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20)
로판 속 공무원 720화(721/945)
신혼여행 기간 동안 머무를 리조트는 황금공이 자랑한 곳답게 화려하고 웅장했다.
나르베시아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수많은 선박들이 오고 가는 부두와 드넓은 바다가 보이는 곳. 이 나르베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 그런지 나르베시아의 모든 게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이 리조트가 도시 중앙이 아닌 외곽 쪽으로 빠져 있다는 것이 다행일 따름이다. 만약 중앙에서 도시를 내려다봤다면 나 자신을 제레노 총독으로 여겼을지도 몰라. 사실 지금도 반쯤은 총독이 된 기분이고.
‘평범하게 와서 다행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배가 아니라 레비아탄을 타고 나르베시아까지 왔다면 그게 어딜 봐서 신혼여행을 오는 부부겠냐고. 그냥 도시를 점령하러 온 정복자잖아.
솔직히 황금공도 나에 대한 배려 반, 제레노를 다시 압박하기 위한 욕망 반으로 레비아탄 탑승을 제안했을 거다. 존재 자체로도 전략 병기인 레비아탄을 단순히 사람 두 명을 수송하는 데 쓴다? 아무리 황금공이 사람을 잘 챙기는 편이라도, 순수한 호의로 레비아탄을 움직이는 건 낭비가 큰 결정이지.
“칼. 저는 다 씻었어요.”
그렇게 창가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사이, 먼저 욕실에 들어갔던 마르가 가운을 입은 채 나왔다.
“같이 씻었어도 됐는데.”
“그건 안 돼요. 밤이 긴데 욕실에서부터 힘을 뺄 수는 없잖아요?”
그런 마르에게 농담 섞인 아쉬움을 표하자, 마르도 배시시 웃으며 은근한 농담을 돌려줬다.
아니, 어쩌면 농담이 아니라 순도 100% 진심일 수 있다. 저택에서 며칠 동안이나 먹었던 음식들을 생각하면 농담일 수가 없다.
“글쎄. 욕실에서 조금이라도 힘을 빼는 게 좋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마르를 살포시 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그 선택은 썩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나와 마르가 결혼한 직후에는 길고 뜨거운 사랑을 나눴었다. 덕분에 페디라는 소중한 보물이 우리 곁에 찾아왔고, 그 경험을 토대 삼아 다른 부인들 사이에서도 귀중한 보물을 얻을 수 있었지. 그것도 전부 허니문 베이비라는 기적을.
그 뒤로는 그때 같은 사랑을 나누지 않고 평범하고 부드러운 사랑을 나눴었는데, 아무래도 마르가 그 사랑을 기준으로 계획을 짠 모양이다. 3년 전의 기억은 날아간 것 같아.
‘그럼 기억나게 해줘야지.’
내가 지금까지 자제한 이유는 무리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둘째를 만들 예정도 아니니 힘을 줘봤자 과잉 전력밖에 더 되겠나.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부인들을 배려한 신사협정은 메리의 탄생과 함께 해지되었다.
“둘째 태명은 나르로 하면 좋겠다.”
나르베시아의 앞 글자인 나르. 마르와 발음도 비슷해서 태명으로 쓰기에는 딱이네.
“…네?”
그리고 내 정중한 선전포고에 마르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다소 얼이 빠진 듯한 목소리를 냈다.
유감스럽게도 3년 전의 기억이 이제야 복구되기 시작한 것 같다.
“페디는 아빠를 많이 닮았으니, 나르는 엄마 닮은 딸로 태어나는 게 좋겠지?”
“카, 칼? 아직 해도 안 졌는데!”
“그게 중요해?”
뒤늦게 후퇴하려는 마르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어느새 내 손도 가운의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
지금이 저녁 전이든 후든, 밤이든 새벽이든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아침까지는 달릴 생각이니까.
***
나르베시아는 이라비카 백작령에 속한 도시다.
비록 이라비카 백작이 머무는 중심 도시는 아니지만, 왕국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입지를 가진지라 백작령 제일의 도시로서 번영을 누리고 있다. 이라비카 백작도 나르베시아는 봉신에게 하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직할령으로 삼았지.
그리고 나르베시아의 상징과도 같았던 델로 리조트는 몇 개월 전, 왕국 전역을 뒤흔들었던 레비아탄 사태로 인해 소유권이 황금공에게 넘어갔다.
‘이라비카 백작이 가지고 있었으면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덕분에 대륙 제일 검이 저 안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차마 리조트에 들어가지 못했다.
소유권 이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왕국 최고의 리조트라고 불리던 델로 리조트다. 그런 리조트가 황금공의 손안에서 재단장을 하였으니, 예약이 밀려 터지는 건 당연한 일. 신분을 숨기고 온 나로서는 도저히 접근할 방법이 없다.
‘뺏기지만 않았어도…’
아쉽다. 안타깝다. 어차피 리조트에 들어가도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나지만, 그래도 대륙 제일 검과 같은 건물을 쓰면 그 기운을 조금이나마 받을 것 같은데.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 같은데.
수시로 욕망이 꿈틀거렸으나 애써 억눌렀다. 왕족으로서 예약도 하지 않은 리조트에 쳐들어가 방을 달라고 하는 건 품위가 없는 짓이다. 설령 품위가 훼손되는 걸 감수하더라도, 제레노의 공주가 제국 공작의 리조트에서 소란을 피울 수는 없다.
그래서 참았다. 대륙 제일 검이 다시 리조트에서 나오는 시간까지. 아침이 되어 다시 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
“베릴.”
“예, 저하.”
“왜 안 나오는 걸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내와 기다림은 배신당했다. 대륙 제일 검과 그 부인은 이틀이 지나도 리조트에서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제국에서 아국까지 온 피로감에 휴식을 취하는 줄 알았다. 하루 정도는 리조트에서 푹 쉬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런데 이틀이나 리조트에만 있는다고? 신혼여행 기간을 길게 잡았다고 쳐도, 관광지 구경이 아니라 리조트 안에만 있어?
“호,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불안감이 솟구쳤다. 그럴 확률은 낮지만, 혹시 대륙 제일 검이 제레노의 식사와 물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앓는 중이면 어쩌지? 고향에만 있다가 타지로 간 사람들은 물 때문에 고생한다고 하잖아.
아니면 대륙 제일 검이 아니라 부인이 앓는 중일 수도 있다. 대륙 제일 검은 튼튼하지만, 부인은 평범한 귀부인이니까.
아니, 철혈공의 딸이면 평범은 아닌가?
‘아픈 거면 안 되는데…’
아무튼 대륙 제일 검과 부인 중 어느 쪽이 아프든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다.
대륙 제일 검과 대화를 하지 못하는 거? 눈물이 절로 나올 정도로 슬프지만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기껏 제레노까지 온 우상이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이왕 온 김에 좋은 기억만 가득 남기고 돌아갔으면 좋겠─
“저하. 나옵니다.”
베릴의 말에 황급히 리조트의 출입구를 바라봤다.
정말이다. 드디어 대륙 제일 검이 리조트에서 나왔다. 부인 없이 홀로 나온 게 의아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멀쩡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부인이 아픈 건가?’
어쩌지. 리조트에 몰래 약이라도 주고 갈까?
아니, 그건 별로야. 어떻게 아픈 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약은 무슨 약이야. 애초에 대륙 제일 검이 약 하나 구하지 못할 사람도 아니고.
그럼 교회에 가서 기도라도 드릴까? 그런데 대륙 제일 검은 살아있는 복자잖아. 내 기도보다는 제일 검의 기도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쓸모없어.’
순간 자괴감이 들었다. 존경하는 영웅이 힘들어하는데 아무것도 못 하다니. 나한테 공주라는 신분을 빼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잖아.
‘…어?’
그냥 왕궁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려던 찰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졌다.
제일 검이 우리가 있던 카페로 오고 있다. 단순히 지나가는 경로가 아니라, 확실히 일직선으로 다가오고 있다.
“베, 베릴. 어쩌지!?”
“가만히 있으십시오. 지금 자리를 피하면 더 이상합니다. 카페에 있던 손님인 척하면 됩니다.”
다급히 속삭이자 베릴은 완벽한 대답을 내놓았다.
맞는 말이다. 제일 검은 나와 베릴이 누군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건 오히려 의심을 받는 행동─
“잠깐 얘기 좀 할까?”
“엑.”
제일 검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쩌지 이거.
***
마르는 3년 전보다 더욱 빠르게 쓰러졌다.
사실 당연한 결과다. 마르는 며칠 동안 자기 손으로 적을 키운 실책을 저질렀으니까. 내가 저택에서 섭취한 음식들은 골골거리는 병자도 두 발로 걷게 할 정도로 화려했다.
덕분에 마르가 안정을 되찾기 전까지는 리조트에만 있기로 결정했고,
‘뭐야.’
도시 쪽 경치를 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하고 말았다.
리조트 앞에 있는 카페. 그 카페 테라스에 멍하니 앉아있는 금발과 은발의 여인 듀오. 나이는 대충 에리히와 비슷해 보였다.
물론 관광지에 젊은 여인들이 보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나, 저 둘이 있는 건 이상한 일이 맞다.
‘아직도 여기 있었다고?’
나와 마르의 뒤를 따라왔던 두 기척. 처음에는 누군가 따라붙었다는 것만 파악했지만, 관광을 즐기면서도 틈틈이 얼굴을 확인했기에 확신할 수 있다. 저 듀오가 나와 마르를 미행했던 미행범들이다.
‘왜?’
혼란스럽다. 딱히 적의가 있는 것도 아니라 가만히 뒀는데, 리조트 앞에서 무기한 대기까지 하고 있다고? 대체 뭘 노리고?
아니,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자국 내에 타국 주요 인사가 있다면 당연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고, 혹시 모를 사태가 터지는 걸 대비하기 사람을 붙이는 건 납득할 수 있는 범위다.
그런데 그런 용도로 붙은 사람이라면 더 은밀해야 하지 않나…?
“잠깐 얘기 좀 할까?”
그래서 마르가 자고 있는 동안 카페로 내려갔다. 내가 어지간하면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 기묘한 미행은 궁금해서라도 무시할 수가 없다.
이 세상 어느 미행범이 일을 이렇게 해. 만약 감찰성 내에 이런 놈이 있다면 내 손으로 박살 냈어.
“아, 그, 저, 그게…”
그리고 내가 먼저 다가오자 금발의 여인은 말을 더듬으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저기, 그러니까…”
“그러니까?”
머뭇거리던 금발 여인을 재촉하자 여인은 눈을 질끈 감더니, 냅다 허리를 숙였다.
“뵈,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검의 정점을 넘어 끝에 이르신 분을 이렇게 가까이서 뵐 수 있게 되어! 저 앨리스 뉴드아! 일생의 영광입니다!”
그것도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뉴드아?’
동시에 머리가 바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뉴드아라면 제레노 왕실 아닌가? 앨리스는 제레노 제1공주의 이름이기도 하고.
…
‘망할.’
괜히 내려왔다. 어차피 모른 척하기로 한 거 끝까지 무시할 걸 그랬어.
“사, 사실 제일 검께서 나르베시아에 왔다는 얘기를 듣고, 검의 끝에 이른 분을 직접 뵙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거슬렸다면 죄송합니다!”
그 와중에 여전히 허리를 숙이고 있던 앨리스는 처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신도처럼.
“그렇게 보고 싶었다면 말이라도 걸지, 왜 멀리서 지켜만 보신 겁니까?”
“부, 부부의 시간을 방해하는 건… 너무 죄송스러운 일이라…”
의외로 상식적인 대답이라 픽 웃음이 나왔다.
내가 왔다는 소식에 왕궁에서 나르베시아까지 달려오고, 하루 종일 내 뒤를 쫓았으며, 리조트에 박혀있던 이틀 동안 카페를 지키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막상 부부의 시간을 방해할 수 없다며 자제하다니. 이걸 정상적이라고 봐야 할지, 기행이라고 봐야 할지.
‘독특한 사람이네.’
놀랍게도 딱히 노엽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이미 아르메인에 사는 어느 매운맛 왕자 놈한테 적응해서 그런가, 이 정도는 순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