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14)
로판 속 공무원 714화(715/945)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던가.
한 번 터진 일은 두 번 겪을 수 있고, 두 번 일어난 일은 세 번이나 벌어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같은 일을 다섯 번이나 겪은 경력직이다. 무려 다섯 번이나 되는 귀중한 경험을 튼실하게 누적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여섯 번째 출산만큼은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었다. 3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섯 번의 출산을 경험하고 일곱의 자식을 보았다. 여섯 번째 출산이라면 이제 익숙해질 때가 되지 않았던가.
아마 제국에 나보다 노련한 남편은 드물 거다. 내 또래로 범위를 좁힌다면 나보다 훌륭한 남편은 없다고 보는 게 무방하다. 완벽하고도 완벽한 내가 떤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바닥 부술 거 아니면 그만 떨어라. 정신 사납다.”
‘아.’
장관의 말에 미친 듯이 진동하던 다리를 슬며시 붙잡았다.
사실 개소리다. 여섯 번째가 아니라 예순 번째 출산을 맞이해도 이 긴장은 억누를 수 없을 거다. 나는 평생 부인의 출산 때마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초조하게 순산을 기원하겠지. 내가 미래를 보는 능력은 없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안 좋은 일을 겪었던 것도 아니고, 의료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유난인지.”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잖습니까…”
“거울이나 보고 와라. 누가 누굴 걱정한다는 거냐?”
장관의 말에 항변을 내뱉으려 했지만 포기했다. 팔짱을 끼고 있던 장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봤으니까.
아마 이것도 장관 나름의 위로일 거다. 저렇게 투박하게 말해야 내가 조금이나마 울컥하고, 조금이나마 불안감을 가라앉힐 테니.정작 본인도 긴장한 상황에서 남을 챙기려는 게 우습고도 미안할 따름이지만.
“…처음 페넬리아를 봤을 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사람 앞날은 역시 모르는 법이군.”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맴돌던 중, 장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4과를 재건하겠다며 여기저기서 사람을 주워올 때, 드디어 미쳐 가지고 노예 상인의 길을 택한 건가 싶었다. 평민으로 살던 애를 4과로 키운다는 건 내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
“언제는 이해하신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평소에도 미친놈이라고 깠으면서 새삼스레.
“그래, 원래도 네 머릿속은 이해하기 어려웠지. 어쩌다 전대 백작과 부인 사이에서 너 같은 놈이 나온 건지 아직도 의문이야.”
짧게 혀를 찬 장관은 굳게 닫힌 문을 바라봤다.
피네와 북쪽이가 있는 곳을.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있는 방을 바라봤다.
“뭐, 그렇게 마구잡이로 데려온 녀석들이 4과를 다시 일으켰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 피네 덕분이죠.”
“잘 아는구만. 솔직히 네가 한 건 딱히 없긴 해.”
장관의 말에 픽 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내가 한 것은 전쟁으로 터전을 잃은 고아들, 혹은 전사한 4과의 유족들을 긁어모은 것밖에 없다. 폐과 직전까지 갔던 4과가 화려하게 부활하고, 묵광대라는 이름을 거쳐 특임부 1과까지 진화한 것은 다 피네라는 리더 덕분이었다.
피네가 굳건히 중심을 잡아서 4과를 이끌었기에. 한 과의 수장이라고 하기에 부족함 없는 무력을 선보였기에.
“전쟁 고아 출신 평민이 망해가던 과를 살리고, 작위를 받고, 제국백의 부인이 된다라… 연애 소설에나 나올 법한 성공담 아니냐?”
“그럼 전 소설 속 남자 주인공입니까?”
“주인공?”
장관의 눈이 빠르게 내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아무리 봐도 흑막이나 악역 같은데.”
“최종 악역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와 장관은 동시에 실소를 흘렸다.
우리는 나름 객관적인 시야를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가 못생긴 건 아니지만, 훈훈하고 부드러운 인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나는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는 다크서클 때문에, 장관은 우락부락한 근육과 덩치 때문에 악역으로 보이지.
“공주를 납치해서 결혼까지 간 악역이니, 평생 공주하고 잘 지내라.”
“명심하겠습니다.”
다소 이상하게 끝난 대화였지만 불안했던 마음은 어느새 진정세로 접어들었다.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위로를 특이하게 하는 양반이다.
“쟝생이! 삐네 엄마한태 더 힘줘!”
“삐네 엄마! 힘내!”
아무튼 나도 모르게 올라간 입꼬리를 매만지는 사이, 사용인들의 보살핌을 받던 아이들이 장생이를 높이 들어 올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름만 장생이다만…”
그리고 힘없이 허공을 비행 중인 장생이의 모습에 숙연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
한때 죽음이라고 불렸으나 이제는 장생이라 불리는 존재. 뭔가 ‘장생’이 출산실 앞을 지켜주면 산모도 아이도 건강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 덕분에 장생이는 아이들에게 붙잡혀 출산실 앞까지 끌려왔다.
그건 그렇고 신기한 일이지. 어린아이들이 장생이라는 개념을 파악하고 있다니. 누구 집 아이들인지 참 똑똑해.
“흐으음.”
“왜 그러십니까?”
“저 녀석, 이곳에서 지낸 지 1년도 넘지 않았나?”
“그렇죠?”
“그런데 왜 아직도 저런 크기지?”
실로 타당한 지적인지라 다시 장생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네?’
그동안 ‘장생이 = 작음’이라는 인식이 머리에 깊게 박혀서 그렇지, 사실 장생이가 여전히 작은 건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성견이 아닌 새끼에게 1년이라는 시간은 천지가 개벽하고도 남을시간이니까. 당장 티티만 해도 1, 2년 사이에 쪼그마한 인절미에서 늠름한 성견으로 성장했을 정도로.
물론 장생이는 평범한 동물이 아닌 성수지만, 병아리인 겸손도 예전보다 덩치가 커진 상황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장생이만 이전과 동일한 크기를 자랑 중이다.
‘…기력이 빨려서 그런가?’
다소 슬픈 추측이지만 가장 그럴듯하다.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만큼 가장 고생하는 장생이니, 성장에 써야 할 힘이 남아나지 않는 걸 수도 있다.
만약 그런 거라면 미안하다. 넌 평생 작은 채로 살아야겠다.
아니면 우리 애들이 좀 크고 나서 성장하거나. 설마 성인이 되고서도 장생이를 물고 빨고 하겠어?
“쟝생이! 쟝생이!”
“쟝생이 하이팅!”
“그아아아앗…! 제발 무사히 낳고 나와라…!”
처절하게 울부짖는 장생이를 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성수의 가호가 부디 피네와 북쪽이에게 닿기를.
***
문밖에서 들리는 가족들과 사용인들의 걱정 어린 대화. 바로 옆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료진들의 모습.
나와 북쪽이를 위해 다들 노력하고 있다. 혹여나 둘 중 누군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최선을 다해 노력 중이다. 정말 감사하고도 감동적인 일이나─
‘왜… 아무렇지도 않지?’
정작 내 몸은 민망할 정도로 잠잠했다.
북쪽이가 뱃속에서 버틴다는 뜻은 아니다. 분명 출산은 진행 중인데, 북쪽이가 나오려고 힘쓰는 것이 느껴지는데 내 몸은 멀쩡하기 그지없었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나,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흘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아프구나 싶은 수준?
‘분명 일생에 다시없을 고통이라 했었는데?’
혹시 내 기억이 잘못된 건가 싶어 빠르게 기억을 되짚었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놀라울 정도로 순산을 했던 한 명을 빼면, 모든 출산 경험자들이 출산의 고통을 상세히 설명해 줬다.
지금만 참으면 최고의 보물이 생길 거라는 걸 알면서도 힘들다고. 차라리 배를 갈라서 직접 아이를 꺼내고 싶었다고. 여보가 옆에 있었다면 머리카락을 쥐어뜯었을 거라고.
‘나도 축복받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힐끗 배를 내려다봤다.
아무래도 우리 북쪽이. 이 엄마를 생각해서 조용하게 나올 생각인 모양이다. 나도 린처럼 순산을 할 것 같아.
‘고마워.’
그래서 얼굴도 보지 못한 북쪽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태어나면서도 엄마한테 효도를 하는 기특한 아이. 역시 여보의 피를 이은 아이라 그런지 착해.
“부인, 불편하신 곳은 없으십니까?”
슬며시 눈을 감으려던 찰나,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래도 내가 별 반응이 없어서 어딘가 잘못됐나 걱정하는 것 같다.
‘예의상 비명은 질러야 하나?’
하지만 비명 소리를 적당히 조절하지 못하면 오히려 걱정을 사겠지.
출산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크지는 않지만 꾸준히 누적되는 고통이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 상황이 더 지속되면 나도 출산의 고통이라는 걸 느낄 것만 같았고,
“으에에에에엥!”
“예쁜 따님이십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님!”
한계에 도달하기 직전에 북쪽이가 태어났다.예쁘고 귀여운 딸이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듯, 딱 좋은 타이밍에 나왔다.
“각하! 귀여운 따님이─”
“피네! 북쪽아!”
그리고 내 출산을 도운 산파가 문을 열기 무섭게 여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와 북쪽이를 저만큼이나 걱정해 줬다는 뜻이니까. 복도를 잠시도 떠나지 않은 채 기다렸다는 것이니까.
“와! 쟝생이가 힘냇써!”
“쟝생이 채고! 쟝생이 대다네!”
“그러니까 난 이름만 장생이라고… 아니, 됐다.”
뒤이어 요란하게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니 더욱 흐뭇해졌다.
이 아이들도 북쪽이를 기다려줬구나. 동생이 태어나는 걸 기다려줬어.
“얘들아. 장생이도 힘들었을 테니 이만 놓아주렴.”
“웅!”
“쟝생이 고마워!”
장생이가 무엇을 힘냈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장생이는 아이들의 격한 칭찬과 쓰다듬을 받으며 바닥에 발을 디뎠다.
지금은 우리 북쪽이가 태어난 경사스러운 시간이다. 장생이도 우리와 같은 지붕 아래 사는 가족이니, 가족이 피곤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나. 오늘은 경사스러운 날이니까.
“피네. 어디 아픈 곳은 없지? 혹시 몸을 못 움직겠다거나, 감촉이 조금 둔해졌다거나…”
“괜찮습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어느새 북쪽이를 안은 채 다가오는 여보를 향해 짙은 미소를 지었다.
보기만 해도 행복한 여보와 내 첫 자식이 나란히 다가오고 있다. 이보다 완벽한 광경이 세상에 둘이나 있을까?
“아, 아직 북쪽이는 못 안았지?”
평생이 지나도 잊지 못할 광경을 두 눈에 담는 사이, 여보는 품에 안고 있던 북쪽이를 조심스레 건넸다.
“예쁜 딸이야. 이제 북쪽이가 아니라 메리라고 불러야겠네.”
이제는 메리라고 불러야 할 아이가 내 품에 안겼다.
“흐에에에엥!”
이상한 일이다. 방이 떠나갈 기세로 울고, 온몸이 쭈굴쭈굴한 아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예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이 작고 붉은 아이가 어떤 꽃보다도 예쁘게 보였다.
‘메리…’
사랑스러운 우리 메리. 내 소중한 첫아이.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는 우리 메리를 안아주지 못하지만, 그분들 몫까지 이 엄마가 잔뜩 아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