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26)
로판 속 공무원 726화(727/945)
아르메인이 쏘아 올린 작은 공 때문에 이상한 별명이 생겨버렸다.
“어서 오게, 중매 장관.”
보드카를 마시고 있던 황제의 말에 침통히 눈을 감았다.
고작 검 하나 때문에 왕자의 결혼 일정이 정해진 기적의 사태. 그 사태의 주인공이자 시발점인 나에게는 중매 장관이라는 기괴한 이름이 붙었다. 감찰성 장관에 이어 중매 장관이라니, 제국 역사상 장관직을 겸직한 사람이 있었던가.
‘망할.’
통탄스럽다. 장관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없어 보이는 것도 힘들 텐데.
“부족한 소신이 어찌 왕족의 결혼을 중매했겠습니까. 때마침 로벤스 왕가의 경사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겠지요.”
“장관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그런 거겠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반박했으나 황제는 픽 웃음을 흘렸다. 네가 아무리 부정해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망할 새끼. 중매 장관이 아니라 반역 장관 같은 건 없나. 명치에 주먹 한 번만 꽂고 싶은데.
“생각해 보면 아인테르와 후작 영애를 중매한 것도 장관이었군. 과거 대륙에 존재했다는 사랑의 여신도 장관보다 존재감을 발휘하지는 못했을 걸세.”
“과찬, 이십니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도발을 들으며 스르륵 자리에 앉았다.
분하게도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인테르와 샤티를 처음 연결한 사람이 나기는 하니까. 졸지에 자국 황족에 이어 타국 왕족의 결혼에도 관여한 미친 능력자가 되고 말았다.
“받게. 시원하게 식혀둔 거니 마실 만할 거야.”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그리고 황제가 건네주는 보드카 병을 받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류티스의 결혼 예정일은 내년 여름이다. 에리히와 아인테르는 올해 결혼했고, 라테르도 올해 중에 결혼할 예정이며, 타니안은… 일단 넘어가자. 그 녀석은 최근에서야 성지 순례를 마치고 귀국한지라 뭐 하고 지내는지 모르겠어.
아무튼 제과 동아리 창립 멤버로서 내 속을 뒤집었던 개노답 오형제가 하나둘 짝을 찾기 시작했다. 이 경이로운 사실을 77년도 시즌의 나에게 알려준다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개소리하지 말라고 욕이나 먹겠지.’
그만큼 몇 년 전의 동아리 부원들은 놀랍고도 빌어먹을 머저리들이었다. 그런 부원들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 성장하게 되다니. 이 고문은 기쁘기 짝이 없어…
이 기쁨을 진즉에 느끼게 해줬으면 좋았겠지만, 그건 내가 생각해도 너무 과한 욕심이다. 그냥 과거의 인연들이 사람이 됐다는 것에 감사하자.
“헌데 폐하.”
“왜 그러나, 장관?”
“보드카는 닷새에 한 병만 드시기로 황후 폐하와 약속하셨다 들었는데, 어제도 드시지 않으셨습니까?”
내 말에 황제의 손이 우뚝 멈췄다.
“…어떻게 알고 있나?”
“소신의 부인 중 황후 폐하의 친우가 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확실한 정보 출처에 황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반응을 보니 에리가 농담을 한 게 아니라 정말이었던 모양이다.
‘작작 마셨어야지.’
속으로 혀를 차며 보드카의 뚜껑을 깠다.
며칠 전, 페렌츠와 함께 황후궁으로 놀러 갔던 에리는 이런저런 황실 얘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중에는 황후가 내린 음주 제한 사건도 있었다. 대체평소에 얼마나 처마셨으면 황후가 제한령까지 내렸을까.
물론 내 혈연 중에는 그깟 보드카 따위 하루에 수 병도 마실 주정뱅이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황제가 보드카를 마시든 말든 큰 관심은 없어서 잊고 있었으나, 보드카를 들이키는 황제를 보니 갑작스레 떠올랐다.
“폐하께옵서 강건한 육체를 지니셨기는 하나, 수시로 독주를 마시면 피로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아마 황후 폐하께서는 그 점을 염려하신 거겠지요.”
적당히 포장했지만 ‘너 황후 말 무시하고 마시다가 훅 가면 뒷감당 가능하냐?’ 라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황제가 아무리 마셔도 훅 갈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현명공이 체내의 알코올을 즉시 배출할 수 있는 것처럼, 황실 마법사들이 노력하면 황제의 몸에 쌓인 알코올을 여차저차 제거할 수 있으니까. 보드카 때문에 황제의 간이 단단해질 염려는 없다.
하지만 수시로 마법을 써서 관리해야 하는 육체와 처음부터 건강한 육체는 차원이 다른 법. 황후로서는 당연히 황제를 염려할 수밖에 없다.
“또한 내년에 태어나실 세 번째 전하를 위해서라도─”
“알았네, 알았어. 장관도 황후와 똑같은 말을 하는군.”
황후의 뱃속에 있는 셋째를 언급하고 나서야 황제는 보드카를 한쪽으로 치웠다.
역시 가장에게는 부인과 아이를 들먹이는 게 최고다. 황제가 자신의 유일한 기호품인 보드카마저 포기할 정도이지 않나.
“감찰성 장관조차 짐을 감시하는 눈일 줄 누가 알았을까. 장관을 적으로 두게 되니 끔찍하기 짝이 없군.”
“적이라니요. 이왕이면 감시가 아니라 충언이라 해주십시오, 폐하.”
“두 번 듣다가는 억장이 무너질 충언이야.”
그렇게 말한 황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책상 서랍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이걸로 참아야겠어.”
그러고는 샴페인을 한 병 꺼냈다.
술 대신 술을 꺼내는 광경이 기묘하기 그지없으나, 황후가 닷새에 한 번만 마시라고 제한한 것은 보드카였다. 샴페인은 제한령에서 벗어난 물건이지.
억지인 것 같지만 원래 계약이라는 것이 그런 법이다.
태양전에서 물러난 후, 바로 저택으로 돌아가는 대신 황후궁에 방문했다.
“폐하께서 절제하고 계시다고요?”
“예, 황후 폐하. 비록 욕망 앞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셨으나, 셋째 전하를 언급하니 바로 마음을 접으셨습니다.”
그리고 황후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바로 전달했다.
황제가 제한령을 무시한 채 보드카를 몇 모금 마시기는 했지만, 그래도 뱃속의 아이를 들먹이자 포기했다는 훈훈한 일화를.
“폐하께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술이 보드카지요. 그런 술을 포기할 정도면 폐하께서 확실하게 마음을 다잡으신 모양입니다.”
내 보고에 황후는 흡족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황제가 제한령을 무시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마이너스 요소다. 아예 마시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닷새에 한 병만 마시라고 한 건데, 그것조차 무시했다면 황후가 노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닷새에 한 번도 참지 못한 인간이 아이를 언급하자마자 포기했다? 이건 명확한 플러스 요소다.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도 플러스로 바꿀만한─ ‘저 알코올 중독자가 아이를 위해 큰 결단을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만한 퍼포먼스다.
“아무래도 폐하께서는 개인의 욕구보다, 아이를 먼저 생각하시는 훌륭한 가장이 되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 자신이 환관이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품위고 나발이고 온갖 달콤한 말들을 황후에게 쏟아부었다.
처음에는 황후에게 ‘황제 그 새끼 몰래 보드카 처마셨어요!’ 라고 고발하려고 했다. 허나 황제와 황후 사이를 이간질하는 건 신하의 도리가 아니지. 제국의 신하이자 리브노만 황실을 수호하는 제국백으로서 황제와 황후의 사랑을 돕는 것이 마땅하다.
“소신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리브노만의 번영이 곧 황제 폐하의 강건함으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어머나.”
내 말에 황후는 놀란 듯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하지만 눈꼬리만큼은 부드럽게 휘어졌다. 내가 한 말을 바로 이해한 것처럼.
‘어디 릴레이 좀 당해봐라.’
셋째가 황후 품 속에 있기에 보드카를 멀리하는 황제다. 그렇다면 넷째, 다섯째가 생길수록 자제 기간도 연장될 터.
“과거 대륙에 존재했다는 사랑의 여신도 장관보다 존재감을 발휘하지는 못했을 걸세.”
황제가 했던 말이 떠올라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게 사랑의 신이 선보이는… 아니, 사랑의 신보다 존재감이 강렬한 놈이 선보이는 분탕질이다. 먼저 선공을 건 놈은 너니까 원망은 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그러게 누가 함부로 입을 놀리래. 뒤질라고.
***
이런 생각을 하는 게 교만하다는 건 알지만, 아르메인 전체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아니, 기분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최근 몇 주 동안 아국의 중심은 부왕 전하가 아닌 나였다. 왕세자도 아닌 일개 3왕자, 류티스 로벤스였다.
‘세상 참.’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기에 실소가 터졌다.
일개 왕자가 왕국의 중심에 서다니. 고작 3왕자의 결혼이 모든 왕족과 귀족들, 기사들의 관심을 받다니.
“이거 나 때문에 페로사 경도 고생이 많군. 미안하네, 경.”
덕분에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페로사 경에게 사과를 건넸다.
나 혼자 중심에 서는 거라면 웃어넘길 수 있으나, 일개 영애이자 기사인 페로사 경까지 과도한 관심을 받고 있다. 결코 달가운 상황은 아니지.
“괘, 괜찮습니다, 저하. 기사로서 만인의 기대를 받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허나 페로사 경은 이 역경 속에서도 당당함을 보였다. 정확히는 당당하기 위한 노력을 보였다고 하는 게 옳겠지만.
“경.”
“예, 저하. 말씀하시지요.”
그런 페로사 경의 모습에 슬쩍 입을 열었고,
“페로사.”
“예, 예?”
경이라는 딱딱한 호칭을 집어던졌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유대 관계를 쌓은 여인은 둘뿐이다. 그중 한 명인 루이제와는 국경과 신분을 초월한 친구가 되었으니, 페로사와도 그런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페로사와는 친구보다 더욱 깊고 두터운 관계가 되었다. 친구라고 하기에는 보다 가까운, 보다 친밀한, 보다 친숙한 관계가 되었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바로 페로사가 떠오를 정도로.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지만, 후회할 일은 없을 거라 약속하겠네.”
그래서 페로사에게 조금 늦은 다짐을 했다.
우리의 시작은 압박에 짓눌리고 시선이 쫓긴 시작이다. 이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허나 시작이 이상하다고 과정과 결말마저 이상하지는 않게 하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그것이 내 동반자가 될 페로사를 향한 최소한의 예의고 도리니까.
“저, 저도!”
내 맹세에 페로사도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저도 저하께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 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그건 이상한 말이로군. 이미 부끄럽지 않은 사람인데 얼마나 더 노력하려고?”
페로사의 입이 다시 닫혔다.
페로사가 이런 대화에 익숙해지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고문 선생의 명의로 대검이 하나 도착했다.
[ 예를 알기에 검을 메고, 의를 품었기에 검을 뽑으며, 충을 새기기 위해 검을 휘두르리라. 칼 크라시우스 오브 타일글레헨. ]그것도 평범한 덕담이 아닌 진지한 문구가 적힌 대검이.
‘이거 참.’
고문 선생이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선물을 보내줬다.
3년 동안 알고 지낸 정이 이렇게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