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13)
로판 속 공무원 713화(714/945)
어느덧 겨울을 지나 완연한 봄이라고 할 수 있는 시기.
꽃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고, 바람이 차가움보다는 따뜻함으로 온몸을 어루만지는 나날. 자고 일어나면 차가운 바닥이 아닌 따사로운 햇빛이 반겨주는 일상이 찾아왔다.
아이들도 날씨가 풀린 것이 기꺼운지 저택이 아니라 정원의 꽃밭에서 뒹굴거리더라. 저러다 풀독이 옮거나 벌레에게 물리면 어쩌나 걱정되지만, 트릭시의 마법과 정원사들의 철저한 관리가 있으니 괜찮을 거라 믿는다.
“지낼만했냐?”
그렇게 꺄르르 웃으며 정원을 뛰어노는 아이들과 티티, 성수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옆에 있던 장생이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버틸 만은 했다.”
내 질문에 장생이는 덤덤히 대답했다.
예의상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애초에 장생이가 예의를 차릴 정도로 섬세한 성격은 아니며, 안색도 몇 주 전의 티티처럼 밝아진 상태로 돌아왔으니까.
역시 일곱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하나를 상대하는 게 더 편했던 모양이지. 아무리 24시간 밀착하더라도 한 명하고만 놀아주면 다른 건 신경 쓸 필요가 없잖아. 게다가 테레사가 잠에 들면 슬쩍 탈출해도 되고.
“피곤하면 말해. 다음부터는 안 보낼─”
“말도 안 되는 소리. 주인의 막냇동생이 이 몸을 얼마나 따르는지 아는가? 내가 가지 않는다면 주인은 막냇동생의 원망을 받을 거다.”
혹여나 자신의 휴가가 사라질까 두려운지, 장생이는 빠른 속도로 말을 이었다.
처절하고도 절박함이 담긴 모습이라 부드럽게 장생이를 쓰다듬어줬다. 이거 두 번 농담했다가는 장생이가 돌연사하겠어.
“괜찮았으면 계속 보낼 테니 걱정 말고. 가야 될 녀석들이 많으니 다음 차례가 오려면 많이 남았지만.”
그 말에 장생이는 침통히 고개를 숙였다.
티티와 열하나의 성수들. 하나당 2주만 휴가를 즐긴다고 쳐도 무려 24주다. 약 반 년에 이르는 세월이 지나야 겨우 한 바퀴가 도는 것이다.
…
‘괜찮은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반 년마다 2주 휴가면 괜찮은 수준을 넘어 뛰어난 거 아닌가? 1년을 기준으로 잡으면 최소 4주의 휴가를 즐긴다는 건데, 어지간한 공무원을 아득히 능가하는 수준이다.
‘나 같은 주인이 어디 있을까.’
괜히 뿌듯함이 몰려왔다. 애완동물의 복지를 이렇게나 챙겨주는 주인이라니. 이 정도면 모든 애완동물의 아버지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겠지.
심지어 성수들은 말도 할 수 있는지라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바로 챙겨주고, 어디 다치거나 아프면 바로 고쳐줄 수 있다. 애완동물을 기르기에 완벽한 환경이다.
“장생아.”
“왜 그러나?”
“넌 신으로 지내는 것보다 이렇게 지내는 게 더 편할 거다.”
장생이한테 검지와 중지를 물렸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날 이후로 장생이의 눈빛이 묘하게 표독스러워졌다. 만약 장생이가 말을 하지 못했더라면 나를 볼 때마다 맹렬히 짖었을 정도로.
미안하다.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한 말이기는 했어.
따뜻한 봄바람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듯, 피네의 품속에 있던 북쪽이도 우리에게 찾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언제 출산을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부푼 배. 넉넉하게 계산하면 이맘때인 출산 예정일. 점점 움직이는 것을 힘들어하는 피네.
이 모든 것이 북쪽이의 탄생을 암시하고 있다. 마침내 모든 부인들이 자신의 친자식을 안고 티타임을 즐길 수 있는 날이 가까워지는 것이다.
‘피네만 자식이 없어서 눈치가 보였지.’
사실 결혼한 시점을 생각하면 이보다 빨리 아이를 낳을 수는 없지만, 피네도 한 사람의 부인으로서 자신만 자식이 없는 상황이 기꺼울 리 없다. 아무리 이성이 납득해도 마음으로는 서글플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다.
그래서 매번 피네에게 미안했고, 결혼식 주기를 더 당겼어야 했나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제 그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북쪽이는 아들로 태어날까, 딸로 태어날까?”
“저희를 닮았다면 어느 쪽이든 예쁘고 건강하게 자랄 겁니다.”
피네의 말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피네의 말이 맞다. 아들이든 딸이든 내 피를 이었다면 누구보다 튼튼한 아이가 될 거다. 피네를 닮았다면 예쁘고 귀여운 아이로 자랄 거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피네는 자식에게 물려줄 유전자가 튼튼한 편이니까.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첫 번째 선물이지.
“그런데 조금은 아쉽다. 페디는 북쪽이가 입학하는 거 못 보고 아카데미 졸업하겠어.”
그 말과 함께 피네의 배를 쓰다듬었다.
페디는 성력 1379년에 태어났고, 올해는 성력 1382년이다. 북쪽이가 태어나면 페디와 3살 차이일 테니, 페디가 아카데미 3학년이 되어도 북쪽이는 아카데미 문턱을 밟지 못한다.
물론 페디 아래로는 세쌍둥이와 프리드리히, 알리나, 페렌츠가 있다. 북쪽이 아래로도 새로운 동생들이 잔뜩 생길 예정이다. 그러니 북쪽이 혼자 쓸쓸하게 아카데미를 다닐 일은 없으나, 마르의 첫 자식과 피네의 첫 자식이 서로 얼굴도 못 본 채 학창 시절을 보내는 건 좀. 같은 첫째끼리 얼굴은 보면서 지내야지.
‘…페디한테 1년 꿇으라고 할 수도 없고.’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끔찍한 발상이기에 빠르게 털어냈다.
미취학 아버지에 이어 1년 유급 장남이라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옹졸해지는 조합이지.
“괜찮습니다. 아카데미 3년은 우리 아이들이 함께 지낼 시간에 비하면 찰나지 않습니까. 페디도 북쪽이도, 고작 3년이라는 세월 때문에 어색해질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내 걱정과 달리 피네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크라시우스 가문의 장남인 페디를 믿고 있으니까. 곧 태어날 자신의 첫째를 믿고 있으니까.
“하긴. 그건 그렇네.”
실로 정론이기에 나도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이들이 지금은 어리고 어린 아기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성숙한 성인으로 자라게 된다. 부끄럽게도 성인이 될 아이들을 아기 보는 것처럼 걱정하고 말았어.
그래도 이런 나를 옆에서 잡아줄 부인이 여섯이나 있다. 내가 폭주하거나 이상한 양육법을 들고 와도 부인들이 말려줄 터.
‘그러니 건강하게만 나오렴.’
너를 위한 건 우리가 전부 준비했으니까.
난데없이 장관의 연락이 걸려왔다.
– 페넬리아가 출산을 시작하면 나도 불러라.
“예?”
그것도 예상치 못한 말과 함께.
피네가 출산을 시작했는데… 왜 장관을 부르지? 혹시 장관과 피네가 같은 조상을 둔 먼 친척이라도 되나?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네가 장관의 양녀로 들어간 건가?
혼란스럽다. 북쪽이가 태어난 직후에 알려달라는 거면 당연히 그러겠지만, 출산 중에 부르라는 건 대체.
“…왜요?”
– 페넬리아는 자리를 지켜줄 부모가 없지 않냐. 마종공께서도 양친을 먼저 떠나보내셨지만, 적어도 그분에게는 수십 년을 함께한 가신들이라도 있었지. 페넬리아는 막 작위를 받았기에 그런 것조차 없어.
“아.”
결국 의문을 참지 못하고 반문하자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유가 돌아왔다.
마르, 트릭시, 리제, 린, 에리가 출산할 때는 관계자가 달려와 자리를 지켜줬다. 출산이 끝나면 고생이 많았다고 다독여줄, 막 태어난 아기를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려줄 가족들이나 가신들이 있었다.
반면 피네에게는 장관의 말처럼 아무도 없다. 가족은 먼저 떠났고, 가신들과는 아직 끈끈한 유대감을 쌓지 못했으며, 구 묵광대는 업무에 치여 시간을 낼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저택 내 사용인들이 피네의 가족이나 다름없으나, 사용인들은 다른 부인들의 출산도 축하해 주지 않았던가. 피네만의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애매한 감이 있다.
‘장관도 피네를 아낀 편이었지.’
다행히 피네가 감찰부 4과장이었던 무렵, 내가 4과에 애착을 가진 것처럼 장관도 4과를 굉장히 아끼며 관심을 가졌다. 덕분에 피네에게 있어 장관은 좋은 사람으로 남았지. 자신의 첫 출산을 축하해 준다면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을 정도로.
“바로 부를 테니까 늦으면 안 됩니다.”
– 나 아니었으면 마지막까지 안 불렀을 놈이.
장관의 지적에 어색한 웃음만 흘렸다.정말 장관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피네가 느꼈을 허전함을 다독이지 못했을 테니까.
‘이게 연륜인가.’
새삼스럽지만 조금 놀랍다. 평소에는 나이를 괴상하게 먹은 양반에 불과한데, 이럴 때 보면 확실히 연장자는 연장자구나.
반백이 넘은 장관의 나이가 헛된 나이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
요즘 들어서 내 손으로 무언가를 잡은 적이 없다.
“마님!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저희가 가져올게요!”
무언가 필요하다 싶으면 눈을 반짝이며 달려가는 유리스.
“마님, 여기요.”
찻주전자를 향해 시선만 돌려도 빠르게 차를 타오는 소피아.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다. 동생 같은 아이들이 마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색하지만, 가문과 저택 내의 질서를 위함이니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도 칭호만 마님이라고 바꾼 것이지, 나를 언니처럼 좋아하고 따르고 있으니까.
하지만 내 행동을 철저하게 봉쇄하는 건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를 조금만 움직여도 무너지는 모래성, 살짝만 건드려도 터지는 거품으로 보는 것만 같다.
“고마워.”
허나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한 아이들에게 ‘필요 없으니 돌아가.’ 라고 매정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이게 이 아이들의 애정 표현이라는 걸, 나뿐만 아니라 내 품에 있는 북쪽이를 위함이라는 걸 아니까.
“…둘 다 앉으렴. 혼자 마시기는 심심하니 같이 마시자.”
그렇기에 유리스와 소피아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어차피 내가 북쪽이를 낳을 때까지, 이 아이들은 저택 업무를 보지 않고 철저히 나만 보필하기로 했다. 이렇게 작은 티타임을 가져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럼 쿠키라도 가져올게요! 소피아는 마님이랑 같이 있어!”
“이번에는 내가─”
자신이 가겠다는 소피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 유리스는 빠르게 문을 박차고 나갔다.
너무도 활발한 모습이라 미소를 짓고 말았다. 어쩌면 유리스도 은근히 티타임을 원한 게 아닐까─ 하고.
“소피아.”
“아, 네.”
“먼저 앉아 있으렴. 유리스가 올 때까지 서 있으려는 건 아니지?”
그제야 쭈뼛쭈뼛 자리에 앉는 소피아. 가슴이 절로 따뜻해지는 귀여움이라 소피아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았다.
이 아이들이라면 우리 북쪽이의 좋은 이모가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