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16)
로판 속 공무원 716화(717/945)
아직 기어다니지도 못하여 형, 누나들이 저택을 누비는 동안 홀로 누워있어야 했던 페렌츠.그런 페렌츠에게 같이 누워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소중한 동지가 찾아왔다.
우리 막내 메리. 막 태어난 메리도 당연히 기어다니지 못하니, 페렌츠와 나란히 침대에 눕게 되었다. 이렇게 하면 페렌츠도 메리도 덜 심심하겠지.
‘이렇게 보니 닮았네.’
에리를 닮아 백발인 페렌츠와 피네를 닮아 회색 머리카락이 자라기 시작한 메리.
비록 엄마는 다르지만 아빠는 같은 페렌츠와 메리다. 몸속의 피 절반이 같은 상황에서 머리색도 묘하게 비슷해서 그런지 확실히 남매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다.
“우아!”
나란히 누운 남매를 보며 흐뭇하게 웃는 사이, 곤히 자고 있던 페렌츠가 번뜩 눈을 떴다.
“우리 페렌츠 깼니?”
“아우우!”
활기차게 기상한 페렌츠에게 슬쩍 손가락을 뻗자 페렌츠는 빵싯 웃으며 내 손가락을 잡았다.
우리 페렌츠. 아직 아기인데도 힘이 넘치기도 하지. 더 자라면 형, 누나들이랑 같이 열심히 저택을 누비겠어.
“아우?”
그렇게 한참이나 내 손가락을 잡아당기며 꺄르르 웃던 페렌츠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더니, 난생처음 보는 동생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보지? 페렌츠가 돌봐줘야 할 동생이야.”
“우우?”
내 말에 페렌츠는 여전히 의아하다는 듯 옹알거렸다.
당연한 모습이다. 이 작은 아이가 동생이라는 개념을 알겠나. 적어도 짧게나마 말을 할 수 있고, 이리저리 걸어 다닐 정도의 경지에 이르러야 동생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터.
하지만 하늘이 이어준 연, 피로 이어진 연이라는 게 대단하기는 한 것 같다.
“아우!”
눈을 깜빡이며 메리를 보던 페렌츠가 다시 환하게 웃더니, 메리를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페렌츠는 메리가 자신이 동생이라는 것도, 가족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다. 그저 자고 일어났더니 자기 옆에 뿅 하고 생긴 아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메리에게 관심과 호감을 보였다. 머리로는 몰라도 본능이 지시한 것처럼.
“엄마들끼리 친하니까 너희도 친하게 지내야 한다?”
그런 페렌츠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에리와 피네가 친구인 것처럼 페렌츠와 메리도 사이좋은 남매로 자라 달라고. 1살 차이에 불과한 남매니 싸우지 말고 화목하게 지내 달라고.
“우!”
그리고 페렌츠는 내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밝게 웃었다.
이 아빠는 착하고 똑똑한 아이들이 있어서 너무 행복해.
“우으으응…”
“아차.”
다만 페렌츠에게 너무 집중한 덕에 메리가 자고 있다는 걸 잠시 잊고 말았다.
실수했다. 자고 있는 애 앞에서 이렇게 오래 떠들다니. 메리가 조금만 예민해도 거슬릴 게 뻔하잖아.
“우-”
“…잘 잤니?”
결국 스르륵 눈을 뜨고 만 메리에게어색한 인사를 건네자, 메리는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도로 눈을 감았다.
다행이다… 우리 메리, 생각보다 마음의 여유가 가득한 아이였구나.
‘그래도 앞으로는 조심하자.’
지금은 운 좋게 넘어갔어도 다음에는 울음으로 보답할지도 모른다.
나와 부인들은 마르의 결혼식 이전부터 한 가지 약속을 했었다.
트릭시를 제외한 모든 부인들이 최소 1명씩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자기가 먼저 아이를 낳더라도 둘째를 노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중요했다. 누구는 아이가 2명, 3명이 넘어가는데, 누구는 아이가 존재하지 않다면 얼마나 쓸쓸하고 괴롭겠나. 내가 아이의 유무로 사랑을 더 주거나 덜 주지는 않겠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사랑의 결실이 자기에게만 없다면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 세계는 현대가 아닌 중세─ 보다 조금 더 발전한 슈퍼 중세 시대다.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시기이니, 임신을 바라보는 나와 부인들의 관점이 다소 다를 수도 있다.
‘설마 트릭시가 한 방에 셋을 낳을 줄은 몰랐지만.’
그 와중에 트릭시가 신사협정에서 제외된 이유는 종족의 차이 때문이었다. 솔직히 협정 당시에는 나, 트릭시, 다른 부인들, 카토반 공작가의 가신들까지 전부 트릭시의 난임을 예상했으니까. 그만큼 종족의 벽은 높고도 높은 법이지.
그런데 트릭시마저 세쌍둥이를 낳으며 모든 부인들은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약 4년 동안 이어진 신사협정이 정당하게 마무리된 것이다.
“…저기.”
그리고 신사협정이 끝난 이후, 나에게 작은 시련이 찾아왔다.
“네, 칼. 말하세요.”
“요즘 식단이 비슷한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내 타당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마르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아무런 대꾸도 없이 내 앞접시에 음식을 덜어주기 시작했다.
굴, 장어, 연어 아스파라거스, 케일 등. 누가 봐도 그 의미가 적나라한 음식들이.
‘냄새만 맡아도 어지럽다.’
무심코 눈을 감고 말았다.
며칠. 무려 며칠 동안 이 식단이 이어졌다. 그것도 저녁에만 거하게 차려주는 게 아니라, 3끼 전부 이런 식단이 등장하고 말았다.
안 그래도 체력은 남들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매끼 이렇게 먹고 있으니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흠칫흠칫 놀란다. 이러다 과잉 복용으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고.
“오늘은 조금 가볍게 먹으면 안 될까?”
멍하니 음식을 바라보다가 겨우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제발. 아무리 맛이 좋은 요리라도 같은 걸 계속 먹으면 부담 돼. 심지어 장어나 연어 같은 게 가벼운 음식도 아니잖아. 자주 먹기에는 기름기가 제법 있는 음식이다.
“가볍게요? 혹시 몰라서 귀리로 오트밀도 만들어 봤는데, 그건 어때요?”
“그냥 이거 먹을게…”
연신 웃고 있는 마르의 모습에 조용히 포크를 들었다.
내 얄팍한 지식으로는 귀리도 장어와 비슷한 음식이라고 알고 있다. 맛은 다를지언정 그 효능은 비슷하지.
‘우리 메리… 막내 생활은 1년밖에 못 하겠네…’
굴 하나를 입에 넣으며 씁쓸히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래도 내년에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저택이 가득 찰 것 같다.
***
열심히 식사 중인 칼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 저택의 주방장은 손님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 뛰어난 실력의 인재다. 그런 주방장의 최고의 재료로, 전력을 다하여 만든 요리는 얼마나 훌륭할까. 매일 먹어서 질린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맛이 없어서 먹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심지어 나도 주방장의 옆에서 요리를 도왔다. 도왔다고 해봤자 굴이 타지 않게 뒤집는 것이 전부였으나, 아무튼 내 손길이 닿기는 닿은 거다.
“마님의 애정이 담긴 음식이라니! 분명 각하께서도 감동하실 겁니다!”
호탕하게 웃던 주방장의 장담처럼 칼은 묵묵히 손을 움직였다.
처음에 살짝 난색을 보였지만, 그 뒤로는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음식을 먹고 있다.
‘이 정도면 되겠지?’
그런 칼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셋째 언니가 해줬던 조언이, 꼭 한번 해보라고 했던 조언이 떠올랐으니까.
– 마종공께서 신혼 때 신성교국으로 가셨었지? 어떻게 보면 타국으로 신혼여행을 간 거나 마찬가지인데, 너도 가고 싶다고 해봐. 제부 성격상 진작 못 가서 미안하다고 할걸?
“그, 그럴까요?”
– 그럼. 대신 단둘이서 가고 싶다는 말, 절대 잊으면 안 돼. 눈치가 있다면 어련히 둘이서 가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가족끼리 맺었던 약속이 무사히 마무리되고, 둘째를 꿈꾸어도 되는 상황.
그 소식을 접한 셋째 언니는 칼과 함께 타국으로 여행을 가라고 했다. 누구의 방해와 간섭을 받지 않는 타국으로. 이미 트릭시 언니가 갔기에 명분상 밀리지도 않는 장소로.
그리고 단둘만이 있는 곳에서… 둘째를 노려 보라고.
‘…충분할 거야.’
그래서 며칠 전부터 칼에게 좋은 음식만 잔뜩 먹였다.
둘째를 위해. 둘만의 여행과 행복을 위해. 여행 중에 칼의 체력이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저기, 칼?”
“응?”
속으로 심호흡을 한 뒤, 슬슬 식사가 끝나가는 칼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부끄러워하지 마. 망설이지 마. 나랑 칼은 부부잖아. 나는 칼의 첫 번째 부인이잖아. 이런 요구를 할 권리는 충분히 있어. 셋째 언니의 말처럼 칼이라면 진작 못 가서 미안하다고 할 거야.
“메리도 무사히 태어났고… 피네 언니도 건강하게 회복했으니…”
이제 ‘저랑 같이 여행이라도 가지 않을래요?’ 라고 말하면 된다. 그 한 문장만 말하면 된다.
그런데 입이 열리지 않는다. 딱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눈 딱 감고 부탁하면 되는데…
“맞다. 나도 할 말이 있었는데.”
“아, 네, 네! 먼저 말하세요!”
칼의 말에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민망하다. 연애 3개월도 아니고, 무려 결혼한 지 3년이나 지났잖아. 그런데도 부끄러워서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어딨어.
‘여기 있네…’
주체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 볼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어떡해. 칼 앞에 서면 늘 두근거리고 설레는걸.
“마르가 괜찮으면, 나랑 제레노 여행이라도 갈래?”
“네?”
“우리가 둘이서 오붓하게 여행을 간 적은 드물잖아. 이 기회에 잠시 놀러 가면 어떨까─ 싶어.”
내가 하고 싶었던 제안을 먼저 하는 칼의 모습에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부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생각이 통하는 사이인 건가?
***
헤실헤실 웃는 마르를 보니 내가 다 뿌듯했다.
‘고맙습니다, 처형.’
동시에 울켄 공작령에 있을 셋째 처형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어젯밤에 갑자기 통신구로 연락을 걸었던 셋째 처형. 의외의 연락이라 놀랐지만, 다짜고짜 마르와 여행을 가는 게 어떻겠냐고 권해서 더욱 놀랐었지.
– 사실 마르한테 제부를 꼬셔보라고 했거든. 그런데 우리 마르 성격 알잖아. 중요한 순간에 부끄러워서 망설이는 거.
“그건… 그렇죠.”
– 그러니 우리 불쌍한 마르 살려주는 셈 치고, 제부가 먼저 여행 얘기 좀 해줘. 마르한테 맡기면 다음 달은 돼야 여행 소식을 들을 것 같아.
허나 셋째 처형의 연락은 가족의 지혜가 듬뿍 담긴 훌륭한 조언이었다. 실제로 마르는 무언가를 말하지 못하고 망설이지 않았던가.
‘진작에 갔어야 했는데.’
내 제안에 기뻐하는 마르를 보니 귀여우면서도 미안했다. 얼마나 여행을 가고 싶었으면 저렇게 아이처럼 기뻐할까.
다 내가 무심해서 생긴 참사다. 제대로 반성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