 지금 옮기면 비아와의 결혼만 기념하는 것 같으니까.”
“그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칼을 보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20년이 넘게 곁에 있던 탄생수가 사라진다는 건 아쉬운 일.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의 새로운 인생, 새로운 가정을 축복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기꺼이 웃을 수 있다.
오히려 진작에 보냈어야 했는데 아쉬움으로 미루고 있었지. 이제라도 보내게 되어 다행이다.
“봄이 되면 바로 옮기겠습니다.”
“그러렴. 탄생수 입장에서도 따뜻할 때 집을 옮기는 게 좋겠지.”
겨울철 이사보다는 봄날의 이사가 더 즐거운 법이니까.
저녁 직전이 되고 나서야 칼의 저택을 떠나게 되었다.
시어머니가 너무 오래 머무는 건 며느리들에게 불편함만 주고,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빌리 혼자 저녁을 먹게 되니까. 하루의 마지막을 빌리 혼자 보내게 할 수는 없다.
“나 더 잇쓸래! 더 놀고 갈꺼야!”
테레사가 오빠 저택에 더 머무르고 싶다며 떼를 쓰는 소동이 벌어지기는 했으나, 며칠 후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니 순순히 고집을 접었다.
테레사치고는 매우 순순한 순응이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티티?”
– 멍!
대문에서 우리를 배웅하던 티티가 슬쩍 걸음을 옮겨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티, 티티야?”
칼도 이 상황이 당혹스러운지 티티를 불렀지만,티티는 헥헥거리며 빤히 나를 올려다봤다.
“왜 그러니? 혹시 테레사랑 더 놀고 싶은 거니?”
티티의 머리를 쓰다듬었으나 티티는 여전히 헥헥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이 아이가 갑자기 왜 이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