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17)
로판 속 공무원 717화(718/945)
마르와 결혼하고 약 3년 후. 드디어 둘만의 신혼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니 가정에 소홀했던 쓰레기 남편이 된 기분이지만, 애석하게도 3년이 지나서야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또한 내 업보겠지.
아무튼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으나, 트릭시와 신성교국으로 여행 아닌 여행을 떠난 전적이 있었기에 다른 부인들이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다른 부인들과도 여행을 떠날 거라 약속했으니 꺼려 할 이유는 없을 터.
“갔어도 진작에 갔어야 했는데. 이제야 가자고 해서 미안해.”
“괜찮아요. 언제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니까요.”
내 사과에 마르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만약 마르가 사교계에 ‘우리 남편은 결혼하고 3년이 지나서야 신혼여행을 가자고 했어요.’ 라고 한마디만 했다면, 난 제국 역사상 영원불멸할 희대의 쓰레기로 남았을 거다. 어쩌면 분노한 첫째 장인어른의 매콤 펀치를 맞이했을 수도 했고.
그 무거운 업보를 지금에서라도, 아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게 조심하자.
“그런데 칼. 저야 칼이랑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어디든 좋긴 한데, 왜 제레노로 정한 거예요?”
“아, 그거?”
마르의 질문에 무심코 뒷목을 긁적거렸다.
사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제레노가 상대적으로 가깝기도 하고, 중계 무역에 특화된 해양 국가라 온갖 관광지와 물자가 몰려 있으며, 레비아탄의 맹활약으로 인해 제국에게 대가리를 박은 국가라 그렇다. 덕분에 제국인의 제레노 입국 및 활동이 매우 편해졌으니 신혼여행지로 삼기에 충분했다.
해양 관광지인데 극진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관광지. 이보다 매력적인 여행지가 어디 있을까. 이국의 정취와 자국의 편안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장소다.
“황금공 각하께서 최근 제레노에 좋은 리조트를 구입하셨더라고. 각하의 재산에 비하면 리조트는 티끌에 불과한데, 그렇게 자랑하실 정도면 조금 궁금하잖아. 이 기회에 구경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허나 눈을 반짝이는 마르 앞에서 ‘그 새끼들 좆밥이라 우리가 지랄해도 뭐라고 못함.’ 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신혼여행 사유가 ‘그 새끼들이 호구임.’인 건 너무하잖아.
그래서 황금공을 팔았다. 마침 올해 초 정도에 황금공이 좋은 리조트를 샀다며 자랑한 건 사실이니까.
‘솔직히 진짜 궁금하기는 해.’
그 황금공이 좋은 리조트라고 기뻐할 정도면 얼마나 화려하고 웅장한 곳이겠나. 일단 제레노 내부는 물론,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상위권에 속할 리조트일 거다.
“황금공께서 애정을 가지실 정도면 엄청난 곳이겠네요.”
마르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탄성을 흘리며 기대감을 보였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리조트에서 가장 좋은 방을 예약하자.
설령 좋은 방이 품절 상태라도 상관없다. 여차하면 레비아탄을 발견했을 때, 황금공에게 받은 백지 수표를 사용하면 그만이다.
제레노 여행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단둘이 가는 것이기에 짐을 잔뜩 준비할 필요는 없었고, 황금공의 리조트도 막 리모델링이 끝난 참이라 가장 좋은 방이 남아있었다.
물론 귀족들이 방문하는 리조트라면 리모델링 와중에도 예약이 몰리는 것이 정상이나─
– 모든 방을 예약으로 제공하는 건 피하고 있네. 그래야 지금처럼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좋은 방을 제공해 줄 수 있지 않겠나.
황금공은 몇몇 방을 VVIP 전용으로 빼돌려두고 있었다.
어지간한 리조트나 호텔들은 100% 예약제가 아니라 방 몇 개를 밑장 빼기하고 있던 것. 리조트 경영과는 거리가 멀어서 처음 알게 된 진실이다. 아마 이번 여행이 아니었다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수도 있다.
– 부인과의 신혼여행이니 화려하게 즐길 필요가 있겠지. 장관이 원한다면 레비아탄을 타고 리조트까지 이동하는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네만?
“말씀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나, 레비아탄은 제국의 해양 패권을 위한 최고의 카드 아닙니까. 사적인 일로 레비아탄의 시간을 뺏고 싶지는 않습니다.”
– 아쉽군. 그래도 장관의 뜻이 그렇다면 존중하도록 하지.
그 와중에 제국부터 제레노까지 화려한 이동 서비스를 제공해 주겠다는 제안이 있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 화려하기에 거절했다.
안 그래도 레비아탄 사태로 인해 벌벌 떨고 있는 제레노다. 그런 제레노에 레비아탄을 타고 방문한다? 부부의 신혼여행이 아니라 제국이 파견한 제레노 총독의 입성이잖아. 난 그런 미래는 감당할 자신이 없어.
“저기, 칼?”
“응?”
감찰성 장관이 아니라 제레노 총독이 된 끔찍한 미래를 상상하는 사이, 마르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마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어, 어때요?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가져와봤어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면서도 내 눈을 피하지 않는 마르.
그런 마르의 손에는 붉은색 수영복이 들려있었다. 마르가 제국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었던 당시, 보야르 공작령에서 입었던 그 수영복이었다.
이렇게 보니 반가우면서도 흐뭇했다. 아직 나와 마르가 반지조차 교환하지 않았던 시절의 추억, 나도 마르도 사랑에 서툴렀던 당시의 추억이 깃든 물건이지 않나.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
“당연하죠. 칼과 처음으로 바다에 갔을 때 입었던 건데, 그런 귀한 걸 어떻게 버리겠어요.”
쿡쿡 웃음을 흘린 마르는 수영복을 자기 몸 앞으로 옮겼다. 마치 자신의 몸과 수영복을 겹쳐보라는 것처럼.
“어때요? 지금 입어도 어울릴까요?”
그 말에 마르와 수영복을 번갈아보다가 픽 웃음을 흘렸다.
지금 입어도 어울리겠냐니. 그보다 대답이 뻔한 질문은 없다.
“그건 직접 확인해 보면 알겠지.”
마르를 공주님을 안는 것처럼 안아올린 후, 최대한 밝게 미소를 지었다.
“방으로 갈까?”
직설적인 질문─ 아니, 요구에 마르의 얼굴은 더욱 새빨갛게 변했다. 내 요구에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할 정도로.
물론 대답이 없어도 상관없다. 거절했어도 방으로 갈 생각이었으니까.
***
제국 외무성이 일방적인 통보를 보내왔다.
[ 본국의 감찰성 장관, 타일글레헨 백작이 백작부인과 함께 제레노로 입국 예정. 공적 업무가 아닌 부부의 여행을 위해서이니 접촉을 지양할 것. ]짧은 통보였으나 결코 가벼운 내용은 아니었다.
감찰성 장관이라면 리브노만 황실의 수족인 30명의 제국백 중 하나이자, 오늘날 제국의 2인자나 마찬가지인 거물이 아니던가. 물론 작위상으로는 장관보다 높은 인물이 수십 명이 넘게 존재하지만, 장관의 권위와 위세는 작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현 황제의 두터운 신임과 차기 황제의 대부라는 직함. 제국의 모든 귀족과 관료들을 감찰할 수 있는 권한과 북방을 아우르는 영향력. 이 모든 것이 종합되어 군림하는 인물이 감찰성 장관이다. 아무리 공작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가 감찰성 장관이다.
‘갑자기 이게 무슨.’
덕분에 외무성의 통보를 받은 외교부는 발칵 뒤집어졌다. 외부대신인 나조차 퇴근을 미뤄두고 골머리를 앓을 정도로.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공적 방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국 2인자가 공식적으로 제레노에 방문한다면 그 격에 맞는 의전을 준비해야 한다. 결코 짧은 시간 내에 준비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공적 방문이 아닌 게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장관과 제국의 진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장관의 행보가 의문이더라도 사람을 붙일 수 없다. 대외적으로 장관은 사적으로 입국한 것이기에.
“황금공이 레비아탄으로 아국을 압박한 것이 고작 몇 개월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감찰성 장관이 입국한다고요? 이게 우연이겠습니까?”
“분명 아국을 향한 압박 강도를 높인 겁니다. 단순히 조약 개정에서 멈추지 않고, 그 이상을 노리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인지 외교부는 장관의 방문을 경계하는 의견이 반.
“글쎄요. 이제 와서 제국이 아국을 짓누를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황금공과 경쟁할 때도 황제는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런 황제가 항복을 선언했던 아국에 추가적인 조치를 취한다고요?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게다가 압박을 했다면 아국의 약점인 해양을 노려야지요. 감찰성 장관이 나서는 건 과잉 전략입니다.”
등골이 오싹하기는 하지만 우연이라는 의견이 반이었다.
둘 다 그럴듯한 의견이다. 레비아탄 사태로 인해 제국에 철저히 엎드린 아국이다. 이 기세를 몰아 아국을 더욱 압박하는 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다.
허나 제국의 가상 적국은 예나 지금이나 아르메인이다. 제국과 아르메인의 사이가 양호해졌어도 제국을 위협할 만한 국력의 국가는 아르메인밖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런 아르메인과 국경을 접해놓고 아국에 행정력을 소모할 것 같지는 않다.
애초에 조약 개정에 동의한 이후로 제국은 아국의 목에 줄을 채운 것과 마찬가지지 않나. 굳이 추가적인 목줄을 채우지 않아도 제국에 충성을 바칠 수밖에 없다.
‘정말 우연인가?’
치열하게 경쟁하던 의견은 점점 우연으로 기울어져갔다.
아니, 어쩌면 우연이기를 바라는 걸 수도 있다. 제국이 진심으로 나선다면 우리는 대항할 수 없으니.
“…장관 부부의 방문은 사적 여행으로 간주한다.”
결국 고민 끝에 원론적인 결론을 내렸다.
제국의 통보처럼 장관과 그 부인은 여행을 위해 방문하는 것이라고. 철저히 사적인 이유로 온 것이라고.
“다만 귀빈이 아국에 방문하는 것은 사실이니, 치안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터. 내부대신과 군부대신께는 내가 협조를 청하겠다.”
“예, 각하.”
딱 정론적인 결과였기에 치열하게 논쟁하던 관료들도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니 씁쓸했다. 그리도 치열했던 녀석들이 순식간에 잠잠해지다니. 내가 책임을 지고 명령을 내리는 걸 기다렸다는 것 아닌가.
물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세상 어느 관료가 대형 안건을 스스로 책임지고 싶겠나. 게다가 대신이라는 자리는 책임을 지라고 있는 자리이니, 내가 짐을 짊어지는 게 옳다.
‘부디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를.’
그렇기에 속으로 기도를 했다.
장관 부부가 정말로 여행을 위해 온 것이기를. 아무 사고도 없이 무사히 여행이 끝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