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2)
마르게타의 머리에서 도박묵시록 칼이 상영되기 직전까지 간 느낌이다. 오프닝까지 나올 뻔하다가 겨우 멈춘 것 같은데.
조심스레 새끼손가락을 거니 힘을 잔뜩 줘서 잡더라. 혹여나 내가 마음을 바꿔서 다시 손가락을 풀 줄 알고 그러는 모양이다.
‘하필 이걸 들켜서.’
참혹한 오해에 마음이 아프다. 가족들에게 암행어사가 된 걸 말도 못하고 바로 도성을 나가는 관리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카지노의 비밀을 알려주면 끝날 문제지만 그건 차마 입을 열 수 없는 사안이다.
이러다 카지노에 다시 가는 걸 들키면 배신감에 치를 떨겠지. 울면서 내 손모가지를 자르려고 하는 마르게타를 볼지도 모르겠네.
“타니안도 다른 데 가지 말고 우리랑 같이 다니자. 좋은 데 많은 것 같더라.”
“물론입니다. 카지노도 잠깐 구경이나 하러 간 겁니다. 두 번 갈 곳은 아닌 것 같더군요.”
옆에서 루이제와 원흉의 대화가 들렸다. 지금까지 류티스가 악마의 주둥아리인 줄 알았는데 너무 섣부른 판단이었나. 어쩌면 부원들 전원이 문제가 있지만 아직 관측을 못한 걸 수도 있다.
직접 당하기 전에는 상대가 악마의 주둥아리인지 모른다. 마치 관측하기 전에는 확신할 수 없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혹은 뒤주의 세자…
슬쩍 타니안 쪽을 바라보려다 마르게타가 헛기침을 해서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내일 해변으로 갈 예정이에요. 칼 영식도 같이 가겠어요?”
“아, 죄송합니다. 내일부터 자리를 비울 일이 있어서.”
겨우 미소를 짓기 시작한 마르게타의 표정이 다시 굳었다. 확실히 타이밍이 많이 안 좋았다. 내일부터 자리를 비우는 걸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내가 다시 카지노에 가는 줄 알고 파들파들 떠는 마르게타를 진정시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다음날, 기약 없는 뱃놀이를 하기 전에 처리할 일들은 전부 끝냈다.
– 무사히 귀환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빌라르에게도 오늘부터 자리를 비울 것이라고 말해두었다. 적당히 업무 문제라고 설명했으니 더 캐묻지도 않았고, 어차피 보야르에 오기 전부터 내가 나설 일 없게 하겠다고 호언장담 했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빌라르가 10명이라면 정말 좋을 텐데.
부원들에게도 내가 없는 사이 문제가 생기면 빌라르에게 말하라고 했으니 무언가 꼬이거나 하지는 않을 거다.
‘않겠지?’
그래도 설마 직접 이름까지 언급하고 왔는데 까먹거나 무시하지는 않을 거다. 제발 빌라르도 모르는 사이 이상한 곳으로 놀러 가지만 않았으면 한다.
빌라르의 까마득한 윗사람인 류티스가 마음에 걸리지만 지금으로서는 그저 믿는 수밖에. 이렇게 운에 의존하는 기도 메타는 별로지만 어쩌겠나.
“오셨습니까?”
항구에 도착하자 마법사단장이 반겨줬다. 뒷편에 보이는 캐러벨이 한동안 신세를 질 함선 같다. 캐러벨이면 딱 필요 인원만 채우고 빠르게 이동하기에 좋긴 하지. 심지어 3척이네.
“출항 준비는 끝났습니다. 승선만 하시면 됩니다.”
“함장께서 일찍부터 준비하셨나 봅니다.”
“부장님이 타신다니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마법사단장의 농담 섞인 말에 작게 웃고 기함에 올랐다. 갤리온을 끌고 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캐러벨을 이끌려니 미리 나와서 준비했나 보다.
“요청하신 건 준비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별거 아닙니다. 그런데 그걸로 충분하십니까?”
걱정스럽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튀어나왔다가 금방 사라지는 녀석을 잡는 데는 칼질이나 주먹으로는 힘들다. 나오자마자 보내버려야지.
“예, 충분합니다.”
배에 오르자 적당히 자리를 잡은 마법사들 사이에서 난간에 기대어 놓은 창 세 자루가 보였다. 던지기 딱 좋은 형태, 이거면 충분하지. 오히려 빗나갈 것도 고려해서 넉넉하게 부탁한 건데.
“언제 발견하느냐가 관건이군요.”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언제 찾느냐의 문제지.
“어쩌면 자기를 죽일 사람이 왔다는 걸 눈치채고 더 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그 정도로 영리한 놈이면 어쩔 수 없죠.”
마법사단장의 농담에 웃으며 답했다. 마법사단장 나름의 같이 잘해보자는 표현이니까. 그리고 정말 그 정도 눈치와 지능이 있는 놈이면 술래잡기가 길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생각해보니 지 부모가 통오징어찜이 되자마자 잠수 탄 놈인데. 눈치는 몰라도 지능은 확실히 있는 놈이다.
‘말이 씨가 되려나.’
그러면 곤란한데.
***
에메랄드 해변이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바다가 마치 에메랄드 같이 빛나서 붙인 이름이라는데, 투박하고 직설적인 이름이지만 그만큼 어울리는 이름도 없다나?
리조트 직원 분이 보야르에 왔다면 꼭 가야 하는 곳 중 하나라고 해서 가기로 했다. 원래는 공녀님도 같이 가려고 했는데, 오라버니가 바쁘셔서… 심지어 이리나도 빠졌다. 이리나도 바다는 본 적이 없다고 해서 같이 보고 싶었는데.
“고문께서 빠지니 허전하군.”
“여기까지 와서 일을 할 줄은 몰랐네.”
라테르가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에리히도 동의했다. 확실히 이 먼 보야르에 와서도 오라버니가 이리저리 돌아다니실 줄은 몰랐다. 그래도 수학여행인데 그동안은 편히 쉬셔도 좋지 않을까?
“우리가 사전답사하는 거라 생각하자고. 일찍 끝날 수도 있다고 했으니 그때 데려가면 되지 않겠냐.”
류티스의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소풍 때는 오라버니가 미리 장소를 보고 오셨으니까, 이번에는 우리가 한다고 생각하자. 설마 수학여행 기간 동안 밖에만 떠도시지는 않겠지.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에메랄드 해변으로 향했다. 그래, 혹시나 별로라면 오라버니의 소중한 시간만 낭비할 수도 있잖아. 우리가 확실히 살펴보고 괜찮으면 그때 데려오자. 그게 오라버니에게도 더 좋을 거야.
“아름답군요. 하늘이 내린 선물 같습니다.”
“응, 예쁘다아…”
그리고 해변에 도착하자 조용하던 타니안이 감탄할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졌다. 오기 전에는 그냥 초록색 바다겠거니 싶었지만, 직접 보니 무언가 달랐다. 분명 초록빛이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
저 멀리 지나가는 3척의 배마저 이 명화 같은 풍경에 어우러져 빛나고 있었다. 진짜 예쁘다…
꼭 오라버니에게도 보여드리고 싶다. 분명 오라버니도 좋아하시겠지. 벚꽃 구경도 같이 즐기셨으니까 이런 바다를 보는 것도 좋아하실 거야. 그때는 이리나도, 공녀님도 다 같이 오면 좋겠다.
***
이 시발 개같은 녹조 바다, 계속 보니까 지랄 맞네.
점심에 출항한 이후 빠르게 크라켄 출몰 지역을 헤집고 다녔지만 아직 성과는 없었다. 물론 첫날에 바로 발견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막상 바다 위에서 멍하니 기다리는 것도 할 짓이 못 된다.
내가 보야르에 오기 전부터 바다 생활을 한 마법사단장은 이미 지쳤는지 갑판에 널브러져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휴식 맞나? 언뜻 보면 그냥 기절한 것 같은데.
“혹시 불편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아, 함장.”
시체(진)으로 보이는 마법사단장을 보고 있자 함장이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 항해는 항해사나 조타수가 알아서 할 테니 슬쩍 나온 것 같다. 아직 인사도 못해서 신경 쓰였는데 마침 딱 왔네.
“불편한 것이 있겠습니까. 경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단장은 배만 타면 저 상태라, 제 항해 실력이 많이 떨어졌나 걱정이 많았습니다.”
“마법사가 바다 사나이들의 행렬에 적응하기는 어렵죠.”
“하하하! 그건 그렇습니다!”
‘그냥 쟤네가 허약해서 그럼’ 이라는 말에 함장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타는 손님이 저 모양이니 은근 신경 쓰였나 보지. 그런 상황에서 나한테 자신의 문제가 아님을 인정받았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바다 사나이의 기분을 맞춰준 대가로 미세하게 호감도가 올랐는지, 난간에 기댄 나에게 다가온 함장도 녹색 바다를 바라봤다.
“보야르의 자랑입니다. 이 바다에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보야르 사람은 상당하죠.”
“그렇습니까? 확실히 아름답긴 합니다만.”
목숨까지 바친다면 어떨까 싶네. 내륙인이라 감성이 다른 건가?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까놓고 말하면 어획량이 꽤 많습니다. 덕분에 아주 옛날부터 조각배에 의지하여 이 바다로 나선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아, 그렇다면 인정이지. 해안 지대 주민들 입장에서 수확이 보장된 어장은 목숨이라고 하기에 부족하지 않으니까. 오늘날 보야르는 단순 어업으로 먹고 사는 곳이 아니긴 하지만.
슬쩍 함장을 바라보니 아련한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야르 영민들이 어업에 몰두한 것은 까마득한 과거지만, 아무래도 그 과거에 목숨을 바친 조상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목숨을 걷어간 것은 하늘도 바다도 아니었습니다. 크라켄이었죠.”
이게 빌드업이 이렇게 되네.
“당시 크라켄은 저항할 수 없는 재앙이었습니다.”
“들어봤습니다. 한때는 해신으로 숭배된 적도 있었다지요?”
“하하, 해신보다는 재앙신이 어울리지만요.”
그러고 잠시 말이 없던 함장이 멀리 있는 해안가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이야 크라켄은 거슬릴 뿐인 몬스터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일상을 부술 수 있는 재앙이지요.”
“황금공 각하께서도 주민들의 일상이 깨질까 염려가 많으신 것 같았습니다.”
“예, 훌륭한 분이십니다. 가장 아래 있는 주민들의 삶도 염려해주셨으니.”
무언가 회상하는 듯한 함장의 눈에는 어느새 아련함이 아닌 공허감과 분노가 뒤섞였다. 아무래도 바다에 목숨을 바친 건 함장의 조상이 아니라 꽤 가까운 혈족인 것 같다. 심지어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인해.
“그리고 부장님께서 각하의 요청을 받아주셨다는 걸 듣고, 솔직히 기뻤습니다.”
“별 말씀을. 엄연히 보상이 있는 일입니다.”
그 말에 함장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사소한 문제라는 것처럼.
“일상을 보호 받는 입장에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과가 중요하죠.”
“부디 그 결과를 누리는 주민들이 많았으면 좋겠군요.”
“쉬운 일입니다.”
그러고는 바라보던 해안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함장. 초록빛 바다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다.
오, 저게 벌써 나왔네.
“게다가 부장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군요.”
그 말에 해안가를 자세히 살피니 사람처럼 보이는 작은 점 하나가 모래사장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런, 하필 이런 때에.
아니, 바다에 마법을 날리지 않으면 나오지도 않는 놈이니 오히려 저 사람이 미끼 역할을 해준 건가?
작게 혀를 차자 함장이 난간에 기대어 둔 창 중 하나를 건네주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고작 이런 일에 인명 피해가 나면 나도 기분이 좋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