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18)
로판 속 공무원 718화(719/945)
두근두근 신혼여행(결혼한 지 3년 지남)은 단순히 관광지에서 노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함께 짐을 싸고, 관광지의 구경거리와 먹을거리를 이야기하며,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의논하는 것. 이 사소하고도 훈훈한 과정부터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본디 여행이라는 것은 가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두근거리는 법이니까. 그 두근거림을 제외하는 것은 풍류가 없는 짓이다.
그 일환으로제국에서 제레노까지 이동하는 건 텔레포트가 아닌 배를 이용하기로 했다. 관광지로 이동하는 시간마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마저 여행의 일부니 확실하게 즐겨야 한다.
“칼. 저 분수는…”
“레비아탄이네.”
그리고 제국의 영해에서 제레노의 영해로 넘어가기 직전, 수면 아래에서 거대한 분수가 뿜어져 올라왔다.
아무래도 레비아탄이 잘 놀다 오라며 배웅해 주는 것 같았다. 타고 가는 걸 사양하니 이런 식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구나. 원래 성격이 저런 건지, 황금공과 지내다 보니 이상해진 건지 모르겠다.
‘아무렴 어때.’
어느새 지느러미를 수면 위로 들어 올린 레비아탄을 보며 픽 웃음을 흘렸다.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리는 지느러미를 보니 저것 또한 배웅인 것 같다.
섬 크기의 고래가 육중한 몸을 이끌며 선보이는 퍼포먼스. 이런 화려한 배웅을 받았는데 성격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뭐가 중요하겠나. 레비아탄의 따스한 마음과 정성이 중요한 법이지.
“고래는 무슨 선물을 좋아할까?”
“필요한 건 황금공께서 전부 주실 테니… 고맙다는 말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렇겠지?”
마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레비아탄 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레비아탄한테 이 작은 행동이 보일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화려한 퍼포먼스를 봤다면 작은 화답이라도 하는 것이 도리다. 훌륭한 공연을 본 관객이 박수를 치며 환호를 내지르는 것처럼.
‘잘 다녀올게.’
생각해 보니 제레노를 관광지로 정한 것도 다 레비아탄 덕분이네. 레비아탄이 다시 눈을 뜨고, 레비아탄이 제레노를 압박한 덕분에 마음 편히 제레노 여행을 결정할 수 있었잖아.
고맙다, 레비아탄. 여행 기간 중에는 네가 있을 방향으로 하루 세 번 절할게.트리카의 제도가 있는 곳으로는 하루 두 번 하고.
망한 국가니까 두 번 절하는 걸로도 충분할 거야.
나르베시아. 제레노 남서부의 대표적 항구 도시.
제국 쪽으로 툭 튀어나온 반도 지형에 위치한 도시이며, 제국과 가장 근접하다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서 제레노 내에서도 손꼽히는 무역항인 곳.
깡패나 마찬가지인 입지 덕분에 레비아탄 출몰 이전에는 황금공과 가장 치열하게 경쟁한 도시라고 들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레비아탄의 맹활약 덕분에 경쟁’했던’ 도시로 전락했지.
하지만 나르베시아가 그동안 쌓아 올린 번영과 위엄은 무너지지 않았다. 나르베시아가 잃은 것은 해양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권한이지, 무역항으로서 지닌 입지는 여전했으니까. 제레노 내부 해운의 핵심지이자 대제국 교역의 중심지는 여전히 나르베시아다.
“와아…”
그렇기에 나르베시아에 발을 디딘 마르는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아름답네요. 화려함과 포근함이 어우러진 도시 같아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그보다 정확한 표현도 없었다. 나르베시아는 무역항의 번영과 관광지의 느슨함을 동시에 갖춘 도시였다.
신기한 일이다. 보통 경제적으로 발전하면 느긋하고 평온한 분위기는 옅어지는 법인데, 나르베시아는 절묘한 공존과 밸런스를 갖춘 상태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법이거늘.
‘조용하게 지낼 수 있겠어.’
하지만 나르베시아가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도시라면 우리는 그 두 마리의 고기를 전부 누리면 된다. 번영지의 막대한 물자와 관광지의 느긋한 분위기를 즐기다가 귀국하면 충분하다.
‘다른 귀족들도 안 보이고.’
게다가 외무성에서 제레노 측에 제대로 전달한 모양인지, 나와 마르를 환영하겠다며 몰려온 사람들도 없었다. 만약 제레노에서 사람을 보냈다면 조금은 귀찮았을 텐데 다행이야.
물론 자국 내에 타국 주요 인사가 있는 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 인물이 숨만 쉬고 있어도 심장이 쫄깃해지는 법이지. 당장 몇 년 전의 나도 그 감정을 절절하게 느꼈잖아. 타국에서 아카데미까지 온 세 놈을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벌벌 떨린다.
허나 그 심정을 잘 알기에, 제레노의 귀족과 공무원들이 느낄 감정을 알기에 조심할 자신이 있다. 나와 마르는 정말 관광만 즐기다가 조용히 귀국할 거다.
‘나만큼 무해한 사람도 없으니까.’
내 입으로 꺼내기는 민망한 말이라 홀로 생각하는 것이지만, 나 정도면 가진 권력에 비해 매우 무해한 사람이다.
솔직히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선공을 건 적은 없잖아. 전대 감찰부장, 전대 애실론 가주, 2황자. 전부 나한테 먼저 시비를 건 놈들이었다. 난 어디까지나 생존을 위한 반격만 했었어.
그러니 제레노에서도 아무 소동이 없을 거라 믿는다. 제레노 새끼들이 미치지 않는 이상 나한테 선공을 걸지는 않을 테니.
“그럼 부인. 이제 가볼까요?”
속으로 짧은 기도를 한 후, 나르베시아의 거리를 두리번거리던 마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평소와 다른 말투와 대사. 누가 들어도 장난기가 가득 담긴 말이었으나, 마르는 질색하지 않고 자연스레 내 손을 잡았다.
“좋아요. 달링의 에스코트를 기대할게요.”
“큽…”
“우, 웃지 말고요.”
정작 마르의 달링 공격에 내가 웃고 말았다.
미안해. 갑자기 달링이라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어.
***
장관 부부가 처음 방문한 도시는 나르베시아였다.
딱 예상한 결과였다. 제국에서 배를 타고 이동한다면 가장 먼저 닿는 도시가 나르베시아지 않나. 심지어 나르베시아는 평범한 어촌 마을 수준이 아닌, 대륙 전체에서도 알아주는 항구 도시니 장관 부부의 여행지로도 제격이다.
“치안은 완벽하겠지?”
“예, 각하. 사소한 불안 요소도 전부 제거했습니다. 그로 인해 나르베시아의 활력이 다소 줄어들었으나, 오히려 부부의 오붓한 여행에는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럼 됐다. 지금은 찰나의 활력보다 완벽한 치안이 더 중요하다.”
“명심하겠습니다.”
내 말에 고개를 숙인 비서는 빠르게 물러났다.
이번 일은 타국의 주요 인사가 아국에 입국한 사건. 아무튼 타국과 연관된 일이기에 우리 외교부를 중심으로 내무부와 군무부가 협조 상태에 돌입했다. 덕분에 내 비서는 외부대신의 비서라는 죄로 쉴 새 없이 돌아다니고 있지.
미안하다. 그래도 장관 부부가 귀국하면 넉넉하게 휴가라도 줄 테니 힘내라.
‘…치안만 확실하면 크게 걱정할 건 없다.’
그렇게 비서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국 외무성은 장관의 방문이 공적 이유가 아닌 사적 이유라고 여러 번 반복하여 말했다. 여러 정황들도 장관이 여행을 위해 입국한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국이 불안에 떨 이유는 없다. 매년 제레노에 방문하는 관광객은 많고 많으며, 장관 부부도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 치안만 빈틈없이 유지할 수 있다면 장관 부부를 만족시킨 채 보낼 수 있다.
‘오히려 기회로 만들 수 있어.’
그리고 만약, 만약 장관이나 그 부인이 제레노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된다면? 아국을 경계하고 꺼려 하는 황금공보다 오래 살 것이 자명한 장관이, 제국의 2인자인 장관이 제레노를 좋게 평가한다면?
앞으로 제국과의 외교가 한결 수월해진다. 이 희대의 위기를 최고의 대접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도 아국의 예산을 최소한으로 투입한 대접으로.
“에넨이시여.”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신을 찾았다.
에넨이시여. 이번 일이 잘 풀린다면 한 달 동안은 매주 십일조가 아니라 십삼조를 내겠습니다. 제가 주의 자비와 관용을 더욱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가, 각하!”
“…무슨 일인가?”
요란하게 복귀한 비서를 보며 본능적인 불안감을 느꼈다.
왜. 왜 비서가 다시 돌아온 거지? 그것도 저렇게 다급한 표정으로?
제발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해줘. 그게 아니라면 하다못해 장관 부부가 급하게 귀국한 거라고 해줘.
“1공주 저하께서 나르베시아로 향하셨습니다!”
그러나 비서는 내 바람을 배신했다.
“뭐?”
“아, 아무래도, 대륙 제일 검인 감찰성 장관이 온다는 소식에… 바로 달려가신 것 같은─”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모든 감각이 마비된 기분이다.
눈앞의 비서가 보이지 않고, 비서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건지, 서있는 건지, 바닥에 쓰러진 건지도 구분이 가지 않는다.
“왜! 대체 왜 들킨 건가! 1공주 저하 앞에서는 더 조심했어야지!”
허나 겨우 이성을 되찾고 울부짖었다.
1공주 저하는 고귀한 왕족 분들 가운데서도 유독 활발한 분이다. 또한 검에 대한 열정도 상당하기에 기사의 길을 택하실 정도였지. 오죽하면 왕국 해군의 해적 토벌에 참가할 정도시겠나.
그런 1공주 저하가 대륙 제일 검에 관심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인데…
[ 본국의 감찰성 장관, 타일글레헨 백작이 백작부인과 함께 제레노로 입국 예정. 공적 업무가 아닌 부부의 여행을 위해서이니 접촉을 지양할 것. ] [ 공적 업무가 아닌 부부의 여행을 위해서이니 접촉을 지양할 것. ] [ 사사롭게 접촉하면 레온처럼 죽여주마. ]‘안 돼.’
제국 외무성이 보낸 통보가 저절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안 된다. 이건 안 된다. 공주 저하가 장관 부부와 접촉하면 그보다 큰 재앙은 없다.
“공주 저하께서는 어디까지 알고 계신가!?”
“장관이 입국한 것만 알고 계십니다!”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이다. 제국과 장관이 아국의 접촉을 꺼린다는 걸 모르고 달려가신 거잖나. 공주 저하께 사태를 설명한다면 납득하고 돌아오실 수도 있다. 공주 저하께서 조금 유별난 성격을 지닌 분이기는 하나, 왕국과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시니.
그래, 분명 돌아오실 거다. 스스로 해적 토벌에 나설 만큼 애국심이 넘치는 분이잖아.
[ 공주인 걸 숨기고 제일 검과 접촉할 테니 걱정 마세요! ]그리고 이번에도 희망을 배신당하고 말았다.
간절함을 담아 공주 저하의 통신구로 보낸 서신은, 딱 한 문장으로 거부되고 말았다.
‘에넨이시여…’
십삼조가 아니라 십칠조라도 내겠습니다.
제발 제레노의 앞날에 축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