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27)
로판 속 공무원 727화(728/945)
류티스와 페로사의 약혼을 축하하며 보낸 대검.
그냥 평범하게 ‘건강하고 화목하세요.’ 라는 덕담이나 적을까 싶었으나, 덕담 서명은 이미 앨리스에게 준 상황이다. 이왕 선물로 줄 거라면 상대가 만족할 수 있게, 상대의 고마움이 극에 이를 만한 색다른 선물을 주는 것이 좋지 않겠나. 기껏 선물을 줬는데 뒷얘기가 나오면 그만큼 비참하고 슬픈 일은 없지.
그래서 적당히 그럴싸한 문구를 적었다. 예가 뭐시기, 의가 어쩌고, 충이 저쩌고. 솔직히 진지하게 썼다기보다는 이거 먹고 떨어지라는 마음을 담아 쓴 문구였다.
그리고 예, 의, 충은 인간에게 필요한 요소잖아. 부디 류티스가 내 선물을 받고 훌륭한 인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담았다.
“장관이 보낸 검 말인데. 바로 국보로 지정해서 검묘에 보관 중이라고 하더군.”
“예?”
헌데 내 생각보다 문구의 효과가 좋았다.
“짧은 문장으로 기사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정확히 짚었다고 극찬을 했네. 아르메인 국왕이 직접 감사를 표할 정도이니, 다른 귀족들의 반응도 비슷하겠지.”
상상도 못한 일 처리라 머리가 멍해졌다.
배송받자마자 국보로 지정하는 신속함. 자국 영웅들의 검을 보관한 장소에 타국 귀족의 검을 배치하는 패기. 대륙 2위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이 선보일만한 추진력이 아니다.
‘뭐지?’
혼란스럽다. 별생각 없이 쓴 문구였는데 그게 먹혔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지은 문구가 과대평가를 받자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내 영혼을 담아 지은 이름은 짓는 족족 별로라는 평을 받았으니까.
리제의 첫 애칭인 루는 ‘요리하는 애라서 루에요?’ 라는 말을 들었고, 티티의 이름이 될 뻔한 베아티투도는 아내들조차 못 들은 척 넘어갔었다. 그만큼 끔찍한 승률을 자랑하는 게 내 작명 실력이다.
‘왜 이럴 때는 이기냐고.’
정작 이겨야 할 때 이기지 못하고 내던진 승부에서 이기다니. 원통하기 짝이 없다.
“짐이 생각해도 장관의 문구는 기사들의 마음을 울리기 충분했다네. 역시 장관이 대륙 제일 검이라 그런지, 같은 무인들의 마음을 잘 아는 것 같아.”
“황송한 말씀입니다.”
“조만간 기회가 되면 제국의 기사들을 위해서 좋은 말 좀 해주게. 타국에만 저런 문구를 선물해 주면 아국 기사들이 서운해하겠어.”
황제의 확인 사살에 스르륵 고개를 숙였다.
지금 같은 행운이 다음에도 터질 거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왜 하필.’
다시 생각해도 원통하다. 마음을 놓아야 비로소 좋은 결과가 나오다니. 내가 무슨 수양 중인 고승이나 도사냐고.
이 또한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으나, 딱히 기쁘지는 않다.
“흐음.”
“…왜 그러십니까?”
“미취학일 때도 그럭저럭 언변이 좋은 편이었는데, 명예 교사가 되고 나니 더 좋아진 것 같아서 말이야. 이게 직함이 주는 품위라는 건가?”
황제의 말에 탁자 아래에 있던 주먹을 파르르 떨었다.
저 새끼가 나하고 동급의 귀족이었다면 하루에 수십 번은 두들겨 팼다.
오랜만에 아텔리우스를 찾아갔다.
최근 황태녀의 친동생이 태어나면서 황태녀의 관심이 황자에게 집중되었고, 때마침 아텔리우스가 눈 좀 붙이겠다고 수면 상태에 돌입했기에 몇 개월 정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
만약 둘 중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황태녀는 드래곤 아저씨가 보고 싶다며 떼를 쓰고, 아텔리우스는 적적해진 동굴 속에서 쓸쓸히 지냈겠지. 마침 타이밍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다행이다.
“아쟈씨! 오랜만! 잘 지냇서!?”
“그래. 너도 잘 지낸 것 같구나.”
그렇게 황태녀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아텔리우스 입장에서는 자고 일어나니 재회가 성사되었다.
기상하자마자 활기 넘치는 아이와 놀아주는 건 가혹한 일이나, 아텔리우스는 드래곤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존재. 아이의 활동력 정도는 기꺼이 받아줄 수 있는 능력자다.
“오늘은 웬일로 혼자 왔군.”
“뻬디는 집애서 동생이랑 놀아주구 잇서!”
“그렇더냐?”
“웅!”
활기찬 대답에 아텔리우스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더니, 황태녀 쪽으로 손을 뻗었다.
“타거라. 오랜만에 왔으니 오래 태워주마.”
“와!”
아텔리우스의 권유에 황태녀는 오도도 달려가 손 위로 올라탔다.
평소에는 우리 아이들까지 타서 북적거리던 손이다. 물론 아이 몇 명 올라탄다고 비좁을 만큼 아텔리우스의 손이 아담한 건 아니지만, 여럿이 공유하던 공간을 홀로 독점하게 됐다.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터.
“넓어! 죠아!”
“그래도 혼자면 쓸쓸하지 않더냐. 다음에는 동생들과 같이 오거라.”
“웅! 까롤루쑤도 데려올께!”
“카롤루스?”
황태녀의 말에 아텔리우스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아틸리우스는 아직 황자가 태어났다는 걸 모르는구나. 소식을 듣기 전에 잠에 들었고, 깨어나자마자 황태녀와 놀아주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칼. 혹 대제의 후예가 새롭게 태어났더냐?”
“예, 어르신. 어르신께서 잠에 드신 직후에 태어난 황자 전하십니다.”
“경사스러운 일이구나. 직접 축하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정도야.”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한때 영면을 꿈꾸던 아텔리우스가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기뻐하고 있다. 누가 봐도 영면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삶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지 않나.
역시 아텔리우스와 아이들을 붙여둔 건 좋은 선택이었다. 야생 토끼들에게도 정을 붙인 아텔리우스니 아이들에게는 오죽하겠냐마는.
“좋은 소식을 들었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그렇게 말한 아텔리우스는 비어있던 손으로 비늘을 하나 뜯었다.
“그걸로 황자가 입을 옷이라도 만들 거라.”
“아, 예. 감사합니다.”
대륙의 모든 국가들이 탐내는 드래곤 비늘을 꼬까옷 선물하듯 넘기는 경이로운 광경.
하지만 지금까지 아텔리우스에게 받은 비늘과 손톱의 양은 결코 적지 않다. 이제는 비늘을 즉석에서 뜯어서 줘도 그러려니 싶을 정도로.
‘이런 거에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비정상을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거늘. 앞으로는 아텔리우스가 선물을 준다고 해도 세 번은 거절하자.
“까롤루쑤 선물이야? 아쟈씨 고마워!”
황태녀의 해맑은 감사 인사에 아텔리우스의 입꼬리는 더욱 올라갔다.
큰일 났다. 앞으로 세 번을 거절하면 네 번을 권유할 기세다.
***
두 손님이 돌아간 후, 동굴은 다시 적막만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적막 속에서 근처에 있던 토끼들에게 시선을 돌리니, 토끼들도 귀를 쫑긋거리며 내 눈을 바라봤다.
내 덩치를 생각하면 무서울 법도 한데 시선을 피하지 않는 녀석들. 기특하여 머리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으나, 저 작은 것들을 잘못 건드리면 죽을 수도 있기에 참았다.
‘인간 모습으로 변해야 하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금방 털어냈다.
인간의 모습으로 지내는 건 힘든 일이다. 날개와 꼬리가 사라지고, 시야가 좁아지며, 덩치가 급격히 줄어드는 등─ 몸 전체가 완전히 뒤틀린다. 정말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쓰고 싶지도 않고, 오래 유지하고 싶지도 않은 방법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전대 로드께서도 대단하시지. 어떻게 인간의 모습을 그리도 오래 유지하셨을까.
‘사랑의 힘인가?’
전대 로드의 반려인 대제. 대제와 교감을 나누기 위하여 인간의 모습을 택한 전대 로드.
확실히 나도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라면 불편함을 감수했을 것 같다. 영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사랑은 중요한 감정이기에.
‘…이제 와서 쓰라고 해봤자 못 쓸 것 같지만.’
사실 하도 안 쓰다 보니 인간으로 변하는 법도 잊고 말았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다시 떠올리겠지만, 굳이 그런 수고를 들일 생각은 없다.
애초에 덩치가 커서 생기는 문제보다 이득이 더 많지 않나. 동굴에 놀러 오는 작은 아이들도 내 거대한 육체를 좋아한다. 내가 손에 태운 채 높이 들어 올리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거면 충분하다.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옳─
“음?”
위화감이 느껴져 고개를 남동쪽으로 돌렸다.
찰나, 아주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다른 용무 중이었다면 인지하지 못했을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허나 그 찰나 동안 불쾌하고도 끈적한 기운을 느꼈다. 절대 착각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한 기운이었지.
‘묘하게 익숙한 기운이로군.’
이상하다. 이딴 기운을 한 번이라도 겪었다면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바로 생각나지 않다니, 나도 늙기는 늙은 건가?
그래도 일단은 기억을 되짚었다. 남동쪽, 불쾌함, 추악함, 끈적함… 최대한 단서들을 조합한다면 무엇이라도 떠오를 터.
‘남동쪽이라.’
특히 방향을 중점으로 떠올렸다. 기운이 느껴진 곳은 제국과 신성교국의 사이 정도 되는…
‘아.’
신성교국이라는 단서를 추가하니 바로 떠올랐다.
이 이질적이고 기분 나쁜 기운. 한 번이라도 겪으면 절대 잊을 수 없으나, 더 이상 느낄 일이 없다고 판단해 기억에서 지워버렸던 기운.
‘사왕이로군.’
약 800년 전, 대륙을 뒤흔들었던 존재.
죽었지만 죽지 못한, 죽음을 거부한 역천의 존재들을 이끌고 산 자들을 공격했던 기괴한 괴물.
하늘까지 닿을 악업을 쌓다가 당대 성자를 중심으로 한 토벌대에게 패하여 무너진 패배자.
‘확실하다.’
분명 그놈의 기운이다. 남동쪽이면 마침 그놈이 쓰러진 곳이기도 하니, 확실히 사왕일 수밖에 없다.
…
‘왜?’
이윽고 근원적인 의문이 몰려왔다. 사왕 토벌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당대 성자가 철저히 짓밟고 소멸시켰다고 들었다. 그런 존재가 800년이 지난 이 시점에 다시 깨어났다고?
실로 기이한 일이다. 여러 신들이 부활했다고 사왕마저 부활하다니. 근래 대륙은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알려줘야 하나?’
칼이 사라졌던 방향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다. 드래곤들은 더 이상 대륙의 일에, 인간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사왕이 다시금 발호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이 해결해야 할 일. 드래곤이 직접 나서는 건 전대 로드와 대제의 약속을 깨는 꼴이다.
게다가 이미 패배했던 사왕이다. 이제 와서 그놈이 인간들을 이길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