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23)
로판 속 공무원 723화(724/945)
3년 만에 이루어진 신혼여행은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비록 신혼여행 도중에 작은 소란이 있었으나, 말 그대로 타국 여행 중 겪은 작은 해프닝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면 ‘그런 일도 있었지.’ 라고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의 해프닝. 그런 추억을 선물해 준 앨리스에게 고마울 정도다.
그렇게 흡족한 심정으로 제국에 귀국하였고,
“메리야. 아빠 화장실 가고 싶은데.”
“흐에에엥…”
“아빠가 열심히 참아볼게.”
막 태어난 막내를 두고 신혼여행을 떠난 업보를 돌려받았다.
내가 돌아오자마자 창백한 얼굴로 달려온 피네. 그런 피네의 품에는 펑펑 우는 메리가 안겨 있었고, 안 그래도 우렁차게 울던 메리는 나를 보자마자 더욱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메, 메리가 아빠를 너무 보고 싶어 해서…”
“나한테 줘…”
심지어 우는 사유가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내가 즐겁게 노는 동안 우리 메리는 아빠를 찾았구나.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메리가 처음부터 아빠를 찾지는 않았다는 거다. 만약 메리가 신혼여행 기간 내내 오열했다면 난 지금쯤 스스로 혀를 깨물었겠지.
‘익숙한 목소리가 근처에 없어서 놀란 건가?’
내 품에 착 달라붙은 메리를 토닥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막 태어난 아기는 초점이 맞지 않아 무언가를 보지 못한다. 덕분에 메리는 아빠의 목소리만 알지,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초점이 맞기 시작했고, 늘 자기를 보살펴주는 엄마의 모습은 바로 확인할 수 있었으나─ 얼마 전부터 목소리도 들리지 않던 아빠가 보이지 않는다? 이건 울어도 이상하지 않은 대참사다. 내가 미처 그 점을 고려하지 못했어.
“앞으로는 조심해야겠어요. 막 태어나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메리가 칼의 목소리를 기억할 줄이야.”
내 옆에 있던 마르도 다소 시무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마 마르의 죄책감도 작지는 않을 거다. 어찌 보면 저택의 귀여움을 받아야 할 막내에게서 아빠를 빼앗은 꼴이잖아. 그 이유가 3년 전에 즐기지 못한 신혼여행 때문이라도, 마르의 성격상 메리에게 못할 짓을 했다며 자책할 가능성이 크다.
그건 안 될 일이다. 마르에게 신혼여행을 제안한 것도, 날짜와 장소를 정한 것도 나였다. 메리에게 잘못한 것도 나고, 마르에게 잘못한 것 또한 나다.
“아빠가 아직 미숙해서 실수한 거지. 메리가 용서해 줬으면 좋겠어.”
그렇기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사태의 책임을 나에게 돌렸다.
오붓한 여행을 끝내고 막 돌아온 마르다. 그 여운을 즐겨도 부족한 판국에 씁쓸함과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다. 메리가 내 소중한 아이인 것처럼, 마르도 소중한 아내니까.
“아이가 부모를 보고 싶어 우는 건 흔한 일입니다. 단지 메리가 울었을 때는 우연히 아빠가 멀리 있었을 뿐이죠. 그러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도 됩니다.”
다행히 피네도 마르에게 소소한 위로를 건넸다.
실로 흐뭇한 광경이다. 저 작은 위로야말로 부인들끼리 사이가 좋다는 증거지 않나.
“그래도…”
“그보다 제가 아이를 돌보는 건 처음이라 미숙한 게 많은데, 괜찮다면 마르에게 도움을 받아도 되겠습니까? 저희 중 가장 엄마 경력이 긴 건 마르니까요.”
정 미안하다면 자기를 도와주는 걸로 퉁치자는 제안. 그 제안에 마르는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겨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물론이죠. 언니 아이면 우리 아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고맙습니다, 마르.”
이상하다. 분명 아름다운 광경인데 눈앞이 흐릿해지는 기분이다.
순간 두 부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 때문에 눈이 머는 중인 건가 싶었으나, 눈가가 묘하게 축축한 것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이게 마음의 눈물인가.’
슬퍼서가 아니라 기뻐야 흘릴 수 있다는 마음의 눈물. 나에게 너무나 과분한 선물이라 괜히 눈가를 닦게─
“흐이잉…”
“알았어, 계속 안고 있을게.”
한쪽 손을 떼자마자 메리의 눈가가 그렁거리기 시작했다.
내려놓으려는 게 아니라 잠깐 눈만 닦으려고 한 거였는데… 잠깐만 닦고 도로 안을 생각이었는데…
‘내 업보지.’
허나 감히 불만을 가질 수는 없었다. 메리가 아빠의 손에 집착하는 건 나 때문이니까.
내가 메리를 두고 먼 길을 떠나지 않았다면 메리가 울음을 터뜨리지도, 내 손에 집착하지도 않았겠지. 이 일을 잊지 말고 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자.
***
장관과 백작부인이 제도로 돌아왔다.
신혼여행을 굳이 타국에서 보낼 필요가 있었나 싶지만, 이미 장관은 마종공과 함께 신성교국에 방문한 전적이 있다. 아내 중 한 명이라도 타국 여행을 즐겼다면 다른 부인들과도 즐기는 것이 도리.
‘이제 네 번 남은 건가.’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번에 바렌티 공작가의 공녀와 한 번, 저번에 마종공과 한 번 갔으니 여섯 명 중 넷이 남았다. 과연 그 넷과는 어느 나라로 갈지 내가 다 두근거린다.
물론 장관의 성격을 생각하면 전부 같은 곳에 가도 이상하지 않으나,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묘한 배려심을 보이는 장관이지 않나. 부인들과의 추억을 건성건성 만들 수 없다며 각자 다른 나라로 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졸지에 기강을 잡게 생겼군.’
외무성이 제레노 외교부에게 통보했던 내용을 떠올리니 다시 웃음이 나왔다.
장관의 방문은 어디까지나 사적 방문이니, 절대 사사롭게 접촉하지 말라고 경고했던 통보. 어떻게 보면 장관과 백작부인의 평온한 여행을 위한 제국의 배려이나, 다르게 보면 ‘제국의 말 한마디에 굴복하는 왕국 행정부’의 구도를 만들 수 있었다.
헌데 그 구도가 네 번이나 더 이루어진다? 장관이 신혼여행 장소로 택할 만큼 건실한 국가를 상대로?
‘좋아.’
흡족하다. 제국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타국 외교부에 시비를 걸면 아펠스의 길을 밟는 만행이나, 자국 주요 인사의 방문을 계기로 경고를 하는 건 타당한 명분이다.
솔직히 약간의 억지가 필요한 명분이지만 뭐 어떤가. 그 정도 억지는 국력으로 가릴 수 있거늘.
‘다음 여행지는 내가 추천해 볼까?’
잠시 즐거운 상상을 해봤다. 적당한 기강 잡기가 필요한 국가에 장관을 보내면 자동으로 제국과 해당국 사이의 위계질서가 잡힌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렇다면 과연 어디로 보내는 것이 좋을까. 아르메인이나 유벤은 덩치가 크니 기강을 잡으려 하면 반발이 돌아올 수 있고, 겨울 삼국은 이미 제국의 충실한 친우들이다.
레온? 이미 레온 남부는 제국 영토의 연장이다. 쿼로노스? 저번 레온 사태 이후로 쿼로노스 역시 제국과 아르메인에게 납작 엎드리고 있다.
‘류튼이나 발크로스가 적당하겠어.’
이런저런 국가들을 제외하니 대표적인 국가가 선별되었다.
겨울 삼국 남부에 위치한 숭무주의 국가 류튼 왕국. 제레노 왕국 북동부에 위치한 문화강국 발크로스 왕국. 딱 이 둘이 적당하고, 나머지 둘은 천천히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
‘추천해 봤자 무시하겠지.’
빠르게 즐거운 상상을 접었다.
장관이 업무 관련 명령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따르는 편이나, 사적인 부탁이나 조언은 황제의 말도 무시할 만큼 막 나간다. 내가 신혼여행 장소를 백날 추천해 봤자 ‘그럼 네가 가든가.’로 응수할 수 있다.
그러니 잠시 즐거운 상상을 한 걸로 만족하자. 이 기회에 제국이 기강을 잡아야 할 국가들을 정리했다 치자고.
라고, 아주 잠깐 그렇게 생각했었다.
“제레노에서 새로운 국보를 발표했다?”
“예, 폐하.”
외무성 장관의 보고를 듣기 전까지는.
“그 국보가 감찰성 장관의 검이고?”
“정확히는 감찰성 장관의 서명과 문구가 적힌 검입니다.”
순간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장관이 쓰던 검도 아니고, 가지고 있던 검도 아니고, 단순히 서명을 적은 검이다. 그게 제레노 왕국의 국보 중 하나가 되다니, 그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왜 남의 나라 귀족의 서명을.’
어이가 없지만 애써 납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단 장관은 복자다. 죽어서 시복이 된 복자가 아닌, 결혼식 도중에 신의 축복을 받은 살아있는 복자다. 심지어 사후에는 성인으로 시성 되는 것이 확정되어 있다.
거기다 장관은 제국 제일 검을 넘어 대륙 제일이라 불리는 무인이다. 종교적 권위와 무인들의 존경을 동시에 짊어지고 있는 인물이니, 제레노 입장에서도 단순히 타국 귀족이 아니라 대륙적 위인이라 볼 수도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최선을 다해 납득해야 그런 결론이 나온다.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도대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제레노도 제레노지만 장관이 더 기이하다. 도대체 제레노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장관의 서명이 적힌 검이 제레노 왕실의 손에 들어갔단 말인가. 혹시 돈을 들고 가는 걸 깜빡해서 서명으로 퉁친 건가? 돈 대신 이거나 받으라고?
아니, 그럴 가능성은 없다. 이 세상 어느 귀족이 그딴 걸 돈 대신 쓰겠나.
“장관.”
“예, 폐하.”
“제레노 왕국이 장관에게 따로 접촉하지는, 않았는가?”
“제레노 행정부는 감찰성 장관과 백작부인의 여행을 위하여 침묵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행정부가 움직인 정황은 장관이 입국하기 전, 여행지의 치안 유지를 위한 작업밖에 없었습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정보다. 제레노 행정부가 먼저 접촉하지도 않았는데, 대체 장관의 검이 어쩌, 다…?
‘행정부는?’
뭔가 이상하다. 그럼 행정부가 아닌 다른 단체가 접촉했다는 건가?
“제레노의 귀족들에 대해서도 확인하도록. 아무래도 행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자가 존재하는 것 같네.”
“예, 폐하. 확인 즉시 보고드리겠습니다.”
외무성 장관은 그 말과 함께 물러났다.
은근 발걸음이 빠른 걸 보니, 외무성 장관도 지방 귀족들의 폭주를 염두에 둔 것 같았다.
다음날 저녁, 외무성 장관은 두 가지 소식을 들고 돌아왔다.
“감찰성 장관과 접촉한 자는 제레노 1공주인 앨리스 뉴드아입니다.”
“행정부 소속이 아니기는 하군.”
“또한 몇 시간 전, 아르메인 왕국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에게도 감찰성 장관의 서명이 적힌 검을 줄 수 있겠냐고…”
“환장하겠군.”
어질어질한 소식에 실소가 절로 나왔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