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30)
로판 속 공무원 730화(731/945)
휴가 중인 가장이 사왕 토벌대에 합류하게 됐다는 경이로운 소식.
양심이 파편으로나마 남아있는 사람 새끼라면 당당히 말할 수 없는 소식이나, 다른 것도 아닌 종군을 비밀로 할 수는 없다. 사실대로 말했다가 혼나는 것과 숨기다가 들켜서 원망 받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니까.
“사왕, 토벌이요?”
“응…”
허나 어디까지나 숨기다가 들키는 것보다 낫다는 거지,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편한 길은 아니다.
“거, 거기에 왜… 칼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던 마르는 꾹 입을 다물었다.
마르도 머리로는 알고 있을 거다. 사왕이라는 거악이 다시 깨어났다면 모든 전력을 동원하여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살아있는 복자이자 대륙 제일 검인 내가 사왕 토벌전에 빠질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과거 사왕이 대륙을 뒤엎었던 걸 생각하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조기에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황제 폐하와 교단에서는 칼이 참전한다고 알고 있겠죠?”
그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교단이 먼저 요청한 사안이고, 황제 앞에서 수락했다. 유감스럽게도 내 참전은 확정된 상황이다. 이제 와서 무르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그럼 제가 고집을 부리는 건, 칼의 명예를 더럽히고 폐하를 우롱하는 거겠네요. 제 욕심 때문에 대륙을 위험에 빠트리는 거기도 하고요.”
씁쓸함과 슬픔이 가득한 목소리라 절로 눈물이 나올 뻔했다. 사왕 그 새끼가 다른 건 몰라도 우리 가정의 평화와 행복은 확실하게 죽였어.
“칼이 개인적 욕심 때문에 자청한 것도, 제국이 국익을 위해 나선 것도 아니에요. 대륙을 위해 교단이 다섯 번의 종소리를 울릴 정도니까… 지금 나서는 게 맞으니까… 제가 칼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어요.”
“미안해.”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칼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마르의 모습에 조용히 마르를 안아주었다.
그러자 가슴팍이 축축하게 젖어가기 시작했다. 내 몸이 마르의 얼굴을 가리고 나서야 마르는 감정을 토해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훌쩍이는 소리조차 내지 않는 게 참 마르답기는 했지만.
“칼. 네가 간다면 나도─”
“안 돼.”
트릭시의 말에 즉각적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종군한다고 트릭시까지 합류하는 건 곤란하다. 부인들이 나를 걱정하는 것처럼, 나도 남편으로서 부인들의 위험을 막고 싶다.
“사왕이 언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제도를 지킬 전력은 있어야 돼.”
허나 사왕의 본거지로 향할 사람이 ‘위험할 테니까 안 돼.’ 라고 하는 건 누가 들어도 설득력이 없는 발언. 그렇기에 사적 감정이 아닌 전략적인 이유를 명분으로 들어 트릭시의 동행을 거절했다.
게다가 트릭시가 제도 방위를 위해 남아야 하는 건 우발적으로 지어낸 핑계가 아닌, 제국이 수십 년 동안 유지한 수도권 방위 전략이기도 하다. 카간이 북방에서 온갖 지랄을 떨 때도 트릭시는 제도를 벗어나지 않았으니까. 사왕이라고 예외겠나.
“그러니 믿고 기다려 줘. 이래 봬도 내가 대륙 제일 검인데, 800년 전에 한 번 죽었던 패배자한테 당하겠어? 들어보니까 여명 교단에서도 내로라하는 성기사들과 사제들을 대거 보냈다더라.”
“네가 질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게 말한 트릭시는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를 그냥 보내기에는 걱정이 되고, 억지로 따라붙기에는 제도 방위가 위태로워진다. 방금 내가 말한 것처럼 사왕이 제도 방위가 허술해진 틈을 노리면 그만한 참사는 없다.
막 부활한 사왕에게 그런 우회 기동 능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나, 막말로 800년 전에 죽은 놈이 다시 나타날 거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지금은 모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움직이는 게 맞다.
“가기 전에 꼭 강화 마법은 받고 가렴.”
“당연히 그래야지.”
트릭시의 항복 선언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첫 번째 부인인 마르, 최고 연장자인 트릭시의 동의를 받았다. 다른 부인들도 이 여론에 따라 종군을 이해해 줄 터.
뭔가 부인들을 상대로 여론전을 펼친 것 같아 민망하지만, 수적으로 1 대 6이라 어쩔 수 없는 계략이다. 나 홀로 여섯을 하나하나 상대하는 건 버거운 일이지.
“무사히 돌아오실 수… 있죠?”
“그럼. 이제 우리 리제랑 여행 갈 차례인데, 조금이라도 다치면 나도 억울해.”
실제로 리제는 물론, 다른 부인들도 나의 안녕과 승리를 기원할 뿐 종군을 막지는 않았다.막을 수 없는 일을 끝까지 붙잡아서 나와 울면서 헤어지기보다, 내 안녕을 기원하며 웃으며 헤어지기를 택한 것이다.
나에게 과분할 정도로 선량하고 현명한 부인들이라 늘 고마울 따름이다.
“주인.”
“음?”
그렇게 사왕을 썰어버릴 검을 고르기 위하여 저택 내 창고로 향하던 중, 복도를 어기적어기적 돌아다니던 장생이와 마주쳤다.
“무슨 일 있나? 분위기가 이상하군.”
그러고는 나를 올려다보며 슬쩍 입을 열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평소에는 모든 게 불만이라는 듯 뚱한 녀석이었는데, 타일글레헨 백작령으로 휴가를 다녀온 후로는 상당히 온화해졌다. 역시 사람이든 동물이든 피곤하면 성격이 더러워지는 법이야. 쉬고 오니 이렇게 온순해졌잖아.
“이상한 놈이 튀어나와서 토벌하러 가야 하거든.”
“이상한 놈?”
“사왕이라고 있어. 네가 봉인된 후에 나타났으니 넌 모르겠네.”
그 말에 장생이의 표정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과거 모든 게 불만이었던 시절이 생각날 정도의 표정이었다. 네가 갑자기 그러면 온화해졌다고 속으로 칭찬한 내가 뭐가 돼.
“감히 죽음을 자처하는 놈이 있었다고?”
‘아.’
하지만 장생이의 분노 포인트를 확인하자마자 납득할 수 있었다.
이 녀석. 지금은 장생이라고 불리지만 한때는 죽음이었지. 장생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서 잊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침묵 중이었다지만 나를 두고 죽음을 자처하는 놈이 있다니! 괘씸하고 우둔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길길이 날뛰는 장생이었으나 당연히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조그만 요크셔테리어 크기인 녀석이 날뛰어봤자 귀엽게 보일 뿐이지.
이렇게 보니 우리 애들이 장생이한테 환장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제발 놓아달라고 울부짖는 것조차 귀엽게 보이지 않았을까?
“그럼 너도 같이 갈래?”
그 말에 파르르 떨던 장생이의 몸이 우뚝 멈췄다.
“…나는 이제 죽음이 아니라 장생일지니. 새로운 시대의 죽음과 굳이 만날 필요는 없을 터.”
다소 추한 말 돌리기지만 이해해 주기로 했다.
신성을 잃은 전직 악신에게 대륙의 거악과 싸우라고 하는 건 너무한 짓이니까.
여명 교단의 성기사단과 사제단은 제국 남동부인 이벨라텐 후작령으로 집결하였다.
말 그대로 대륙 각지에 퍼진 전력이었으나, 텔레포트 마법을 연달아 사용하며 정신 나간 속도로 모이더라. 예루살렘을 눈앞에 둔 십자군이 이런 모습이었구나─ 싶었다.
“상당한 전력이구려. 어지간한 소국은 단숨에 멸망시키겠어.”
그리고 영지의 주인인 이벨라텐 후작은 씁쓸한 표정으로 교단의 전력을 바라봤다.
당연한 반응이다. 자고 일어나니 사왕이라는 거대한 방사능 덩어리가 자기 영지에 나타난 것도 미치겠는데, 이번에는 일국을 능히 멸망시킬 전력이 집결했다. 아무리 사왕을 토벌하기 위한 전력이라도 영주 입장에서 찝찝할 수밖에 없다.
“대륙 각지에서 모인지라 규모가 만만치 않은데, 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라 그런지 규율도 철저한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애써 이벨라텐 후작을 달랬다. 저것들의 규모와 파괴력이 장난 아닌 건 사실이나, 그래도 교단 소속이니 영지 내에서 소란을 피우지는 않을 거라고.
“확실히 그렇구려. 장관의 말이 맞소.”
다행히 내 위로에 후작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물론 아주 조금에 불과했지만. 사왕 토벌이 끝나고 교단의 전력들이 제자리로 복귀해야 표정이 밝아지겠지.
“후작 각하. 장관 각하.”
그렇게 후작과 함께 토벌대를 보던 중, 뒤에서 묘하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오랜만입니다.”
뒤에서 다가온 인물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빠르게 악수를 건넸다.
아우스엔 대교구에 주둔 중인 성기사단의 일원이자, 한때 제국의 근위 1군단장이었던 인물.
황혼 교단의 추기경 암살 사건으로 인생이 꼬여 성기사의 길을 택했지만, 황혼 교단의 교주를 생포하는 데 성공하여 계급장의 원수를 갚는 것에 성공한 승리자.
‘단장이네?’
자세히 보니 전 군단장의 견장이 이전보다 휘황찬란했다. 교주를 잡은 공을 인정받아 승진한 건가?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무튼 내 손을 맞잡은 성기사단장은 이윽고 후작을 향해 목례를 했다.
“후작 각하의 협조 덕에 사왕 토벌대 전원, 무사히 이벨라텐으로 집결하였습니다. 교황 성하를 대신하여 감사를 표합니다.”
“대륙의 우환을 제거하는데 어찌 협조를 아끼겠소. 본작도 교단의 숭고한 뜻에 동참할 수 있어 영광이니,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마음 편히 말해주시오.”
“예, 각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아까까지 아련한 눈빛으로 토벌대를 본 게 거짓말이라는 듯, 후작은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으로 성기사단장을 대하였다. 단장이 다시 고개를 숙이며 물러나는 그 순간까지.
조금 감탄했다. 안면 연기 정도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야 후작으로 군림할 수 있는 거구나. 역시 귀족들의 실질적 고점답다.
“…장관.”
“예, 각하.”
“그래도 제국인인 장관이 와줘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오.”
성기사단장의 뒷모습을 보던 후작은 다시 아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순간 ‘저 단장도 제국 군단장까지 했던 사람인데요?’ 라는 말이 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후작에게 있어 성기사단장의 과거 국적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테니.
“최대한 빠르게 사왕을 토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듣기만 해도 기쁜 말이로군. 허나 너무 무리하지는 마시오. 장관이 이곳에서 다치면 슬퍼할 자들이 많으니까.”
후작의 말에 머쓱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들에 이어 후작의 걱정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토벌대 수뇌부가 모인 자리에서 다시 익숙한 얼굴을 보게 됐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형제님.”
무려 타니안도 토벌대에 합류해 있었다.
하긴. 교단 최고 전력 중 하나인 차기 성자를 놀리는 건 아까운 일이지. 총력전을 선언했다면 응당 최고 전력을 동원하는 것이 옳다.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다행히 주의 은총 아래 평온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사왕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렇게 덧붙인 타니안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고요하게 가라앉아있었다.
아무래도 황혼 교단 토벌 때 보았던 미친 성법을 다시 볼 것 같다.
“참, 형제님.”
“말씀하시지요.”
“갑자기 말씀드려 부끄럽지만… 제가 연말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입니다.”
?
“사왕 토벌전이 끝나면 바로 결혼식 준비를─”
나도 모르게 타니안의 입을 손으로 막아버렸다.
이 새끼가 어디서 감히 플래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