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734)
로판 속 공무원 734화(735/945)
사왕이 만든 던전은 특별한 점이 없었다.
주변 환경과 괴리감이 있고, 미로처럼 거대한 던전을 특별할 게 없다고 하는 건 기묘한 일이나─ 그 두 가지를 제외하면 거악의 본거지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 던전을 살펴도 이미 토벌한 시체를 제외하면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사왕이 남긴 유산이나 사술의 흔적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사왕과 그 군세가 있었던 주둔지. 딱 그 정도 느낌이었다.
‘차라리 잘 된 건가.’
아무런 특이점도, 아무런 흔적도 없기에 교단이 조치를 취할 필요도 없다. 사왕은 토벌하고 그 군세는 전멸하였으니, 성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렇기에 던전 밖으로 나오자마자 통신구를 꺼냈다. 던전 안에서는 통신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에 승전보를 올리지 못했으니까. 교단의 형제자매들이 우리의 소식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까.
‘성하께서 기뻐하시겠어.’
수백 년 만에 다섯 번의 종소리를 울린 것을 가슴 아파하신 성하시다. 헌데 타일글레헨 백작의 맹활약 덕분에 큰 피해 없이 사왕을 토벌하였으니, 성하께서도 분명 기뻐하실 터.
아무렴. 백작은 제국의 귀족임과 동시에 교단의 복자이기도 하지 않나.
“추기경 예하.”
“각하?”
그런 생각을 하며 통신구를 작동하기 직전, 타일글레헨 백작이 다가왔다.
“이제 보고하시려는 겁니까?”
“예. 던전에 사왕의 잔재가 존재할 수도 있어 잠시 보고를 보류했지만, 아무 문제가 없는 걸 확인했으니 성하께 승전보를 올려야지요.”
“그렇군요.”
작게 고개를 끄덕인 백작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죄송하지만 보고를 잠시 미뤄주실 수 있겠습니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백작께서 저에게… 말씀이십니까?”
“타니안 형제님까지 셋이서 나눠야 할 얘기입니다.”
그 말에 통신구를 도로 집어넣었다.
성하의 기쁨을 미루는 건 가슴 아픈 일이나, 사왕을 토벌한 백작의 부탁이다. 잠깐 시간을 내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게다가 토벌대 총사령관인 나와 부사령관인 백작, 차기 성자인 타니안 형제님이 모이는 회동이다. 결코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겠지.
‘황제의 전언인가?’
확실히 가능성 높은 일이다. 황제의 최측근인 백작이 긴밀하게 대화를 청할 일이면 황제의 의지밖에 없을 테니.
라고, 10분 정도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게 진짜 사왕입니다.”
나와 백작, 타니안 형제님만 모인 자리에서 백작이 무언가를 꺼내기 전까지는.
“예?”
“예?”
품 속에 작은 인형을 꺼낸 백작과 그 인형이 진짜 사왕이라는 충격적 발언.
그 발언에 나도 타니안 형제님도 멍하니 백작의 손에 들린 인형과 백작의 얼굴을 번갈아봤다.
‘농담인가?’
혹시 백작 나름의 농담인가 싶어 타니안 형제님의 얼굴을 바라봤다. 백작이 이런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성격이라면 3년 동안 같이 지낸 형제님도 잘 알고 있겠지.
‘아니군.’
허나 유감스럽게도 형제님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아마 내 표정도 다를 바가 없을 거다.
“그, 백작 각하. 이 인형이─”
“불쾌하군요. 에넨의 꼭두각시 주제에 저를 인형 취급하는 겁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연 인형. 그리고 인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인형의 몸을 으스러뜨린 백작.
이윽고 바닥에 떨어지는 인형의 머리를 보며 겨우 열었던 입을 도로 다물었다.
방금, 인형이 말한 건가?
“저기. 갑자기 이러시면 저라도 조금은 놀라요.”
더욱 놀라운 것은 머리만 남은 인형이 멀쩡히 말을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으스러진 목 아래가 서서히 복구되고 있었고.
“…보시는 것처럼 이렇습니다.”
백작의 씁쓸한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인형─ 아니, 사왕의 머리를 짓밟았다.
통탄스럽게도 박살 난 머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회복되었다.
사왕 토벌은 실패했다. 게다가 사왕을 토벌했다고 선언한 백작은 잠깐이나마 사왕을 은닉하고 있었다.
덕분에 셋이 모인 회동은 백작을 향한 청문회 아닌 청문회가 되었다.
“각하. 교단은 다섯 번의 종소리를 울리며 사왕 토벌을 다짐했습니다. 이를 방해하는 건 교단의 대의를 거스르는 행위이나, 백작께서는 에넨의 축복을 받은 복자시지 않습니까.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러니 토벌대 총사령관인 나와 차기 성자인 타니안 형제님이 납득할 수 있게 상황을 설명하라는 압박.이 노골적인 압박에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리춤에 메고 있던 검을 풀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무장부터 해제하는 모습에 마음속 경계심이 조금은 옅어졌다. 적어도 백작이 교단과 적대하려는 건 아니다.
“지금부터 드릴 말씀은 두 분께 큰 충격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설명하지 않으면 두 분을 납득시킬 수 없을 것 같으니, 실례를 무릅쓰고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협조적인 백작의 태도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충격적이어도 사왕을 은닉한 사실보다 충격적이겠나.
“사왕의 이름은 리시안느. 과거 여명 교단의 추기경이었고, 에넨이 아닌 다른 신을 택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준비를 한 것과 달리, 백작의 말을 듣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교단의 권위와 명예가 곤두박질칠 뻔했다.
***
타니안과 추기경의 표정은 말 그대로 혼이 나간 듯한 표정이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이 둘에게 사왕의 정체는 물론, 사왕의 죽음이 자발적 빡종이었다는 것까지 전부 말해줬으니까.
“사왕의 던전에서 토벌을 강행했다면 토벌대의 전멸로 이어졌을 겁니다.”
덤덤한 확인 사살에 추기경은 눈까지 질끈 감았다.
리시안느는 박수 한 번으로 무에서 유를 만든 괴물이다. 높은 확률로 리시안느가 만든 던전 내부기에 가능한 위업이겠으나, 우리는 그 내부에서 토벌전을 진행할 뻔했다.
성자도 죽이지 못한, 내 하늘 베기를 맞고도 회복한 괴물을 본거지에서 상대한다? 다 같이 죽을 일 있나. 차라리 리시안느가 원하는 대로 리시안느와 죽음을 만나게 하는 것이 토벌대의 생존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었다.
“사왕을 토벌했다고 말씀드린 건 죄송합니다. 하지만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듣는 곳에서 사왕이 다른 곳으로 숨었거나 도주했다고 말하기는 난감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토벌대가 대륙 곳곳을 뒤지며 사왕을 찾으려고 했겠죠. 정작 사왕은 형제님과 있음에도 말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타니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토벌이 불가능한 적. 똥개도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앞마당에서 사왕과 싸워야 하는 열악함. 그렇다고 사왕이 다른 곳에 있다고 하기에는 토벌대에게 기약 없는 대륙 순례를 시켜야 하는 상황.
그래서 고민 끝에 가짜 사왕(이었던 것)을 만들어 토벌 완료를 선언했다. 이게 허점이 많고 일이 꼬이면 대차게 꼬일 방법이라는 것도 알지만, 적어도 그 자리에서 사왕 레이드에 돌입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전투 중에 사왕이 정체를 밝히면 그만한 혼란도 없었을 겁니다.”
이번에는 타니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지 않는 적을 상대로 싸우는 것도 미치겠는데, 그 적이 ‘나 사실 느그 교단 추기경이었음 ㅎ’ 라는 멘탈 공격까지 감행한다? 개판도 그런 개판이 없다.
“헌데 형제님. 형제님의 뜻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죽일 수도 없는 사왕을 형제님이 가지고 다니는 건 위험하지 않습니까?”
“하. 이분은 저를 죽음께 인도해 주실 분입니다. 그런 분을 감히 해할 것 같나요? 제가 이교라면 죽이고 보는 에넨의 위선자들처럼 보입니까?”
타니안의 말에 바닥에 있던 리시안느가 당당히 말했다.
“…죽음이라면.”
죽음이라는 말에 타니안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 향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다는 의미로 침통히 눈을 감자, 타니안은 헛웃음을 흘렸다.타니안도 죽음이라 불리던 악신이 어떤 꼴로 지내는지 알고 있으니까.
“죽음의 기운을 받고 이렇게 된 사왕이니, 죽음만이 사왕을 죽일 수 있겠지.”
“유일한 희망이 죽음이라. 기묘한 일이군요.”
“당사자 앞에서 죽느니 뭐니 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요?”
나도 타니안도 추기경도 리시안느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이 망할 사왕과 장생이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인지.
토벌대에게 잠시 대기 명령을 내린 후, 나와 타니안, 추기경은 지즈를 타고 북방으로 날아갔다.
아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북방보다 북쪽인 혹한의 땅으로 향했다. 이곳이라면 리시안느가 날뛰어도 인명 피해가 없을 테니.
“에넨은 가장 오래된 근심과 죄악들을 혹한의 땅에 가두었다고 했었죠. 아무래도 이곳이 그 혹한의 땅인가 보네요.”
그 와중에 리시안느는 히죽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게 맞나.’
그 광경을 보며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 멈추지 않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 법이거늘. 하필 그 테러리스트가 죽지도 않는 미친 존재라 협상을 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리시안느가 나를 죽음의 사도라 여기고 있다는 점. 덕분에 나를 상급자처럼 여기며 조용히 복종하는 중이기는 한데, 이 복종도 내가 장생이를 만나게 해줄 거라는 믿음 때문에 유지되는 복종이다. 내가 만남을 끝끝내 거부하거나, 장생이를 만난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장생이가 죽음으로 각성하지는 않겠지.’
최악의 상황은 장생이가 악신 시절로 회귀하는 거지만, 장생이는 신성을 담을 그릇조차 없는 상황이다. 차라리 리시안느가 강해지면 강해졌지, 장생이가 각성할 일은 없다.
그렇기에 초조한 마음으로 검자루를 만지작거렸고,
“각하를 뵙습니다.”
내 연락을 받은 가문의 마법사가 텔레포트를 쓰며 나타났다.
“이 빌어먹을 곳에 다시 오게 될 줄이야.”
저택에서 쉬고 있던 장생이와 함께.
“…음?”
“어라?”
그리고 장생이와 리시안느는 거짓말처럼 서로에게 관심을 보였다.
딱히 소개를 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상대가 품은 기운을 본능적으로 인식한 것처럼.
“너, 그 기운은?”
“어, 어라? 어라라?”
눈에 이채를 띠며 마법사의 품에서 벗어난 장생이. 반면 혼란스러운 기색을 보이며 몸을 떨기 시작한 리시안느.
“저, 저분이 죽음…? 아니, 그럴 리가… 분명 죽음은 하늘을 가리고 땅을 뒤엎는 심연의 괴물이라고… 그치만 이 기운은 분명…”
“저게 죽음 맞다.”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한 리시안느의 모습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
그러자 초진동 상태에 돌입했던 리시안느의 몸은 우뚝 멈췄다.
“주, 죽음이시여!”
이윽고 빼애액 울음을 터뜨린 리시안느는 장생이를 향해 달려가더니, 그 앞에 엎드리며 대성통곡을 했다.
“어찌,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요! 아무리 봉인을 겪었다지만 모든 생명에게 공평한 죽음을 안긴 당신이, 모든 생명의 종착점이었던 당신이 이렇게 되다니요!”
“…….”
졸지에 ‘이렇게’ 되어버린 장생이는 착잡한지 입을 열지 못했다.
“죽음께서 이런 고초를 겪고 계시니, 당신의 뜻을 따르는 자로서 절대 좌시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한 리시안느는 자신의 가슴에 양손을 얹었고, 흑색의 구체를 끄집어냈다.
‘저거다.’
몸속에서 흑색 구체가 튀어나온 기괴한 광경이었으나,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게 리시안느가 품고 있던 죽음의 기운이다. 리시안느를 미친 괴물로 만들고, 도저히 죽일 수 없는 존재로 만든 원흉이야.
“죽음이시여! 당신의 것을 다시 당신에게! 종의 것을 위대한 주에게로!”
“오…”
리시안느의 외침에 장생이의 입이 흑색 구체로 향했다.
잠깐이지만 나는 봤다. 장생이의 눈동자에 미약한 탐욕이 스쳐 지나간 것을.
***
나와 비교해도 작은 인간이… 아니, 인간이 맞나?아무튼 작은 존재가 내 파편을 품고 있는 걸 파악하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비록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손톱보다도 못한 미약한 기운이나, 사용하기에 따라 충분히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기운이다. 신성을 담는 그릇이 사라졌으니 신으로 복귀하는 건 무리이나, 저 기운이 있다면 지금보다 더욱 많은 걸 할 수 있다.
“죽음이시여! 당신의 것을 다시 당신에게! 종의 것을 위대한 주에게로!”
그래서 이 기특한 존재가 내 파편을 바쳤을 때, 기꺼운 마음으로 파편을 먹으려 했다.
주인과 눈이 마주치기 전까지는.
‘네가 그거 소화시키는 게 빠를까, 내가 검 뽑는 게 더 빠를까.’
주인의 눈에 담긴 명확한 경고를 읽기 전까지는.
‘망할.’
결국 파편을 입에 문 채 침통히 주인에게 걸어갔다.
이걸 먹었다가는 주인에게 배가 갈라져 죽을 거다.