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31)
로판 속 공무원 731화(732/945)
타니안의 입을 막았던 손을 조심스레 거두었다.
누가 들어도 명확한 플래그라 본능적으로 막았지만, 신성교국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차기 성자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댄 상황이다. 아무리 내가 제국의 주요 전력이어도, 타니안과 아카데미에서 쌓은 연이 있어도 무례라고 할 수 있는 일.
“사특한 거악이 있는 곳에서 경사로운 일을 언급하는 건 아쉬운 일이지요. 놈을 토벌한 뒤에 다시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하, 형제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제가 마음이 급하여 실수를 할 뻔했군요.”
허나 그럭저럭 괜찮은 명분과 당사자의 용서만 있다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무례기도 하다.
사실 이 세계에도 징크스 같은 건 있는 편이라, 내 돌발 행동에 은근 안심한 듯한 사람들도 몇 있었다. 차마 차기 성자의 입을 막을 수 없었는데 내가 대신 막아줬으니까.
“두 분이 헤어지신 지도 수 년이 흘렀으나, 아직 과거의 우정을 간직하신 것 같군요. 실로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어색해질 수 있었던 위기가 넘어가자 토벌대 총사령관인 성 토그라 기사단장, 라디비크 추기경이 웃음을 터뜨리며 다가왔다.
“타니안 형제님과 함께 했던 3년은 제 인생에서 결코 잊지 못할 시간이었습니다. 형제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아마 평생 이어질 우정으로 남겠지요.”
라디비크 추기경에게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라디비크 추기경은 여명 교단이 총력전을 선언하며 끌어모은 토벌대의 총사령관이다. 평소에는 여명 교단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성 토그라 대성당을 지키는 무력이며, 교단의 무인 중에서도 최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 오직 일신의 무력만으로 추기경의 자리까지 오른 태양의 검.
그런 인물이니 이번 사왕 토벌전에 한해서는 내 상급자처럼 대해야 한다. 솔직히 사왕에 대한 정보는 나보다 교단이─ 총사령관인 라디비크 추기경이 더 많겠지. 괜히 자존심 싸움을 해서 지휘 체계에 혼란이 오면 그만한 참사도 없다.
“호오, 그렇습니까? 그럼 두 분의 우정은 영원하겠습니다.”
“우정이라니요. 형제님께서는 제 고문이셨는데, 저희의 관계가 어찌 우정이겠습니까. 저의 일방적인 존경일 뿐입니다.”
추기경의 말에 타니안도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듣기에는 좋은 말이었지만 속으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존경한다는 새끼가 아카데미에서 그랬던 거냐고.
“영광입니다, 형제님.”
허나 고문과 학생의 관계는 끝난 지 오래.최대한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타니안의 말을 받아주었다.
얘가 차기 성자만 아니었어도 에리히처럼 수시로 구박했을 텐데.
총사령관인 라디비크 추기경, 명목상 부사령관인 나를 중심으로 작전 회의가 시작되었다.
“애석하게도 800년 전에 있었던 사왕 토벌전 기록은 그리 풍부하지 않습니다. 당시 교단은 사왕의 발호로 인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으며, 상당한 인력을 사왕 토벌전과 전후 복구 작업에 쏟아붓고 있었지요.”
우선 라디비크 추기경은 정보의 부족을 시인하였고,
“허나 반드시 기록해야 할 정보들은 교단의 도서관에 보관 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사왕을 상대할 방법은 알고 있다 밝혔다.
“우선 사왕은 이끄는 군세가 흉악하고 거대할 뿐, 일신의 무력 자체는 특출나지 않습니다. 사왕을 직접 상대한 성자 베를로의 기록에 따르면 왕실 기사단장 수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왕실 기사단장에게 ‘불과’라는 단어를 쓰는 게 맞나 싶지만, 사왕은 대륙 전체를 뒤흔들었던 괴물이다. 그런 괴물의 무력이 역사에 남을 수준이 아니라 국가 하나를 대표할 수준이라면 생각보다 약한 것이 맞다.
…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하다. 어떻게 성자가 왕실 기사단장이라는 구체적인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던 거지? 혹시 그 베를로라는 성자는 각국 왕실 기사단장과도 드잡이질을 한 적이 있었나?
순간 성자가 괴팍한 것은 교단의 전통인 건가 의문이 들었으나 애써 억눌렀다. 지금 중요한 건 800년 전 성자의 괴팍함이 아니니까.
“문제는 사왕의 회복력입니다. 죽음을 거스르고 순리를 모욕하는 괴물답게, 사왕은 목이 베이고 가슴을 꿰뚫려도 움직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신성력을 두른 공격이 아니면 타격조차 주지 못했지요.”
“허어.”
“고약하기 짝이 없는 놈입니다. 머리와 심장을 잃고도 움직이다니요.”
라디비크 추기경의 말에 수뇌부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역시 죽음의 왕이라는 이름답게 흉악하기 짝이 없는 능력이다. 왕실 기사단장 수준의 무력이면 객관적으로 봐도 약한 게 아닌데, 사실상 성기사나 사제가 아니면 대미지도 주지 못하는 거잖아. 사왕이 처음 발호했을 때 대륙 국가들이 환장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목이 베이고 가슴이 꿰뚫려도 움직였다라.’
게다가 기껏 신성력으로 타격을 준다고 놈이 죽는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상처를 주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800년 전에 한 번 쓰러졌던 만큼 더 이상 회복하지 못하게 쥐어패면 되는 것 같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을 터.
“그렇기에 사왕 토벌에 참여할 병력은 전원 일정 수준 이상의 성기사와 전투 사제로 구성하였습니다.”
타당한 말이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신성력으로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적이라면 아무리 강력한 기사라도 일반 병사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 사제들이 기사의 무기에 성속성 인챈트를 걸어준다면 전투에 투입될 수 있겠으나, 인챈트를 걸 힘으로 사왕을 한 대라도 더 패는 게 이득일 수 있다.
“예외는 부사령관이신 타일글레헨 백작 각하십니다. 2개의 전투 사제단이 백작께 강화 성법을 걸 예정이니, 백작께서도 사왕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 겁니다.”
“교단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허나 인챈트가 걸린 무인이 어지간한 성기사, 사제들보다 활약할 수 있다면 예외다. 성속성 하늘 베기를 사왕한테 꽂아 박으면 볼만하겠어.
‘최대 도핑은 오랜만이네.’
4년 전, 도르곤과 영혼의 맞다이를 치른 이후로 풀 도핑은 처음이다. 이미 트릭시에게 강화 마법도 받았고, 혹시 효과가 있을지 몰라 영원한 푸른 하늘과 콘스탄티나에게도 힘을 달라 부탁하지 않았나.
이걸로 대륙 최강의 마법사와 세 신의 힘을 받은 상황. 이러고도 사왕을 잡지 못하면 애초에 잡지 못할 새끼인 거다.
물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보험까지 챙겼으니 토벌이 실패할 것 같지는 않다.
– Kieeeeeeeeeeee─!!
때마침 막사 밖에서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
“이게 무슨…?”
“제가 부른 지원군입니다. 유사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겁니다.”
영원한 푸른 하늘의 신수가 된 지즈가 토벌대에 합류했다.
사왕 이 개새끼. 내가 레비아탄이랑 베히모스까지 부를까 하다가 참았다.
걔네는 네가 이 토벌대를 돌파한 이후에 2차 방어선에서 보게 될 거야.
이벨라텐 후작령 남부 변두리에 위치한 초원. 다행히 사왕은 도시 근처가 아닌 외딴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사왕의 터전이 되어버린 초원에 도착하자 묘하게 익숙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던전인가.’
대충 보면 눈치채기 어려우나, 자세히 보면 미세하게 공간이 뒤틀린 것이 보이는 현상.
던전이다. 사왕은 존재 자체로도 하나의 던전을 만들 만큼 막대한 사기를 가지고 있었다.
‘가장 약할 때라며.’
속으로 혀를 차고 말았다. 분명 리시우코 추기경은 사왕이 약할 때라고 했는데, 약한 상태로도 던전을 만들 정도라고? 도대체 전성기는 어느 정도인 건데.
“기록에 따르면 사왕의 본거지는 미로와 다름없다고 합니다. 근처 환경과 유사한 기존 던전과 달리, 사왕이 만든 던전은 아예 다른 공간인 수준이니 유의하십시오.”
“예, 명심하겠습니다.”
라디비크 추기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던전들은 생성 지역의 환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숲에서 생긴 던전이면 던전 내부도 숲이고, 설산에서 생긴 던전이면 던전 내부도 설산이다.
헌데 생성 지역의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진입하면 미로가 펼쳐지는 던전이라. 그 정도면 공간 왜곡이 아니라 공간 창조 수준이다.
‘확실히 능력은 좋네.’
원리만 알면 마법계에 비약적인 발전이 있겠어. 그 능력을 분탕질에 쓰고 있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
“과거, 정의 앞에 무릎 꿇었던 악이 다시 더러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던전 입구를 바라보는 사이, 추기경이 뒤를 돌아보며 토벌대에게 외쳤다.
“긴 말은 하지 않겠다! 이미 800년 전에 위대한 선현들에게 패한 패배자고, 패배를 인정하지 못해 다시금 일어난 애새끼에 불과하다! 그런 버러지가 두려운 자는 당장 돌아가라! 지금 돌아간다면 탈영의 죄를 묻지 않겠다!”
추기경의 발언치고는 거칠고 투박했으나, 전투를 코앞에 둔 상황이라면 오히려 괜찮은 말투.
“악적에게 죽음을! 대륙에 평화를!”
“위대한 주 앞에 적의 피와 시체를 바치리!”
“사왕에게 죽음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영원한 죽음을!”
실제로 추기경의 선포를 들은 토벌대는 더욱 광분하여 검과 성서를 치켜올렸다.
‘성서는 대체 왜.’
기분이 오묘하다. 혹시 책으로 언데드들을 팰 생각인 건가? 확실히 시체가 상대라면 날붙이보다 둔기가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좋다! 그대들의 의기와 용기는! 헌신과 신앙은 영원히 교단 역사에 남을 것이다! 우리의 태양이, 저 하늘이, 이 초목이 기억할 것이다!”
아무튼 토벌대의 사기─ 아니, 광기를 끌어올린 추기경은 허리춤에 메었던 검을 뽑아들었다.
“그러니 성전에 참가한 전사들이여! 놈의 죽음을 확인하기 전까지 결코 멈추지 말라! 주께서 그것을 원하신다!”
“””주께서 그것을 원하신다!”””
그 말을 끝으로 토벌대는 위풍당당히 던전으로 진입했다.
“뭐야 이거.”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분명 내 옆에는 추기경과 타니안이, 그 뒤로는 수많은 토벌대가 있었다. 헌데 던전에 진입하고 나니 그 많던 사람들은 전부 사라진 채 나 홀로 서있었다.
뭐지. 혹시 나 혼자 던전에 입장하지 못하고 튕긴 건가? 5년 전에 던전에서 죽었던 웅이의 원혼이 나를 거부하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니다. 일단 던전 안에 들어온 건 확실하다.
‘장미밭.’
그게 아니라면 푸른 잔디만 가득하던 초원에 장미가 가득할 리 없다. 사왕이 만든 던전이 왜 이따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던전 내부는 맞아.
‘사왕의 미로라길래 마왕성 같은 걸 생각했는데.’
떨떠름한 심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적진 한가운데에 홀로 떨어진 것은 난감한 일이지만, 가만히 있어봤자 변하는 건 없다. 돌아다니면서 이 주변을 확인해야─
“어머나.”
갑작스레 들린 목소리에 곧바로 검을 뽑았다.
“손님이 벌써 여기까지 오시다니. 이런 적은 처음이라 놀랍네요.”
그리고 목소리가 들린 방향에서는 유독 많은 장미들이, 그 장미 가운데 무릎을 꿇고 앉아 종이를 접고 있는 여인이 보였다.
허리까지 흘러내리는 하늘색의 머리카락과 그와 대조되는 붉은 눈동자. 새하얀 피부에 가냘파 보이는 체구.
“어서 오세요, 바깥에서 온 신사분. 바깥은 여전히 아름다운가요?”
사왕의 던전에서 보기에는 너무 이질적인 여인이었다.
“…너는 누구지?”
“아, 제 소개부터 한다는 걸 잊었군요. 죄송해요. 제가 나이를 좀 먹어서, 이런 실수를 저지르고는 한답니다.”
배시시 미소를 지은 여인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치마의 끝단을 부드럽게 잡아올리며 허리를 숙였다.
마치 같은 귀족을 상대하는 귀족가의 영애처럼.
“저는 리시안느. 과거 여명 교단의 추기경이었던 미천한 종.”
다시 허리를 올린 여인─ 리시안느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신사분께는 사왕이라는 이름이 익숙하겠네요.”
그 말에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여명 교단 이 새끼들. 사왕에 대한 정보가 괜히 부족한 게 아니었구나.
‘당연히 기록하지 못했겠지.’
자기 교단 추기경이 대륙을 뒤엎은 사왕이라는 걸 어떻게 기록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