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24)
로판 속 공무원 724화(725/945)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황제의 호출이 떨어졌다.
편하게 쉬고 있다가 호출을 받았다면 온갖 쌍욕을 했겠지만, 이번 호출은 바로 떠오르는 사유가 있기에 순순히 황궁으로 향했다.
‘들켰네.’
아무래도 앨리스 공주와 접촉한 사실이 황제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다.
제국의 눈과 귀는 대륙 전역에 퍼져있다. 카간의 발호와 황위 계승 분쟁을 거치며 첩보망이 흔들린 시기도 있으나, 수 년에 걸친 복구 및 첩보부의 출범으로 인해 제국의 대륙 첩보망은 그럭저럭 재건된 상황이다. 바로 옆 나라인 제레노의 소식 정도는 금방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게다가 나나 앨리스 공주나 딱히 비밀리에 만남을 가진 것도 아니잖아. 오히려 황제가 이 소식을 몰랐다면 첩보부의 능력을 의심해야 할 수준이다.
‘팬이라 먼저 접근했다고 하면 믿으려나.’
그렇기에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동시에 복잡한 머리로 걸음을 옮겼다. 남의 나라 공주와 접촉한 이유가 ‘공주가 제 팬이라서 스토커 짓 했어요 ㅎ’ 인 건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니까.
하지만 어쩌겠나. 그게 진실인데. 귀족이 황제 앞에서 거짓을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제레노 왕국이 장관의 서명이 적힌 검을 국보로 지정했네.”
“예?”
라고, 몇 분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아르메인에서도 장관의 서명이 적힌 검을 보내달라 요청했지.”
“…예?”
황제의 말에 넋이 나가기 전까지는.
‘뭐지.’
혼란스럽다. 내 사인이 적힌 검이 타국의 국보라는 것도, 그걸 또 다른 국가가 탐낸다는 것도 보편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황제가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거겠지만─
‘이 새끼 진심이다.’
실소와 비웃음이 뒤섞인 표정을 보니 농담은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진짜다. 황제는 재미없고 센스 없는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전달하고 있다.
“아니, 그게, 왜, 국보로…”
“장관은 하늘도 베어버리는 대륙 제일 검이지 않나. 게다가 여명 교단의 복자이기도 하니, 국보로 지정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차마 부정할 수 없는 말이라 입을 열지 못했다.
황제의 말이 맞다. 솔직히 나보다 강한 무인은 대륙 역사를 뒤져보면 적지 않게 나오나, 하늘을 벨 줄 아는 무인은 나밖에 없다. 정확히는 하늘 베기의 원조인 카간은 물론, 그 열화판을 습득한 무인들 전원이 북방에서 죽은 덕에 대륙적으로 알려진 하늘 베기 사용자는 나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생전 복자, 사후 성인이라는 종교적 권위까지 얹어졌다? 타국의 대우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설마 그 대우가 국보 지정까지 갈 줄은 몰랐지만.
‘아르메인은 또 뭔데.’
심지어 아르메인은 남의 나라 국보를 자신들에게도 달라는 미친 요청을 하고 있다. 아무리 사인이 쉽게 할 수 있는 거라지만, 그래도 지금은 타국의 국보잖아. 그걸 달라는 건 대체 무슨 부탁인데.
아니, 당연히 제레노에게 있는 검을 뺏어서 달라는 게 아니라 새로 만들어 달라는 거겠지. 그래도 타국 국보와 똑같은 걸 만드는 것은 양심이 아픈 일이다.
‘…류티스인가.’
본능적으로 빨간 머리의 3왕자가 떠올랐다.
이런 정신 나간 부탁을 할 인간은 그놈밖에 없다.
***
비아와 결혼한 지도 수개월이 지났다.
고작 수개월에 불과한 시간이었으나 그동안 휴가를 신청하여 저택에서 쉬는 것, 사랑스러운 부인과 오붓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 몇 달 후면 결혼할 예비 부인과 웃으며 노는 것, 겨울 즈음에 태어날 내 아이를 기다리며 설레는 것 등. 무수히 많은 행복을 즐길 수 있었다.
이래서 사람이 결혼을 하는구나 싶었다. 나와 비아는 사실혼이나 마찬가지였으나, 공식적인 부부가 되자마자 온갖 행복이 몰려왔잖아. 이제라도 이 행복을 누릴 수 있어서 기쁠 정도다.
그렇게 가끔 얼굴을 비추는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을 맞이하는 걸 제외하면 하루하루를 평온하게 보냈고,
“너 류티스랑 연락한댔지?”
갑작스레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류티스?”
형의 기습 방문과 직설적 질문에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형은 신혼의 즐거움은 같은 신혼만 이해할 수 있다며 나와의 접촉을 극단적으로 줄였고, 정말 용건이 있다면 통신구로 연락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 정도로 나와 거리를 두었던 형이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뭐… 하기는 하지.”
그래도 막 신혼여행을 다녀온 형이 직접 찾아올 정도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 무슨 일이냐는 반문 대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찾는 사람이 류티스지 않나. 내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생겼을 거다.
“한 번 연락 좀 해봐. 확인할 게 있어서.”
“…내가?”
“그럼 내가 할까?”
그 말에 잠시 머리를 굴렸다가 씁쓸히 고개를 내저었다.
나와 류티스가 친구인 반면 형과 류티스는 졸업 이후로 타국 귀족과 타국 왕족이 되었다. 물론 억지로 ‘학창 시절의 연’을 언급할 수도 있으나, 세상 사람들이 형과 류티스의 관계를 단순히 고문 선생과 동아리 학생으로 볼 것 같지는 않다.
괜히 형이 류티스와 연락했다는 이야기가 새면 양국 사교계가 수군거리고, 대륙이 술렁거리고, 그 여파가 제국의회에도 향하고, 류티스의 친구인 나에게도 영향이 가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뭘 확인하려고?”
“이번 국보 사건에 어디까지 관여했는지.”
“국보?”
난데없는 단어라 미간이 찌푸려졌다.
류티스랑 국보가 무슨 연관이 있는 거지? 설마 류티스가 아르메인 국보를 깨먹거나 누군가한테 넘겼나? 그러고 보니 아인테르 결혼식 때 범상치 않은 물건을 선물로 보냈다고 듣긴 했는데?
“아, 넌 아직 못 들었겠네.”
허나 형의 설명을 듣자마자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타국으로 신혼여행을 간 형이 여행지에서 타국 공주를 만날 확률. 그 공주가 형의 추종자일 확률. 선물로 준 검이 제레노의 국보가 될 확률은 대체 얼마나 될까.거기다 아르메인이 그 확률에 손을 얹을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류티스네.’
그리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아르메인이 이번 사태에 개입한 원흉은 류티스라고.
류티스가 아니라면 이 기괴한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 국보? 그런 일도 있었나?
“어?”
– 요즘 수련을 하느라 바빠서 말이야. 왕국 일은 잘 몰라.
류티스의 말에 나도, 옆에 있던 형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당연히 이번 사태의 배후는 류티스일 줄 알았다. 타국이 국보로 지정한 물건을 자기들에게도 달라고 할 정도의 패기와 뻔뻔함은 류티스가 아니고서야 가질 수 없다. 아니, 류티스 외에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 이 대륙에 류티스 같은 인간이 여럿이라는 뜻이잖아.
‘류티스가 여럿.’
아주 잠깐 상상한 것임에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류티스가 하나… 류티스가 둘… 류티스가 셋… 개판이 하나… 둘… 셋…
‘끔찍하다.’
그리고 더욱 끔찍한 것은 국보 사태의 배후가 따로 있다는 점이다. 류티스가 셋은 몰라도 둘까지는 있다는 게 밝혀졌다.
– 아, 그러고 보니.
통신구를 쥔 손이 파르르 떨리는 사이, 류티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 모습에 희망이 생겼다. 그래, 사실 네가 주도한 건데 잠시 까먹었다고 말해. 아니면 ‘나도 그런 검이 있으면 좋겠는데.’ 라고 은근히 흘린 적이 있다고 해.
지금이라도 그렇게 말한다면 웃으며 넘어갈 수 있다. 류티스가 사고를 터뜨리는 건 일상이지만, 류티스가 여럿인 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 최근 숙부를 중심으로 검묘 회의가 있었다고 듣기는 했는데.
“그게 뭐─”
“검묘라고요?”
통신구의 시야 밖에 있던 형이 갑자기 난입했다.
– 오? 형제가 같이 있었군요!오랜만에 뵙습니다!
“예, 저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 하하! 이거 고문 선생께 존대를 들으니 영 어색합니다! 편히 말해주십시오!
그러자 형의 입매가 잠시 꿈틀거렸다.
그 모습에 슬쩍 통신구 시야 밖으로 도망쳤다. 그만큼 형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으니, 지금은 조용히 구경만 하는 게 상책이다.
“저하께 좋은 소식이 생긴다면 그때만큼은 동아리 고문과 학생의 관계로 축하하겠습니다.”
–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그날을 기대하겠습니다.
“헌데 저하. 방금 검묘 회의라고 말씀하셨는데…”
– 맞습니다. 숙부께서 검묘 회의를 소집했다고는 들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합니다! 혹시 궁금하십니까?
“아뇨. 괜찮습니다.”
애써 웃고 있지만 형의 주먹은 어느새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난 아무것도 못 봤다. 사실 난 어제부터 눈이 멀기 시작했다.
***
류티스와 적당히 안부를 주고받은 후, 통신을 끊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직접 대화를 나누지 않기 위해 에리히를 동원했다. 제국 장관과 아르메인 왕자가 접촉했다는 소문을 차단하기 위해 옆에서 구경만 하려고 했다.
헌데 그 다짐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검묘 회의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망할.’
검묘 회의. 글자 그대로 검의 무덤에서 진행하는 회의.
아르메인 왕궁 깊숙한 곳에는 초대 아르메인 국왕과 개국공신들의 검이, 역대 아르메인 국왕들과 아르메인의 명장들이 사용하던 검이 꽂혀있는 공터가 있다.그곳이 통칭 검의 무덤. 기사왕국인 아르메인의 자부심이자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곳.
그리고 그곳에서 진행하는 회의는 아르메인 대원수를 중심으로 군 고위 지휘관 및 주요 기사단의 간부들, 은퇴한 군 원로들이 참석한다. 아르메인의 군사력이 일시적으로 집중되는 것이 검묘 회의다.
‘그거 때문이구나.’
아무래도 정황상 검묘 회의에서 국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모양이다. 사건이 터진 시기를 보면 검묘 회의밖에는 답이 없다.
‘어쩌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르메인에서 검묘 회의의 위상은 콘클라베나 공의회에 준한다. 검묘 회의의 결정은 아르메인 국왕조차 보류할지언정 기각할 수 없으며, 아무리 권세 높은 귀족이라도 검묘 회의 결과를 거스르면 그 즉시 실각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그런 회의를… 고작 검 때문에 열었다고? 아르메인 버전 공의회의 결과가 검을 달라고 제국에 요청하기야?
‘미친 건가.’
아르메인에서 괜히 류티스 같은 광인이 나온 게 아니었다.나올만한 환경이었기에 등장한 거였어.
물론 류티스는 아르메인 내에서도 독보적인 새끼겠지만, 아르메인 무인들이 지닌 광기도 타국과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 같다. 저기는 태생부터 평균치가 높은 국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