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3)
여기까지 와서 혼자 돌아다닐 줄은 몰랐다. 내가 자초한 거기는 하지만.
“같이 가면 안될까? 예쁘다던데…”
“미안해. 마차에 오래 있었더니 아직 몸이 안 좋아서.”
“으응, 그러면 괜찮아지면 같이 놀기다?”
어제 점심, 어째서인지 몸이 오래 안 좋을 것 같은 마음을 뒤로 하며 루이제를 돌려보냈었다.
루이제의 제안을 거절할 때도 마음이 좋지 못했다. 시무룩한 모습을 보니 당장이라도 같이 가겠다고 말할까 싶으면서도, 루이제와 다니면 반드시 보게 될 감찰부장을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갔다.
감찰부장이 옆에 있으면 에메랄드 해변이 아니라 핏빛 해변으로 보일 것 같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루이제. 나도 너하고 같이 있고 싶지만 여기서는 힘들 것 같아.
그래서 오늘, 루이제가 떠났다는 말을 듣고 나 혼자 다른 곳으로 향했다. 여기까지 와서 가만히 있기는 아쉬우니까.
‘예쁘기는 예쁘다.’
거대한 에메랄드를 보는 것 같은 기분에 작게 탄성을 흘렸다. 다행히 바다는 넓어서 에메랄드 해변이라 분류되는 곳도 넓다. 루이제가 간 곳만 아니면 감찰부장과 만날 일은 없겠지. 작정하고 사람이 잘 오지 않는 곳으로 향했으니.
‘같이 보면 좋았을 텐데.’
탄성이 절로 나오는 경치지만 혼자 보는 아쉬움도 밀려왔다. 이게 다 감찰부장 때문이다. 분명 루이제하고 오순도순 즐겁게, 루이제를 좋아하는 애들의 투닥거림을 재밌게 볼 생각이었는데. 단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도망치는 신세가 됐다.
허탈한 심정에 바다에 살짝 발을 담고 그 자리에 앉았다. 기껏 수영복도 새로 사서 입었는데 혼자 돌아다니면 무슨 의미야.
‘잘못한 건 그 사람인데.’
애꿎은 모래만 손으로 파며 입술을 삐죽였다. 눈 앞에 있을 때는 공포에 잡아 먹혔지만 보이지 않으니 억울함과 원망이 생겨났다. 분명 피해를 본 건 우리 가문인데, 억울한 것도 우리 가문인데 왜 내가 이렇게 피해 다녀야 하지?
그래도 다행인 것도 있다. 마차에는 어쩔 수 없이 같이 있었지만 리조트에 도착한 후로는 본 적이 없다. 굳이 나를 찾을 생각은 없는 것 같고.
“먼저 가있어. 두고 온 게 있어서.”
이상한 배려도 하는 것 같고.
무릎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푹 박았다. 머리가 복잡하다. 분명 그건 배려는 맞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배려한 게 맞는데.
‘그 감찰부장이 배려?’
그 흉악한 감찰부의 수장이? 나를?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유력한 이유가 가장 설득력이 없는 기괴한 상황이다. 차라리 루이제가 욕을 하고 주먹을 휘두르는 게 더 현실성 있는 모습일 걸.
모르겠어, 차라리 내 눈 앞에 나타나지 말지. 차라리 헷갈리게 하지나 말지.
‘고작 그런 일로.’
이렇게 흔들리지나 말지. 나하고 떨어진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어쩌면 루이제와 친한 사이기에, 에리히의 형이기에 좋은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일지도 모른다. 볼 때마다 두려움에 떨 바에는 차라리 좋은 사람이었으면 하는 현실도피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말, 정말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면? 내가 감찰부장하고 웃으며 지낼 수 있으면? 우리 가족은? 억울하게 끌려간 아버지, 혼절까지 하셨던 어머니, 모든 부담을 짊어지고 고생한 오빠,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울던 동생들은?
– 더 이상 신경 쓰지 마렴. 그저 운이 없던 일이란다. 사고였을 뿐이니까.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셨다. 그러니 마음에 담지 말고 털어내라고. 그것이 감찰부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원한이나 미련을 가져도 어쩔 도리가 없으니까.
“미워…”
하지만 듣는 사람도 없으니 원한을 담아 작게 중얼거렸다. 배려든 뭐든, 난 그 사람의 어떤 모습을 봐도 이럴 수밖에 없는데. 제발 멀리 안 보이는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숙였던 고개를 들고 멍하니 발끝만 바라봤다. 분명 즐기려고 온 수학여행인데 고민거리만 늘어나는 것 같은─
‘어?’
갑자기 거센 물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뭐지?
슬쩍 고개를 올리자 그대로 몸이 굳고 말았다.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거대한 괴물이 눈 앞에 나타났으니까. 어지간한 건물보다 거대한 괴물, 10개의 다리를 휘두르고 나를 내려다보는 오징어.
─큐르르르르르!
괴상한 울음소리를 듣자 도망친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았다. 애초에 몸도 움직이지 않고, 기껏해야 벌벌 떠는 것이 전부였다.
‘왜, 왜?’
왜 이런 휴양지에 저런 괴물이 나온 거지? 벌인가? 설마 벌 받은 건가? 루이제에게 거짓말을 해서, 가문의 원수나 다름없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헛된 망상을 해서?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아무리 감찰부장이 멀리 안 보이는 곳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다시는 감찰부장을 보지 못하는 먼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말은 아니었는데!
─큐르으으으으윽!
“꺄아아아아악!”
다리를 크게 휘두르는 괴물의 모습에 머리를 감싸 안았다. 싫어, 이렇게 죽기는 싫어! 이러면 루이제와 마지막으로 나눈 말이 거짓말이잖아, 마지막으로 생각한 사람이 그 남자잖아!
그리고 저런 오징어한테 죽기는 싫어! 오징어한테 죽고 하는 장례식이라니, 억울해서도 눈 못 감아!
죽음과 가까워지는 극도의 공포, ‘사인: 오징어’ 라는 아주 작은 수치심이 섞이며 몸이 더 이상 통제에 따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건 아까부터 그랬지만, 이젠 머리에서 명령도 내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싫어, 아버지, 어머니, 오ㅃ…
– 콰앙!
갑작스럽게 귀가 멀 것 같은 굉음이 터져나오고 머리 위로 묵직한 무언가가 우수수 떨어졌다.
‘뭐, 뭐야…?’
설마 뭐가 또 나왔나?
“이리나, 어디 다친 곳은 없어?”
조심스레 고개를 들자 내 눈 앞에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보였고
“아, 아아…”
그 뒤로는 머리가 사라진 크라켄이 바다에 처박혀 있었다.
살았, 다? 살았다고 해야 하나? 크라켄을 피하니 더 위험한 사람이 나타났다. 심지어 양손에는 창을 한 자루씩 든 상태로.
“이리나?”
“흐윽─”
온 몸에 힘이 풀려버렸다.
***
단순한 동작이었다. 오른손으로 창대를 잡고 허리를 비틀었다. 오른팔은 뒤로 빠지고 오른 다리도 팔과 함께 뒤로 빼서 자세를 잡았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동작이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동작. 함장은 감찰부장의 모습을 딱 그렇게 평가했다.
항해 중 시간이 날 때마다 작살을 던지는 선원들의 모습도 딱 저랬지. 다른 것이 있다면 눈 앞의 감찰부장은 그저 그런 물고기가 아닌 크라켄에게 던지기 위한 준비 동작이라는 것.
우선 크라켄의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겠지. 운이 좋다면 자극 받은 놈이 함선으로 다가올 것이고 그 사이에 마법사들이 일제 공격을 하면 된다. 만일 놈이 다시 도망치더라도, 적어도 민간인이 크라켄에게 습격 받는 것은 피할 수 있다.
“조금 흔들릴 겁니다.”
“예?”
함장이 시체처럼 누워있는 마법사단장을 발로 툭툭 치며 깨우는 사이, 감찰부장이 난데없는 말을 꺼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 콰앙!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몸이 먼저 겪었으니까.
“뭐, 뭡니까? 그 새끼가 먼저 왔습니까?”
함장의 발길질에 꿈틀거리던 마법사단장은 굉음과 함께 함선이 기울어지자 기겁하며 몸을 일으켰다.
“나타나긴 했습니다.”
“그게 도망만 다니더니 미쳤나. 어디 있습니까?”
함장이 말없이 보던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영창을 준비하던 마법사단장도 지팡이를 내리며 멍하니 한 곳을 응시했다.
“…크라켄은 어디 있습니까?”
“아까까지는 크라켄이었습니다.”
“허, 참.”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린 마법사단장은 시선을 크라켄(이었던 것)에서 다른 곳으로 돌렸다.
“바다 아래는 저렇게 생겼군요.”
“저도 이렇게 보는 건 처음입니다. 잠수 때는 종종 봤습니다만.”
마법사단장의 말에 함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게 던진 창, 하지만 전혀 가볍지 못한 결과.
투창의 충격으로 함선이 흔들렸다. 마법적 효과를 씌운 함선이기에 일제 포격을 가해야 겨우 흔들릴까 말까다. 그런 함선이 겨우 투창으로 기울어졌다.
함선부터 해변까지 이어지는 바다가 잠시 갈라졌다. 크라켄? 지금 바다가 갈라졌는데 그딴 오징어 따위가 대수냐. 이미 크라켄은 감찰부장이 창을 던지자마자 머리가 터져 죽은지 오래다.
“다행히 빗나가지는 않았군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감찰부장의 말에 무심코 크라켄이 나타난 해변가를 둘러봤다. 분명 머리 터지는 소리가 폭발음과 맞먹는 소리였다. 만일 조금이라도 빗나가 모래사장 뒤 절벽에 꽂혔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마법사단장. 해변으로 갑시다.”
“아, 예.”
어느새 난간에 둔 창 두 자루를 마저 챙긴 감찰부장이 마법사단장에게 말했다. 힐끗 감찰부장이 든 창을 쳐다보는 게 아직도 어이가 없는 거겠지.
“세 자루로 되겠습니까? 감찰부장이 강한 건 알지만, 육지와 바다에서의 싸움은 다른 법인데.”
감찰부장이 요청한 창을 보고 출항 직전까지 우려를 표하던 마법사단장이었다. 그런데 세 자루는 커녕 한 자루로 끝났다. 지금까지 자기가 바다 위를 떠돌던 시간은 무엇이었나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
그동안 크라켄을 잡겠다고 마법사단장이 한 고생을 아는 함장은 조금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
창은 오랜만에 써서 넉넉하게 세 자루를 준비해달라고 했지만 다행히 한 번에 끝냈다. 그래, 고작 크라켄 따위도 바로 못 잡으면 그게 말이 되겠냐. 곧 그 녀석들 기일이라 참배도 가야 하는데, 비웃음 당할 소식을 만들면 곤란하다.
지옥 어딘가에서 불타고 있을 카간 그 새끼도 비웃을지도 모르지. 생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크라켄 확인 사살 겸 난데없이 봉변 당할 뻔한 피해자를 확인하기 위해 마법사단장과 해변으로 향하니 의외의 인물이 보였다.
‘이리나?’
크라켄 조각에 둘러싸여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는 이리나. 루이제하고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왜 혼자지? 내가 자리를 비우는 건 어제 루이제한테 말했는데, 소식이 좀 늦었나?
“이리나, 어디 다친 곳은 없어?”
“아, 아아…”
높은 확률로 나를 피하려고 혼자 돌아다니다가 이런 봉변을 당했을 거다. 미안한 마음에 걱정스레 물었지만 이리나는 제대로 된 대답도 못하고 있다. 얘가 많이 놀라기는 했나.
“이리나?”
“흐윽─”
몸을 떨던 이리나가 돌연 눈물을 흘리더니 다리를 비비 꼬았다. 확실히 방금은 죽을 뻔한 위기니 울 수도… 어?
크라켄 시체를 구경하고 있던 마법사단장의 눈을 급하게 가렸다.
“부장님? 왜 그러십니까?”
“먼저 가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이 아이와 돌아가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내 요청에 의아해하던 마법사단장이지만 그래도 순순히 요청대로 돌아가줬다. 갑자기 눈을 가린 이유는 궁금해했지만 그건 절대 말할 수 없는 비밀이고.
“흐끅, 흐으윽…”
“그, 이리나?”
“흐아아아아앙!”
이리나는 어깨만 들썩이며 어떻게든 울음소리를 참으려 했지만, 결국 공포와 수치가 뒤섞인 눈물과 통곡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이리나의 눈물은 눈에서만 흐르지 않았다. 그것을 이리나도 알고 있는지 더욱 서럽게 울고 있다.
미안하다. 아무튼 내가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