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28)
로판 속 공무원 728화(729/945)
머리가 아프다.
고작 머리 하나로 사람의 무게를 지탱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사람이 두 발로 서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타니안.”
“예에… 스승님.”
바로 앞에서 들리는 스승님의 목소리에 간신히 입을 열었다.
수석 추기경이자 비서성 성장이기에 1분 1초의 시간도 허투루 쓸 수 없는 스승님이다. 덕분에 스승님과는 함께 식사를 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나, 그런 스승님이 직접 시간을 내시어 나에게 찾아오셨다.
“왜 그랬느냐.”
“죄송, 합니다.”
나의 돌발 행동을. 나의 짙은 업보를 꾸짖으시기 위하여.
“이해할 수 없구나.”
작게 한숨을 내쉰 스승님은 내 허리 위에 물병 하나를 더 올리셨다.
‘이걸로 3개.’
이를 악물며 온몸에 힘을 줬다.
머리와 두 발만이 바닥에 닿고 있는 상황에서, 뒷짐을 진 덕분에 무게 중심을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유리로 된 병이 올라왔다. 내가 조금만 휘청거려도 스승님이 올린 병은 산산조각 날 터.
버텨야 한다. 이걸 떨어뜨리면 지금보다 더한 체벌이 반겨줄 테니까.
“네가 어릴 적에 이 스승의 속을 제법 썩이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어린아이의 투정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남부럽지 않은 사제로 자랐으니, 내가 제자 하나는 잘 뒀다고 생각했지.”
“과, 과찬이십니다, 스승님.”
“그래. 네가 대가리 굵고 터뜨린 짓을 보니 과찬도 이런 과찬이 없다. 차라리 어릴 적에 사고를 치지 그랬느냐? 그럼 그때부터 너를 확실하게 교육했을 텐데.”
스승님의 말씀에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번에 친 사고는 스승님에게 무슨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사고였다. 오히려 이런 사소한 체벌로 훈계 중인 것이 기적일 정도로.
“차기 성자니 모든 게 가볍게 보였느냐? 정식 성자가 되면 교황 성하와 대등한 대우를 받게 될 테니,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느냐?”
“아,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만일 네 가슴이 교만으로 차버렸다면 성하께 너의 파문을 건의했을 거다.”
딱딱하고 차가운 말이었으나 감히 스승님을 원망하지는 못했다.
이리도 매섭게 지적하는 것은 그만큼 스승님이 실망하셨다는 것이기에. 나에게 기대를 한 만큼 속이 상하셨고, 아직 나에게 기대를 하는 중이시기에.
진실로 스승님이 나를 내치고자 하셨다면 이러지도 않았을 거다. 스승과 제자가 아닌 비서성 성장과 차기 성자로서 의례적인 대화를 나누고, 바로 성하께 내 파문을 주장하셨을 테니.
“주께서는 사제들의 사랑을 막지 않으셨다.”
내가 침묵을 지키자 스승님은 다소 누그러든 목소리로 말을 이으셨다.
“사제들이 신앙심을 지킨다면, 본분을 잊지 않는다면 가정을 꾸리는 것도 용인하셨지. 역대 교황 성하와 성자 중에서도 가정을 지닌 자들은 적지 않았다.”
그렇게 말씀하신 스승님은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터뜨리셨다.
“그러니 네가 누군가를 마음에 뒀다고 하면. 결혼을 결정했다면 모두가 축하했을 터인데…”
‘이런.’
기껏 누그러든 목소리가 다시 격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망했다. 곧 귀를 막아야 할 노성이 터져 나올 텐데, 지금 손을 내리면 스승님과 결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차기 성자라는 놈이! 혼전 임신이라니! 그것도 추기경을 상대로!”
순간 귀에서 피가 흐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스승님. 분명 내가 어릴 적과 비교하면 나이를 많이 드셨는데, 아직은 많이 정정하시구나.
“이 망할 것아! 뭐? 교황 성하의 부담을 덜기 위해 순례를 떠나!? 공의회 결과에 쏠린 관심을 나눠 갖기 위해 대륙을 돌겠다고!? 어차피 공의회에 몰렸던 관심은 감찰성 장관 덕분에 분산됐다! 교단의 복자가 가장 오래된 근심과 죄악을 처리한 덕에 금방 주목을 받았어! 일이 그렇게 됐으면 성지만 구경하다가 조용히 돌아올 것이지, 그 사이에 그딴 사고를 쳐!”
“죄송합니다…”
정정한 스승님의 대노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당분간 청력이 많이 안 좋아지겠어.
우렁찬 훈계는 2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마무리되었다.
“일어나라.”
“예.”
그리고 2시간 동안 바닥과 인사하던 머리는 마침내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머리의 연약함과 이족보행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게 조심하자.
“…이미 터진 일을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 성하께서도 혼전 임신이라는 걸 제외하면 순수하게 축하할 일이라 하셨으니, 스승으로서 꾸짖는 건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마.”
“실망시켜드려 죄송합니다.”
“그걸 아는 놈이.”
작게 혀를 찬 스승님의 모습에 스르륵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다행이다. 방금 전까지 폭풍처럼 분노를 토하신 덕에 지금은 마음이 가라앉으신 것 같다.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이더냐?”
“예?”
“예? 는 무슨. 그럼 차기 성자와 추기경의 결합을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었느냐? 다시 말하지만 너희는 속도가 빨라서 문제지, 사랑을 나눈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말에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
역시 스승님처럼 나를 생각해 주는 분은 없다. 친부모님을 이교도 손에 잃은 나에게, 새로운 아버지가 되어주신 분이 스승님이니까.
“괜찮다면 내년 중순 정도로─”
“이미 올해 말로 날짜를 잡아뒀으니 알아둬라.”
“예.”
다만 조금 독단적이고 괴팍한 아버지라는 게 문제일 뿐.
‘올해 말이라.’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연말에 결혼식을 진행하게 된다면 한 해의 마무리로 그보다 기쁠 수는 없겠지.
게다가 올해는 에리히 형제님과 아인테르 형제님이 결혼식이 있었고, 라테르 형제님의 결혼식도 올해 중에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류티스 형제님의 결혼은 내년이지만, 약혼은 올해였으니 억지를 부리면 올해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 마지막 부원인 세라 자매님도 여름에 결혼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얼마나 경사스러운 일인가.
‘같은 사람을 마음에 품었다고 결혼도 비슷한 시기에 하는 건가.’
실로 기이하고도 미묘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마. 물병은 너 가지고.”
“아, 예.”
잠시 실없는 생각을 하던 중, 스승님이 돌아갈 준비를 하시기에 황급히 정신을 다잡았다.
교황 성하 다음 가는 업무량을 자랑하는 스승님에게 2시간의 공백은 치명적인 공백이다. 이 못난 제자 때문에 귀한 시간을 낭비하셨으니 배웅이라도 확실하게 해야 한다.
라고 생각했다.
“허어.”
“음?”
갑자기 나와 스승님의 통신구가 동시에 진동하기 전까지는.
이 난데없는 신호에 스승님의 미간이 슬며시 찌푸려졌다. 스승님의 통신구만 울렸다면 비서성에서 애타게 찾는 연락이라고 생각했겠으나, 차기 성자인 나에게도 온 연락이라면 교단 내 고위직 전원에게 꽂힌 연락일 터.
불안하다. 이 시기에는 딱히 교단과 교국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일정도 없다. 이렇게 고위직 전원에게 알려야 할 소식이 있을 리 없다.
그렇기에 찝찝한 심정으로 통신구를 확인했고,
[ 교국 북서쪽 방향에서 사기를 관측. 신앙교리성과 교단실록성에서는 800년 전 토벌된 사왕의 기운으로 추정 중. ]그대로 굳고 말았다.
‘사왕?’
사왕(死王). 약 800년 전에 토벌된 대륙의 재앙.
당시 사왕을 토벌하기 위해 교단의 성자가 직접 나설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으며, 사왕 토벌 이후로 교단의 성자들은 인간의 전쟁에 관여하지 않았다. 사왕 정도되는 위기가 아니라면 성자가 나설 필요가 없기에.
헌데 그런 존재의 기운이 다시 관측되었다. 800년이나 지난 이 시대에?
‘착각… 은 아니다.’
애석하게도 착각일 가능성은 없다. 이단심문성의 후신인 신앙교리성과 교단의 모든 역사를 기록한 교단실록성의 증언이다. 이미 철저하게 자료를 조사한 이후일 것이고, 확신이 섰기에 이리 연락을 보낸 거겠지.
“타니안.”
“예, 스승님.”
“…다시 종을 울려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스승님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순간 귀를 의심하고 말았다.
“폐하. 송구하오나 소신이 막내의 울음소리를 듣고 온 참이라 아직 귀가 좋지 않사옵니다.”
그렇기에 황제에게 다시 말할 것을 요구했다.
정확히는 내가 들은 게 잘못됐다고 말하기를 요구했다.
“그런가? 지금만큼은 짐도 귀가 좋지 않았으면 싶군.”
허나 황제는 내 기대를 배신했다.
“신성교국에서 사왕이 다시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해왔네. 800년 전에 쓰러진 사왕인지, 아니면 새로운 사왕인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황제의 말에 머리가 생각하기를 멈췄다.
사왕이라니. 이 시대에 갑자기 사왕이라니. 그거 역사책을 보더라도 제법 앞 페이지를 봐야 나오는 이름이잖아. 크펠로펜 시기는커녕 아펠스 초기인가 중엽 정도에 튀어나온 괴물이라고.
‘이게 뭔.’
어이가 없어서 실소조차 나오지 않았다.
사실 신기한 걸로 따지면 아펠스 제국 시기에 활동한 사왕보다, 트리카 제국 시기에 만들어진 신(이었던 것)들이 다시 깨어난 것이 더 신기한 일이다. 사왕은 고작 800년 전이지만 그것들은 2천 년 전 존재니까.
하지만 적어도 그것들은 잠에 들었다가 다시 깬 거다. 죽었다가 부활한 게 아니라.
‘대륙이 난리가 났다고 들었는데.’
어느새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사왕은 대륙 주류 종교인 여명 교단마저 총력을 기울여 토벌한 괴물. 무려 성자가 선두에 서서 사왕을 두들겨 팼고, 사왕의 본거지에는 대규모 정화 성법을 사용하여 싹을 뽑았다고 들었다.다시는 사왕이 부활하지 못하게. 다시는 이 같은 재앙이 발생하지 않게.
그 정도로 사왕은 여명 교단을 비롯한 대륙 전체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여명 교단의 전통 장례법인 화장이 대륙 전체에 급속도로 퍼진 것도 사왕 때문이었지. 그 새끼가 시체란 시체는 전부 일으켰으니까.
…잠깐만.
“저, 폐하.”
“말하게.”
“소신이 알기로 사왕이 쓰러진 곳은 구 아펠스 지역이라고 들었는데, 사왕의 기운이 다시 관측된 곳은 어디입니까?”
그 질문에 황제는 말없이 내 눈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국 남동부.”
“시발.”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욕이라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황제도 놀란 듯 나를 바라봤으나, 딱히 노여워하지는 않았다.
“장관이 짐의 심정을 대신 말해주는군.”
그저 헛웃음을 흘리며 넘어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